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일로 확장되기까지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을 일로 녹여낸 사람들, 브랜드 마케터 정혜윤(@alohayoon, 이하 융)과 손꼽힌(@kphnsohn)은 음악 산업 내 종사하는 대신 산업 외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자처한다. 그들은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처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오가며 영역을 확장하고 거리를 좁혀나간다.
Talk | 정혜윤 · 손꼽힌, Edit | 이슬기
정혜윤, 손꼽힌
NEXT
대담:
정혜윤(융) @alohayoon
독립한 마케터이자 작가. 10년 동안 여섯 곳에 소속돼 다양한 일을 했지만, 줄곧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다. 지난 커리어는 음악, 크리에이티브, 카피라이팅, 문화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 지난 경험들을 기반으로 2020년부터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다능인 커뮤니티 SIDE.와 브랜딩 &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SIDE.Collective를 운영하고 있다.
손꼽힌 @kphnsohn
부티크 브랜딩 에이전트로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미디어, 부동산, 정치, 블록체인, 대체육 등 대안적인 흐름을 만드는 회사들의 브랜드 전략 및 마케팅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커뮤니티 오피스 New Office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으며 에이전시 Heary Handy를 만들었다. HOME LIVE : 수민, 원슈타인와 전시 <KNOCK, KNOCK> 를 기획, 홍보했다.
정리 : 이슬기 @s_eul.g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디터로 출발해 여러 스몰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에디터 겸 브랜드 마케터로 일한다. 흩어진 이야기를 모아 아름다운 맥락을 만드는 일에 성취를 느낀다. 텍스트와 이미지, 디지털과 공간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이야기를 시각화하며 제너럴리스트로 활동하지만 누구보다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 여러 능력 중 딱 하나만 꼽자면 감각이 살아 있는 글쓰기를 잘한다.
융: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많잖아요. 꼽힌 님은 음악 취향이 언제 생겼어요?
꼽힌: 아무래도 10대죠. 관심 있던 오빠가 힙합을 좋아했거든요.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한국, 해외 힙합 명반을 검색한 다음 정주행했어요. 공연도 다니고요. 그 취향이 이어져서 힙합/R&B를 좋아해요. 융 님은요?
융: 처음 열광했던 음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H.O.T.를 비롯해 SM 1세대 아이돌 팬이었어요. CLUB H.O.T.에서 활동하고 SM에서 나오는 가수들의 음반을 전부 다 모았으니까요. 현재까지 유효하게 이어져오는 록과 인디 음악의 씨앗이 심겨진 때는 고등학생 때에요. 영화 <프리키 프라이데이>에서 린제이 로한이 기타를 치는데, 기타치는 여자가 되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16~17살 때 미국에 머물면서 삶의 주체성을 많이 찾았어요. 17살 때 한국으로 돌아와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타 학원을 찾아다니고 고등학교 밴드에 합류했어요. 함께 밴드 활동하던 친구들과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음악을 들으며 밴드 음악에 눈을 떴어요. 오아시스, 핑크 플로이드, 레드 핫 칠리 페퍼 등등… 중학생 때만 해도 J-POP에 빠져있었는데 록의 세계에 눈을 뜨고 난 뒤로는 홍대에 공연 보러 다니면서 음악을 즐겼어요. 뭔가를 바란 게 아니고 그냥 그 시간이 너무 재밌어서 라이브 클럽을 찾아다녔어요. 그때부터 언니 오빠들이 알려준 음악을 흡수하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디깅하게 됐어요.
꼽힌: 처음 본 공연 기억나세요?
융: 드림콘서트? 홍대 밴드 공연은 ‘안녕바다’를 처음 봤어요. 그때는 이름이 ‘난 그대와 바다를 가르네' 였지만요. 추억의 홍대 ‘클럽 타’도 기억나고요.
꼽힌: 정말 추억의 장소, 지금 없어졌죠? 저 ‘클럽 타’ 문 닫는 날 공연 갔던 게 갑자기 생각났어요.
융: 어, 저도 갔는데! 장기하와 얼굴들도 나오고, 10CM,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라인업이 정말 좋아서 더 좋고 슬펐던 기억이 나요.
꼽힌: 맞아요, 2016년이면 저희 모르는 사이였는데 같은 곳에 있었네요(웃음). 저는 고3 때 모의고사 보고 공연 보기가 유일한 탈출구였어요. 그땐 <UMF>라고 만 원만 내면 당시 언더그라운드 루키들를 한 번에 다 볼 수 있는 공연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일로 연결된 순간
융: 음악 팬으로 지내다가 음악이 일로 엮인 첫 번째 경험은 언제였어요?
