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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시아 음악 시장의 정체: 지형, 그리고 트렌드

ISSUE 3 - 02. INSIG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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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 것을 만드는 사람들에게는
제가 손해보겠다고 생각하는 편이에요.

ISSUE 2 - 07. OUTRO

— 각자, 어떻게 페스티벌을 만드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간단 소개와 함께 지난 이력 부탁드립니다.

재원: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홍대에 ‘카고’라는 클럽이 있었어요. 거기에 엄청 자주 갔는데 익수 형(당시 ‘카고’ 클럽 대표)을 따라서 축제에 가기 시작했죠. 난생 처음 갔던 축제는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전신)이었어요. 이후로 축제들에 다녔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좀 날 것들이었고 록킹한 음악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때 축제에 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그쪽과는 다르게 음악 신에 있는 형이나 누나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홍대 신도 그렇고요. 부산에서 막 올라와서 이런 걸 보니까 거기에 끼고 싶더라고요. 사람들이 너무 멋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여러 축제에서 스태프도 했고 부스로도 참여했는데 이후에 한강 몽땅 페스티벌을 거쳐서 서울인기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민규: 저는 원래 클럽 신을 되게 좋아했어요. 페스티벌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 알고 있는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이런 델 가 본 건데요, 사실 거기서 그렇게 재미를 못 느꼈어요. 그냥 야외에서 똑같이 음악 듣고 춤만 추다가 오는 거니까, 딱히 저한테 꽂히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17년에 베트남에 출장을 갔는데 우연하게도 베트남 친구가 페스티벌을 하나 추천하더라고요. 주말에 차 타고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들어가니까 산골짜기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페스티벌을 하는 거예요. 이큐에이션(Equation)이라는 페스티벌이었어요. 그렇게 밤새도록 놀고 아침에 해가 딱 떴을 때 사람들의 평온한 표정을 봤어요.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무조건 한국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다음 해에 바로 에어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소: 저는 원래 국악을 전공했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걸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어요. 그러다가 울산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일하면서 이 세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음악 마켓이라는 이벤트들이 생기던 시기였는데요, 그 안에서 일하다 보니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에서 나오는 재미난 것들을 더 소개하고 싶어서 인디 신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잔다리페스타 대표님을 소개받으면서 잔다리페스타도 하게 되고 피스트레인까지 이어졌죠.

— 세 분 다 한국 페스티벌 신에서 나름 획기적이라고 평가받는 페스티벌을 만들었거나 지금 만들고 계신데요, 어떤 페스티벌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재원: 제가 서울인기를 했을 때엔 굳이 포지션이나 직함은 없었고, 전체를 관장하는 역할을 했어요. 감독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냥 프로듀서라고도 부를 수 있겠네요. 서울인기라는 페스티벌이 어떻게 생겼냐면요, 축제 신에서 있으면서 보니까 점점 축제들이 똑같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좋은 경험을 했던 예전의 그 당시로 돌이키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보고 있었던 건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요. 그러니까 서울인기는 음악페스티벌이 아니고 서울에서 인기 있는, 그러니까 인간의 기운이라고 정의되는 ‘인기’라는 의미로 사람들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철학을 가지고 멋있는 사람이 모이도록. 그 안에서 음악도 있고 다양한 것들이 있는 풍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뿔뿔이 흩어져 있는, 멋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서 하루동안 잔치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6~7개월 정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축제에 모았고 그게 우리의 ‘인기’, 분위기가 된 거죠. 기운을 모아서요. 우리 기획팀은 사람만 찾았어요. 돈도 안 받고 그냥 수익을 전부 n분의 1로 나눠 가졌습니다.

미소: 저는 현재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에서 총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총감독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처음에 축제가 만들어질 때 저보다 선배 그룹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축제 조직위원회의 이사들로 계시는데, 제가 맡은 건 뾰족한 전문성이 있는 분야라기보다 대외 커뮤니케이션과 행정, 전반적으로 조정하는 역할, 살림살이 등을 고루 맡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공연 프로그램을 제외한 전반을 두루 관장하게 되었고 그래서 총괄 감독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피스트레인은 최초 멤버 구성과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지만, 이 최초 멤버들과 1, 2년 차에 축제의 성격과 태도를 두고 많이 이야기했고 나름의 원칙도 세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때 시작했던 피스트레인의 성격과 태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고 있고요.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를 두고 대단한 평화주의자거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이라서 이런 걸 한다는 오해도 사긴 하는데요. 저희는 그저 신 안에서 서열이 매겨지는 게 싫었고, 티켓 판매에 따라서 아티스트를 가리는 것도 싫었을 뿐이에요. 자본에만 휘둘리지 말고 이 신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에 대한 고민이 깊었고, 뻔한 것보다 의외성을 만들 수 있는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피스트레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민규: 저도 마찬가지예요. 남들과는 다른 걸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타협하고 있긴 해요. 일단 우리가 살아야 계속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처음에 갖고 있던 신념은 잃지 말고 더 탄탄하게 진행해서 ‘혹시 외부 세력이 침입해도 굳건하게 막아보자’라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에어하우스는 단순한 뮤직 페스티벌이라기보다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인식됐으면 좋겠어요. 이동식 문화 복합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대체, 정체가 뭐야?

