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침없이 유연하게,
해외로 뻗어 나가는
힙노시스테라피
좋은 라이브는 장르도, 국적도, 언어도 초월한다.
부평에서, 홍대에서, 리퍼반에서 보았던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이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 미처 알지 못했던 아티스트, 한국어 가사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대 기둥을 타고, 무대 아래로 훌쩍 내려와 모쉬 핏을 만드는 짱유의 폭발적인 퍼포먼스에 넋을 잃었고, 빠르게 질주하는 리듬에 무장해제 됐다.
힙노시스테라피는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늦가을 ‘날 것의 생존(RAW SURVIVAL)’이라는 타이틀의 정규 3집을 발매하고 유럽 13개 도시를 투어 했다. 편견 없는, 도전적인 리스너를 찾아 나선다는 이들의 새로운 앨범과 첫 유럽 투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김미소, Edit | 김미소
HYPNOSIS THERAP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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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티벌의 타겟팅
-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ISSUE5 04.INSIGHT
김미소 miso@alpsinc.kr
㈜알프스의 대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거침없는 직관, 날 것의 생존
— 유럽 투어에 다녀오신 지 일주일 됐나요? 여독은 좀 풀리셨어요?
제이플로우: 투어 막바지에 감기에 걸렸는데 현지에서는 긴장해서인지 아픈지 몰랐어요. 한국 오니까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오랜만에 심하게 아팠네요. 귀가 안 들릴 정도였는데 병원 가서 주사맞고 푹 쉬니 이제 괜찮아졌어요.
— 투어가 너무 힘들었나요? (웃음) 본격적인 투어 이야기 전에 정규 3집 <RAW SURVIVAL> 앨범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라이너노트에서 ‘순도 99%의 광기로 빚어낸 앨범’이라고 소개해요. 저는 앨범을 마침 차 안에서 들었는데 바로 질주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음악을 듣고 있지만,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아주 시원한 느낌을 받았어요.
제이플로우: 이번 앨범은 ‘로우 서바이벌(RAW SURVIVAL)’ 그 단어 자체에 최대한 집중해서 만들었어요. 이성보다 본능, 원초적인 것들이 걸러지지 않은 모습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앨범을 만들면서 딱 떠오른 장면이 있었는데요. 서울처럼 완전히 고도화된 사이버펑크 도시에 원시인 둘이 서 있는 모습이 생각났어요. 원시인이라고 하면 이러한 환경에서도 엄청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집중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았죠. 이런 것들을 음악 사운드로 표현하려고 가장 공을 들였어요. 저희는 한국 음악 신에서 봤을 때 일반적인 포맷이라고 할 수 없고 조금은 특이한 팀이잖아요. 이 색채를 과감히 더 세게 가져가자고 생각했고요.
— 2집까지만 해도 이 음악을 일렉트로닉과 힙합 무엇으로 봐야 하느냐는 전문가들의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번 앨범을 들으며 장르를 이미 초월해 버린 느낌이 들던데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쿨함도 느껴졌고요.
제이플로우: 1,2집은 일렉트로닉 장르라는 기반하에 작업이 많이 이루어졌어요. 전통적인 진행 방식이라든지 들어가야 하는 소스의 선택 같은 것들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춰 작업이 이루어졌죠. 3집은 그런 것들을 거의 배제하고 직관적인 사운드만 담은 거죠.
— 3집에서 그런 시도를 한 이유, 의도가 있나요?
제이플로우: 10대, 20대에 힙합을 하다가 일렉트로닉 기반으로 넘어온 지가 얼마 안 됐잖아요. 일렉트로닉 장르에 대한 리스펙 이기도 했고 저희가 더 배워나가는 과정에 필요한 포인트였어요. 3집에서는 그런 것들을 넘어 장르적인 틀을 더 없애보자고 생각했어요. 그게 또 우리가 가진 매력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조금 더 이렇게 부서진 음악이 된 것 같아요.
— 포커스 트랙이 있나요?
짱유: 블레이즈(BLAZE). 이 곡이 제일 규정 안 되는 사운드였다고 생각해요.
— 블레이즈 트랙은 포틀랜드 출신 전자음악가 콰이어트 바이슨(QUIET BISON)과 함께했어요.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어요?
제이플로우: 콰이어트 바이슨이 인스타그램도 잘 안 하는 친구인데 저희 앨범을 꼭 들어보라고 자기 스토리에 올린 걸 저희가 봤어요. 저희는 이미 알고 있는 뮤지션이었죠. 자연스레 DM을 나누게 됐고 앨범을 같이 작업해 보자고 제안했죠. 제가 초안을 보내고 서로 보태며 자유롭게 작업했어요. 최근에 나온 비디오를 보고 엄청나게 좋아해 줬어요. 일렉트로닉 아티스트가 아니라서 오히려 저희의 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거 같아요.
HYPNOSIS THERAPY - DON’T STOP [Official Music Video]
— 저는 이번 앨범 ‘돈 스톱(DON'T STOP)’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어요. 단출한 화면이 거침없이 툭툭 흘러가더라고요. 짱유, 제이플로우의 비주얼도 돋보였고, 그냥 영상 자체가 서브컬처 덩어리 같았어요.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기획되었나요?