꼽힌: 얼마 안 됐어요. 음악을 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거든요. 부동산 회사에서 공간을 채우는 기획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전시나 공연 등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게 됐어요. 대표적으로 한 주거브랜드를 알리는 일환으로 방을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하고 그들의 집처럼 꾸미는 전시와 클로징 파티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미팅하면서 질문하게 되는 것들이 팬이 아니면 모르는 내용이 나오니까 놀라시더라고요. 네임 밸류도 없고 예산이 크지 않았음에도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걸 아니까 흔쾌히 응해줬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가 좋았고 이후에는 날개 펼친 듯 좋아하는 걸 일로 연결해서 기획했고 브랜드 성장에도, 아티스트에게도 서로 좋은 포트폴리오가 됐어요.
손꼽힌의 대표 포트폴리오
융: 높은 이해도를 갖고 접근하는 게, 비용을 많이 지불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많죠. 저도 꼽힌 님처럼 특히 아티스트들이랑 일할 땐 더 그런 것 같아요. 인지도도 있고 수입도 안정적인데도 참여를 결정한다는 건 ‘왜’가 통했을 때예요. 진정성이 느껴진다거나, 프로젝트 방향에 공감하는 경우.
꼽힌: 뮤지션이 프로젝트를 하면 크게 두 가지 경우잖아요. 대기업 주도 기획으로 페이를 넉넉하게 받거나, 친한 아티스트들끼리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재미로 해보거나. 융 님과 제가 하는 일은 그 사이 어딘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니까 커머셜하기도 하지만 흥미도 생기는 거죠. 좋은 기획이라면 아티스트도 기꺼이 하고 싶고, 기존 팬들도 새로운 접점이 생기니 좋을 테고, 예산을 투입한 브랜드에는 신규 사용자가 유입되고요.
융: 이야기하다 보니 느껴지는 공통점은 음악에서 뭘 얻고자 좋아한 게 아니었다는 점 같아요.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게 됐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신뢰를 기반을 둔 관계가 형성되어서 보통 기업들이 공식적으로 연락하는 것보다 수월하고 빠르게 일이 진행되는 거죠.
꼽힌: 신뢰하는 파트너가 되니까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먼저 알려주기도 하잖아요. ‘어느 뮤지션이랑 협업한 한 음반이 나오는데, 들어보실래요?’ 하고. 근데 마침 내가 그 음악과 어울리는 프로젝트 기획을 하고 있다면? 바로 제안서를 보내고, 그렇게 또 새로운 일로 확장이 되더라고요.
융: 저도 음악이 일이 될 거로 생각하지 못하다가 한국에서의 첫 번째 회사로 홍보 에이전시에 다녔는데요, 그때 ‘밸리 록 페스티벌’ SNS 운영 프로젝트가 들어왔어요. 매주 공연을 보러 다니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동료들이 아니까 프로젝트 담당자로 일하게 됐어요.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뭔가 함께 떠오르는 것이 브랜딩이라면 그때가 제가 음악 애호가로 퍼스널 브랜딩이 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융의 대표 포트폴리오
꼽힌: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고 본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업을 잘하는데 ‘이것도 좋아하더라’ 떠오를 때 일의 시너지가 나겠구나 예상하고 추천을 하는 거니까요.
꼽힌: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브랜드 소속 기획자로 일했잖아요. 좀 더 직접적인 음악 회사(유통사, 기획사 등)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융: 엇,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인데요. ‘본업을 잘할 때 일이 더 확장되고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라는 말씀하셨는데, 그게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제가 강점을 가진 일이 마케팅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스스로 역할을 레이블에 들어가서 소속 아티스트들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마케터로서 어떤 기획에 함께할 아티스트를 연결하고, 구조를 짜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브랜드의 마케팅 예산으로 아티스트를 서포트하고, 브랜드도 아티스트의 에너지를 받아 효율적인 마케팅을 집행하게 하는 거죠.
잘 아시겠지만 브랜드 마케팅은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진짜 중요하잖아요. 아티스트만큼 팬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콘텐츠로 잘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아티스트는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고 높은 퀄리티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브랜드가 이걸 존중하며 결과를 만들어 갈 때 발휘되는 시너지나 즐거움이 성과로 이어져요.
꼽힌: 전 떨어져서 안 간 게 아니라 못.. (웃음) AOMG랑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지원했었어요. 팬심으로 지원하기도 해서 채용 담당자가 보기엔 허수였을 것 같아요. 아, SK 뮤직앱 FLO(플로) 브랜드 마케팅팀에서 일한 적 있어요.
꼽힌: 보통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면 싫어진다고 하잖아요. 좋아하는 음악을 일로 대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융: 예전에 페스티벌 마케팅할 때 좀 힘들었던 건, 어쨌든 전 관객이 아니라 이 페스티벌을 알려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정신 놓고 즐기고 싶은데 일하는 사람으로서 진행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니 힘들 때가 있었어요. (웃음) 페이스북, 트위터 둘 다 담당했는데요. 특히 트위터는 실시간으로 페스티벌 현장을 안내해야 해서 온전히 공연 자체에만 몰입하기가 어려웠어요. 힘든 부분은 꼽는다면, 팬으로서의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마케터로 있어야 할 때?