출처: 디 에어하우스 홈페이지

—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페스티벌을 두고 각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부분이 흥미롭네요. 제 생각에 지금 한국은 페스티벌 범람의 시대처럼 보이는데요, 각자 ‘페스티벌’은 무엇이며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재원: 저는 축제의 상이라는 걸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요. 축제는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시대에 이런저런 것들을 모아 놓고,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걸 만드는 거요. 그런 철학이 무조건 있어야 하고, 그게 없으면 그냥 쇼라고 생각해요.

미소: 콜렉티브의 개념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는, 당대의 멋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 확실히 서울인기였던 것 같네요.

재원: 맞아요. 제가 서울인기를 만들기 전에 했던 게 ‘언니오빠운동회’라는 거였는데, 그때 고민이 음악하는 사람이랑 미술하는 사람이랑 왜 안 친해질까, 그런 거였어요. 그래서 홍대 시내에서 한 300명 정도 모아서 3년 동안 운동회를 했어요. 나는 그 축제가 당시의 신을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 게 중심이에요.

민규: 저한테 페스티벌이 뭐냐고 물으신다면요, 아까 말한 거 있잖아요. 아침에 마주하는 평화로움. 그걸 얻어가는 게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부모님한테 혼날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놀잖아요. 그런 공간이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불만도 불평도 있을 수 있는데,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도 반드시 있는 공간.

미소: 저는 포인트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축제는 관객과 참여하는 분들, 즉 아티스트를 서로 연결하는 작업으로도 생각해요. 페스티벌이라고 하면 되게 거창하다고 생각들 하는데, 저는 예술적 경험이나 문화적 경험을 각자 성장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저의 미션으로 보기도 해요. 그래서 축제 안에서 사람들이 감각하고 경험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사실 세 페스티벌 모두 음악을 콘텐츠로 가져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히 별로 없네요. 음악은 세 분의 페스티벌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미소: 저는 사실 음악이 어떤 것도 보다 제일 좋다고 말할 순 없을 거 같아요. 그냥 제 뿌리가 음악에 있어서, 그 영토 안에서 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내 친구나 동료들이 좀 더 나은 토양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요. 우리가 만든 사건으로 인해서 세상이 변하거나 성장하는 걸 보고 싶어요. 계몽주의자 같은 성격이 좀 있죠.

재원: 서울인기에서 음악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은 프로그램 팀이에요. 그들과 이 시대에서 정말 필요한 아티스트를 고르는 작업을 하죠.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너무 좋아하니까, 건너건너 알게 되는 뮤지션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도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를 끄집어내고 전체적인 결과 일맥상통하게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민규: 에어하우스는 음악이 뿌리죠. 특히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데, 이걸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 신에 대한 사명감 같은 거요. 언더그라운드에 있는 아티스트들도 많이 힘들거든요. 이들이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는 거죠.

— 세 페스티벌 모두 음악을 주요 콘텐츠로 가져가지만, 그 내용과 방식이 무척 다르다고 볼 수 있겠네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축제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모습들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신의 한 흐름을 반영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서울인기도 홍대의 얼터너티브 문화가 을지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결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거든요. 에어하우스도 기존 한국에서 열리던 페스티벌 공간의 틀을 깼고, 이후 비슷한 시도를 하는 작은 페스티벌들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현재의 페스티벌 신을 각자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조망하는지 듣고 싶어요.

재원: 트래시 버스터즈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축제에 가요. 하지만 가고 싶은 축제에는 못 가는 경우도 많아요. 주말에 계속 다른 축제에 가야 하니까. 그런데 요즘 가서 보는 대부분 축제에는 철학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록 페스티벌이라고 하는데 힙합이 들어와 있어요. 그건 록의 정체성을 다루는 게 아니잖아요. 조금 더 깊게 가져가야 하지 않나 싶은데, 사람 모으거나 돈 버는 게 우선인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자신만의 철학을 앞세워서 좀 더 깊게 가면 훨씬 멋있고 홍보도 되고 수익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없고 이름만 다르지 아티스트는 거기서 거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살아남는 데만 살아남을 거예요. 관객들도 알 거니까요.

미소: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너무 소비 지향적이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철학도 없고 사례도 없으니까, ‘누가 했더니 잘 됐더라’며 형식을 베끼기도 하죠. 페스티벌이 유사해지면서 한국 특유의 전형성이 생겼는데 그 때문에 페스티벌을 두고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재원: 사실 페스티벌은 누구나 할 수 있죠. 돈만 있으면. 아티스트는 섭외하면 되는 거고, 시스템은 부르면 되는 거고. 다 똑같으니까. 차별점이 없잖아요.

미소: 예전에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감독님과 얘기한 적 있는데, 사실 대한민국 축제사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류의 페스티벌이 등장한 건 겨우 20여 년 전 일이에요. 자라섬이 올해 20주년이 되고, 펜타포트는 17회예요. 그런 거 보면 너무 일찍 ‘한국의 페스티벌은 이런 거지’라는 프레임이 형성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좀 더 니치한 것들이 더 많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드러나야 사람들도 다양한 재미를 알 수 있게 되는데, 일단 보이지도 않고 잘 없고요.

민규: 올해 들어 작은 규모의 페스티벌이 많이 생기고 있긴 해요. 그래서 저는 좋아요. 클럽 신의 경우도 강남의 빅네임들이 무너지고 소규모 클럽들이 탄탄해지는 과정이라고 보는데, 페스티벌도 비슷한 흐름에 있다고 생각해요.

