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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님 비즈니스가 아닌,

협업하고 윈윈하는 전략

음악에 기반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펼쳐온 두 사람이 ALPS라는 이름의 회사로 함께 뭉쳤다. 길이 없다면 새로 닦고, 벽이 있다면 허무는 데에 익숙한 ALPS의 김미소 대표와 이수정 이사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둘이 의기투합하게 된 이유부터 사명에 담긴 의미, 비전과 미션, 그리고 새로이 런칭하는 매거진 AAA까지. 이들의 치열한 고민의 기록은 곧 신(scene)의 성장과 확장을 위한 가이드북과도 같았다.

Interview, Edit | 키치킴, Photography | 심재

ALPS 김미소, 이수정


글, 인터뷰: 키치킴 @nomoretaxiplz

2013년, 뮤직 에디터로 비지니스에 처음 뛰어든 이래 지금까지 음악에 관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 현재는 포크라노스의 팀장으로 디지털 컨텐츠부터 바이닐 제작까지 브랜드의 얼굴에 해당하는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음악을 소개해서 번 돈으로 다른 사람이 소개한 음악을 사는 데 탕진한다. 늘 허둥대는 탓에 택시 이용이 잦다. 세계 각지에서 탄 택시 후기들을 엮은 <나의 개인택시 탑승기>를 발간할 예정이다. 거짓말이다.

— 안녕하세요. ALPS에 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기 전에, 두 분이 각자 걸어온 여정에 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국악을 전공하며 비슷한 학업 환경과 비슷한 시기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교롭게 두 분 모두 아카데미 내 국악의 영역에서 꽤 회의를 느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미소: 되게 심했어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학만 가면 '악기(연주)는 안 한다'라고 일찍 마음을 먹고 공연 기획을 시작했어요. 레이블에도 잠깐 있었고, 클래식 공연도 기획하고 한창 프리랜서로 활동했는데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일하게 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죠. 다른 장르로 (활동 영역이) 넘어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 울산에서 APaMM을 만들면서 홍대 신(scene)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거기는 한국적 월드 뮤직을 개발하거나 한국의 인디 뮤직을 세계에 소개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디 음악에 관심을 갖다 자연스럽게 홍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거죠.


수정: 저는 타악기를 전공했어요. 예고도 나오고 대학도 갔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20대 때 다 놀기만 한 기억뿐이에요. 힙합 동아리도 하고, 만날 전자 음악 듣고. 그래서 음악을 그만두려고 도망쳤어요.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하다 근현대사와 근·현대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됐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대중음악으로 넘어가게 된 거죠. '대중음악 포럼 봄'이나 '대중음악 SOUND'처럼 근·현대 대중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쪽에 몸담다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 그렇다면 두 분이 처음 만나게 된 때는 언제일까요?


미소: 2014년? '대중음악 SOUND'에 글 쓰면서 서로 처음 만나서 APaMM에서 공동 세션도 하고 계속 공연/예술 국제교류랑 관련된 일을 해왔는데 데면데면했죠. 본격적으로 일을 처음 같이 한 게 2017년이니까 얼마 안 됐네요. (웃음)



— 서로 간에 강력한 스파크가 일어난 건 아니네요. (웃음)


수정: 근데 우리 되게 잘 스며든 것 같은데?


미소: 이제 저는 2015년부터 잔다리페스타 일을 했었고, 어쨌든 피스트레인이 잔다리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2018년 피스트레인 때도 함께 일했지만 '빨리 어떻게든 페스티벌을 잘 끝내야 해'라는 미션 때문에 행사 준비하면서도 서로 친하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어쨌든 페스티벌이 잘 끝났으니까, 마지막 날 SCR 분수 무대로 모두가 같이 뛰어들면서 놀았는데 (이수정 이사가) 춤을 너무 잘 추는 거예요. '뭐지, 저 언니?' 약간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때 같이 놀던 게 서로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됐었죠.


수정: 춤사위로 많은 사람을 꾀었지만, 김미소를 꼬실 줄은. (웃음)


미소: 그러다 또 이수정 이사가 부산음악창작소 심사하러 간다고 했을 때, 그럼 나도 따라가겠다 해서 1박 2일 같이 여행하면서 부쩍 친해졌죠. 술도 마시고 복국도 먹고 목욕도 하고.


수정: 역시 사람은 목욕을 같이 한 번 해봐야 해요.


미소: 그러면서 많은 일을 같이하고 급속도로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됐죠.


수정: 최근엔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것 같은데. (모두 웃음)




(2022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이미지 출처 @피스트레인)



— 서로의 춤사위도 확인하고, 함께 여행도 다녀오셨죠. 하지만 창업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서로 있을 것 같아요. 서로가 인정하는 각자의 탤런트가 있다면요.