어쨌든 숫자와 성과가 중요하니까 크리에이티브도 살리면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여러 입장을 한 가지 목표와 방향으로 좁혀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기획자의 역할이잖아요. 어렵지만 하나로 이루어졌을 때 오는 성취감이 분명히 있어요.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만족하고 즐거워할 때. 아티스트도 좋아하고, 브랜드에서도 만족하고, 사람들도 프로젝트를 즐기는 게 보일 때 제일 짜릿해요.
꼽힌: 너무 공감해요. 저는 최애 뮤지션 소규모 공연을 처음 진행했을 때 공연 전에 이사님이 저를 인사시켜주려고 불렀는데 너무 떨려서 도망갔어요.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고・・・, 공연 시작하고서는 송출을 하려고 제 개인 휴대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켜고 보는데 다 아는 노래니까 따라 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니 꾹 참았어요.저는 아티스트를 지지하고 음악 콘텐츠가 더 다양해지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그런데 월급도 받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보고, 성과도 함께 만드는 거니까 아무리 해도 이 일이 싫어지지 않아요.
융: 음악 다양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AAA>랑도 통해서 저희가 지금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레이블에 소속되지 않고 밖에서 일하고 있어서 더 균형을 잡는 것 아닐까요?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주최 측에 소속된 게 아니라 오히려 아티스트와 브랜드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익숙함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룰 때 발생하는 시너지
(이미지 출처 @손꼽힌)
융: 뮤지션,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와 협업을 많이 하잖아요. 인하우스 소속으로 일하는 게 아니니까 더 다양한 아티스트를 연결해 일하고요. 하나의 프로젝트에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는 이유가 있어요?
꼽힌: 사심으로나 임팩트 면에서나 경험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에요. 마케팅할 때, 메시지를 정하고 어떤 채널에 얼마큼 보여주려 하면 비용이 들잖아요. 이왕 돈을 쓴다면 기성 매체들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통해 말하는 게 더 재미있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소비자들은 모두 똑똑하기 때문에 더 이상 100원 핫딜 한다고 해서 가입해 구매하진 않잖아요. 앞으로의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융: 최근에 브랜드 보이가 쓴 책 <믹스>도 섞으라고 말을 하잖아요. 기존에 있던 걸 똑같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획에 의외성을 주는 게 중요해요.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지만 뭔가를 혼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거죠. 아티스트들이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마다 팬이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보면 커뮤니티예요. 어떤 프로젝트를 특정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와 작업하면, 그분이 자신의 아트워크를 본인 채널에 올렸을 때 팬들에게도 이 브랜드의 프로젝트가 알려지는 효과가 있어요. 특히 이 브랜드의 기존 팬들과 그 아티스트의 팬이 겹치지 않을 때 브랜드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전략이죠.
꼽힌: 이번에 <AAA> 작업하면서도 재밌었던 게, 몇 년 전 전시회에서 본 시계에 반해 구입하고 작가님(주원맨) 계정을 팔로우했거든요. 근데 융 님도 주원맨 작가님 이미 좋아하고 같이 일도 했었잖아요. 마음이 통하니 둘이 어떻게든 예산을 쪼개서 일러스트를 의뢰 드렸고요. 작가님을 통해 이 매거진을 알리는 새로운 채널이 자연스럽게 확보되기도 하는 거잖아요.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요.
꼽힌: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많이 하는 만큼, 어떻게 새로운 아티스트 풀을 발견하는지도 궁금해요.
융: 큐레이션 잘하는 친구들에게 많이 물어보고요. ‘그림 도시’나 ‘언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창작자 행사나 ‘픽스 필즈’, ‘캐비넷 클럽’ 같은 플랫폼을 자주 찾아보는 편이에요. 워낙 독립 출판물과 창작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니까요. 꼽힌님은요?
꼽힌: 저도 친구 추천을 제일 믿고, 작품 나오면 크레딧을 꼼꼼히 봐요. 좋아하는 아티스트 뮤직비디오를 누가 찍었는지, 앨범 커버는 누가 그렸는지, 그 사람은 이전에 어디서 전시를 했으며, 그 전시장에서는 어떤 공연이 있었는지 디깅하다 보면 순식간에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엄청나게 하고 있어요.
융: 요즘 내가 뭘 좋아하는지, 스스로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 질문에 답이 될 것 같아요. 뭔가를 하나 발견하면, 검색해서 위키도 읽어보고, 연관 검색어 파도타기 식으로 들어가 보라고요. 그렇게만 해도 새로운 세계가 있잖아요.
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을 되게 좋아하는데, 이 사람이 ‘다프트 펑크’ 뮤직비디오도 찍었거든요. 저는 또 다프트 펑크의 팬이기도 하니까 이런 히스토리를 알게 되면 그렇게 겹치는 부분에서 또 취향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죠. 최애와 최애가 알고 보니 친했네? 이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음악 산업 매거진 <AAA>를 함께 만드는 이유
(이미지 출처 @융)
꼽힌: 융님은 ‘2022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슬로건을 쓴 계기가 <AAA>를 만드는 일까지 왔네요. 어떻게 여기까지 연결된 걸까요?