미소: 맞아요. 하지만 저는 좀 더 장르 베이스로 특징적인 것들을 보여주는 게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세 분 모두 공통으로 자가 복제하듯 찍어내는 페스티벌보다 철학이 엿보인다거나, 니치한 방향을 추구하는 페스티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관객의 관점에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걸 알게 되는 창구가 한정되어 있잖아요.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요. 그런 소셜미디어에서는 하나의 계정이나 게시물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나 텍스트가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생산되는 홍보물만 보면 모두 다 특별한 거 같은데 막상 가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해요. 어떤 감각으로 ‘이건 정체가 다르다’라는 기운을 받으시나요?

재원: 전체적인 톤앤 매너에서 드러나요. 예를 들어서 에어하우스는 2019년에 트래시 버스터즈로 연락이 와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좀 들여다보고, 코로나 시기에 미팅도 했는데 ‘여긴 좀 진하다’라는 기운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걸 위해 계속 노력하고 찾고, 그런데 이런 노력이 소셜 채널만 봐도 드러나요. 그런 의미에서 누가 이 페스티벌을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죠.

“저는 축제의 상이라는 걸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요.
축제는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철학이 무조건 있어야 하고,
그게 없으면 그냥 쇼라고 생각해요.”

‘페스티벌’이라는 정체

출처: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페스티벌’을 ‘잘’ 하기 위해

“피스트레인만 잘하는 게 아니라
피스트레인을 잘하면서 우리도 먹고 살고,
페스티벌도 지속하는 그 방법.
그게 저에겐 가장 큰 고민이에요.”

— 각자 페스티벌을 만들 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민규: 사실 제일 어려운 건 커뮤니케이션이죠. 페스티벌을 하다 보면 누군가와 소통을 계속해야 하잖아요. 저 한 명이 100개의 뿌리처럼 여러 사람들과 계속 의사소통해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제일 잘하는 거라면, 추진력. 일 벌이는 걸 되게 좋아하다 보니까.

미소: 저한테 가장 어려운 건 돈 모으는 거? 피스트레인은 공익법인으로 비영리 조직이에요. 그래서 상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계에서 양쪽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의 언어와 문법으로 다양하게 설득해야 하는 일이 필요하죠.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데, 좀 힘들어요. 우리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페스티벌이 처음 생겼을 때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 즉 파운더들이 생각하는 방향이 다 비슷했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을 만들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그걸 가시화하는 작업을 꽤 적절하게 하는 것 같아요. 우리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가고 우리의 다름을 어떻게 구현할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원칙을 정리했는데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저희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재원: 서울인기는 공간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곳이 없더라고요. 일단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찾는 게 쉽지 않고. 공간 자체가 갖고 있는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이 뚜렷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없어요. 잘하는 거는, 오거나이징 하는 거? 서울인기 할 때 1년에 한 번 만나고 나머지는 다 카카오톡으로 준비했어요. 각자 맡은 분야들이 뚜렷하게 있어서 알아서 잘하고 있었고, 좋은 사람들을 잘 찾아서 맡겨 두면 저는 중간에서 그걸 정리하고 조직하면 되는 거죠. 기획, 운영, 티켓, 홍보 부분에서 잘하는 사람들 잘 모아서 알아서 하게끔 해두고 빈 업무를 다 관리하는 거죠. 공간도 찾고, 공무원이 껴 있으면 응대도 하고, 프로덕션도 조정하고 등등.

출처: 트래시 버스터즈 제공

— 앞으로 자신의 페스티벌에서 더 해보고 싶거나 더 키우고 싶은 것들 등 미래에 관한 고민을 들려주시겠어요?

민규: 저는 에어하우스가 계속 발전하는 게 보여요. 가장 잘 보이는 건 댓글을 통해서죠. 그 중에서도 컴플레인이요. 그 컴플레인을 보면서 우리가 디벨롭해야 하는 부분이 보이고, 그걸 또 발전시켜 두면 또 다른 컴플레인이 생기거든요. 저는 페스티벌 기획이 이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컴플레인이 완벽히 없어졌을 때 비로소 페스티벌을 그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소: 저는 한국에서 페스티벌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모델이 무엇일지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상업 페스티벌이 아닌 피스트레인이 지속가능하려면 여러가지가 받쳐주고 돌아가야 한다는 걸 계속 깨닫는 중이죠. 그래서 그 모델과 구조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산도 한 군데 기대서 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재원을 마련해서 재정자립도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피스트레인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저희의 다른 회사인 알프스를 통해서 영리 사업도 열심히 해야 해요. 피스트레인만 잘하는 게 아니라 피스트레인을 잘하면서 우리도 먹고 살고, 페스티벌도 지속하는 그 방법. 그게 저에겐 가장 큰 고민이에요.