제이플로우: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음악과 영상이 가장 활발하게 업데이트되는 사이트 중 하나가 포크라노스 사이트라고 생각해요. 그 중 딱 눈에 걸린 영상이 있었어요. 색감이랑 구도랑 방식이 너무 재밌었어요. 짱유도 이미 찾아보고 그 감독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나게 됐어요. 저희와 함께한 팀은 ‘러프랩(Rough lab)’ 이라는 신생 집단이에요. 감독, 작가, 촬영감독 등이 함께하는 크루에요. 이들 자체가 서브컬처에 적셔져 있는 친구들이어서 저희가 원하는 바를 잘 이해해 줬어요. 그 친구들이 재밌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저희가 하고 싶기도 했고요.
편견 없는,
도전적 리스너를 찾아서
“해외 활동을 해야겠다는 것은
저희가 힙노시스테라피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해요.
저희가 더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꽤 했는데
이런 도전적인 음악이 사람들한테
저희 생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 이제 본격적으로 유럽 투어 이야기를 해볼까요. 10월 31일부터 11월 16일까지 총 13개 도시에서 13번의 공연이 진행됐어요. 첫 유럽 투어였죠. 이번 투어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제이플로우: 올해 3월에 저희가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이하 사바사)에 참여했어요. 알프스의 이수정 이사가 사바사에 참여하는 프로모터에게 힙노시스 테라피 공연을 피칭했고, 그중 하나인 베를린 기반의 스왐프 부킹(Swampbooking)에서 저희 쇼케이스를 보러 왔어요. 쇼케이스를 본 다음 날 저희에게 바로 같이 일해보고 싶다며 이메일이 왔어요.
저희가 해외 파트너와 같이 일하는 생리도 모르고 어떤 관계로 어떤 일들이 전개될 수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조력자가 필요했고, 저희를 대변해서 해외 파트 소통을 맡아줄 수 있는 역할이 필요했는데, 그게 알프스였죠. 이미 알프스와 무언가를 해보자는 이야기는 오고 갔지만 이번을 계기로 알프스와 본격적으로 합을 맞추게 된 거죠. 이후 스왐프에서 유럽 투어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안했고 알프스와 6개월간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유럽 투어 일정이 정리되었어요.
— 올해 특히 국내·외 쇼케이스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3월 사바사, 9월 리퍼반(Reeperbhan), 9월 뮤콘과 잔다리페스타, 10월 도쿄 코리안 스팟 라이트까지. 전략적으로 쇼케이스를 이용해 해외 활동의 흐름을 타고 유럽 투어까지, 본격적으로 해외 활동을 시작하는 거 같아요. 해외 진출의 동기가 있나요?
짱유: ‘해외를 노리자!’ 해외 활동을 해야겠다는 것은 저희가 힙노시스테라피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해요. 저희가 더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꽤 했는데 이런 도전적인 음악이 사람들한테 저희 생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저희의 꿈은 너무나도 크고 바라는 거는 엄청나게 넓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목표하는 바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당연한 선택이었죠.
—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수용하는 국내 신의 한계가 있으니 애초에 해외를 염두에 둔 거네요.
제이플로우: 초기부터 해외를 포커스하고 트랙을 거의 다 만들었어요. 일렉트로닉 사운드 기반의 음악이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조금 더 어필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짱유가 말한 것처럼 한국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진짜 곤조있게 해서 설득해 돈까지 벌려면 엄청난 시간과 많은 것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또 그게 확실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해외에는 엄청 다양한 음악의 팬층, 깊이가 형성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 음악을 소비하는 데 부담이 없지 않을까. 지구에 인구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 음악을 더 좋아해 줄 사람 없겠냐는 생각도 있어요. 힙노시스 테라피를 하면서 활동 반경을 더 넓게 봤던 거 같아요.
— 첫 투어인데 13개 도시에서 13회 공연을 했어요. 이동도 많고 공연장 컨디션도 다양했던 것 같아요. 가장 인상적인 공연을 소개해 주세요.
제이플로우: 저는 투어 첫날에 했던 포르투갈 무초 플로우 페스티벌(Mucho Flow Festival)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라인업이 엄청 매니악한 아티스트가 많아요. 엄청 서브컬처스럽고. 그런 아티스트를 큐레이션 해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건데 공연장에 사람이 가득 찼어요. 공연 기획자들의 큐레이션 자체를 믿고 즐기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다가왔고, 저희 노래가 나오자마자 엄청나게 잘 놀아서 공연 시작하자마자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어요. 파리 공연도 기억에 남는데, 사람들의 환호성이나 저희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리가 너무 커서 무대에 있는데 모니터가 안 될 정도로 시끄러웠어요. (웃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어서, 신기했어요.
— 파리 공연이 그 스토리에 올라온 공연인가요? 사람들이 쭉 길게 서있던?
짱유: 200석 정도 되는 공연장인데, 매진되었어요. 저희를 앞에서 보려고 일찍 줄을 섰던 거 같아요.
