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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파도가 된 밴드

세이수미가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이유를 몇 가지의 문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더 다양한 무대를 위해, 음악 자체로 뻗어나가기 위해 10년 동안 음악과 앨범에 쏟은 에너지와 시간이 궁금했다. 잠깐의 유명세에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본인들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이 밴드의 중력은 어떻게 지켜져 왔을까? 성장과 지속, 확장에 대해 세이수미 멤버 최수미 (보컬, 기타), 김병규 (기타), 임성완 (드럼) 김재영 (베이스)과 나눈 이야기.

Interview · Edit | 이진수, Photography | 심재

세이수미(Say Sue Me)


인터뷰, 글: 이진수 @offblue

언젠가 페스티벌 팸투어를 하는 귀여운 할머니로 늙고 싶은 사람. 귀여운 고양이 무니와 덕질을 존중해주는 안사람과 살고있다. 매거진 <Vogue Girl>, <Time Out Seoul>, ‘딩고뮤직’(Dingo Music)과 뮤직 크리에이티브 그룹,‘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에서 일했다. 현재는 매거진 <GQ KOREA>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부산 밴드의 막연함을 걷어준 글로벌 파트너의 등장

이미지 출처 @saysueme




— 안녕하세요. 세이수미가 워낙 투어를 많이 해서 첫 투어 이야기로 시작해보고 싶어요. 아이폰 메모장을 캡처한 이미지가 공식 포스터였죠.


수미: 네, 우하하 첫 투어는 2017년이었어요.



—  댐나블리(Damnably,세이수미의 영국 레이블이자 에이전시)에서의 첫 연락도 2017년에 왔던 건가요.


수미: 아뇨. 연락은 2016년에 왔어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갈래?”라고 왔었죠. 



—  인스타그램으로요? 반신반의했을 것 같아요. 


병규: 하물며 그때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왔어요. 일단은 의심했던 것 같아요. 댐나블리가 어떤 회사인지도 페이스북 피드로는 파악이 잘 안 됐거든요. 그리고 그걸 떠나서 ‘우리가 해외 투어를 갈 때인가?’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요.


수미: 그리고 그때 김민규 사장님(세이수미 前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 대표)이 “지금 SXSW를 가면 너네는 미아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  미아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이죠? 


수미: 어쨌거나 SXSW는 전 세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쇼케이스를 하러 가는 곳이니까요. 아무런 인지도가 없는 상황에 거기에 가면 얻을 게 없다는 의미였죠. SXSW는 관객이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오는 개념의 이벤트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쇼케이스고, 저희가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고 가더라도 여러모로 낭비만 하고 올 것 같다고,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솔직히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수미: “어, 알겠다~” 했어요. (웃음) 



—  실망은 안 했어요? 그냥 바로 안 가겠다고 수긍한 거예요?


수미: 네. 사실은 뭐, 부산에 있는 작은 바에서 공연하던 애들이 해외 갈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마음이 붕 뜨죠.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니까 알겠다 했죠. 세민이 오빠가 다쳤을 때이기도 해서 전혀 해외에 나갈 준비를 할 여유가 없기도 했어요.



—  그럼 댐나블리 연락을 받고도 투어까지는 1년이 걸린 거네요.


병규: 네, 고맙게도 재차 연락이 왔어요. 2017년에도 한 번 거절했는데 같은 해에 연락이 또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민규 사장님도 우리가 거절했는데 또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거 외에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쟤네한테는 보였나 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세이수미는 2018년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 참여했다. 이미지 출처 @saysueme




—  뭐가 보였는지 나중에 댐나블리에게 물어봤어요? 왜 그렇게 꾸준히 연락했냐고요.


수미: 아뇨. 푸하하.



—  안 물어봤다고요?!


수미: 그러고 나서 이제 지금까지 같이 일을 해봤을 때 이분들 보면, 그냥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아시아 쪽으로 발굴을 많이 하려는 것 같았죠. 그냥. 첫 투어는 2주 정도 기간이었는데 멤버들 다 직장 다니고 있을 때였고 드럼이 공백 상태였어요. 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회사에는 또 이 일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현실적인 고민이 엄청 많았거든요.





낯선 세계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밴드의 성장 그리고 확장




—  댐나블리에는 세이수미 외에도 쇼넨나이프(Shonen Knife), 오토보케 비버(Otoboke Beaver)등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계 뮤지션들이 있어요. 세이수미에게 직접 댐나블리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수미: 저희한테 연락이 왔을 때 레이블 아티스트 로스터(artist roster)가 쇼넨나이프랑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쇼넨라이프 같은 밴드랑 일할 정도면 믿을만한 사람들인가보다’ 했죠. 흐흐. 그때 조금 자부심 같은 게 생기고. 지금 저희 레이블(댐나블리)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친구들이 오토보케 비버인데요. 저희의 영국 첫 투어도 그 친구들 서포트 밴드로 시작했어요. 원래 처음 투어를 갈 때는 길게 가는 게 아니고, 오프닝 밴드로 짧게 가보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죠.



—  수미 님이 해외에서도 제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투어를 돌면서 처음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인터뷰할 때라던가, 투어 중에 필요한 게 있어서 요청할 때라던가요. 


수미: 처음에는 잘 몰라서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가서 재밌게 즐기다 와야지. 이런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고. 영어를 잘 못해도 더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가면 갈수록 조금씩 어려워지더라고요. 욕심이 생기니까요.



—  요새는 점점 부담감이 생기나요?


수미: 네, 조금요.


병규: 언어 같은 부분은 다른 멤버들도 번역이 가능할 때 같이 거드는 편이죠. 근데 그런 기회는 아직도 극히 일부분이긴 해요.



—  해외 매체 인터뷰나 방송에서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으셨던 거네요.

병규: 초반엔 아예 없었다고 보시면 돼요.

성완: 그래서 항상 먼저 여쭤봐요. 한국어로 해도 괜찮은지요.

수미: 최근 들어서는 그래도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려는 분위기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  무대 위 조율이라던가, 디테일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나요?


병규: 그런 건 되도록 사전에 에이전시에서 미리 정보를 넘겨줘요. 투어 때는 저희가 테크라이더를 다 챙겨 다니니까 먼저 나서서 이야기할 부분은 적은 편이죠.



—  2012년에 밴드를 시작해서, 이제 올해로 10년 차 밴드인데요. 시작할 때 이렇게 직업으로서 밴드를 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오래 음악 하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저도 30대 초반의 직업인으로 매일매일 하는 고민이라 물어보고 싶었어요.


병규: 일단 저도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 생각을 전혀 못 했고요. 이걸로 뭘 해보자고 시작한 밴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세이수미 하기 전에 저는 하던 메인 밴드가 있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도피처가 필요해서 만든 밴드가 세이수미였고요. 크게 기대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그냥 이 밴드가 계속 쭉 큰 파도를 맞지 않고, 끝까지 잘 가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수미: 저도 진짜 생각 못 했어요. 재미 삼아 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웃음) 크게 목표를 갖고 한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죠. 어쨌든 그 일들을 나름대로 잘 극복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스스로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  멋있다!