미소: 일단 저는 사실 음악을 전공하긴 했지만, 이수정 이사는 음악만 있어도 살 것 같은데 전 그렇진 않거든요. 음악에 관해서도 많이 알고 있고 해외에서 오래 살아서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폭이 저보다 월등하게 훌륭해요. 또 언어적인 측면도 있죠. 영어/스페인어가 능통하다 보니 국제 교류를 비롯한 해외 비즈니스를 할 때 굉장한 탤런트를 갖고 있어요.


수정: 제가 꼽고 싶은 건 뒷심과 뚝심. 확실히 리더 기질이 있어요.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라는 얘길 어디서 들었는데, 동료와 신(scene)이 있어야 저도 그렇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에겐 리더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종종 생각했죠. 저는 계속 프리랜서로 살았거든요. 그래서 뒷심이 부족한 편인데, 김미소 대표는 집중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프로젝트를 완주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한 탤런트를 갖고 있어요.



— 언젠간 결국 함께할 운명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수정: 저희는 갑자기 서로의 탤런트를 알아보고 만났다기보다 오랫동안 크고 작은 일을 하면서 호흡을 맞춰보다 지금에 와서야 '우리 같이 뭔가를 해보자'라고 도모해 ALPS를 설립했어요.


미소: 그것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어요.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위기의 순간들을 함께 극복해야만 살 수 있는 구조와 상황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정: 앞으로 저희의 10년을 여기에 배팅했어요. (모두 웃음)


미소: 이 동네엔 아직도 형님 비즈니스가 많고 또래 여성 동료가 진짜 없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자라온 환경이나 접했던 문화들이 비슷하니까 서로 이해하고 협업하면서 윈윈할 수 있는 부분들도 크죠.



 
ALPS 뮤직 파트에서는 국내외 뮤지션의
해외 공연을 중개하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컬쳐 파트에서는 음악이나 예술, 문화를
기반으로 한 리서치와 기획이 이뤄진다
 


(좌: 김미소 대표, 우: 이수정 이사)



본격적으로 ALPS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뮤직 앤 컬처 에이전시라고요. 아무래도 한국에 에이전시 개념의 조직이 흔하진 않다 보니, ALPS가 어떤 회사인지 한 번 소개를 부탁합니다.


미소: 피스트레인을 두 번 개최하며 페스티벌에 좀 더 집중해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코로나가 왔고 축제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뭘 할 수 있지?’라고 봤을 때,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음악 안에서도 유통도 있고, 퍼블리싱도 있고 여러 섹션이 나뉘는데 사실 저희는 공연예술 그리고 라이브 음악 신에서만 활동이 있었거든요.

오프라인 기반으로요.


미소: 네. 그래서 지금 비집고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고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았죠. 우리가 재밌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어야 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강점을 갖추고 있는 일들을 비즈니스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저희가 해왔던 것, 그리고 공통으로 관심이 있던 영역들이 라이브 산업, 신과 생태계에 관한 고민 그리고 국제 교류와 해외 진출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것들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다짐했죠. 이게 진짜 실현할 수 있는 일이고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지 6개월 정도 (기업) 액셀러레이팅을 받았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갖고 확실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었어요. '되는 비즈니스다'와 같은 확신이라기보다는, ‘비로소 일할 준비가 됐다’ 는 것과 같은 확신이요.


ALPS 뮤직 파트에서는 국내외 뮤지션의 해외 공연을 중개하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컬쳐 파트에서는 음악이나 예술, 문화를 기반으로 한 연구/리서치가 이뤄지고 있어요. 단순한 연구라기보다는, 실제 우리가 공부하고 관찰하는 것들이 씬과 시장을 성장하고 나아가는 데에 기반이 될 수 있는 것들의 측면이 크죠. 저희가 생각보다 되게 학구적인 사람들이거든요. (웃음)



— ALPS의 속뜻을 찾아보니, 꽤 거대한 개념의 단어가 모인 조합이더라고요. 어떻게 그 네 단어를 조합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수정: 제가 조합한 게 아닙니다. (웃음)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가 있는데요. 그 사람이 말하길, 절대 진리가 아닌 복수의 진리로 가는 네 가지 과정이 바로 이 4개라 했어요. Art, Love, Politics, Science. 이 네 가지를 통해 우리는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어느 평론집을 읽다 알게 됐어요.



—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 네 가지 개념 모두 ALPS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하여 차용한 것이잖아요.