— 짱유님은 어떤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짱유: 저는 마지막 프라하 공연이요. 바이크 예수스(Bike Jesus)라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에요. 이번 투어에서 클럽이 처음이기도 했고, 디제이가 트는 음악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음악이 나왔으면 오타쿠 취급받으며 대우를 못 받는 음악인데, 사람들이 진짜 그 음악에도 편견 없이 미쳐서 잘 놀더라고요. 유럽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조금 간접적으로 체험해 본 거 같아요. 그 클럽에 자주 놀러 오는 사람들이 저희 공연을 보기도 했고, 유럽에서 이동이 자유로우니까 놀러 올 겸 저희 공연을 다시 보러 온 부다페스트, 베를린 팬도 있었어요.
— 투어는 현지에서 팬을 만들고 활동 기반을 만드는 작업이죠. 9월 쇼케이스부터 쭉 해외 활동을 하셨는데, 성과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짱유: 저는 당장 엄청난 큰 성과를 얻기보다 현지 에이전트, 저희가 만났던 프로모터들에게 저희를 각인시키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같이 계속 일을 해도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른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투어의 목표도 그거였고요.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팬들도 만나고 새롭게 생긴 팔로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제이플로우: 유럽에 가서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늘었고, 나라별 청취율 순위도 저희가 공연한 유럽 국가 역순으로 잡히더라고요. 소수 팬이긴 하지만 저희의 공연을 보고 다시 한번 우리 음악을 듣고, 다음 저희의 투어를 기다리는 형태가 만들어진 것 같긴 해요.
ⓒ Loretta Rodrigues(@rodriguesretta)
— 투어를 하다 보면 이동시간이 많아 평소에 못 했던 생각을 하기도 하고, 현지만의 고유한 분위기,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자극받는 거 같아요. 두 분은 어떠셨나요?
짱유: 유럽은 확실히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엄청 많이 느꼈어요. 문화의 수용력이 넓다고 생각되더라고요. 그 아티스트가 누군지 몰라도 페스티벌 디렉터나 공간 기획자를 믿고 열린 마음으로 보러와서 잘 노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이곳에는 서브컬처라는 땅과 집이 있다는 생각이 들며 에너지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어요.
투어 시작했을 때 스케줄표를 보고 과연 이거 할 수 있을까?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너무 쉬운 거예요. 투어 후반에 감기에 걸려 몸이 아픈데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도파민이 돌아서 아픈 줄도 모르고 공연했어요. 사람이 더 많으면 공연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투어가 처음에 걱정했던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가 앞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알고 저희를 테스트해 보기에 좋았다, 이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이플로우: 저는 무대에서 백업을 하면서 관객들을 좀 자세하게 보는 입장이잖아요. 우리 음악이 나왔을 때 관객들이 딱 받아들이는 모습 자체가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한국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춤을 추고 뭔가 반응을 하는 모습이 조금 자리가 덜 잡혔다는 느낌이 항상 들거든요. 무대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어필을 해야 반응이 있는데, 유럽은 그냥 비트만 시작해도 사람들이 다 춤추고 시작하더라고요. 무대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해외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았고, 조금 더 디테일하게 계획해서 유럽 및 해외 시장을 노려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 새롭게 만난 아티스트 친구는 없나요? 백스테이지에서 만나서 서로 작업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더라고요.
제이플로우: 있어요. 아까도 이야기했던 포르투갈 무초 플로우 페스티벌에 참여한 아티스트 였는데요. 베를린의 테크노 아티스트인 알렉스 윌콕스(Alex Wilcox)에요. 저희 다음날 공연을 하는데, 저희 공연을 보러 왔더라고요. 자기 인스타 피드와 스토리에 새로운 음악을 발견했다며 저희를 소개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고, 함께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미 서로의 음악을 주고받으며 발전시키고 있고, 거의 한 곡이 다 만들어졌어요. 베를린 테크노 냄새와 우리가 가진 에너지가 섞이는 작업물이 될 거 같아요.
브뤼셀 피프티 랩(Fifty Lab)에 갔을 때 댄스 디바인(Dance Divine) 이라는 친구가 저희 공연을 봤는데 너무 좋아서 같이 작업해 보고 싶다고 DM이 먼저 왔더라고요. 이후에 그 친구의 작업을 찾아보고 같이 해보면 재밌는 포인트가 있을 거 같아서 교류 중이에요. 협업이 엄청 자연스럽게 일어났어요.
힙노시스테라피의 내일
— 앨범 나오고 바로 유럽 투어를 가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공연할 기회가 없었어요. 다음 주에 CJ 아지트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시죠?
짱유: 유럽 투어 항공료도 CJ 문화재단에서 지원해 주셨고. 이번 공연도 장소 지원을 받아서 11월 30일에 CJ아지트에서 공연합니다. 10월 25일 앨범을 내고 바로 유럽 투어를 떠나버려서 한국에서 뭘 할 수가 없었어요. 투어의 종착지인 느낌으로 서울에서 열게 됐는데 저희에게는 처음 해보는 형식의 공연이에요. 앨범을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쭉 진행해요. 뭔가 음감회 같기도 하고, 음악을 퍼포먼스와 같이 쭉 듣는다면 또 다른 느낌일 거 같아요. 함께 앨범을 즐긴다는 식으로 한 번 놀면 어떨지 생각해요.