수미: (웃음) 아무튼 꾸준히 여기까지 해왔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고. 언제까지 계속할지는…막연한 불안감 같은 건 늘 있어요.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뭐, 거의 매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미지 출처 @saysueme




—  어느 직업이든 다 그런 불안감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수미: 맞아요. 어쨌든 자기 인생이 아니니까 잠깐 훑어보는 느낌적인 걸로 사람들은 잘 됐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음.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하는 거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  역시 동업이 어려운 일이군요.


수미: 그렇죠, 저희도 일종의 동업이죠.



—  저 멀리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웃고 계시는 두 분, 얘기 좀 해주세요.


성완: 잘 따라가고 있죠, 저희는. 어쨌든 중간에 합류한 멤버거든요. 잘 녹아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며칠 전 차에서 한 번 했었어요. 결국은 ‘지금 열심히 하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제가 2019년에 들어와서 이제 3~4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데, 세이수미에 들어와서 10년 정도 몸담을지 어떻게 될지 모르죠. 딱히 큰 미래를 그리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두 사람이 잘 닦아온 길에 숟가락 얹어서. (웃음) 열심히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  운이 좋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력이 있기 때문에 투어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장르적인 특징, 유행, 실력 여러 가지 요소가 맞아야 하죠. 타이밍 상 2017~18년의 투어가 밴드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궁금해요.


병규: 투어 첫 시작이 저희에게 어쩌면 우연한 느낌의 기회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시작을 했죠. 짧았고요. 근데 그러고 나서 다음 해부터의 투어는 좀 더 본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끼리 준비해서 해보자고 한국과 영국 두 회사에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결국 투어를 하려면 앨범이라는 명목이 필요했고요. 그래서 작업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수미: 맞아. 다른 팀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저희 팀은 정말 많이 했거든요.


병규: 곡이 있어야지만 투어의 명목이 있으니까. 앨범이 없으면 투어를 가기 힘들다는 것 역시 댐나블리도, 그 당시 소속되어 있던 회사에서도 계속 인지를 시켜 주시더라고요. 앨범도 찍어서 팔고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곡 작업을 많이 했고, 각자 개인적으로도 발전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저는 개인적으로 천천히 우리가 우리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때 했던 것 같아요.



—  지금의 비치타운뮤직에 대한 생각이 그때 조금 들었던 건가요?


병규: 그랬던 거 같아요. 투어를 위해, 앨범을 목표로. 앨범을 위해 작업을 하고, 나름 시도를 했던 게 저희의 힘이지 않을까? 어쨌거나 투어에 대한 영향이 곡 작업과 스스로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밴드 세이수미가 글로벌 친구들과 직접 소통 하는 방법




—  발매와 투어 일정을 어떤 식으로 계획하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은 회사를 나와서 세이수미 멤버들이 직접 하게 됐잖아요.


수미: 일단 저희는 댐나블리가 한국 외 일정을 총괄해서 맡고 있다고 보면 돼요. 투어와 발매 관련된 부분들이요. 국내 말고는 다 해주고 있어요. 투어 관련해서는 거의 1년 전부터 계획을 하죠. 대부분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울 때를 피해서 봄, 가을로 잡아줘요. 댐나블리가 유럽 부킹 에이전시와, 미국 부킹에이전시를 관할하면서 진행하죠. 본인들은 레이블로서 있기 때문이에요. 저희가 직접 부킹 에이전시랑 소통하는 일은 없어요. 그렇지만 어디랑 일하고 있다 정도를 계속 저희에게 알려주죠. 일본 쪽은 저희와 친한 일본인 친구 코키 야하타(Koki Yahata)가 해주고 있어요. 댐나블리도 일본 쪽 파트너가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저희는 맡기고 있지 않아요.



—  수많은 한국의 밴드 중에서도 세이수미가 댐나블리의 러브콜을 받고 투어를 돌게 되고,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GQ>에 김민규 대표님이 쓰신 칼럼이 있더라고요. 세이수미의 해외 성공 요인에 대해 다년간의 경험으로 분석해서 쓰신 내용이었어요. 첫 번째 요인은 인디 팝의 정수라는 점, 두 번째 요인은 현지 파트너와 일을 하고 있다는 점, 세 번째 요인은 오랜 시간 동안 해외 시장을 두드린 경험이라고 분석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병규: 다 맞는 거 같은데요? 저희는 저희 음악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2018년, 2019년에 저희 같은 음악이 유행이었던 것 같아요. 흔히들 인디 팝, 인디 록, 서프 록 음악이라고 말씀을 많이 해 주시는데 그런 것도 2010년 초반부터 유행을 슬슬 했던 것 같고요. 거기에 조금 더하면 세이수미에서 동양적인 어떤 걸 캐치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 재미를 좀 느낀 것 같고요. 댐나블리라는 현지 파트너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죠.


수미: 댐나블리와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해외 시장을 두드리는지 알아갔던 거 같기도 해요. 그들이 말 그대로 저희를 이끌어준 거죠. “이때 즈음에 이걸 내야 한다”, “이때 투어를 하는 게 좋다” 이런 거요.



—  그런 게 실제로 뭐가 있었어요?


수미: 제일 최근에 기억나는 건 <CREAM>이라고 미국 매거진 중에 되게 오래된 잡지의 인터뷰를 하라고 했어요. 사실 저희는 하라고 하면 웬만하면 해요. 하하. 댐나블리는 안 해도 되는 것도 확실하게 잘 말해줘요. 저희는 그런 것들을 따라가면서 하다 보니까 오히려 더 수월했지 않나?



—  그럼 안 해도 되는 건요? 재미있다.


병규: 안 해도 된다는 것도 은근히 되게 많았어요. “이거는 답장조차 안 해도 된다” 뭐 이런 거. (웃음)





하나의 무대가 비즈니스,퍼포먼스 이상의 경험이 되기 위한 조건




—  댐나블리가 매칭해준 투어의 라이브 경험이 실질적으로 밴드에게 파급력이 있었는지, 어떤 경험을 가져다줬는지도 궁금해요. 라이브 스테이지 하나가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실제로 밴드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요.


수미: 몇 년을 하다 보니 긴 기간에 따라오는 반응이랄까? 그런 게 늘어나는 걸 체감하는 것 같아요. 처음보다 조금씩 관객도 느는 것 같고요. 근데 옛날에 비해서 많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저희도 배고픈 건 사실이죠. 특히 저희 로컬인 부산에서 공연을 만들 때 늘 불안해요. “이번에는 어느 정도 모일 수 있을까?”, “이렇게 큰 데 빌렸는데 채울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항상 있어요. 저희가 비치타운뮤직이라는 걸 만들고 공연 기획을 해본 건 올해 처음이니까요.