수정: 그렇죠. Politics도 Science도 저희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에요. 둘 다 산업과 생태계와 연관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서, 이를 기반으로 생성된 담론이 실질적인 변화로 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물론 Politics랑 Science만 있으면 너무 딱딱하기 마련인데, 이 안에서 또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Art와 Love가 있어야 하거든요. (모두 웃음)



— 이해했습니다. 설명을 듣기 전 가장 궁금했던 지점이 바로 두 개념이었는데, 결국 아젠다를 만들고 씬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측면에서의 Politics와 Science였군요. 이어서 질문드립니다. ALPS는 21년 3월에 런칭되었습니다. 비단 두 분뿐만 아니라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힘든 시기였을 텐데요. 그저 울고 있기보다는 빠르게 추진력을 찾는 길을 택했네요.


미소: 울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게, 이미 페스티벌을 열기 위해서 뽑아 놓은 스태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페스티벌을 못 하게 됐다고 스태프들을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중단과 취소의 상황이 길어질 줄은 몰랐어요. 월세도 내야 하고 스태프들 월급도 줘야 하는데, 피스트레인은 비영리법인이라 일련의 정부 입찰 사업 등에 제약이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아주 현실적인 이유였어요. '우리는 뮤직 앤 컬처 콘텐츠 에이전시가 될 거야, 우리는 이런 일을 할 거야'라는 구상보다는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면서 조금만 버티고 나면 같이 축제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앞섰죠. 그러므로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밖에 없었죠.


수정: 페스티벌은 기승전결이 있는 사업이라 회사도 기승전결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당시만 해도 각자가 개인 사업자로 존재했어요. 개인 명의로 강의도 하고, 연구도 하고 저도 당시엔 '플립드코인뮤직'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서로 후원하며 힘을 모으기 위해 (ALPS로) 모두 합치게 된 거예요.





 
조금 더 다양한 뮤지션들이
다양한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목표 의식
 


라이브나 투어가 결국 수익으로 환산되기까지는 분명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텐데요. 어떤 지점에서 그 가능성과 비전을 찾게 되었을지도 궁금합니다. ALPS는 분명 영리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일 테니까요.


미소: 음악 산업 내의 빈익빈 부익부 이슈가 크다고 생각해요. 알고리즘 체계나 미디어를 타는 소수의 아티스트만 독과점하는 구조에서,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지금 이런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것도 그렇고, 조금 더 다양한 뮤지션들이 다양한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습니다. 물론 '몇 팀을 대상으로 몇 회 공연한다'는 목표치는 존재하죠. 그 와중에 K-POP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의 지점은 과거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영역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들여다보고 있고 수정 이사님께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수정: 저도 어쨌든 2016년부터 생태계에 속한 내부자로서 한국 아티스트가 어떻게 해외에 진출하는지 그 루트에 직접 몸담기도 했고 여러 사례를 목격했거든요. 옛날에는 우리가 지닌 로스터를 해외 시장에 소개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의 전략인 거예요. 해외 페스티벌에서 한국 뮤지션과 한국 시장에 관한 수요들이 저에게 역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저희는 그걸 비즈니스로 전환을 시키고자 하는 거죠. 아티스트 베이스가 아닌 클라이언트 베이스로요.



— 한국 음악 시장은 예전부터 '전속'이라는 개념이 너무 강해 꽤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아티스트에 관한 360도를 다 다루기 때문에 일정 부분만을 함께 협업하는 데에 부침은 없나요?


미소: 그런데 또 지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기업가형 인디펜던트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 경계에서 생겨난 회사도 하나 둘 생기고 있죠. 거기에 저희는 페스티벌까지 직접 만들고 또 섭외를 중개하고 있다 보니 거기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수정: 어쨌거나 아티스트와 페스티벌 간에 일이 성사되려면 생각보다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하고, 각자가 비슷한 이유로 이를 어려워해요. 그런 데에서 저희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포지션이긴 합니다.



— 해파리의 사례에 관해서도 얘기 나누고 싶어요.


미소: 해파리는 우리의 친구들이기도 하고 ALPS 이전부터 뭔가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케이스죠. SXSW에도 나갔고 미국, 스페인, 대만…. 내년 3월엔 또 스페인에 갈 것 같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해파리하고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까'를 다시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해파리와 같은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도 중요하지만, 저희가 진행하는 일의 범위가 인디부터 메인스트림까지 다양하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게 목표예요. K-POP 시장에서 먼저 제안을 보내주기도 하고 먼저 저희가 태핑하는 움직임도 있고요.



(2022년 7월, 해파리 유럽 투어 중 스웨덴의 Clandestino 페스티벌 백스테이지, 이미지 출처 @ALPS)




2023년이 ALPS에게 정말 중요한 해네요. 지금까지 장전한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는 해가 될까요?


수정: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고 또 잘하기 위해서 사실, 이 매거진을 만드는 거기도 해요.