융: <AAA> 매거진 발행 매체인 ‘알프스’의 이수정 이사님을 알게 된 건 2013년인가 그래요. 그때 수정 님이 경리단길 LP 바 골목바이닐앤펍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바의 단골이었고요. 음악 들으면서 같이 술 먹고 춤추며 놀다가 만난 사이예요. (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수정 님은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제가 마케팅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도요. 그래서 2019년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 평화를 주제로 한 에세이를 써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때 제가 쓴 에세이의 제목을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라고 붙였는데요, 이게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의 슬로건이 된 거예요. 이 인연으로 미소 대표님과도 알게 됐어요. 에세이 제목을 축제 슬로건으로 결정할 때 두 분이 카피라이팅 비용을 더 얹어 주셨어요.
그 인연으로 올해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마케팅을 같이하게 된 거예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공연 매출이 뮤지션들에게 기여가 큰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 음악 시장은 규모의 한계가 있다는 말도 공감해요. 그래서 앞으로 알프스가 음악의 다양성을 꿈꾸는 독립 에이전시로서 할 일이 기대됩니다.
요새 일이 많아서 혼자 하기엔 벅찼을 텐데, 아무리 바빠도 <AAA> 일은 거절할 수 없었어요. 제 삶의 가치관과 같은 방향에 있는 일이고, 너무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이 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해낼 것인가 하고 생각했을 때 꼽힌 님이 바로 떠오른 거죠. 꼽힌 님도 미소 님, 수정 님과 알고 있지 않았어요?
꼽힌: 라이브 공연과 축제를 만든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올해 ‘부평 언더시티’ 행사를 알프스에서 기획했잖아요. 공식적으로는 그때 기고하게 되면서 연락을 처음 나눴어요. 더 소소하게는 알프스에서 운영하는 플립드코인의 뮤지션 ‘해파리’의 신도시 공연 입장할 때 명단 체크하고, 해파리 굿즈 버킷햇을 샀거든요. 수정 님이 결제해주면서 인사 나눴어요.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는데 <AAA> 취지를 듣고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죠.
융: 우리가 일하는 이유와도 맞닿은 일이고 ALPS의 진심과 노력을 아니까요. 음악은 시대를 반영해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음악이 저항의 콘텐츠로 쓰인 적도 많잖아요. 새로운 일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에서도 앞장서고 있는 것이 많고요. 그래서인지 뮤지션들이 어떻게 협업하고, 자기들의 일을 확장하는지 보면 항상 배울 점이 많아요. 브랜드 마케터로서도 말이에요.
그래서 <AAA>의 콘텐츠는 꼭 음악 산업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마케터나 에디터, 기획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 하나쯤은 있잖아요. 재밌게 즐기면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음악을 좋아하는 마음이
일로 확장되기까지
음악을 비롯한 문화예술에 대한 애정을 일로 녹여낸 사람들,
브랜드 마케터 정혜윤(@alohayoon, 이하 융)과 손꼽힌(@kphnsohn)은
음악 산업 내 종사하는 대신 산업 외의 세상과의 연결고리를 자처한다.
그들은 메인스트림과 서브컬처의 경계에서 두 세계를 오가며
영역을 확장하고 거리를 좁혀나간다.
Talk | 정혜윤 · 손꼽힌, Edit | 이슬기
정혜윤, 손꼽힌
NEXT
대담:
정혜윤(융) @alohayoon
독립한 마케터이자 작가. 10년 동안 여섯 곳에 소속돼 다양한 일을 했지만, 줄곧 브랜드 마케터로 일했다. 지난 커리어는 음악, 크리에이티브, 카피라이팅, 문화 예술이라는 키워드로 정리된다. 지난 경험들을 기반으로 2020년부터 프리랜서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다능인 커뮤니티 SIDE.와 브랜딩 & 크리에이티브 스튜디오 SIDE.Collective를 운영하고 있다.
손꼽힌 @kphnsohn
부티크 브랜딩 에이전트로 문화예술을 기반으로 미디어, 부동산, 정치, 블록체인, 대체육 등 대안적인 흐름을 만드는 회사들의 브랜드 전략 및 마케팅 캠페인을 담당하고 있다. 현재 커뮤니티 오피스 New Office를 만들고 운영하고 있으며 에이전시 Heary Handy를 만들었다. HOME LIVE : 수민, 원슈타인와 전시 <KNOCK, KNOCK> 를 기획, 홍보했다.
정리 : 이슬기 @s_eul.g
라이프스타일 매거진 에디터로 출발해 여러 스몰 브랜드 매니저로 일했으며, 현재는 프리랜서 에디터 겸 브랜드 마케터로 일한다. 흩어진 이야기를 모아 아름다운 맥락을 만드는 일에 성취를 느낀다. 텍스트와 이미지, 디지털과 공간이라는 도구를 활용해 이야기를 시각화하며 제너럴리스트로 활동하지만 누구보다 스페셜리스트가 되고 싶다. 여러 능력 중 딱 하나만 꼽자면 감각이 살아 있는 글쓰기를 잘한다.