— 곽재원 대표님의 입장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서울인기가 현재 휴지기인 상황에서 다른 사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사이 사람들에게서 서울인기는 슬슬 잊혀가기 시작할 테고요.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재원: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장소가 제일 고민이죠. 예산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수익이 목적도 아니고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장소는 계속 변하고, 서울 안에선 특히 어렵고. 제약이 너무 많아요. 그게 제일 어려워요. 2년 정도 페스티벌을 한 곳에서 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하고, 그게 제 역할인데 이걸 6,70대가 될 때까지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연장선에서 우리의 철학, 그러니까 서울인기가 만든 것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세대가 더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저는 페스티벌이 우리가 함께 낳은 아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정도 키우고 나면 우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누구와 함께하든 잘 자라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성장하면 된다고 믿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떠난 나는 뭐가 되어 있을지도 궁금해져요. 여러분들께서도, 서울인기나 트래시버스터즈,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에어하우스 기획자와 같은 타이틀을 빼고 개인으로서는 어떤 정체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재원: 전 사실 계속 똑같아요.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문제를 두고 해결하는 사람이요. 언니오빠운동회, 서울인기, 변신술, 트래시버스터즈 모두 같은 맥락에서 한 거거든요. 아직도 관심 있는 분야가 많은데,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진 계속 해야죠. 연쇄 창업을 하든지. 근데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지속가능한 마을이에요. 메모해 둔 아이템들도 있어요. 안에서 전기도 먹거리도 자급자족하는 거죠.

민규: 제 꿈은 문화부 장관입니다. 지금 못 바꾸는 것들을 올라가서라도 바꾸는 사람, 뭐 이런 거죠.

미소: 저한텐 무척 어려운 질문이에요. 잘 모르겠어요. 내 마지막 종착지가 페스티벌 기획인 것 같지는 않고요, 저도 혁신가 기질이 좀 있긴 한 거 같아요. 그런데 재원 대표님처럼 트래시버스터즈했다가 자급자족하는 마을 만들었다가, 이런 건 못 할 거 같고요. 문화예술 신 내 제 포지션에서 변화를 위해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은 해 보고 싶어요. 저도 문제 해결 욕구가 되게 크게 있는 것 같아요.

— 아 그럼, 두 분(재원, 미소)이 혁신적으로 마을을 만들고 그곳 문화부 장관을 민규 대표님이 하시는 걸로? (웃음)

라이브 뮤직의 선을 넘는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디 에어하우스’,

‘서울인기’ 대담

음악 페스티벌은 콘서트가 아니다. 

음악 공연이 주요 콘텐츠이긴 하지만 이것으로부터 축제성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음악 페스티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음악 공연 밖에 볼 게 없는 페스티벌로부터 살짝 선을 넘은 세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디 에어하우스’, ‘서울인기’를 만든 3인의 디렉터와 함께 페스티벌의 정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이수정,  Edit | 이수정 

​곽재원, 김미소, 박민규

출처: 서울인기 페이스북

이수정  cecilia@alpsinc.kr

(주)알프스 기획이사.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에서 기획, 프로그래밍, 해외 업무를 담당한다.

“저는 축제의 상이라는 걸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요. 축제는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철학이 무조건 있어야 하고,  그게 없으면 그냥 쇼라고 생각해요.”

— 각자, 어떻게 페스티벌을 만드는 세계에 발을 들이게 되었는지 간단 소개와 함께 지난 이력 부탁드립니다.

재원: 제가 대학교 1학년 때, 홍대에 ‘카고’라는 클럽이 있었어요. 거기에 엄청 자주 갔는데 익수 형(당시 ‘카고’ 클럽 대표)을 따라서 축제에 가기 시작했죠. 난생 처음 갔던 축제는 1999년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 (펜타포트 페스티벌의 전신)이었어요. 이후로 축제들에 다녔는데 너무 재미있는 거예요. 좀 날 것들이었고 록킹한 음악이 있었고. 무엇보다도 그때 축제에 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너무 좋았어요. 저는 연극영화과 출신인데 그쪽과는 다르게 음악 신에 있는 형이나 누나들이 너무 멋있는 거예요. 홍대 신도 그렇고요. 부산에서 막 올라와서 이런 걸 보니까 거기에 끼고 싶더라고요. 사람들이 너무 멋있었거든요. 그러다가 자연스럽게 여러 축제에서 스태프도 했고 부스로도 참여했는데 이후에 한강 몽땅 페스티벌을 거쳐서 서울인기까지 만들게 되었습니다.

민규: 저는 원래 클럽 신을 되게 좋아했어요. 페스티벌이라고 해 봐야 대부분 알고 있는 월드 디제이 페스티벌 이런 델 가 본 건데요, 사실 거기서 그렇게 재미를 못 느꼈어요. 그냥 야외에서 똑같이 음악 듣고 춤만 추다가 오는 거니까, 딱히 저한테 꽂히는 게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러다 2017년에 베트남에 출장을 갔는데 우연하게도 베트남 친구가 페스티벌을 하나 추천하더라고요. 주말에 차 타고 1시간 반에서 2시간 정도 들어가니까 산골짜기가 나오는데 거기에서 페스티벌을 하는 거예요. 이큐에이션(Equation)이라는 페스티벌이었어요. 그렇게 밤새도록 놀고 아침에 해가 딱 떴을 때 사람들의 평온한 표정을 봤어요. 그게 너무 좋더라구요. 그래서 이걸 무조건 한국에서 해야겠다고 마음먹었어요. 다음 해에 바로 에어하우스를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미소: 저는 원래 국악을 전공했지만, 악기를 연주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걸 하고 싶어서 여기저기 기웃거렸어요. 그러다가 울산 월드 뮤직 페스티벌에서 일하면서 이 세계에 입문하게 됐습니다. 음악 마켓이라는 이벤트들이 생기던 시기였는데요, 그 안에서 일하다 보니 장르에 국한되지 않고 한국에서 나오는 재미난 것들을 더 소개하고 싶어서 인디 신에 관심을 두게 되었어요. 그 와중에 잔다리페스타 대표님을 소개받으면서 잔다리페스타도 하게 되고 피스트레인까지 이어졌죠.