—  아무리 투어를 다닌 세이수미여도 여전히 로컬에서 공연할 때에는 걱정이 앞서는군요. 페스티벌도 정말 많이 다녔을 텐데, 국내와 해외를 비교되는 지점이 있나요. 저 같은 관객이 느끼는 건 좀 커요. 시설이랄지, 라인업이랄지, 확실히 돈을 쓰는 입장이다 보니까요.


병규: 사실 제가 느끼는 큰 차이는 없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대기실 정도? 근데 우리나라가 너무 더우니까 날씨 차이에서 오는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수미: 그렇기도 하고 아무래도 공연 자체의 시스템은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근데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케어를 해주냐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해외가 그런 부분에서 잘 짜여있다는 생각은 해요.



—  사전에 아티스트에게 공연, 무대와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한다거나, 진행한다는 방식의 차이는 별로 없나요.


수미: 네. 거의 그런 부분은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더 많은 정보를 아티스트에게 요구하는 편인 것 같아요. 셋 리스트를 달라고 한다거나.



—  그럼 세이수미가 갔던 페스티벌 중에 어떤 게 제일 좋았어요?


수미: ‘그린 맨 페스티벌(Green Man Festival)’이요. 영국의 웨일즈(Whales)에서 매년 8월에 하는 페스티벌인데요. 공연 자체도 좋았지만, 라인업과 여러 가지 경험들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희가 2019년에 갔을 때 요 라 탱고(Yo La Tengo)가 1일 차에 나왔거든요. 저희는 3일차였고요. 신나서 1일 차부터 갔죠. (웃음) 저희 여기 와 있다고 디엠을 보내니까 오라고 하셔서 인사하고 무대 위 먼발치에서 공연을 봤어요. 그 기억부터 너무 좋았고. 저희 공연하는 날의 대기실도, 아티스트 존도 너무 잘 되어 있더라고요. 극진한 대접이 아니라, 모든 게 서로를 배려해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거요.



—  그럼 아티스트들도 서로 자연스레 소통하면서 알아갈 수 있겠네요. 단순히 비즈니스를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연결의 역할도 할 수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컨디션을 유지해야 공연도 즐겁게 할 수 있고요. 저도 취재하러 백스테이지를 다니다 보면 행사장처럼 되어있는 곳이 많은데, 잘 만들어진 페스티벌을 보면 그런 환경이 참 부러운 것 같아요.


병규: 저도 그린 맨이 좋았어요. 단 하나 정책이 좀 이상한 게 있었는데, 타임 테이블을 돈 주고 팔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타임 테이블 공지조차 안 하고요. 정확히 얼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5파운드였나? 참여하는 아티스트한테도 팔더라고요.


수미: 해외 페스티벌은 공항에서 내리면 직접 픽업하러 와 주고, 세심한 여러 부분이 전체적으로 보살핌을받는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주는 것 같아요.


재영: 그래도 관객은 한국이 짱입니다.(일동 웃음)



—  몇 년 전 인터뷰를 보니까 세이수미는 투어 영상 아카이브를 안 하신다고요? 되게 좋은 기록이 될 것 같은데 아쉬워요. 여전히 안 찍으시나요?


수미: 투어라는 게, 개인 여행 갈 때도 일정 짜려면 복잡하잖아요. 항상 기록으로 남겨둘 걸 아쉬워하긴 하지만, 사람을 한 분 더 불러서 찍는 게 여러 가지 부분에서 어려워요. 아무래도 비용적인 문제겠죠.



—  투어를 갈 때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해주는 부분도 있나요? 케이팝 자체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더 늘어났는지, 실질적으로도 뮤지션이 느끼는 부분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수미: 인기를 떠나서 계획이 잘 세워져 있으면 정부에서 잘 지원해주는 편인 것 같아요. 초청 받은 페스티벌이 있으면 지원도 나오고요. 물론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걸로 북미 투어 같은 것을 커버하기에는 좀 부족하죠.


병규: 신청하긴 하는데 종종 못 받는 경우도 있고요. 댐나블리에서 가끔 “너희 나라 이런 지원 공고가 떴던데?”라고 알려줘서 신청할 때도 있어요.





글로벌 케이밴드 세이수미, 부산 수영구 비치타운 세이수미




—  그렇다면 근 몇 년간 케이팝이 유행하면서 세이수미에게 주는 영향은 어떤 게 있나요. 질문하면서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드에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여쭤보고 싶었어요.


병규: 확실히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SXSW 때문에 미국에 갔을 때도 ‘K-스포트라이트’라는 무대가 있었어요. 저희 같은 밴드만 하는 게 아니고 아이돌 뮤지션 분들도 같이 참여를 하는 무대였어요. 그렇게 해야 더 홍보가 잘 되니까요. 거기서 저희를 보고 팬이 된 분들도 있었어요. 근데 아직은 한국인 뮤지션이라서 좋아해 주는 느낌도 있긴 해요.



—  그래도 10명 중에 1~2분 정도는 음악을 들어주신다면 좋은 기회일까요?


수미: BTS의 RM이 저희를 트위터에 올려주셔서 그 이후로 되게 아미 분들이 많이 유입됐어요. 유입되신 분 중에 절반만 남으셔도 저희는 좋죠.



—  정량적인 부분 외의 것들도 확장에서 필요할 것 같아요. 투어 도시의 개수, 관람객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음악을 지속하려면 어떤 도움이 또 필요할까요.


수미: 결국 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긴데요.(웃음) 발매 시즌이 되면 도와줄 사람, 공연 기획 때 필요한 것들, 사이클을 체계적으로 아는 분들이 도와주면 제일 좋죠. 국내에서도 그걸 잘 알고 도와줄 분들이 있다면요. 특히, 부산에 계시면 좋겠어요.


병규: 어쨌거나 저희가 스스로 해보자고 나왔는데 자꾸 생길 수밖에 없는 업무들이 생기네요. 앞서 수미가 한 이야기랑 똑같습니다.


수미: 인디 뮤지션이 다른 업무에 너무 혼이 안 뺏기도록 좀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을 키워내는 산업이 정부 차원에서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서울에는 많겠죠? 많나요?



—  음 사실, 서울에도 절대적인 숫자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외국은 프리랜서 시스템이 이미 자리 잡은 것 같은데, 한국은 여전히 고용 시장이 불안정해서 A&R,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유통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있어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현저히 적고요. 세이수미처럼 자유롭게 1인 기업형태로는 뮤지션 분들이 가장 먼저 시작하고 계신 것 같아요. 독립적으로 일하는 능력 있는 분들이 점점 크루 형태로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추세인 것 같고요. 앞으로 세이수미가 확장하고 싶으신 부분들이 어떤 건지도 궁금해요. 저 뒤의 박스들을 보니(티셔츠와 LP) 사업 욕심도 있으신 것 같은데. 제2의 세이수미가 되고 싶은 부산밴드가 와서 키워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일동 웃음)


병규: 전혀 생각 안 해봤는데.



—  네 분의 업무 분담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수미: 기본적으로 모든 음원에 대한 사운드는 병규 오빠가 맡아서 하고 있고, 섭외는 양쪽(병규와 본인을 가리키며)으로 오긴 오고요. 그리고 각종 서류 작업은 제가 하고 있고요. 음, 그리고 여기(성완)는 기동력을 담당하고 있어요.