융: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 많잖아요. 꼽힌 님은 음악 취향이 언제 생겼어요?
꼽힌: 아무래도 10대죠. 관심 있던 오빠가 힙합을 좋아했거든요. 어떻게든 공통점을 찾아서 친해지고 싶은 마음에 한국, 해외 힙합 명반을 검색한 다음 정주행했어요. 공연도 다니고요. 그 취향이 이어져서 힙합/R&B를 좋아해요. 융 님은요?
융: 처음 열광했던 음악으로 거슬러 올라간다면… H.O.T.를 비롯해 SM 1세대 아이돌 팬이었어요. CLUB H.O.T.에서 활동하고 SM에서 나오는 가수들의 음반을 전부 다 모았으니까요. 현재까지 유효하게 이어져오는 록과 인디 음악의 씨앗이 심겨진 때는 고등학생 때에요. 영화 <프리키 프라이데이>에서 린제이 로한이 기타를 치는데, 기타치는 여자가 되게 멋있어 보이더라고요. 16~17살 때 미국에 머물면서 삶의 주체성을 많이 찾았어요. 17살 때 한국으로 돌아와 해보고 싶은 게 있으면 해보자는 생각으로 기타 학원을 찾아다니고 고등학교 밴드에 합류했어요. 함께 밴드 활동하던 친구들과 선생님이 가르쳐주는 음악을 들으며 밴드 음악에 눈을 떴어요. 오아시스, 핑크 플로이드, 레드 핫 칠리 페퍼 등등… 중학생 때만 해도 J-POP에 빠져있었는데 록의 세계에 눈을 뜨고 난 뒤로는 홍대에 공연 보러 다니면서 음악을 즐겼어요. 뭔가를 바란 게 아니고 그냥 그 시간이 너무 재밌어서 라이브 클럽을 찾아다녔어요. 그때부터 언니 오빠들이 알려준 음악을 흡수하는 걸 넘어서 적극적으로 디깅하게 됐어요.
꼽힌: 처음 본 공연 기억나세요?
융: 드림콘서트? 홍대 밴드 공연은 ‘안녕바다’를 처음 봤어요. 그때는 이름이 ‘난 그대와 바다를 가르네' 였지만요. 추억의 홍대 ‘클럽 타’도 기억나고요.
꼽힌: 정말 추억의 장소, 지금 없어졌죠? 저 ‘클럽 타’ 문 닫는 날 공연 갔던 게 갑자기 생각났어요.
융: 어, 저도 갔는데! 장기하와 얼굴들도 나오고, 10CM, 불나방스타쏘세지클럽… 라인업이 정말 좋아서 더 좋고 슬펐던 기억이 나요.
꼽힌: 맞아요, 2016년이면 저희 모르는 사이였는데 같은 곳에 있었네요(웃음). 저는 고3 때 모의고사 보고 공연 보기가 유일한 탈출구였어요. 그땐 <UMF>라고 만 원만 내면 당시 언더그라운드 루키들를 한 번에 다 볼 수 있는 공연이 있었어요.
좋아하는 마음을 넘어 일로 연결된 순간
융: 음악 팬으로 지내다가 음악이 일로 엮인 첫 번째 경험은 언제였어요?
꼽힌: 얼마 안 됐어요. 음악을 일로 연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도 없거든요. 부동산 회사에서 공간을 채우는 기획을 하다가 자연스럽게 전시나 공연 등 제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과 협업하게 됐어요. 대표적으로 한 주거브랜드를 알리는 일환으로 방을 아티스트들에게 제공하고 그들의 집처럼 꾸미는 전시와 클로징 파티를 기획한 적이 있어요.
미팅하면서 질문하게 되는 것들이 팬이 아니면 모르는 내용이 나오니까 놀라시더라고요. 네임 밸류도 없고 예산이 크지 않았음에도 아티스트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걸 아니까 흔쾌히 응해줬다고 생각해요. 그 결과가 좋았고 이후에는 날개 펼친 듯 좋아하는 걸 일로 연결해서 기획했고 브랜드 성장에도, 아티스트에게도 서로 좋은 포트폴리오가 됐어요.
손꼽힌의 대표 포트폴리오
융: 높은 이해도를 갖고 접근하는 게, 비용을 많이 지불하는 것보다 중요하게 작용할 때가 많죠. 저도 꼽힌 님처럼 특히 아티스트들이랑 일할 땐 더 그런 것 같아요. 인지도도 있고 수입도 안정적인데도 참여를 결정한다는 건 ‘왜’가 통했을 때예요. 진정성이 느껴진다거나, 프로젝트 방향에 공감하는 경우.