— 세 분 다 한국 페스티벌 신에서 나름 획기적이라고 평가받는 페스티벌을 만들었거나 지금 만들고 계신데요, 어떤 페스티벌에서 무슨 일을 하고 계신가요?

재원: 제가 서울인기를 했을 때엔 굳이 포지션이나 직함은 없었고, 전체를 관장하는 역할을 했어요. 감독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그냥 프로듀서라고도 부를 수 있겠네요. 서울인기라는 페스티벌이 어떻게 생겼냐면요, 축제 신에서 있으면서 보니까 점점 축제들이 똑같아지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좋은 경험을 했던 예전의 그 당시로 돌이키고 싶었어요. 그때 제가 보고 있었던 건 정말 멋있는 사람들이었거든요. 지금은 뿔뿔이 흩어졌지만요. 그러니까 서울인기는 음악페스티벌이 아니고 서울에서 인기 있는, 그러니까 인간의 기운이라고 정의되는 ‘인기’라는 의미로 사람들을 모아야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철학을 가지고 멋있는 사람이 모이도록. 그 안에서 음악도 있고 다양한 것들이 있는 풍경을 만드는 데 집중했어요. 뿔뿔이 흩어져 있는, 멋진 사람들을 다시 불러서 하루동안 잔치를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6~7개월 정도 사람들을 찾아 다니면서 축제에 모았고 그게 우리의 ‘인기’, 분위기가 된 거죠. 기운을 모아서요. 우리 기획팀은 사람만 찾았어요. 돈도 안 받고 그냥 수익을 전부 n분의 1로 나눠 가졌습니다.

미소: 저는 현재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에서 총감독을 맡고 있습니다. 총감독이라고 해서 거창한 건 아니고, 처음에 축제가 만들어질 때 저보다 선배 그룹이 있었어요. 그분들이 축제 조직위원회의 이사들로 계시는데, 제가 맡은 건 뾰족한 전문성이 있는 분야라기보다 대외 커뮤니케이션과 행정, 전반적으로 조정하는 역할, 살림살이 등을 고루 맡게 된 거예요. 그러다 보니 공연 프로그램을 제외한 전반을 두루 관장하게 되었고 그래서 총괄 감독의 역할을 한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피스트레인은 최초 멤버 구성과는 조금 달라진 점이 있지만, 이 최초 멤버들과 1, 2년 차에 축제의 성격과 태도를 두고 많이 이야기했고 나름의 원칙도 세웠어요. 그리고 지금은 그때 시작했던 피스트레인의 성격과 태도를 계속 유지하고자 하고 있고요. 표면적으로 보면, 우리를 두고 대단한 평화주의자거나 사회적 이슈에 민감한 사람들이라서 이런 걸 한다는 오해도 사긴 하는데요. 저희는 그저 신 안에서 서열이 매겨지는 게 싫었고, 티켓 판매에 따라서 아티스트를 가리는 것도 싫었을 뿐이에요. 자본에만 휘둘리지 말고 이 신을 확장할 수 있는 공간과 기회에 대한 고민이 깊었고, 뻔한 것보다 의외성을 만들 수 있는 작업을 어떻게 할 수 있을까에 대해 생각하면서 피스트레인을 만들고 있습니다.

민규: 저도 마찬가지예요. 남들과는 다른 걸 하고 싶어서 시작했지요.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이제는 어느 정도 타협하고 있긴 해요. 일단 우리가 살아야 계속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처음에 갖고 있던 신념은 잃지 말고 더 탄탄하게 진행해서 ‘혹시 외부 세력이 침입해도 굳건하게 막아보자’라는 식으로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에어하우스는 단순한 뮤직 페스티벌이라기보다 일시적으로 일어나는 문화적인 공간으로 인식됐으면 좋겠어요. 이동식 문화 복합 공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대체, 정체가 뭐야?

출처: 디 에어하우스 홈페이지

—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페스티벌을 두고 각자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는 부분이 흥미롭네요. 제 생각에 지금 한국은 페스티벌 범람의 시대처럼 보이는데요, 각자 ‘페스티벌’은 무엇이며 어때야 한다고 생각하나요?

재원: 저는 축제의 상이라는 걸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요. 축제는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우리 시대에 이런저런 것들을 모아 놓고, 우리의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는 걸 만드는 거요. 그런 철학이 무조건 있어야 하고, 그게 없으면 그냥 쇼라고 생각해요.

미소: 콜렉티브의 개념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요. 당시의 시대를 반영하는, 당대의 멋있는 사람들이 모이는 장. 확실히 서울인기였던 것 같네요.

재원: 맞아요. 제가 서울인기를 만들기 전에 했던 게 ‘언니오빠운동회’라는 거였는데, 그때 고민이 음악하는 사람이랑 미술하는 사람이랑 왜 안 친해질까, 그런 거였어요. 그래서 홍대 시내에서 한 300명 정도 모아서 3년 동안 운동회를 했어요. 나는 그 축제가 당시의 신을 반영했다고 생각해요. 전 그런 게 중심이에요.