제이플로우: 저희와 같이 협업하고 있는 VJ 아티스트가 함께해서 비주얼적인 에너지를 같이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지트 감독님들과 합이 잘 맞아서 조명도 섬세하게 구성해 보려고 하고요.
— 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시겠네요. 올해 저도 힙노시스테라피 공연을 많이 봤는데요. 짱유님이 공연 중간에 무대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독일에서는 무대에서 내려와 센터를 가로지르시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2층 무대로 올라가는 영상도 봤어요. 장르나 언어를 초월한 경험을 선사하는 아티스트 라고 생각해요. 퍼포먼스의 동력은 뭐에요?
짱유: 저는 어느 순간부터 제 직업이 음악가보다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 쪽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저희의 수입원도 음원보다는 공연을 통해서 나오기도 하고요. 공연으로서 뭔가 사람들한테 울림을 주는 게 내가 가진 재능이라고 판단 됐거든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공연을 보겠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일으키고 싶어 온 힘을 기울이는 거 같아요.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더 저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생활에서 감추고 응축된 에너지를 저는 운이 좋게 무대에서 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살풀이 같기도 하고요. 제가 하는 게 랩이고, 힙합이고, 일렉트로닉이니깐 운이 좋게 그게 멋있게 보이는 형태가 된 거죠.
— 올해 남은 스케줄은요? 연말 머쉬룸 파티의 계획은 없나요?
제이플로우: 올해는 지난 9월 라이즈호텔에서 수모클릭(SUMOCLIC)과 했던 파티가 마지막이 될 거 같아요. 저희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택했고 그 장르의 기반되는 컬처가 DJ 문화고 파티 문화잖아요. 정해 놓고 하기보단, 함께 할 수 있는 동네 친구들과 재밌게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어요.
— 공연이랑은 완전히 또 다른 분위기였어요. DJ 셋도 종종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이플로우: 공연으로 주는 에너지는 겉으로 표현하는 에너지에 가까운데요. 저희가 DJ로서 관객한테 주는 에너지는 조금 더 명상적인 부분에 가까워요. 내면적으로 자신과 춤추는 그런 에너지를 주고 있어서 공연과는 많이 다른 거 같아요. DJ 셋도 짱유와 깊게 탐구하면서 연습해요. 유명한 DJ들의 플레이는 사람을 다르게 미치게 하죠. 그런 미친 경험을 저희가 해봐서 그런지 DJ로서의 꿈도 있어요.
— 내년 힙노시스테라피의 주요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이플로우: 5월과 7월에 유럽 투어를 하게 될 거 같아요. 투어 가기 전 4월 정도에 재밌는 음반이 나오면 좋을 거 같아서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 마지막 질문이에요. 힙노시스테라피의 꿈은 뭔가요?
짱유: 서브컬처 아이돌. 저희가 하는 음악으로 아이돌 정도의 돈을 벌고 팬을 가진 엄청난 슈퍼 스타가 되면 좋겠네요. (웃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저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하고 서브컬처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요.
제이플로우: 서브컬처가 부각 되는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주류로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저희가 가진 강점과 장점을 살려서 잘해보고 싶어요. 어떤 취향이 진하게 묻어 있는 음악, 패션,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들을 계속 보여주면 주류가 되기도 하잖아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멋진 것들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믿음으로 계속해 나가는 거죠.
거침없이 유연하게,
해외로 뻗어 나가는
힙노시스테라피
좋은 라이브는 장르도, 국적도, 언어도 초월한다.
부평에서, 홍대에서, 리퍼반에서 보았던 힙노시스테라피의 공연이 그랬다.
익숙하지 않은 장르, 미처 알지 못했던 아티스트, 한국어 가사는 크게 문제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무대 기둥을 타고, 무대 아래로 훌쩍 내려와 모쉬 핏을 만드는
짱유의 폭발적인 퍼포먼스에 넋을 잃었고, 빠르게 질주하는 리듬에 무장해제 됐다.
힙노시스테라피는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늦가을 ‘날 것의 생존(RAW SURVIVAL)’이라는 타이틀의 정규 3집을 발매하고
유럽 13개 도시를 투어 했다.
편견 없는, 도전적인 리스너를 찾아 나선다는
이들의 새로운 앨범과 첫 유럽 투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김미소, Edit | 김미소
HYPNOSIS THERAPY
NEXT
PRE
ISSUE5 04.INSIGHT
페스티벌의 타겟팅
- 어떻게 관객을 사로잡을 수 있을까?
김미소 miso@alpsinc.kr
㈜알프스의 대표,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의 총감독을 맡고 있다.
거침없는 직관, 날 것의 생존
— 유럽 투어에 다녀오신 지 일주일 됐나요? 여독은 좀 풀리셨어요?
제이플로우: 투어 막바지에 감기에 걸렸는데 현지에서는 긴장해서인지 아픈지 몰랐어요. 한국 오니까 긴장이 풀려서 그런지 오랜만에 심하게 아팠네요. 귀가 안 들릴 정도였는데 병원 가서 주사맞고 푹 쉬니 이제 괜찮아졌어요.