— 자연스럽게 매거진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에이전시는 보통 뒤에서 많은 일을 하곤 하는데, 에이전시가 런칭하는 미디어라니. 그 동기와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수정: 우선 한국에 라이브 음악에 관한 데이터나 담론이 없어요. 페스티벌에 다녀온 관객 리뷰만 있고, 라이브 음악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없고, 아카이빙조차 안 되어 있어요. 제임스 마이너(SXSW 뮤직 페스티벌 총괄 디렉터)가 그렇게 한국에 많이 왔는데 제대로 된 인터뷰가 하나 없고 ADOY랑 세이수미가 해외에서 공연을 잘하고 왔다는데 그 성과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죠. 우리도 이 서비스가 비즈니스가 되는 일이란 걸 설명하고 싶은데, 너무 데이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이 매거진을 만드는 것도 회사 설립을 알리고 성과를 선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궁금한 것들을 찾고 아카이빙하고 싶어서예요. 아티스트들의 해외 진출이 어떤 효과나 성과가 있는지, 만일 성과가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활동을 모색하고 확장하려는 아티스트 개개인의 비전이나 미션은 뭔지. 다룰 게 정말 많아요.



— AAA의 독자는 어쩌면 리스너이기도 하지만 씬의 종사자와 아티스트이기도 하네요.


미소: 그들이 1차 타깃이에요. K-POP과 K-DRAMA의 영향이 시너지를 내면서 한국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가고 있고, 또 계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명확하고 가시화된 것들로 드러내 보자는 취지인 거죠. 저희가 만드는 매거진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라이브 시장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고 저런 가능성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누군가가 인지해서 저희랑 같이 협력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향후 2~3년간은 거기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유료 구독 서비스 등 AAA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을까요? 어쨌거나 굉장히 귀한 정보잖아요.


수정: 저의 꿈은 앞으로도 매거진은 다 무료로 오픈하는 거예요. 미용실에 가면 잡지 있는 것처럼 공연장 가면 읽을 수 있고. 저희가 하는 일이 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돈은 거기서(매거진 외의 일에서) 벌고 싶어요.



— 실례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만을 선택해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차가 지나가야 하는데, 나은 길을 찾는 게 아니라 길을 만들기 위해서 돌부터 고르는. (웃음)


수정: 자꾸 다들 비포장도로를 다니면서 '여기 너무 비포장이야'라고 하면서 다니니까.



— 정말 멋진 말씀이라 생각해요.


수정: 잘 돼야 멋있는 거죠. 저 1년 뒤에 다시 인터뷰해 주세요.



빌리 아일리시 인터뷰처럼요? (Same Interview, The Fifth Year | Vanity Fair)


수정: 매년 인터뷰해야지. (웃음)



형님 비즈니스가 아닌,

협업하고 윈윈하는 전략

음악에 기반한 다양한 비즈니스를 펼쳐온 두 사람이 ALPS라는 이름의 회사로 함께 뭉쳤다.

길이 없다면 새로 닦고, 벽이 있다면 허무는 데에 익숙한 ALPS의 김미소 대표와

이수정 이사를 만나 다양한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다.

둘이 의기투합하게 된 이유부터 사명에 담긴 의미, 비전과 미션,

그리고 새로이 런칭하는 매거진 AAA까지.

이들의 치열한 고민의 기록은 곧 신(scene)의 성장과 확장을 위한 가이드북과도 같았다.

Interview, Edit | 키치킴, Photography | 심재

ALPS 김미소, 이수정


글, 인터뷰: 키치킴 @nomoretaxiplz

2013년, 뮤직 에디터로 비지니스에 처음 뛰어든 이래 지금까지 음악에 관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다. 현재는 포크라노스의 팀장으로 디지털 컨텐츠부터 바이닐 제작까지 브랜드의 얼굴에 해당하는 일들을 담당하고 있다. 음악을 소개해서 번 돈으로 다른 사람이 소개한 음악을 사는 데 탕진한다. 늘 허둥대는 탓에 택시 이용이 잦다. 세계 각지에서 탄 택시 후기들을 엮은 <나의 개인택시 탑승기>를 발간할 예정이다. 거짓말이다.

— 안녕하세요. ALPS에 관해 본격적으로 이야기 나누기 전에, 두 분이 각자 걸어온 여정에 관해 질문하고 싶습니다. 국악을 전공하며 비슷한 학업 환경과 비슷한 시기를 거친 것으로 알고 있는데요. 공교롭게 두 분 모두 아카데미 내 국악의 영역에서 꽤 회의를 느낀 것으로 알고 있어요.