성완: 제가 운전하고 있습니다.


재영: 제가 굿즈를 담당하고 있고요. 병규 형과 함께 스마트 스토어를 담당하고 있어요. 둘이 작업실에 상주해있기 때문에 배송이라든지 전부 다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수미: 저희가 사업자를 낼 때 왠지 세이수미로는 안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비치타운뮤직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고, 어쨌든 4명이 공동대표로 돼 있어요. 서로 책임을 다 같이 갖고 가자는 느낌이지 다른 누군가가 와서 같이 뭘 한다는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지금은 세이수미를 관리하는 데도 시행착오가 많아서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를 봐주실 수 있는 분이 프리랜서로 계약해서 하신다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이미지 출처 @saysueme




—  현재로는 제2의 세이수미를 만드는 것보다는 세이수미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하겠군요. 오늘 어쩐지 수미 엄마, 병규 아빠, 그리고 아들 둘(성완, 재영) 느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 같아요. KEXP할 때 어떠셨어요?


수미: 그때 코로나 전이고 뭔가 지금과 비교했을 때 별로 안 팍팍했다는 느낌이었어요. 분위기가 되게 편했어요.

성완: 코로나19 시작되기 전에 찍은 거였어요.



—  떨리지는 않으셨어요?


수미: 엄청 떨려가지고. 영상에도 다 드러날 텐데. 그래도 재밌었어요.



—  찍고 나면 그런 거 보세요?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 틀어놓으면서 “이게 내다.” 이러면서.


성완: 저는 공연하고 나면 사실 잘 안 봐요. 근데 KEXP는 조금 봤어요.

수미: 저는 좀 보는 편인데요. 제가 볼 수 있는 라이브가 있고, 못 보는 라이브가 있어요. KEXP는 조금 못 보는 편이에요. 제가 너무 떨고 있더라고요.



—  올라가고 연락 많이 받으셨죠.


병규: 딱히?(웃음)



—  마지막 질문입니다. 투어도, 공연도 많이 다니시잖아요. 언제가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수미: 제일이요? 너무 어렵다.



—  ‘제일’이라는 단어 좀 그렇죠? 그럼 뺄게요. 그냥 음악 하면서 좋을 때, 하나씩만 이야기해볼까요?


수미: 질문지 보고 생각을 해 봤는데, 좀 꼽기가 어렵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노래가 완성이 어느 정도 되고 합주를 했을 때 희열이 느껴져요. 그리고 그 노래가 완성된 음악으로 저희가 들을 수 있게 나왔을 때. 발매라기보다는 저희끼리 완성이 됐을 때 저희끼리 기분이 아주 좋죠.


성완: 공연 1/3 지점 지났을 때. 그때가 가장 예열이 잘 돼서. 연주에 크게 신경을 안 쓰고 틀리면 틀리는 대로 그냥 공연 분위기 안에서 같이 어울리는 시점이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들어갈 때는 긴장을 하는 편인데 1/3 지점이 지나고 나면, 흔한 표현으로 조금 즐길 수 있는 시점이 오거든요. 그때부터 끝날 때까지는 계속 기분 좋은 상태로 갈 수 있죠.



—  오, 저 좀 공감 가는데요. 멋있는 대답입니다. 저도 촬영 조금 시작하고 나서 기분 좋거든요.


재영: 저는 음…뭐 다 좋은데요. 딱 하나 못 꼽겠습니다.


병규: 돈 들어올 때 아냐? 왜냐하면, 정산 얘기 가장 많이 하는 멤버거든요. (웃음) 저도 공연 전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공연하는 중이 가장 재밌어요. 보상되는 것 같아요. 워낙 이렇게 멤버들도 알겠지만 제가 기력이 없는 사람이라. 공연하면 보상이 되는 것 같아서요.


재영: 아, 저 생각났어요! 공연 끝나고 수고 많이 했다고 말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오래된 친구가 한 번 저희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요. 정말 진심 어리게 너무 좋았다고 말을 해줘서. 저도 뿌듯했어요.



—  다들 각자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병규: 이러다가 인터뷰 안 끝날 것 같은데요, 에디터님.



넓은 바다로 나아가기 위해

함께 파도가 된 밴드

세이수미가 전 세계에서 널리 사랑받는 이유를 몇 가지의 문장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이유는 우리가 음악을 사랑하는 이유와 맞닿아 있다.

더 다양한 무대를 위해, 음악 자체로 뻗어나가기 위해

10년 동안 음악과 앨범에 쏟은 에너지와 시간이 궁금했다.

잠깐의 유명세에 들뜨지 않고, 차분하게.

본인들만의 속도로 나아가는 이 밴드의 중력은 어떻게 지켜져 왔을까?

성장과 지속, 확장에 대해 세이수미 멤버 최수미 (보컬, 기타)

김병규 (기타), 임성완 (드럼) 김재영 (베이스)과 나눈 이야기.

Interview · Edit | 이진수, Photography | 심재

세이수미(Say Sue Me)


인터뷰, 글: 이진수 @offblue

언젠가 페스티벌 팸투어를 하는 귀여운 할머니로 늙고 싶은 사람. 귀여운 고양이 무니와 덕질을 존중해주는 안사람과 살고있다. 매거진 <Vogue Girl>, <Time Out Seoul>, ‘딩고뮤직’(Dingo Music)과 뮤직 크리에이티브 그룹,‘스페이스오디티’(Space Oddity)에서 일했다. 현재는 매거진 <GQ KOREA>에서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부산 밴드의 막연함을 걷어준 글로벌 파트너의 등장



이미지 출처 @saysueme




— 안녕하세요. 세이수미가 워낙 투어를 많이 해서 첫 투어 이야기로 시작해보고 싶어요. 아이폰 메모장을 캡처한 이미지가 공식 포스터였죠.


수미: 네, 우하하 첫 투어는 2017년이었어요.



—  댐나블리(Damnably,세이수미의 영국 레이블이자 에이전시)에서의 첫 연락도 2017년에 왔던 건가요.


수미: 아뇨. 연락은 2016년에 왔어요. “사우스 바이 사우스 웨스트(SXSW) 갈래?”라고 왔었죠. 



—  인스타그램으로요? 반신반의했을 것 같아요. 


병규: 하물며 그때는 페이스북으로 연락이 왔어요. 일단은 의심했던 것 같아요. 댐나블리가 어떤 회사인지도 페이스북 피드로는 파악이 잘 안 됐거든요. 그리고 그걸 떠나서 ‘우리가 해외 투어를 갈 때인가?’라는 생각을 막연히 했던 것 같아요.


수미: 그리고 그때 김민규 사장님(세이수미 前 레이블 일렉트릭 뮤즈 대표)이 “지금 SXSW를 가면 너네는 미아가 될 것이다”라고 하셨어요. 



—  미아가 된다는 게 무슨 뜻이죠? 