— 투어가 너무 힘들었나요? (웃음) 본격적인 투어 이야기 전에 정규 3집 <RAW SURVIVAL> 앨범 이야기를 해보려 해요. 김윤하 대중음악평론가는 라이너노트에서 ‘순도 99%의 광기로 빚어낸 앨범’이라고 소개해요. 저는 앨범을 마침 차 안에서 들었는데 바로 질주하고 싶어지더라고요. 음악을 듣고 있지만, 공연을 보는 것 같은 아주 시원한 느낌을 받았어요.
제이플로우: 이번 앨범은 ‘로우 서바이벌(RAW SURVIVAL)’ 그 단어 자체에 최대한 집중해서 만들었어요. 이성보다 본능, 원초적인 것들이 걸러지지 않은 모습을 최대한 담으려고 노력했어요. 앨범을 만들면서 딱 떠오른 장면이 있었는데요. 서울처럼 완전히 고도화된 사이버펑크 도시에 원시인 둘이 서 있는 모습이 생각났어요. 원시인이라고 하면 이러한 환경에서도 엄청 본능적으로 생존을 위해 집중할 수밖에 없을 거 같았죠. 이런 것들을 음악 사운드로 표현하려고 가장 공을 들였어요. 저희는 한국 음악 신에서 봤을 때 일반적인 포맷이라고 할 수 없고 조금은 특이한 팀이잖아요. 이 색채를 과감히 더 세게 가져가자고 생각했고요.
— 2집까지만 해도 이 음악을 일렉트로닉과 힙합 무엇으로 봐야 하느냐는 전문가들의 논의가 있었다고 들었어요. 저는 이번 앨범을 들으며 장르를 이미 초월해 버린 느낌이 들던데요. 그런 것들을 신경 쓰지 않는 쿨함도 느껴졌고요.
제이플로우: 1,2집은 일렉트로닉 장르라는 기반하에 작업이 많이 이루어졌어요. 전통적인 진행 방식이라든지 들어가야 하는 소스의 선택 같은 것들에 조금 더 포커스를 맞춰 작업이 이루어졌죠. 3집은 그런 것들을 거의 배제하고 직관적인 사운드만 담은 거죠.
— 3집에서 그런 시도를 한 이유, 의도가 있나요?
제이플로우: 10대, 20대에 힙합을 하다가 일렉트로닉 기반으로 넘어온 지가 얼마 안 됐잖아요. 일렉트로닉 장르에 대한 리스펙 이기도 했고 저희가 더 배워나가는 과정에 필요한 포인트였어요. 3집에서는 그런 것들을 넘어 장르적인 틀을 더 없애보자고 생각했어요. 그게 또 우리가 가진 매력이지 않을까? 라고 생각해서 조금 더 이렇게 부서진 음악이 된 것 같아요.
— 포커스 트랙이 있나요?
짱유: 블레이즈(BLAZE). 이 곡이 제일 규정 안 되는 사운드였다고 생각해요.
— 블레이즈 트랙은 포틀랜드 출신 전자음악가 콰이어트 바이슨(QUIET BISON)과 함께했어요. 협업은 어떻게 이루어졌어요?
제이플로우: 콰이어트 바이슨이 인스타그램도 잘 안 하는 친구인데 저희 앨범을 꼭 들어보라고 자기 스토리에 올린 걸 저희가 봤어요. 저희는 이미 알고 있는 뮤지션이었죠. 자연스레 DM을 나누게 됐고 앨범을 같이 작업해 보자고 제안했죠. 제가 초안을 보내고 서로 보태며 자유롭게 작업했어요. 최근에 나온 비디오를 보고 엄청나게 좋아해 줬어요. 일렉트로닉 아티스트가 아니라서 오히려 저희의 방향을 잘 이해하고 있는 거 같아요.
HYPNOSIS THERAPY - DON’T STOP [Official Music Video]
— 저는 이번 앨범 ‘돈 스톱(DON'T STOP)’ 뮤직비디오가 인상적이었어요. 단출한 화면이 거침없이 툭툭 흘러가더라고요. 짱유, 제이플로우의 비주얼도 돋보였고, 그냥 영상 자체가 서브컬처 덩어리 같았어요. 뮤직비디오는 어떻게 기획되었나요?
제이플로우: 지금 한국에서 활동하는 아티스트의 음악과 영상이 가장 활발하게 업데이트되는 사이트 중 하나가 포크라노스 사이트라고 생각해요. 그 중 딱 눈에 걸린 영상이 있었어요. 색감이랑 구도랑 방식이 너무 재밌었어요. 짱유도 이미 찾아보고 그 감독을 이야기하더라고요. 그래서 만나게 됐어요. 저희와 함께한 팀은 ‘러프랩(Rough lab)’ 이라는 신생 집단이에요. 감독, 작가, 촬영감독 등이 함께하는 크루에요. 이들 자체가 서브컬처에 적셔져 있는 친구들이어서 저희가 원하는 바를 잘 이해해 줬어요. 그 친구들이 재밌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들을 저희가 하고 싶기도 했고요.
편견 없는, 도전적 리스너를 찾아서
“해외 활동을 해야겠다는 것은
저희가 힙노시스테라피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해요.