민규: 저한테 페스티벌이 뭐냐고 물으신다면요, 아까 말한 거 있잖아요. 아침에 마주하는 평화로움. 그걸 얻어가는 게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해요. 어릴 때 운동장에서 뛰어놀 때 부모님한테 혼날 거 생각 안 하고 그냥 놀잖아요. 그런 공간이 페스티벌이라고 생각해요. 따지고 보면 불만도 불평도 있을 수 있는데, 너무나 평화롭고 행복한 순간도 반드시 있는 공간.

미소: 저는 포인트가 조금 다를 수 있을 것 같아요. 저는 축제는 관객과 참여하는 분들, 즉 아티스트를 서로 연결하는 작업으로도 생각해요. 페스티벌이라고 하면 되게 거창하다고 생각들 하는데, 저는 예술적 경험이나 문화적 경험을 각자 성장시킬 수 있는 플랫폼이라고 생각하고, 그걸 저의 미션으로 보기도 해요. 그래서 축제 안에서 사람들이 감각하고 경험하는 모습을 목격하는 게 제가 이 일을 계속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 사실 세 페스티벌 모두 음악을 콘텐츠로 가져간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만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음악에 관한 이야기는 확실히 별로 없네요. 음악은 세 분의 페스티벌에서 어떤 의미가 있나요?

미소: 저는 사실 음악이 어떤 것도 보다 제일 좋다고 말할 순 없을 거 같아요. 그냥 제 뿌리가 음악에 있어서, 그 영토 안에서 신의 문제 해결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하는 거죠. 내 친구나 동료들이 좀 더 나은 토양 속에서 살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요. 우리가 만든 사건으로 인해서 세상이 변하거나 성장하는 걸 보고 싶어요. 계몽주의자 같은 성격이 좀 있죠.

재원: 서울인기에서 음악을 주로 다루는 사람들은 프로그램 팀이에요. 그들과 이 시대에서 정말 필요한 아티스트를 고르는 작업을 하죠. 개인적으로는 음악을 너무 좋아하니까, 건너건너 알게 되는 뮤지션들을 보는 재미도 있고요. 하지만 무엇보다 음악도 사람이 하는 거잖아요. 그 사람들이 필요한 이유를 끄집어내고 전체적인 결과 일맥상통하게 만드는 게 좋은 것 같습니다.

민규: 에어하우스는 음악이 뿌리죠. 특히 언더그라운드 음악인데, 이걸 음지에서 양지로 끌어올리는 작업을 하는 거 같아요. 그러니까 음악 신에 대한 사명감 같은 거요. 언더그라운드에 있는 아티스트들도 많이 힘들거든요. 이들이 밥 먹고 살 수 있을 정도로 도와줄 수 있으면 도와주는 거죠.

— 세 페스티벌 모두 음악을 주요 콘텐츠로 가져가지만, 그 내용과 방식이 무척 다르다고 볼 수 있겠네요.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는 축제들도 예전보다 훨씬 더 다양한 모습들을 하고 있는데, 이 역시 신의 한 흐름을 반영하는 거라고 생각해요. 예를 들어서 서울인기도 홍대의 얼터너티브 문화가 을지로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그 결을 견인하는 역할을 했다고 보거든요. 에어하우스도 기존 한국에서 열리던 페스티벌 공간의 틀을 깼고, 이후 비슷한 시도를 하는 작은 페스티벌들이 생겨나고 있잖아요. 그래서 현재의 페스티벌 신을 각자 어떻게 보고 있는지, 또 조망하는지 듣고 싶어요.

재원: 트래시 버스터즈를 운영하면서 정말 많은 축제에 가요. 하지만 가고 싶은 축제에는 못 가는 경우도 많아요. 주말에 계속 다른 축제에 가야 하니까. 그런데 요즘 가서 보는 대부분 축제에는 철학이 없는 것 같아요. 예를 들어서 록 페스티벌이라고 하는데 힙합이 들어와 있어요. 그건 록의 정체성을 다루는 게 아니잖아요. 조금 더 깊게 가져가야 하지 않나 싶은데, 사람 모으거나 돈 버는 게 우선인 거 같아요. 그런 부분이 아쉬워요. 자신만의 철학을 앞세워서 좀 더 깊게 가면 훨씬 멋있고 홍보도 되고 수익도 창출할 수 있을 것 같은데, 지금은 그런 부분이 없고 이름만 다르지 아티스트는 거기서 거기예요.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살아남는 데만 살아남을 거예요. 관객들도 알 거니까요.

미소: 저도 비슷하게 생각해요. 너무 소비 지향적이고 쉽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 것 같아요. 철학도 없고 사례도 없으니까, ‘누가 했더니 잘 됐더라’며 형식을 베끼기도 하죠. 페스티벌이 유사해지면서 한국 특유의 전형성이 생겼는데 그 때문에 페스티벌을 두고 고정관념이 생기는 것도 문제라고 생각해요.

재원: 사실 페스티벌은 누구나 할 수 있죠. 돈만 있으면. 아티스트는 섭외하면 되는 거고, 시스템은 부르면 되는 거고. 다 똑같으니까. 차별점이 없잖아요.