수미: 어쨌거나 SXSW는 전 세계 수많은 아티스트들이 쇼케이스를 하러 가는 곳이니까요. 아무런 인지도가 없는 상황에 거기에 가면 얻을 게 없다는 의미였죠. SXSW는 관객이 돈을 주고 공연을 보러 오는 개념의 이벤트가 아니라, 비즈니스를 하는 쇼케이스고, 저희가 국가적으로 지원을 받고 가더라도 여러모로 낭비만 하고 올 것 같다고, 아직은 아닌 것 같다고 말씀하시더라고요.



—  솔직히 그런 말을 들었을 때, 기분이 어땠어요? 


수미: “어, 알겠다~” 했어요. (웃음) 



—  실망은 안 했어요? 그냥 바로 안 가겠다고 수긍한 거예요?


수미: 네. 사실은 뭐, 부산에 있는 작은 바에서 공연하던 애들이 해외 갈래?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 당연히 마음이 붕 뜨죠. 그래도 아닌 건 아니라고 하니까 알겠다 했죠. 세민이 오빠가 다쳤을 때이기도 해서 전혀 해외에 나갈 준비를 할 여유가 없기도 했어요.



—  그럼 댐나블리 연락을 받고도 투어까지는 1년이 걸린 거네요.


병규: 네, 고맙게도 재차 연락이 왔어요. 2017년에도 한 번 거절했는데 같은 해에 연락이 또 오더라고요. 그러니까 민규 사장님도 우리가 거절했는데 또 연락이 오는 걸 보면, “우리가 생각하는 거 외에 우리에게는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쟤네한테는 보였나 보다.”라고 하시더라고요. 



세이수미는 2018년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에 참여했다. 이미지 출처 @saysueme





—  뭐가 보였는지 나중에 댐나블리에게 물어봤어요? 왜 그렇게 꾸준히 연락했냐고요.


수미: 아뇨. 푸하하.



—  안 물어봤다고요?!


수미: 그러고 나서 이제 지금까지 같이 일을 해봤을 때 이분들 보면, 그냥 음악을 좋아해 주시는 것 같아요. 아시아 쪽으로 발굴을 많이 하려는 것 같았죠. 그냥. 첫 투어는 2주 정도 기간이었는데 멤버들 다 직장 다니고 있을 때였고 드럼이 공백 상태였어요. 하고 싶은데 돈은 없고, 회사에는 또 이 일정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현실적인 고민이 엄청 많았거든요.






낯선 세계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 밴드의 성장 그리고 확장





—  댐나블리에는 세이수미 외에도 쇼넨나이프(Shonen Knife), 오토보케 비버(Otoboke Beaver)등 다양한 국적의 아시아계 뮤지션들이 있어요. 세이수미에게 직접 댐나블리에 대한 소개를 부탁드려도 될까요?


수미: 저희한테 연락이 왔을 때 레이블 아티스트 로스터(artist roster)가 쇼넨나이프랑 일을 하고 있었어요. 그래서 ‘쇼넨라이프 같은 밴드랑 일할 정도면 믿을만한 사람들인가보다’ 했죠. 흐흐. 그때 조금 자부심 같은 게 생기고. 지금 저희 레이블(댐나블리)에서 제일 잘 나가는 친구들이 오토보케 비버인데요. 저희의 영국 첫 투어도 그 친구들 서포트 밴드로 시작했어요. 원래 처음 투어를 갈 때는 길게 가는 게 아니고, 오프닝 밴드로 짧게 가보는 거라는 걸 그때 알았죠.



—  수미 님이 해외에서도 제일 커뮤니케이션을 많이 하시는 거로 알고 있는데, 투어를 돌면서 처음에 어려움은 없었나요? 인터뷰할 때라던가, 투어 중에 필요한 게 있어서 요청할 때라던가요. 


수미: 처음에는 잘 몰라서 오히려 두려움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냥 가서 재밌게 즐기다 와야지. 이런 생각이 컸어요.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인터뷰를 하고. 영어를 잘 못해도 더 편하게 했던 것 같아요. 근데 가면 갈수록 조금씩 어려워지더라고요. 욕심이 생기니까요.



—  요새는 점점 부담감이 생기나요?


수미: 네, 조금요.


병규: 언어 같은 부분은 다른 멤버들도 번역이 가능할 때 같이 거드는 편이죠. 근데 그런 기회는 아직도 극히 일부분이긴 해요.



—  해외 매체 인터뷰나 방송에서 한국어로 의사소통을 할 수 있는 기회는 많지 않으셨던 거네요.

 

병규: 초반엔 아예 없었다고 보시면 돼요.

성완: 그래서 항상 먼저 여쭤봐요. 한국어로 해도 괜찮은지요.

수미: 최근 들어서는 그래도 한국어로 의사소통하려는 분위기가 많이 생긴 것 같아요.



—  무대 위 조율이라던가, 디테일한 의사소통은 어떻게 하나요?


병규: 그런 건 되도록 사전에 에이전시에서 미리 정보를 넘겨줘요. 투어 때는 저희가 테크라이더를 다 챙겨 다니니까 먼저 나서서 이야기할 부분은 적은 편이죠.



—  2012년에 밴드를 시작해서, 이제 올해로 10년 차 밴드인데요. 시작할 때 이렇게 직업으로서 밴드를 할 거라고 예상하셨나요? 그리고 앞으로 얼마나 오래 음악 하고 싶은지도 궁금해요. 저도 30대 초반의 직업인으로 매일매일 하는 고민이라 물어보고 싶었어요.


병규: 일단 저도 이렇게 오래 할 거라고 생각을 전혀 못 했고요. 이걸로 뭘 해보자고 시작한 밴드가 아니었기 때문에 더 그런 것 같아요. 세이수미 하기 전에 저는 하던 메인 밴드가 있었는데 그게 잘 안 됐어요. 도피처가 필요해서 만든 밴드가 세이수미였고요. 크게 기대도 별로 없었고, 그러다 보니 미래를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지금은 그냥 이 밴드가 계속 쭉 큰 파도를 맞지 않고, 끝까지 잘 가면 좋지 않을까 그런 생각을 합니다.


수미: 저도 진짜 생각 못 했어요. 재미 삼아 하자. 그런 마음으로 하다 보니까 시간이 이렇게 흘렀네요. (웃음) 크게 목표를 갖고 한 것도 아니지만, 나름대로 운이 좋았던 것 같기도 하고. 어쩌다 보니까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중간에 많은 일이 있었죠. 어쨌든 그 일들을 나름대로 잘 극복을 했다는 생각이 들고, 스스로 그것에 대한 자부심이 있습니다.



—  멋있다!


수미: (웃음) 아무튼 꾸준히 여기까지 해왔다는 게 참 다행이다 싶고. 언제까지 계속할지는…막연한 불안감 같은 건 늘 있어요. ‘과연 언제까지 할 수 있을까?’ 뭐, 거의 매일 생각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미지 출처 @saysueme




—  어느 직업이든 다 그런 불안감이 조금씩 있는 것 같아요.