저희가 더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꽤 했는데
이런 도전적인 음악이 사람들한테
저희 생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 이제 본격적으로 유럽 투어 이야기를 해볼까요. 10월 31일부터 11월 16일까지 총 13개 도시에서 13번의 공연이 진행됐어요. 첫 유럽 투어였죠. 이번 투어는 어떻게 이루어졌나요?
제이플로우: 올해 3월에 저희가 사우스바이사우스웨스트(SXSW, 이하 사바사)에 참여했어요. 알프스의 이수정 이사가 사바사에 참여하는 프로모터에게 힙노시스 테라피 공연을 피칭했고, 그중 하나인 베를린 기반의 스왐프 부킹(Swampbooking)에서 저희 쇼케이스를 보러 왔어요. 쇼케이스를 본 다음 날 저희에게 바로 같이 일해보고 싶다며 이메일이 왔어요.
저희가 해외 파트너와 같이 일하는 생리도 모르고 어떤 관계로 어떤 일들이 전개될 수 있는지 잘 모르기 때문에 조력자가 필요했고, 저희를 대변해서 해외 파트 소통을 맡아줄 수 있는 역할이 필요했는데, 그게 알프스였죠. 이미 알프스와 무언가를 해보자는 이야기는 오고 갔지만 이번을 계기로 알프스와 본격적으로 합을 맞추게 된 거죠. 이후 스왐프에서 유럽 투어를 만들어보고 싶다고 제안했고 알프스와 6개월간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유럽 투어 일정이 정리되었어요.
— 올해 특히 국내·외 쇼케이스에도 많이 참여했어요. 3월 사바사, 9월 리퍼반(Reeperbhan), 9월 뮤콘과 잔다리페스타, 10월 도쿄 코리안 스팟 라이트까지. 전략적으로 쇼케이스를 이용해 해외 활동의 흐름을 타고 유럽 투어까지, 본격적으로 해외 활동을 시작하는 거 같아요. 해외 진출의 동기가 있나요?
짱유: ‘해외를 노리자!’ 해외 활동을 해야겠다는 것은 저희가 힙노시스테라피를 만들게 된 이유 중 하나기도 해요. 저희가 더 재미있게 음악을 하고 싶어서 그런 거 같아요. 한국에서 음악 활동을 꽤 했는데 이런 도전적인 음악이 사람들한테 저희 생각대로 받아들여지지 않더라고요. 저희의 꿈은 너무나도 크고 바라는 거는 엄청나게 넓고, 어떻게 하면 우리가 목표하는 바에 도달할 수 있을까?를 고민하다 보니 당연한 선택이었죠.
—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음악을 수용하는 국내 신의 한계가 있으니 애초에 해외를 염두에 둔 거네요.
제이플로우: 초기부터 해외를 포커스하고 트랙을 거의 다 만들었어요. 일렉트로닉 사운드 기반의 음악이 한국보다는 해외에서 조금 더 어필될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짱유가 말한 것처럼 한국에서는 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진짜 곤조있게 해서 설득해 돈까지 벌려면 엄청난 시간과 많은 것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리고 또 그게 확실히 돌아온다는 보장도 없고. 해외에는 엄청 다양한 음악의 팬층, 깊이가 형성돼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우리 음악을 소비하는 데 부담이 없지 않을까. 지구에 인구가 이렇게 많은데 우리 음악을 더 좋아해 줄 사람 없겠냐는 생각도 있어요. 힙노시스 테라피를 하면서 활동 반경을 더 넓게 봤던 거 같아요.
— 첫 투어인데 13개 도시에서 13회 공연을 했어요. 이동도 많고 공연장 컨디션도 다양했던 것 같아요. 가장 인상적인 공연을 소개해 주세요.
제이플로우: 저는 투어 첫날에 했던 포르투갈 무초 플로우 페스티벌(Mucho Flow Festival)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어요. 라인업이 엄청 매니악한 아티스트가 많아요. 엄청 서브컬처스럽고. 그런 아티스트를 큐레이션 해서 페스티벌이 열리는 건데 공연장에 사람이 가득 찼어요. 공연 기획자들의 큐레이션 자체를 믿고 즐기러 오는 사람들의 모습이 크게 다가왔고, 저희 노래가 나오자마자 엄청나게 잘 놀아서 공연 시작하자마자 분위기가 크게 바뀌었어요. 파리 공연도 기억에 남는데, 사람들의 환호성이나 저희 노래를 따라 부르는 소리가 너무 커서 무대에 있는데 모니터가 안 될 정도로 시끄러웠어요. (웃음) 이런 경험은 또 처음이어서, 신기했어요.
— 파리 공연이 그 스토리에 올라온 공연인가요? 사람들이 쭉 길게 서있던?
짱유: 200석 정도 되는 공연장인데, 매진되었어요. 저희를 앞에서 보려고 일찍 줄을 섰던 거 같아요.
— 짱유님은 어떤 공연이 기억에 남아요?