미소: 예전에 자라섬 재즈 페스티벌의 감독님과 얘기한 적 있는데, 사실 대한민국 축제사에서 우리가 생각하는 이런 류의 페스티벌이 등장한 건 겨우 20여 년 전 일이에요. 자라섬이 올해 20주년이 되고, 펜타포트는 17회예요. 그런 거 보면 너무 일찍 ‘한국의 페스티벌은 이런 거지’라는 프레임이 형성된 것 같아서 아쉽습니다. 좀 더 니치한 것들이 더 많이 보여야 한다고 생각해요. 이들이 드러나야 사람들도 다양한 재미를 알 수 있게 되는데, 일단 보이지도 않고 잘 없고요.

민규: 올해 들어 작은 규모의 페스티벌이 많이 생기고 있긴 해요. 그래서 저는 좋아요. 클럽 신의 경우도 강남의 빅네임들이 무너지고 소규모 클럽들이 탄탄해지는 과정이라고 보는데, 페스티벌도 비슷한 흐름에 있다고 생각해요.

미소: 맞아요. 하지만 저는 좀 더 장르 베이스로 특징적인 것들을 보여주는 게 잘 살아남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 세 분 모두 공통으로 자가 복제하듯 찍어내는 페스티벌보다 철학이 엿보인다거나, 니치한 방향을 추구하는 페스티벌이 더 많아져야 한다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관객의 관점에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걸 알게 되는 창구가 한정되어 있잖아요. 인스타그램 같은 소셜미디어요. 그런 소셜미디어에서는 하나의 계정이나 게시물에서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나 텍스트가 한정되어 있거든요. 그렇게 제한된 프레임 안에서 생산되는 홍보물만 보면 모두 다 특별한 거 같은데 막상 가서 보면 그렇지 않은 경우도 허다해요. 어떤 감각으로 ‘이건 정체가 다르다’라는 기운을 받으시나요?

재원: 전체적인 톤앤 매너에서 드러나요. 예를 들어서 에어하우스는 2019년에 트래시 버스터즈로 연락이 와서 알게 됐어요. 그래서 좀 들여다보고, 코로나 시기에 미팅도 했는데 ‘여긴 좀 진하다’라는 기운을 받았습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걸 위해 계속 노력하고 찾고, 그런데 이런 노력이 소셜 채널만 봐도 드러나요. 그런 의미에서 누가 이 페스티벌을 하는지도 중요하다고 볼 수 있죠.

“저는 축제의 상이라는 걸 확실하게 가지고 있어요.
축제는 이 시대를 반영해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런 철학이 무조건 있어야 하고, 그게 없으면 그냥 쇼라고 생각해요.”

‘페스티벌’이라는 정체

출처: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페스티벌’을 ‘잘’ 하기 위해

“피스트레인만 잘하는 게 아니라
피스트레인을 잘하면서 우리도 먹고 살고,
페스티벌도 지속하는 그 방법.
그게 저에겐 가장 큰 고민이에요.”

— 각자 페스티벌을 만들 때 가장 어렵다고 생각하는 부분과 가장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분이 있나요?

민규: 사실 제일 어려운 건 커뮤니케이션이죠. 페스티벌을 하다 보면 누군가와 소통을 계속해야 하잖아요. 저 한 명이 100개의 뿌리처럼 여러 사람들과 계속 의사소통해야 하는 부분이 가장 어렵습니다. 제일 잘하는 거라면, 추진력. 일 벌이는 걸 되게 좋아하다 보니까.

미소: 저한테 가장 어려운 건 돈 모으는 거? 피스트레인은 공익법인으로 비영리 조직이에요. 그래서 상업을 최우선으로 생각하지는 않지만, 경계에서 양쪽의 사람들을 만나고 이들의 언어와 문법으로 다양하게 설득해야 하는 일이 필요하죠. 그래서 더 열심히 하는데, 좀 힘들어요. 우리가 잘한다고 생각하는 건 페스티벌이 처음 생겼을 때 함께 만들었던 사람들, 즉 파운더들이 생각하는 방향이 다 비슷했고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자연스럽게 하나의 결을 만들 수 있었는데요. 지금은 그걸 가시화하는 작업을 꽤 적절하게 하는 것 같아요. 우리 포지션을 어떻게 가져가고 우리의 다름을 어떻게 구현할지,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 원칙을 정리했는데 그걸 알아보는 사람들이 저희를 지지하는 것 같습니다.

재원: 서울인기는 공간을 구하는 게 가장 어려운 것 같아요. 마음에 드는 곳이 없더라고요. 일단 서울이라는 도시 안에서 찾는 게 쉽지 않고. 공간 자체가 갖고 있는 정체성과 지속가능성이 뚜렷해야 하는데 그게 너무 없어요. 잘하는 거는, 오거나이징 하는 거? 서울인기 할 때 1년에 한 번 만나고 나머지는 다 카카오톡으로 준비했어요. 각자 맡은 분야들이 뚜렷하게 있어서 알아서 잘하고 있었고, 좋은 사람들을 잘 찾아서 맡겨 두면 저는 중간에서 그걸 정리하고 조직하면 되는 거죠. 기획, 운영, 티켓, 홍보 부분에서 잘하는 사람들 잘 모아서 알아서 하게끔 해두고 빈 업무를 다 관리하는 거죠. 공간도 찾고, 공무원이 껴 있으면 응대도 하고, 프로덕션도 조정하고 등등.

출처: 트래시 버스터즈 제공

— 앞으로 자신의 페스티벌에서 더 해보고 싶거나 더 키우고 싶은 것들 등 미래에 관한 고민을 들려주시겠어요?