수미: 맞아요. 어쨌든 자기 인생이 아니니까 잠깐 훑어보는 느낌적인 걸로 사람들은 잘 됐다고 생각할 수 있어요. 음. 혼자서 하는 것도 아니고 같이 하는 거기 때문에 더 그런 생각이 드는 것 같기도 하고.



—  역시 동업이 어려운 일이군요.


수미: 그렇죠, 저희도 일종의 동업이죠.



—  저 멀리서, 관찰자의 시점으로 웃고 계시는 두 분, 얘기 좀 해주세요.


성완: 잘 따라가고 있죠, 저희는. 어쨌든 중간에 합류한 멤버거든요. 잘 녹아들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이런 비슷한 이야기를 며칠 전 차에서 한 번 했었어요. 결국은 ‘지금 열심히 하자’ 가장 중요한 포인트가 아닐까? 제가 2019년에 들어와서 이제 3~4년 차가 되어가고 있는데, 세이수미에 들어와서 10년 정도 몸담을지 어떻게 될지 모르죠. 딱히 큰 미래를 그리고 하는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냥 두 사람이 잘 닦아온 길에 숟가락 얹어서. (웃음) 열심히 도와주려고 하고 있어요.



—  운이 좋다고 계속 이야기하고 있지만, 실력이 있기 때문에 투어 같은 기회가 찾아온다고 생각해요. 장르적인 특징, 유행, 실력 여러 가지 요소가 맞아야 하죠. 타이밍 상 2017~18년의 투어가 밴드에게 어떤 의미를 가졌는지 궁금해요.


병규: 투어 첫 시작이 저희에게 어쩌면 우연한 느낌의 기회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준비가 안 된 상태로 시작을 했죠. 짧았고요. 근데 그러고 나서 다음 해부터의 투어는 좀 더 본격적이었던 것 같아요. 저희끼리 준비해서 해보자고 한국과 영국 두 회사에서 이야기가 나왔을 때, 결국 투어를 하려면 앨범이라는 명목이 필요했고요. 그래서 작업을 정말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수미: 맞아. 다른 팀들과 비교했을 때에도 저희 팀은 정말 많이 했거든요.


병규: 곡이 있어야지만 투어의 명목이 있으니까. 앨범이 없으면 투어를 가기 힘들다는 것 역시 댐나블리도, 그 당시 소속되어 있던 회사에서도 계속 인지를 시켜 주시더라고요. 앨범도 찍어서 팔고 해야 하니까요. 그래서 곡 작업을 많이 했고, 각자 개인적으로도 발전을 많이 했던 것 같아요. 그러는 중에 저는 개인적으로 천천히 우리가 우리 앨범을 만들어보고 싶다는 생각도 그때 했던 것 같아요.



—  지금의 비치타운뮤직에 대한 생각이 그때 조금 들었던 건가요?


병규: 그랬던 거 같아요. 투어를 위해, 앨범을 목표로. 앨범을 위해 작업을 하고, 나름 시도를 했던 게 저희의 힘이지 않을까? 어쨌거나 투어에 대한 영향이 곡 작업과 스스로 발전에 큰 영향을 줬다고 생각합니다.






밴드 세이수미가 글로벌 친구들과 직접 소통 하는 방법





—  발매와 투어 일정을 어떤 식으로 계획하시는지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주실 수 있나요? 지금은 회사를 나와서 세이수미 멤버들이 직접 하게 됐잖아요.


수미: 일단 저희는 댐나블리가 한국 외 일정을 총괄해서 맡고 있다고 보면 돼요. 투어와 발매 관련된 부분들이요. 국내 말고는 다 해주고 있어요. 투어 관련해서는 거의 1년 전부터 계획을 하죠. 대부분 날씨가 너무 덥거나 추울 때를 피해서 봄, 가을로 잡아줘요. 댐나블리가 유럽 부킹 에이전시와, 미국 부킹에이전시를 관할하면서 진행하죠. 본인들은 레이블로서 있기 때문이에요. 저희가 직접 부킹 에이전시랑 소통하는 일은 없어요. 그렇지만 어디랑 일하고 있다 정도를 계속 저희에게 알려주죠. 일본 쪽은 저희와 친한 일본인 친구 코키 야하타(Koki Yahata)가 해주고 있어요. 댐나블리도 일본 쪽 파트너가 있는 걸로 알고 있지만, 저희는 맡기고 있지 않아요.



—  수많은 한국의 밴드 중에서도 세이수미가 댐나블리의 러브콜을 받고 투어를 돌게 되고, 사랑을 받는 이유에 대해서 스스로 생각해보신 적 있으세요? <GQ>에 김민규 대표님이 쓰신 칼럼이 있더라고요. 세이수미의 해외 성공 요인에 대해 다년간의 경험으로 분석해서 쓰신 내용이었어요. 첫 번째 요인은 인디 팝의 정수라는 점, 두 번째 요인은 현지 파트너와 일을 하고 있다는 점, 세 번째 요인은 오랜 시간 동안 해외 시장을 두드린 경험이라고 분석하셨는데 어떻게 생각하세요?


병규: 다 맞는 거 같은데요? 저희는 저희 음악을 하고 있었을 뿐인데 2018년, 2019년에 저희 같은 음악이 유행이었던 것 같아요. 흔히들 인디 팝, 인디 록, 서프 록 음악이라고 말씀을 많이 해 주시는데 그런 것도 2010년 초반부터 유행을 슬슬 했던 것 같고요. 거기에 조금 더하면 세이수미에서 동양적인 어떤 걸 캐치를 하는 것 같더라고요. 저희는 잘 모르겠는데. 그런 것들로 인해 재미를 좀 느낀 것 같고요. 댐나블리라는 현지 파트너가 제일 중요한 부분이라고 생각하죠.


수미: 댐나블리와 일을 하면서 어떻게 해외 시장을 두드리는지 알아갔던 거 같기도 해요. 그들이 말 그대로 저희를 이끌어준 거죠. “이때 즈음에 이걸 내야 한다”, “이때 투어를 하는 게 좋다” 이런 거요.



—  그런 게 실제로 뭐가 있었어요?


수미: 제일 최근에 기억나는 건 <CREAM>이라고 미국 매거진 중에 되게 오래된 잡지의 인터뷰를 하라고 했어요. 사실 저희는 하라고 하면 웬만하면 해요. 하하. 댐나블리는 안 해도 되는 것도 확실하게 잘 말해줘요. 저희는 그런 것들을 따라가면서 하다 보니까 오히려 더 수월했지 않나?



—  그럼 안 해도 되는 건요? 재미있다.


병규: 안 해도 된다는 것도 은근히 되게 많았어요. “이거는 답장조차 안 해도 된다” 뭐 이런 거. (웃음)






하나의 무대가 비즈니스,퍼포먼스 이상의 경험이 되기 위한 조건





—  댐나블리가 매칭해준 투어의 라이브 경험이 실질적으로 밴드에게 파급력이 있었는지, 어떤 경험을 가져다줬는지도 궁금해요. 라이브 스테이지 하나가 갖고 있는 가치에 대해 실제로 밴드 멤버들은 어떻게 생각하는 지도요.