짱유: 저는 마지막 프라하 공연이요. 바이크 예수스(Bike Jesus)라는 언더그라운드 클럽이에요. 이번 투어에서 클럽이 처음이기도 했고, 디제이가 트는 음악이 너무 인상 깊었어요. 우리나라에서 그런 음악이 나왔으면 오타쿠 취급받으며 대우를 못 받는 음악인데, 사람들이 진짜 그 음악에도 편견 없이 미쳐서 잘 놀더라고요. 유럽의 언더그라운드 문화를 조금 간접적으로 체험해 본 거 같아요. 그 클럽에 자주 놀러 오는 사람들이 저희 공연을 보기도 했고, 유럽에서 이동이 자유로우니까 놀러 올 겸 저희 공연을 다시 보러 온 부다페스트, 베를린 팬도 있었어요.
— 투어는 현지에서 팬을 만들고 활동 기반을 만드는 작업이죠. 9월 쇼케이스부터 쭉 해외 활동을 하셨는데, 성과가 뭐라고 생각하세요?
짱유: 저는 당장 엄청난 큰 성과를 얻기보다 현지 에이전트, 저희가 만났던 프로모터들에게 저희를 각인시키는 작업이었다고 생각해요. 같이 계속 일을 해도 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다른 일들을 만들어 나가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투어의 목표도 그거였고요. 그렇게만 생각했는데 막상 가서 팬들도 만나고 새롭게 생긴 팔로워들이 생각보다 많았던 거 같아 기분이 좋습니다.
제이플로우: 유럽에 가서 인스타그램 팔로워도 늘었고, 나라별 청취율 순위도 저희가 공연한 유럽 국가 역순으로 잡히더라고요. 소수 팬이긴 하지만 저희의 공연을 보고 다시 한번 우리 음악을 듣고, 다음 저희의 투어를 기다리는 형태가 만들어진 것 같긴 해요.
ⓒ Loretta Rodrigues(@rodriguesretta)
— 투어를 하다 보면 이동시간이 많아 평소에 못 했던 생각을 하기도 하고, 현지만의 고유한 분위기, 우연히 만나는 사람들을 통해 자극받는 거 같아요. 두 분은 어떠셨나요?
짱유: 유럽은 확실히 문화가 다르다는 것을 엄청 많이 느꼈어요. 문화의 수용력이 넓다고 생각되더라고요. 그 아티스트가 누군지 몰라도 페스티벌 디렉터나 공간 기획자를 믿고 열린 마음으로 보러와서 잘 노는 모습이 너무 보기 좋았어요. 이곳에는 서브컬처라는 땅과 집이 있다는 생각이 들며 에너지와 희망을 얻을 수 있었어요.
투어 시작했을 때 스케줄표를 보고 과연 이거 할 수 있을까? 걱정됐는데 생각보다 너무 쉬운 거예요. 투어 후반에 감기에 걸려 몸이 아픈데도 즐기는 사람들을 보면 도파민이 돌아서 아픈 줄도 모르고 공연했어요. 사람이 더 많으면 공연을 더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했고 투어가 처음에 걱정했던 것만큼 어려운 일이 아니구나 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저희가 앞으로 활동 반경을 넓혀서 어떻게 할 수 있을지를 알고 저희를 테스트해 보기에 좋았다, 이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완료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제이플로우: 저는 무대에서 백업을 하면서 관객들을 좀 자세하게 보는 입장이잖아요. 우리 음악이 나왔을 때 관객들이 딱 받아들이는 모습 자체가 너무 자연스러웠어요. 한국에서는 일렉트로닉 음악에 춤을 추고 뭔가 반응을 하는 모습이 조금 자리가 덜 잡혔다는 느낌이 항상 들거든요. 무대에서 엄청난 에너지로 어필을 해야 반응이 있는데, 유럽은 그냥 비트만 시작해도 사람들이 다 춤추고 시작하더라고요. 무대에서 사람들의 반응을 관찰하면서 우리가 해외로 뻗어 나가고자 하는 방향이 맞았고, 조금 더 디테일하게 계획해서 유럽 및 해외 시장을 노려보고 싶다는 확신이 들었어요.
— 새롭게 만난 아티스트 친구는 없나요? 백스테이지에서 만나서 서로 작업으로 이어지는 일도 있더라고요.
제이플로우: 있어요. 아까도 이야기했던 포르투갈 무초 플로우 페스티벌에 참여한 아티스트 였는데요. 베를린의 테크노 아티스트인 알렉스 윌콕스(Alex Wilcox)에요. 저희 다음날 공연을 하는데, 저희 공연을 보러 왔더라고요. 자기 인스타 피드와 스토리에 새로운 음악을 발견했다며 저희를 소개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친해지게 됐고, 함께 작업을 시작했어요. 이미 서로의 음악을 주고받으며 발전시키고 있고, 거의 한 곡이 다 만들어졌어요. 베를린 테크노 냄새와 우리가 가진 에너지가 섞이는 작업물이 될 거 같아요.
브뤼셀 피프티 랩(Fifty Lab)에 갔을 때 댄스 디바인(Dance Divine) 이라는 친구가 저희 공연을 봤는데 너무 좋아서 같이 작업해 보고 싶다고 DM이 먼저 왔더라고요. 이후에 그 친구의 작업을 찾아보고 같이 해보면 재밌는 포인트가 있을 거 같아서 교류 중이에요. 협업이 엄청 자연스럽게 일어났어요.