민규: 저는 에어하우스가 계속 발전하는 게 보여요. 가장 잘 보이는 건 댓글을 통해서죠. 그 중에서도 컴플레인이요. 그 컴플레인을 보면서 우리가 디벨롭해야 하는 부분이 보이고, 그걸 또 발전시켜 두면 또 다른 컴플레인이 생기거든요. 저는 페스티벌 기획이 이 과정의 연속이라고 생각해요. 컴플레인이 완벽히 없어졌을 때 비로소 페스티벌을 그만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미소: 저는 한국에서 페스티벌을 지속가능하게 할 수 있는 모델이 무엇일지가 가장 큰 고민이에요. 상업 페스티벌이 아닌 피스트레인이 지속가능하려면 여러가지가 받쳐주고 돌아가야 한다는 걸 계속 깨닫는 중이죠. 그래서 그 모델과 구조를 제대로 만들어보고 싶어요. 예산도 한 군데 기대서 가는 게 아니라 다양한 재원을 마련해서 재정자립도를 확립하는 것도 중요하고요. 피스트레인은 비영리법인이기 때문에, 저희의 다른 회사인 알프스를 통해서 영리 사업도 열심히 해야 해요. 피스트레인만 잘하는 게 아니라 피스트레인을 잘하면서 우리도 먹고 살고, 페스티벌도 지속하는 그 방법. 그게 저에겐 가장 큰 고민이에요.

— 곽재원 대표님의 입장은 조금 다를 것 같아요. 서울인기가 현재 휴지기인 상황에서 다른 사업을 하고 계시잖아요. 그런 사이 사람들에게서 서울인기는 슬슬 잊혀가기 시작할 테고요. 어떤 고민이 있으신가요?

재원: 아까도 말했던 것처럼 장소가 제일 고민이죠. 예산은 큰 문제가 되지 않아요. 수익이 목적도 아니고 규모가 큰 것도 아니고. 그런데 장소는 계속 변하고, 서울 안에선 특히 어렵고. 제약이 너무 많아요. 그게 제일 어려워요. 2년 정도 페스티벌을 한 곳에서 한다고 해도 시간이 지나면 또 새로운 곳을 찾아야 하고, 그게 제 역할인데 이걸 6,70대가 될 때까지 할 수는 없잖아요? 그 연장선에서 우리의 철학, 그러니까 서울인기가 만든 것들을 계속해서 이어나갈 수 있는 세대가 더 들어오면 좋겠다는 생각도 해요.

— 이제 마지막 질문을 드릴게요. 저는 페스티벌이 우리가 함께 낳은 아이 같은 거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어느정도 키우고 나면 우리가 굳이 나서지 않아도 누구와 함께하든 잘 자라고,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면서 성장하면 된다고 믿거든요. 그런데 한편으로는 그렇게 떠난 나는 뭐가 되어 있을지도 궁금해져요. 여러분들께서도, 서울인기나 트래시버스터즈,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 에어하우스 기획자와 같은 타이틀을 빼고 개인으로서는 어떤 정체로 기억되고 싶으신가요?

재원: 전 사실 계속 똑같아요. 이 시대가 갖고 있는 문제를 두고 해결하는 사람이요. 언니오빠운동회, 서울인기, 변신술, 트래시버스터즈 모두 같은 맥락에서 한 거거든요. 아직도 관심 있는 분야가 많은데, 걸어다닐 수 있을 때까진 계속 해야죠. 연쇄 창업을 하든지. 근데 제가 정말 하고 싶은 건 지속가능한 마을이에요. 메모해 둔 아이템들도 있어요. 안에서 전기도 먹거리도 자급자족하는 거죠.

민규: 제 꿈은 문화부 장관입니다. 지금 못 바꾸는 것들을 올라가서라도 바꾸는 사람, 뭐 이런 거죠.

미소: 저한텐 무척 어려운 질문이에요. 잘 모르겠어요. 내 마지막 종착지가 페스티벌 기획인 것 같지는 않고요, 저도 혁신가 기질이 좀 있긴 한 거 같아요. 그런데 재원 대표님처럼 트래시버스터즈했다가 자급자족하는 마을 만들었다가, 이런 건 못 할 거 같고요. 문화예술 신 내 제 포지션에서 변화를 위해서 시도해볼 수 있는 것들은 해 보고 싶어요. 저도 문제 해결 욕구가 되게 크게 있는 것 같아요.

— 아 그럼, 두 분(재원, 미소)이 혁신적으로 마을을 만들고 그곳 문화부 장관을 민규 대표님이 하시는 걸로? (웃음)

라이브 뮤직의 선을 넘는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디 에어하우스’,

‘서울인기’ 대담

음악 페스티벌은 콘서트가 아니다. 

음악 공연이 주요 콘텐츠이긴 하지만 이것으로부터 축제성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음악 페스티벌의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 

음악 공연 밖에 볼 게 없는 페스티벌로부터 살짝 선을 넘은 세 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디 에어하우스’, ‘서울인기’를 만든 3인의 디렉터와 함께 

페스티벌의 정체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이수정,  Edit | 이수정 

​곽재원, 김미소, 박민규

출처: 서울인기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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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정  cecilia@alpsinc.kr

(주)알프스 기획이사.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에서 기획, 프로그래밍, 해외 업무를 담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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