수미: 몇 년을 하다 보니 긴 기간에 따라오는 반응이랄까? 그런 게 늘어나는 걸 체감하는 것 같아요. 처음보다 조금씩 관객도 느는 것 같고요. 근데 옛날에 비해서 많아졌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저희도 배고픈 건 사실이죠. 특히 저희 로컬인 부산에서 공연을 만들 때 늘 불안해요. “이번에는 어느 정도 모일 수 있을까?”, “이렇게 큰 데 빌렸는데 채울 수 있을까?”. 그런 불안이 항상 있어요. 저희가 비치타운뮤직이라는 걸 만들고 공연 기획을 해본 건 올해 처음이니까요.



—  아무리 투어를 다닌 세이수미여도 여전히 로컬에서 공연할 때에는 걱정이 앞서는군요. 페스티벌도 정말 많이 다녔을 텐데, 국내와 해외를 비교되는 지점이 있나요. 저 같은 관객이 느끼는 건 좀 커요. 시설이랄지, 라인업이랄지, 확실히 돈을 쓰는 입장이다 보니까요.


병규: 사실 제가 느끼는 큰 차이는 없는데 지금 생각나는 건 대기실 정도? 근데 우리나라가 너무 더우니까 날씨 차이에서 오는 차이가 큰 것 같아요.


수미: 그렇기도 하고 아무래도 공연 자체의 시스템은 크게 다른 점은 없어요. 근데 어떻게 처음부터 끝까지 케어를 해주냐의 차이는 있는 것 같아요. 해외가 그런 부분에서 잘 짜여있다는 생각은 해요.



—  사전에 아티스트에게 공연, 무대와 관련된 정보를 충분히 전달한다거나, 진행한다는 방식의 차이는 별로 없나요.


수미: 네. 거의 그런 부분은 비슷한 것 같아요. 우리나라가 더 많은 정보를 아티스트에게 요구하는 편인 것 같아요. 셋 리스트를 달라고 한다거나.



—  그럼 세이수미가 갔던 페스티벌 중에 어떤 게 제일 좋았어요?


수미: ‘그린 맨 페스티벌(Green Man Festival)’이요. 영국의 웨일즈(Whales)에서 매년 8월에 하는 페스티벌인데요. 공연 자체도 좋았지만, 라인업과 여러 가지 경험들이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아요. 저희가 2019년에 갔을 때 요 라 탱고(Yo La Tengo)가 1일 차에 나왔거든요. 저희는 3일차였고요. 신나서 1일 차부터 갔죠. (웃음) 저희 여기 와 있다고 디엠을 보내니까 오라고 하셔서 인사하고 무대 위 먼발치에서 공연을 봤어요. 그 기억부터 너무 좋았고. 저희 공연하는 날의 대기실도, 아티스트 존도 너무 잘 되어 있더라고요. 극진한 대접이 아니라, 모든 게 서로를 배려해서 만들어지고 있다고 느껴지는 그런 거요.



—  그럼 아티스트들도 서로 자연스레 소통하면서 알아갈 수 있겠네요. 단순히 비즈니스를 하러 가는 곳이 아니라 연결의 역할도 할 수 있잖아요. 기본적으로 컨디션을 유지해야 공연도 즐겁게 할 수 있고요. 저도 취재하러 백스테이지를 다니다 보면 행사장처럼 되어있는 곳이 많은데, 잘 만들어진 페스티벌을 보면 그런 환경이 참 부러운 것 같아요.


병규: 저도 그린 맨이 좋았어요. 단 하나 정책이 좀 이상한 게 있었는데, 타임 테이블을 돈 주고 팔더라고요. 그래서 아예 타임 테이블 공지조차 안 하고요. 정확히 얼만지는 기억이 안 나는데 5파운드였나? 참여하는 아티스트한테도 팔더라고요.


수미: 해외 페스티벌은 공항에서 내리면 직접 픽업하러 와 주고, 세심한 여러 부분이 전체적으로 보살핌을받는다는 생각이 들게끔 해주는 것 같아요.


재영: 그래도 관객은 한국이 짱입니다.(일동 웃음)



—  몇 년 전 인터뷰를 보니까 세이수미는 투어 영상 아카이브를 안 하신다고요? 되게 좋은 기록이 될 것 같은데 아쉬워요. 여전히 안 찍으시나요?


수미: 투어라는 게, 개인 여행 갈 때도 일정 짜려면 복잡하잖아요. 항상 기록으로 남겨둘 걸 아쉬워하긴 하지만, 사람을 한 분 더 불러서 찍는 게 여러 가지 부분에서 어려워요. 아무래도 비용적인 문제겠죠.



—  투어를 갈 때 정부에서 비용을 지원해주는 부분도 있나요? 케이팝 자체에 관한 관심이 늘어나면서 정부 차원의 지원이 더 늘어났는지, 실질적으로도 뮤지션이 느끼는 부분은 어떤지 궁금해서요.


수미: 인기를 떠나서 계획이 잘 세워져 있으면 정부에서 잘 지원해주는 편인 것 같아요. 초청 받은 페스티벌이 있으면 지원도 나오고요. 물론 도움이 되긴 하지만, 그걸로 북미 투어 같은 것을 커버하기에는 좀 부족하죠.


병규: 신청하긴 하는데 종종 못 받는 경우도 있고요. 댐나블리에서 가끔 “너희 나라 이런 지원 공고가 떴던데?”라고 알려줘서 신청할 때도 있어요.






글로벌 케이밴드 세이수미, 부산 수영구 비치타운 세이수미





—  그렇다면 근 몇 년간 케이팝이 유행하면서 세이수미에게 주는 영향은 어떤 게 있나요. 질문하면서 조심스럽기도 하지만, 실질적으로 필드에 계신 분들이기 때문에 여쭤보고 싶었어요.


병규: 확실히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SXSW 때문에 미국에 갔을 때도 ‘K-스포트라이트’라는 무대가 있었어요. 저희 같은 밴드만 하는 게 아니고 아이돌 뮤지션 분들도 같이 참여를 하는 무대였어요. 그렇게 해야 더 홍보가 잘 되니까요. 거기서 저희를 보고 팬이 된 분들도 있었어요. 근데 아직은 한국인 뮤지션이라서 좋아해 주는 느낌도 있긴 해요.



—  그래도 10명 중에 1~2분 정도는 음악을 들어주신다면 좋은 기회일까요?


수미: BTS의 RM이 저희를 트위터에 올려주셔서 그 이후로 되게 아미 분들이 많이 유입됐어요. 유입되신 분 중에 절반만 남으셔도 저희는 좋죠.



—  정량적인 부분 외의 것들도 확장에서 필요할 것 같아요. 투어 도시의 개수, 관람객의 숫자도 중요하지만 오랫동안 음악을 지속하려면 어떤 도움이 또 필요할까요.