힙노시스테라피의 내일
— 앨범 나오고 바로 유럽 투어를 가는 바람에 한국에서는 공연할 기회가 없었어요. 다음 주에 CJ 아지트에서 공연을 준비 중이시죠?
짱유: 유럽 투어 항공료도 CJ 문화재단에서 지원해 주셨고. 이번 공연도 장소 지원을 받아서 11월 30일에 CJ아지트에서 공연합니다. 10월 25일 앨범을 내고 바로 유럽 투어를 떠나버려서 한국에서 뭘 할 수가 없었어요. 투어의 종착지인 느낌으로 서울에서 열게 됐는데 저희에게는 처음 해보는 형식의 공연이에요. 앨범을 1번 트랙부터 마지막 트랙까지 쭉 진행해요. 뭔가 음감회 같기도 하고, 음악을 퍼포먼스와 같이 쭉 듣는다면 또 다른 느낌일 거 같아요. 함께 앨범을 즐긴다는 식으로 한 번 놀면 어떨지 생각해요.
제이플로우: 저희와 같이 협업하고 있는 VJ 아티스트가 함께해서 비주얼적인 에너지를 같이 보여줄 수 있을 거 같아요. 아지트 감독님들과 합이 잘 맞아서 조명도 섬세하게 구성해 보려고 하고요.
— 또 엄청난 에너지를 쏟아내시겠네요. 올해 저도 힙노시스테라피 공연을 많이 봤는데요. 짱유님이 공연 중간에 무대 구조물을 타고 올라가기도 하고, 독일에서는 무대에서 내려와 센터를 가로지르시기도 하고, 일본에서는 2층 무대로 올라가는 영상도 봤어요. 장르나 언어를 초월한 경험을 선사하는 아티스트 라고 생각해요. 퍼포먼스의 동력은 뭐에요?
짱유: 저는 어느 순간부터 제 직업이 음악가보다는 무대에서 퍼포먼스를 하는 사람 쪽에 가깝다고 느꼈어요. 저희의 수입원도 음원보다는 공연을 통해서 나오기도 하고요. 공연으로서 뭔가 사람들한테 울림을 주는 게 내가 가진 재능이라고 판단 됐거든요. 사람들이 저마다의 이유로 공연을 보겠지만, 사람들의 감정을 변화시키고 일으키고 싶어 온 힘을 기울이는 거 같아요. 무대에서 보여주는 모습이 더 저의 실제 모습에 가깝다는 생각이 들어요. 일상생활에서 감추고 응축된 에너지를 저는 운이 좋게 무대에서 풀 수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요. 일종의 살풀이 같기도 하고요. 제가 하는 게 랩이고, 힙합이고, 일렉트로닉이니깐 운이 좋게 그게 멋있게 보이는 형태가 된 거죠.
— 올해 남은 스케줄은요? 연말 머쉬룸 파티의 계획은 없나요?
제이플로우: 올해는 지난 9월 라이즈호텔에서 수모클릭(SUMOCLIC)과 했던 파티가 마지막이 될 거 같아요. 저희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선택했고 그 장르의 기반되는 컬처가 DJ 문화고 파티 문화잖아요. 정해 놓고 하기보단, 함께 할 수 있는 동네 친구들과 재밌게 할 수 있을 때 하고 싶어요.
— 공연이랑은 완전히 또 다른 분위기였어요. DJ 셋도 종종 볼 수 있으면 좋겠어요.
제이플로우: 공연으로 주는 에너지는 겉으로 표현하는 에너지에 가까운데요. 저희가 DJ로서 관객한테 주는 에너지는 조금 더 명상적인 부분에 가까워요. 내면적으로 자신과 춤추는 그런 에너지를 주고 있어서 공연과는 많이 다른 거 같아요. DJ 셋도 짱유와 깊게 탐구하면서 연습해요. 유명한 DJ들의 플레이는 사람을 다르게 미치게 하죠. 그런 미친 경험을 저희가 해봐서 그런지 DJ로서의 꿈도 있어요.
— 내년 힙노시스테라피의 주요 계획은 무엇인가요?
제이플로우: 5월과 7월에 유럽 투어를 하게 될 거 같아요. 투어 가기 전 4월 정도에 재밌는 음반이 나오면 좋을 거 같아서 계획을 세우고 있어요.
— 마지막 질문이에요. 힙노시스테라피의 꿈은 뭔가요?
짱유: 서브컬처 아이돌. 저희가 하는 음악으로 아이돌 정도의 돈을 벌고 팬을 가진 엄청난 슈퍼 스타가 되면 좋겠네요. (웃음) 영향력 있는 사람이 되면 좋겠어요. 저도 누군가의 영향을 받아 음악을 하고 서브컬처를 좋아하게 된 것처럼요.
제이플로우: 서브컬처가 부각 되는 사례를 만들어보고 싶어요. 주류로 제대로 나가본 적이 없는 거 같은데, 저희가 가진 강점과 장점을 살려서 잘해보고 싶어요. 어떤 취향이 진하게 묻어 있는 음악, 패션, 라이프스타일 같은 것들을 계속 보여주면 주류가 되기도 하잖아요. 조금 더 많은 사람이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으면 좋겠다, 더 멋진 것들이 계속되면 좋겠다는 믿음으로 계속해 나가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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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