미소: 되게 심했어요. 그래서 저는 고등학교 다닐 때부터, 대학만 가면 '악기(연주)는 안 한다'라고 일찍 마음을 먹고 공연 기획을 시작했어요. 레이블에도 잠깐 있었고, 클래식 공연도 기획하고 한창 프리랜서로 활동했는데 울산월드뮤직페스티벌에서 일하게 되면서 많은 경험을 쌓았죠. 다른 장르로 (활동 영역이) 넘어가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던 것 같아요. 그러다 울산에서 APaMM을 만들면서 홍대 신(scene)에 종사하는 사람들을 만나게 됐어요. 거기는 한국적 월드 뮤직을 개발하거나 한국의 인디 뮤직을 세계에 소개해야 하는 미션이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인디 음악에 관심을 갖다 자연스럽게 홍대 친구들을 만나게 된 거죠.


수정: 저는 타악기를 전공했어요. 예고도 나오고 대학도 갔지만, 정체성에 대한 고민이 늘 있었어요. 그래서 20대 때 다 놀기만 한 기억뿐이에요. 힙합 동아리도 하고, 만날 전자 음악 듣고. 그래서 음악을 그만두려고 도망쳤어요. 외국으로 나가서 공부하다 근현대사와 근·현대 음악에 관심을 두게 됐고, 자연스럽게 관심이 대중음악으로 넘어가게 된 거죠. '대중음악 포럼 봄'이나 '대중음악 SOUND'처럼 근·현대 대중음악을 공부할 수 있는 쪽에 몸담다 여기까지 온 거 같아요.



— 그렇다면 두 분이 처음 만나게 된 때는 언제일까요?


미소: 2014년? '대중음악 SOUND'에 글 쓰면서 서로 처음 만나서 APaMM에서 공동 세션도 하고 계속 공연/예술 국제교류랑 관련된 일을 해왔는데 데면데면했죠. 본격적으로 일을 처음 같이 한 게 2017년이니까 얼마 안 됐네요. (웃음)



— 서로 간에 강력한 스파크가 일어난 건 아니네요. (웃음)


수정: 근데 우리 되게 잘 스며든 것 같은데?


미소: 이제 저는 2015년부터 잔다리페스타 일을 했었고, 어쨌든 피스트레인이 잔다리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2018년 피스트레인 때도 함께 일했지만 '빨리 어떻게든 페스티벌을 잘 끝내야 해'라는 미션 때문에 행사 준비하면서도 서로 친하진 않았거든요. 그래도 어쨌든 페스티벌이 잘 끝났으니까, 마지막 날 SCR 분수 무대로 모두가 같이 뛰어들면서 놀았는데 (이수정 이사가) 춤을 너무 잘 추는 거예요. '뭐지, 저 언니?' 약간 이런 느낌이었어요. 그때 같이 놀던 게 서로 마음을 열게 된 계기가 됐었죠.


수정: 춤사위로 많은 사람을 꾀었지만, 김미소를 꼬실 줄은. (웃음)


미소: 그러다 또 이수정 이사가 부산음악창작소 심사하러 간다고 했을 때, 그럼 나도 따라가겠다 해서 1박 2일 같이 여행하면서 부쩍 친해졌죠. 술도 마시고 복국도 먹고 목욕도 하고.


수정: 역시 사람은 목욕을 같이 한 번 해봐야 해요.


미소: 그러면서 많은 일을 같이하고 급속도로 시간을 오래 보내게 됐죠.


수정: 최근엔 남편보다 더 많은 시간을 같이 보낸 것 같은데. (모두 웃음)




(2022년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 이미지 출처 @피스트레인)



— 서로의 춤사위도 확인하고, 함께 여행도 다녀오셨죠. 하지만 창업을 함께 하기로 결심한 이유가 서로 있을 것 같아요. 서로가 인정하는 각자의 탤런트가 있다면요.


미소: 일단 저는 사실 음악을 전공하긴 했지만, 이수정 이사는 음악만 있어도 살 것 같은데 전 그렇진 않거든요. 음악에 관해서도 많이 알고 있고 해외에서 오래 살아서 다른 문화권에 대한 이해와 폭이 저보다 월등하게 훌륭해요. 또 언어적인 측면도 있죠. 영어/스페인어가 능통하다 보니 국제 교류를 비롯한 해외 비즈니스를 할 때 굉장한 탤런트를 갖고 있어요.


수정: 제가 꼽고 싶은 건 뒷심과 뚝심. 확실히 리더 기질이 있어요. '혼자 가면 빨리 갈 수 있지만, 같이 가면 멀리 갈 수 있다'라는 얘길 어디서 들었는데, 동료와 신(scene)이 있어야 저도 그렇고 함께 성장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저에겐 리더 같은 사람이 필요하다고 종종 생각했죠. 저는 계속 프리랜서로 살았거든요. 그래서 뒷심이 부족한 편인데, 김미소 대표는 집중력이 굉장히 뛰어나서 프로젝트를 완주하는 데에 있어서 굉장한 탤런트를 갖고 있어요.