수미: 결국 인력이 더 필요할 것 같다는 이야긴데요.(웃음) 발매 시즌이 되면 도와줄 사람, 공연 기획 때 필요한 것들, 사이클을 체계적으로 아는 분들이 도와주면 제일 좋죠. 국내에서도 그걸 잘 알고 도와줄 분들이 있다면요. 특히, 부산에 계시면 좋겠어요.


병규: 어쨌거나 저희가 스스로 해보자고 나왔는데 자꾸 생길 수밖에 없는 업무들이 생기네요. 앞서 수미가 한 이야기랑 똑같습니다.


수미: 인디 뮤지션이 다른 업무에 너무 혼이 안 뺏기도록 좀 도와줄 수 있는 분들을 키워내는 산업이 정부 차원에서 있으면 좋겠어요. 그런데 그런 분들이 서울에는 많겠죠? 많나요?



—  음 사실, 서울에도 절대적인 숫자가 많지는 않은 것 같아요. 외국은 프리랜서 시스템이 이미 자리 잡은 것 같은데, 한국은 여전히 고용 시장이 불안정해서 A&R, 비주얼 크리에이티브, 유통 등 엔터테인먼트 산업 전반에 있어서 회사에 소속되지 않고 일하는 사람들은 현저히 적고요. 세이수미처럼 자유롭게 1인 기업형태로는 뮤지션 분들이 가장 먼저 시작하고 계신 것 같아요. 독립적으로 일하는 능력 있는 분들이 점점 크루 형태로 많이 생겨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추세인 것 같고요. 앞으로 세이수미가 확장하고 싶으신 부분들이 어떤 건지도 궁금해요. 저 뒤의 박스들을 보니(티셔츠와 LP) 사업 욕심도 있으신 것 같은데. 제2의 세이수미가 되고 싶은 부산밴드가 와서 키워달라고 할 수도 있잖아요? (일동 웃음)


병규: 전혀 생각 안 해봤는데.



—  네 분의 업무 분담은 어떻게 이뤄지는지 궁금합니다.


수미: 기본적으로 모든 음원에 대한 사운드는 병규 오빠가 맡아서 하고 있고, 섭외는 양쪽(병규와 본인을 가리키며)으로 오긴 오고요. 그리고 각종 서류 작업은 제가 하고 있고요. 음, 그리고 여기(성완)는 기동력을 담당하고 있어요.


성완: 제가 운전하고 있습니다.


재영: 제가 굿즈를 담당하고 있고요. 병규 형과 함께 스마트 스토어를 담당하고 있어요. 둘이 작업실에 상주해있기 때문에 배송이라든지 전부 다 맡아서 하고 있습니다.


수미: 저희가 사업자를 낼 때 왠지 세이수미로는 안 하고 싶었거든요. 그래서 비치타운뮤직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고, 어쨌든 4명이 공동대표로 돼 있어요. 서로 책임을 다 같이 갖고 가자는 느낌이지 다른 누군가가 와서 같이 뭘 한다는 건 생각도 안 해봤어요. 지금은 세이수미를 관리하는 데도 시행착오가 많아서요.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저희를 봐주실 수 있는 분이 프리랜서로 계약해서 하신다고 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이미지 출처 @saysueme




—  현재로는 제2의 세이수미를 만드는 것보다는 세이수미를 더 단단하게 만들 수 있는 노동력이 필요하겠군요. 오늘 어쩐지 수미 엄마, 병규 아빠, 그리고 아들 둘(성완, 재영) 느낌으로 인터뷰를 진행하는 것 같아요. KEXP할 때 어떠셨어요?


수미: 그때 코로나 전이고 뭔가 지금과 비교했을 때 별로 안 팍팍했다는 느낌이었어요. 분위기가 되게 편했어요.


성완: 코로나19 시작되기 전에 찍은 거였어요.



—  떨리지는 않으셨어요?


수미: 엄청 떨려가지고. 영상에도 다 드러날 텐데. 그래도 재밌었어요.



—  찍고 나면 그런 거 보세요? 친구들이랑 술 마실 때 틀어놓으면서 “이게 내다.” 이러면서.


성완: 저는 공연하고 나면 사실 잘 안 봐요. 근데 KEXP는 조금 봤어요.


수미: 저는 좀 보는 편인데요. 제가 볼 수 있는 라이브가 있고, 못 보는 라이브가 있어요. KEXP는 조금 못 보는 편이에요. 제가 너무 떨고 있더라고요.



—  올라가고 연락 많이 받으셨죠.


병규: 딱히?(웃음)



—  마지막 질문입니다. 투어도, 공연도 많이 다니시잖아요. 언제가 제일 기억에 남으세요?


수미: 제일이요? 너무 어렵다.



—  ‘제일’이라는 단어 좀 그렇죠? 그럼 뺄게요. 그냥 음악 하면서 좋을 때, 하나씩만 이야기해볼까요?


수미: 질문지 보고 생각을 해 봤는데, 좀 꼽기가 어렵더라고요. 저 같은 경우에는 노래가 완성이 어느 정도 되고 합주를 했을 때 희열이 느껴져요. 그리고 그 노래가 완성된 음악으로 저희가 들을 수 있게 나왔을 때. 발매라기보다는 저희끼리 완성이 됐을 때 저희끼리 기분이 아주 좋죠.


성완: 공연 1/3 지점 지났을 때. 그때가 가장 예열이 잘 돼서. 연주에 크게 신경을 안 쓰고 틀리면 틀리는 대로 그냥 공연 분위기 안에서 같이 어울리는 시점이 그때부터인 것 같아요. 저도 처음에 들어갈 때는 긴장을 하는 편인데 1/3 지점이 지나고 나면, 흔한 표현으로 조금 즐길 수 있는 시점이 오거든요. 그때부터 끝날 때까지는 계속 기분 좋은 상태로 갈 수 있죠.



—  오, 저 좀 공감 가는데요. 멋있는 대답입니다. 저도 촬영 조금 시작하고 나서 기분 좋거든요.


재영: 저는 음…뭐 다 좋은데요. 딱 하나 못 꼽겠습니다.


병규: 돈 들어올 때 아냐? 왜냐하면, 정산 얘기 가장 많이 하는 멤버거든요. (웃음) 저도 공연 전이 너무 힘들어서 그런지 공연하는 중이 가장 재밌어요. 보상되는 것 같아요. 워낙 이렇게 멤버들도 알겠지만 제가 기력이 없는 사람이라. 공연하면 보상이 되는 것 같아서요.


재영: 아, 저 생각났어요! 공연 끝나고 수고 많이 했다고 말해주는 게 가장 좋은 것 같습니다. 오래된 친구가 한 번 저희 공연을 본 적이 있는데요. 정말 진심 어리게 너무 좋았다고 말을 해줘서. 저도 뿌듯했어요.



—  다들 각자 어떻게 음악을 시작하게 되신 거예요?


병규: 이러다가 인터뷰 안 끝날 것 같은데요, 에디터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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