꼽힌: 뮤지션이 프로젝트를 하면 크게 두 가지 경우잖아요. 대기업 주도 기획으로 페이를 넉넉하게 받거나, 친한 아티스트들끼리 돈이 되지 않더라도 재미로 해보거나. 융 님과 제가 하는 일은 그 사이 어딘가 있는 것 같다고 생각해요. 브랜드와 아티스트가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니까 커머셜하기도 하지만 흥미도 생기는 거죠. 좋은 기획이라면 아티스트도 기꺼이 하고 싶고, 기존 팬들도 새로운 접점이 생기니 좋을 테고, 예산을 투입한 브랜드에는 신규 사용자가 유입되고요.
융: 이야기하다 보니 느껴지는 공통점은 음악에서 뭘 얻고자 좋아한 게 아니었다는 점 같아요. 순수한 마음으로 좋아하다 보니까 자연스럽게 커뮤니티 안에 들어가게 됐고요. 시간이 흐르면서 신뢰를 기반을 둔 관계가 형성되어서 보통 기업들이 공식적으로 연락하는 것보다 수월하고 빠르게 일이 진행되는 거죠.
꼽힌: 신뢰하는 파트너가 되니까 공식적으로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먼저 알려주기도 하잖아요. ‘어느 뮤지션이랑 협업한 한 음반이 나오는데, 들어보실래요?’ 하고. 근데 마침 내가 그 음악과 어울리는 프로젝트 기획을 하고 있다면? 바로 제안서를 보내고, 그렇게 또 새로운 일로 확장이 되더라고요.
융: 저도 음악이 일이 될 거로 생각하지 못하다가 한국에서의 첫 번째 회사로 홍보 에이전시에 다녔는데요, 그때 ‘밸리 록 페스티벌’ SNS 운영 프로젝트가 들어왔어요. 매주 공연을 보러 다니고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동료들이 아니까 프로젝트 담당자로 일하게 됐어요. 어떤 사람을 떠올리면 뭔가 함께 떠오르는 것이 브랜딩이라면 그때가 제가 음악 애호가로 퍼스널 브랜딩이 된 시점이라고 생각해요.
융의 대표 포트폴리오
꼽힌: 좋아하는 것을 말하는 것도 중요하고 본업에서 성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본업을 잘하는데 ‘이것도 좋아하더라’ 떠오를 때 일의 시너지가 나겠구나 예상하고 추천을 하는 거니까요.
꼽힌: 음악을 좋아하면서도 브랜드 소속 기획자로 일했잖아요. 좀 더 직접적인 음악 회사(유통사, 기획사 등)에 들어가지 않은 이유가 있어요?
융: 엇, 생각해보지 못한 질문인데요. ‘본업을 잘할 때 일이 더 확장되고 시너지가 나는 것 같다’라는 말씀하셨는데, 그게 중요한 포인트 같아요. 제가 강점을 가진 일이 마케팅이라는 걸 알고 있어서 스스로 역할을 레이블에 들어가서 소속 아티스트들에게만 집중하기보다, 마케터로서 어떤 기획에 함께할 아티스트를 연결하고, 구조를 짜고, 콘텐츠를 만드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브랜드의 마케팅 예산으로 아티스트를 서포트하고, 브랜드도 아티스트의 에너지를 받아 효율적인 마케팅을 집행하게 하는 거죠.
잘 아시겠지만 브랜드 마케팅은 어떻게 접근하느냐가 진짜 중요하잖아요. 아티스트만큼 팬들에게 자기 목소리를 콘텐츠로 잘 전할 수 있는 사람들이 없어요. 아티스트는 소비자들이 거부감을 느끼지 않도록 자연스럽고 높은 퀄리티로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이니까요. 브랜드가 이걸 존중하며 결과를 만들어 갈 때 발휘되는 시너지나 즐거움이 성과로 이어져요.
꼽힌: 전 떨어져서 안 간 게 아니라 못.. (웃음) AOMG랑 두루두루아티스트컴퍼니 지원했었어요. 팬심으로 지원하기도 해서 채용 담당자가 보기엔 허수였을 것 같아요. 아, SK 뮤직앱 FLO(플로) 브랜드 마케팅팀에서 일한 적 있어요.
꼽힌: 보통 좋아하는 분야에서 일하면 싫어진다고 하잖아요. 좋아하는 음악을 일로 대하면서 힘든 적은 없었나요?
융: 예전에 페스티벌 마케팅할 때 좀 힘들었던 건, 어쨌든 전 관객이 아니라 이 페스티벌을 알려야 하는 사람이잖아요. 정신 놓고 즐기고 싶은데 일하는 사람으로서 진행을 우선순위에 두어야 하니 힘들 때가 있었어요. (웃음) 페이스북, 트위터 둘 다 담당했는데요. 특히 트위터는 실시간으로 페스티벌 현장을 안내해야 해서 온전히 공연 자체에만 몰입하기가 어려웠어요. 힘든 부분은 꼽는다면, 팬으로서의 자아를 잠시 내려놓고 마케터로 있어야 할 때?