— 언젠간 결국 함께할 운명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수정: 저희는 갑자기 서로의 탤런트를 알아보고 만났다기보다 오랫동안 크고 작은 일을 하면서 호흡을 맞춰보다 지금에 와서야 '우리 같이 뭔가를 해보자'라고 도모해 ALPS를 설립했어요.


미소: 그것도 그렇고 어쩔 수 없는 선택이기도 했어요. 각자의 위치에서 어떤 위기의 순간들을 함께 극복해야만 살 수 있는 구조와 상황들이 있었기 때문에.


수정: 앞으로 저희의 10년을 여기에 배팅했어요. (모두 웃음)


미소: 이 동네엔 아직도 형님 비즈니스가 많고 또래 여성 동료가 진짜 없거든요. 그런데 어쨌든 자라온 환경이나 접했던 문화들이 비슷하니까 서로 이해하고 협업하면서 윈윈할 수 있는 부분들도 크죠.




 
ALPS 뮤직 파트에서는 국내외 뮤지션의
해외 공연을 중개하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컬쳐 파트에서는 음악이나 예술, 문화를
기반으로 한 리서치와 기획이 이뤄진다
 



(좌: 김미소 대표, 우: 이수정 이사)




본격적으로 ALPS에 관한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뮤직 앤 컬처 에이전시라고요. 아무래도 한국에 에이전시 개념의 조직이 흔하진 않다 보니, ALPS가 어떤 회사인지 한 번 소개를 부탁합니다.


미소: 피스트레인을 두 번 개최하며 페스티벌에 좀 더 집중해서 잘해보고 싶은 마음이 컸는데, 코로나가 왔고 축제가 중단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어요.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뭘 할 수 있지?’라고 봤을 때, 다른 것들을 생각하기가 쉽지 않더라고요. 사실 음악 안에서도 유통도 있고, 퍼블리싱도 있고 여러 섹션이 나뉘는데 사실 저희는 공연예술 그리고 라이브 음악 신에서만 활동이 있었거든요.

오프라인 기반으로요.


미소: 네. 그래서 지금 비집고 들어가서 할 수 있는 일도 많지 않았고 이미 경쟁력을 갖추고 잘하고 계신 분들도 많았죠. 우리가 재밌고 즐거워할 수 있는 일이어야 되고, 다른 사람들보다 강점을 갖추고 있는 일들을 비즈니스로 하는 게 맞지 않을까 고민했어요.


저희가 해왔던 것, 그리고 공통으로 관심이 있던 영역들이 라이브 산업, 신과 생태계에 관한 고민 그리고 국제 교류와 해외 진출에 관한 부분이었는데 이것들을 본격적으로 해보자고 다짐했죠. 이게 진짜 실현할 수 있는 일이고 비즈니스가 될 수 있는지 6개월 정도 (기업) 액셀러레이팅을 받았어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우리가 어떤 목표를 갖고 확실한 드라이브를 걸 수 있을지 확신이 들었어요. '되는 비즈니스다'와 같은 확신이라기보다는, ‘비로소 일할 준비가 됐다’ 는 것과 같은 확신이요.


ALPS 뮤직 파트에서는 국내외 뮤지션의 해외 공연을 중개하는 서비스가 진행되고 컬쳐 파트에서는 음악이나 예술, 문화를 기반으로 한 연구/리서치가 이뤄지고 있어요. 단순한 연구라기보다는, 실제 우리가 공부하고 관찰하는 것들이 씬과 시장을 성장하고 나아가는 데에 기반이 될 수 있는 것들의 측면이 크죠. 저희가 생각보다 되게 학구적인 사람들이거든요. (웃음)



— ALPS의 속뜻을 찾아보니, 꽤 거대한 개념의 단어가 모인 조합이더라고요. 어떻게 그 네 단어를 조합하게 되었는지 말씀해주세요.


수정: 제가 조합한 게 아닙니다. (웃음) 알랭 바디우라는 철학자가 있는데요. 그 사람이 말하길, 절대 진리가 아닌 복수의 진리로 가는 네 가지 과정이 바로 이 4개라 했어요. Art, Love, Politics, Science. 이 네 가지를 통해 우리는 진리에 다다를 수 있다는 얘기를 어느 평론집을 읽다 알게 됐어요.



— 당연한 얘기일 수 있지만, 이 네 가지 개념 모두 ALPS의 지향점이라고 생각하여 차용한 것이잖아요.


수정: 그렇죠. Politics도 Science도 저희한테는 굉장히 중요한 개념이에요. 둘 다 산업과 생태계와 연관이 확실히 있다고 생각해서, 이를 기반으로 생성된 담론이 실질적인 변화로 발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어요. 물론 Politics랑 Science만 있으면 너무 딱딱하기 마련인데, 이 안에서 또 커뮤니케이션을 잘하려면 Art와 Love가 있어야 하거든요. (모두 웃음)



— 이해했습니다. 설명을 듣기 전 가장 궁금했던 지점이 바로 두 개념이었는데, 결국 아젠다를 만들고 씬을 더 건강하게 만드는 측면에서의 Politics와 Science였군요. 이어서 질문드립니다. ALPS는 21년 3월에 런칭되었습니다. 비단 두 분뿐만 아니라 이 산업에 종사하는 모두가 힘든 시기였을 텐데요. 그저 울고 있기보다는 빠르게 추진력을 찾는 길을 택했네요.


미소: 울고 있을 수가 없었던 게, 이미 페스티벌을 열기 위해서 뽑아 놓은 스태프들이 있었어요. 그런데 페스티벌을 못 하게 됐다고 스태프들을 나가라고 할 수는 없는 상황이었고, 그때까지만 해도 이렇게 중단과 취소의 상황이 길어질 줄은 몰랐어요. 월세도 내야 하고 스태프들 월급도 줘야 하는데, 피스트레인은 비영리법인이라 일련의 정부 입찰 사업 등에 제약이 있거든요.


돌이켜보면 아주 현실적인 이유였어요. '우리는 뮤직 앤 컬처 콘텐츠 에이전시가 될 거야, 우리는 이런 일을 할 거야'라는 구상보다는 우리가 함께할 수 있는 다른 일을 하면서 조금만 버티고 나면 같이 축제를 할 수 있는 날이 올 거라는 생각이 앞섰죠. 그러므로 속도감 있게 추진할 수밖에 없었죠.


수정: 페스티벌은 기승전결이 있는 사업이라 회사도 기승전결이 존재하는 것처럼 느껴졌죠. 당시만 해도 각자가 개인 사업자로 존재했어요. 개인 명의로 강의도 하고, 연구도 하고 저도 당시엔 '플립드코인뮤직'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서로 후원하며 힘을 모으기 위해 (ALPS로) 모두 합치게 된 거예요.







 
조금 더 다양한 뮤지션들이
다양한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목표 의식
 



라이브나 투어가 결국 수익으로 환산되기까지는 분명 적지 않은 시간이 걸릴 텐데요. 어떤 지점에서 그 가능성과 비전을 찾게 되었을지도 궁금합니다. ALPS는 분명 영리를 위해 존재하는 회사일 테니까요.


미소: 음악 산업 내의 빈익빈 부익부 이슈가 크다고 생각해요. 알고리즘 체계나 미디어를 타는 소수의 아티스트만 독과점하는 구조에서, 페스티벌을 만드는 것도 그렇고 지금 이런 비즈니스를 구상하는 것도 그렇고, 조금 더 다양한 뮤지션들이 다양한 기회를 얻고 성장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목표 의식이 있습니다. 물론 '몇 팀을 대상으로 몇 회 공연한다'는 목표치는 존재하죠. 그 와중에 K-POP 아티스트와 협업하는 등의 지점은 과거엔 전혀 생각하지 못했는데, 이 영역도 가능성이 있겠다고 생각해서 조금씩 들여다보고 있고 수정 이사님께서 계속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수정: 저도 어쨌든 2016년부터 생태계에 속한 내부자로서 한국 아티스트가 어떻게 해외에 진출하는지 그 루트에 직접 몸담기도 했고 여러 사례를 목격했거든요. 옛날에는 우리가 지닌 로스터를 해외 시장에 소개하는 데에 집중했다면, 지금은 그 반대의 전략인 거예요. 해외 페스티벌에서 한국 뮤지션과 한국 시장에 관한 수요들이 저에게 역으로 들어오기 때문에 저희는 그걸 비즈니스로 전환을 시키고자 하는 거죠. 아티스트 베이스가 아닌 클라이언트 베이스로요.



— 한국 음악 시장은 예전부터 '전속'이라는 개념이 너무 강해 꽤 경직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회사에서 아티스트에 관한 360도를 다 다루기 때문에 일정 부분만을 함께 협업하는 데에 부침은 없나요?


미소: 그런데 또 지금은 조금씩 달라지고 있는 것 같아요. 기업가형 인디펜던트 뮤지션들이 등장하고, 에이전시와 매니지먼트 경계에서 생겨난 회사도 하나 둘 생기고 있죠. 거기에 저희는 페스티벌까지 직접 만들고 또 섭외를 중개하고 있다 보니 거기에 강점이 있다고 생각한 거죠.


수정: 어쨌거나 아티스트와 페스티벌 간에 일이 성사되려면 생각보다 커뮤니케이션이 굉장히 중요하고, 각자가 비슷한 이유로 이를 어려워해요. 그런 데에서 저희가 많은 도움을 줄 수 있는 포지션이긴 합니다.