어쨌든 숫자와 성과가 중요하니까 크리에이티브도 살리면서 시너지가 날 수 있도록 조율하는 게 쉽지는 않은 것 같아요. 여러 입장을 한 가지 목표와 방향으로 좁혀 흐름을 만들어내는 게 기획자의 역할이잖아요. 어렵지만 하나로 이루어졌을 때 오는 성취감이 분명히 있어요. 참여한 사람들이 모두 만족하고 즐거워할 때. 아티스트도 좋아하고, 브랜드에서도 만족하고, 사람들도 프로젝트를 즐기는 게 보일 때 제일 짜릿해요.
꼽힌: 너무 공감해요. 저는 최애 뮤지션 소규모 공연을 처음 진행했을 때 공연 전에 이사님이 저를 인사시켜주려고 불렀는데 너무 떨려서 도망갔어요. 기침과 사랑은 숨길 수가 없다고・・・, 공연 시작하고서는 송출을 하려고 제 개인 휴대폰으로 라이브 방송을 켜고 보는데 다 아는 노래니까 따라 부르고 싶어도 목소리가 들어가면 안 되니 꾹 참았어요.저는 아티스트를 지지하고 음악 콘텐츠가 더 다양해지는 데 기여하고 싶은 마음이 크거든요. 그런데 월급도 받고,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보고, 성과도 함께 만드는 거니까 아무리 해도 이 일이 싫어지지 않아요.
융: 음악 다양성에 기여하고 싶다는 마음이 <AAA>랑도 통해서 저희가 지금 이런 대화를 나누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가 레이블에 소속되지 않고 밖에서 일하고 있어서 더 균형을 잡는 것 아닐까요? 프로젝트를 진행해도 주최 측에 소속된 게 아니라 오히려 아티스트와 브랜드 사이에서 균형을 잡을 수 있는 것 같아요.
익숙함과 새로움이 조화를 이룰 때 발생하는 시너지
(이미지 출처 @손꼽힌)
융: 뮤지션, 일러스트레이터, 디자이너와 협업을 많이 하잖아요. 인하우스 소속으로 일하는 게 아니니까 더 다양한 아티스트를 연결해 일하고요. 하나의 프로젝트에 여러 아티스트와 함께 일하는 이유가 있어요?
꼽힌: 사심으로나 임팩트 면에서나 경험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방식이에요. 마케팅할 때, 메시지를 정하고 어떤 채널에 얼마큼 보여주려 하면 비용이 들잖아요. 이왕 돈을 쓴다면 기성 매체들보다 우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를 통해 말하는 게 더 재미있고 효과적이라고 생각해요. 소비자들은 모두 똑똑하기 때문에 더 이상 100원 핫딜 한다고 해서 가입해 구매하진 않잖아요. 앞으로의 마케팅이라고 생각해요.
융: 최근에 브랜드 보이가 쓴 책 <믹스>도 섞으라고 말을 하잖아요. 기존에 있던 걸 똑같이 만들어내는 게 아니라 기획에 의외성을 주는 게 중요해요. 이 세상에 완전히 새로운 건 없지만 뭔가를 혼합해서 새로운 가치를 만들 수 있거죠. 아티스트들이 자연스럽게 그 일을 하는 것 같아요. 아티스트마다 팬이 있잖아요. 그건 어떻게 보면 커뮤니티예요. 어떤 프로젝트를 특정 디자이너나 일러스트레이터와 작업하면, 그분이 자신의 아트워크를 본인 채널에 올렸을 때 팬들에게도 이 브랜드의 프로젝트가 알려지는 효과가 있어요. 특히 이 브랜드의 기존 팬들과 그 아티스트의 팬이 겹치지 않을 때 브랜드의 영향력을 넓힐 수 있는 전략이죠.
꼽힌: 이번에 <AAA> 작업하면서도 재밌었던 게, 몇 년 전 전시회에서 본 시계에 반해 구입하고 작가님(주원맨) 계정을 팔로우했거든요. 근데 융 님도 주원맨 작가님 이미 좋아하고 같이 일도 했었잖아요. 마음이 통하니 둘이 어떻게든 예산을 쪼개서 일러스트를 의뢰 드렸고요. 작가님을 통해 이 매거진을 알리는 새로운 채널이 자연스럽게 확보되기도 하는 거잖아요. 좋아하는 마음에서 시작하는 게 가장 효과적인 것 같아요.
꼽힌: 아티스트들과 협업을 많이 하는 만큼, 어떻게 새로운 아티스트 풀을 발견하는지도 궁금해요.
융: 큐레이션 잘하는 친구들에게 많이 물어보고요. ‘그림 도시’나 ‘언리미티드 에디션’ 같은 창작자 행사나 ‘픽스 필즈’, ‘캐비넷 클럽’ 같은 플랫폼을 자주 찾아보는 편이에요. 워낙 독립 출판물과 창작하는 사람들을 좋아하니까요. 꼽힌님은요?