— 해파리의 사례에 관해서도 얘기 나누고 싶어요.


미소: 해파리는 우리의 친구들이기도 하고 ALPS 이전부터 뭔가 같이 해보자고 해서 시작한 케이스죠. SXSW에도 나갔고 미국, 스페인, 대만…. 내년 3월엔 또 스페인에 갈 것 같고요. 이제 본격적으로 해파리하고도 '어디부터 어디까지 해볼 수 있을까'를 다시 얘기해야 하는 상황이에요. 그리고 해파리와 같은 인디펜던트 아티스트도 중요하지만, 저희가 진행하는 일의 범위가 인디부터 메인스트림까지 다양하다는 사례를 보여주는 게 목표예요. K-POP 시장에서 먼저 제안을 보내주기도 하고 먼저 저희가 태핑하는 움직임도 있고요.




(2022년 7월, 해파리 유럽 투어 중 스웨덴의 Clandestino 페스티벌 백스테이지, 이미지 출처 @ALPS)




2023년이 ALPS에게 정말 중요한 해네요. 지금까지 장전한 에너지를 모두 쏟아붓는 해가 될까요?


수정: 본격적으로 일을 벌이고 또 잘하기 위해서 사실, 이 매거진을 만드는 거기도 해요.



— 자연스럽게 매거진 이야기로 넘어가 볼게요. 에이전시는 보통 뒤에서 많은 일을 하곤 하는데, 에이전시가 런칭하는 미디어라니. 그 동기와 배경이 궁금했습니다.


수정: 우선 한국에 라이브 음악에 관한 데이터나 담론이 없어요. 페스티벌에 다녀온 관객 리뷰만 있고, 라이브 음악 시장이 어떻게 돌아가는지에 대한 데이터도 없고, 아카이빙조차 안 되어 있어요. 제임스 마이너(SXSW 뮤직 페스티벌 총괄 디렉터)가 그렇게 한국에 많이 왔는데 제대로 된 인터뷰가 하나 없고 ADOY랑 세이수미가 해외에서 공연을 잘하고 왔다는데 그 성과가 어디에도 남아있지 않죠. 우리도 이 서비스가 비즈니스가 되는 일이란 걸 설명하고 싶은데, 너무 데이터가 없더라고요.


그래서 사실, 이 매거진을 만드는 것도 회사 설립을 알리고 성과를 선언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실제로 우리가 궁금한 것들을 찾고 아카이빙하고 싶어서예요. 아티스트들의 해외 진출이 어떤 효과나 성과가 있는지, 만일 성과가 없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의 활동을 모색하고 확장하려는 아티스트 개개인의 비전이나 미션은 뭔지. 다룰 게 정말 많아요.



— AAA의 독자는 어쩌면 리스너이기도 하지만 씬의 종사자와 아티스트이기도 하네요.


미소: 그들이 1차 타깃이에요. K-POP과 K-DRAMA의 영향이 시너지를 내면서 한국 음악에 더 많은 관심이 가고 있고, 또 계기를 만들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세계적으로) 생겨나고 있는데 그 안에서 저희가 할 수 있는 것들을 좀 더 명확하고 가시화된 것들로 드러내 보자는 취지인 거죠. 저희가 만드는 매거진이 얼마나 유효할지는 모르겠지만, ‘실제 라이브 시장이 이렇게 돌아가고 있고 저런 가능성이 있구나’ 하는 것들을 누군가가 인지해서 저희랑 같이 협력하는 그림을 만들기 위해 향후 2~3년간은 거기에 집중하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다면, 유료 구독 서비스 등 AAA를 기반으로 수익을 창출할 수도 있을까요? 어쨌거나 굉장히 귀한 정보잖아요.


수정: 저의 꿈은 앞으로도 매거진은 다 무료로 오픈하는 거예요. 미용실에 가면 잡지 있는 것처럼 공연장 가면 읽을 수 있고. 저희가 하는 일이 다 잘 됐으면 좋겠네요. 돈은 거기서(매거진 외의 일에서) 벌고 싶어요.



— 실례되는 이야기일 수 있지만, 남들이 가지 않는 길만을 선택해서 가고 있는 것 같아요. 차가 지나가야 하는데, 나은 길을 찾는 게 아니라 길을 만들기 위해서 돌부터 고르는. (웃음)


수정: 자꾸 다들 비포장도로를 다니면서 '여기 너무 비포장이야'라고 하면서 다니니까.



— 정말 멋진 말씀이라 생각해요.


수정: 잘 돼야 멋있는 거죠. 저 1년 뒤에 다시 인터뷰해 주세요.



빌리 아일리시 인터뷰처럼요? (Same Interview, The Fifth Year | Vanity Fair)


수정: 매년 인터뷰해야지. (웃음)



INTRO

ISSUE 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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