꼽힌: 저도 친구 추천을 제일 믿고, 작품 나오면 크레딧을 꼼꼼히 봐요. 좋아하는 아티스트 뮤직비디오를 누가 찍었는지, 앨범 커버는 누가 그렸는지, 그 사람은 이전에 어디서 전시를 했으며, 그 전시장에서는 어떤 공연이 있었는지 디깅하다 보면 순식간에 인스타그램 팔로잉을 엄청나게 하고 있어요.
융: 요즘 내가 뭘 좋아하는지, 스스로의 취향을 잘 모르겠다는 사람들 많잖아요. 그 질문에 답이 될 것 같아요. 뭔가를 하나 발견하면, 검색해서 위키도 읽어보고, 연관 검색어 파도타기 식으로 들어가 보라고요. 그렇게만 해도 새로운 세계가 있잖아요.
전 ‘스파이크 존즈’ 감독을 되게 좋아하는데, 이 사람이 ‘다프트 펑크’ 뮤직비디오도 찍었거든요. 저는 또 다프트 펑크의 팬이기도 하니까 이런 히스토리를 알게 되면 그렇게 겹치는 부분에서 또 취향을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죠. 최애와 최애가 알고 보니 친했네? 이걸 발견하는 즐거움이 있어요.
음악 산업 매거진 <AAA>를 함께 만드는 이유
(이미지 출처 @융)
꼽힌: 융님은 ‘2022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슬로건을 쓴 계기가 <AAA>를 만드는 일까지 왔네요. 어떻게 여기까지 연결된 걸까요?
융: <AAA> 매거진 발행 매체인 ‘알프스’의 이수정 이사님을 알게 된 건 2013년인가 그래요. 그때 수정 님이 경리단길 LP 바 골목바이닐앤펍에서 일하고 있었거든요. 저는 바의 단골이었고요. 음악 들으면서 같이 술 먹고 춤추며 놀다가 만난 사이예요. (웃음)
그래서 자연스럽게 수정 님은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걸 알고 있었어요. 제가 마케팅을 하고 글을 쓴다는 것도요. 그래서 2019년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에 평화를 주제로 한 에세이를 써 달라는 요청이 들어왔어요. 그때 제가 쓴 에세이의 제목을 ‘서로에게 선을 긋기 전에 함께 춤을 추자’라고 붙였는데요, 이게 피스트레인 페스티벌의 슬로건이 된 거예요. 이 인연으로 미소 대표님과도 알게 됐어요. 에세이 제목을 축제 슬로건으로 결정할 때 두 분이 카피라이팅 비용을 더 얹어 주셨어요.
그 인연으로 올해 DMZ 피스트레인 페스티벌 마케팅을 같이하게 된 거예요.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어느 나라에서도 공연 매출이 뮤지션들에게 기여가 큰 걸로 알고 있어요. 한국 음악 시장은 규모의 한계가 있다는 말도 공감해요. 그래서 앞으로 알프스가 음악의 다양성을 꿈꾸는 독립 에이전시로서 할 일이 기대됩니다.
요새 일이 많아서 혼자 하기엔 벅찼을 텐데, 아무리 바빠도 <AAA> 일은 거절할 수 없었어요. 제 삶의 가치관과 같은 방향에 있는 일이고, 너무 사랑하는 일이니까요. 이 일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해낼 것인가 하고 생각했을 때 꼽힌 님이 바로 떠오른 거죠. 꼽힌 님도 미소 님, 수정 님과 알고 있지 않았어요?
꼽힌: 라이브 공연과 축제를 만든다는 정도만 알고 있었어요. 올해 ‘부평 언더시티’ 행사를 알프스에서 기획했잖아요. 공식적으로는 그때 기고하게 되면서 연락을 처음 나눴어요. 더 소소하게는 알프스에서 운영하는 플립드코인의 뮤지션 ‘해파리’의 신도시 공연 입장할 때 명단 체크하고, 해파리 굿즈 버킷햇을 샀거든요. 수정 님이 결제해주면서 인사 나눴어요. 어렴풋하게 알고 있었는데 <AAA> 취지를 듣고 무조건 해야겠다 싶었죠.
융: 우리가 일하는 이유와도 맞닿은 일이고 ALPS의 진심과 노력을 아니까요. 음악은 시대를 반영해요. 역사적으로 살펴보면 음악이 저항의 콘텐츠로 쓰인 적도 많잖아요. 새로운 일의 방식을 받아들이는 데에서도 앞장서고 있는 것이 많고요. 그래서인지 뮤지션들이 어떻게 협업하고, 자기들의 일을 확장하는지 보면 항상 배울 점이 많아요. 브랜드 마케터로서도 말이에요.
그래서 <AAA>의 콘텐츠는 꼭 음악 산업 종사자들뿐만 아니라 마케터나 에디터, 기획자 모두에게 도움이 될 것 같아요. 그리고 누구나 좋아하는 음악 하나쯤은 있잖아요. 재밌게 즐기면서 인사이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 많을 거예요.
OUTRO
ISSUE 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