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톰 요크의 음악이
한국에서 자주 들렸던 이유
처음에는 작은 레코드 샵에 불과했던 영국의 베거스 그룹(Beggars Group)은 지금은 설립 50주년을 앞둔 영국의 대표 레이블이 되었다. 산하에 다섯개의 레이블(XL Recordings, 4AD, Rough Trade Records, Matador Records, Young)을 둔 베거스 그룹은 여전히 그들만의 기준과 방식을 고수하며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아티스트의 앨범을 낸다. 사실 Pixies, Radiohead, Adele, Vampire Weekend 등 그동안 수많은 아티스트의 앨범을 릴리즈한 베거스 그룹이 아시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왜 이제서야, 그리고 어떻게 아시아에 진출하게 되었냐고? 놀랍게도 한 직원이 혼자서 수년 간 회사를 설득한 결과였다. 베거스는 거의 5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전세계 음반 산업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자리잡은 레이블이지만, 적어도 아시아에서 만큼은 훨씬 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현재 한국에서 베거스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라우라를 만나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김해인
베거스 그룹(Beggars Group)이 아시아에 진출하게 된 이야기
NEXT
댄스 음악을 매개로 인터내셔널이
그리는 언더그라운드 씬의 미래
ISSUE4 07.OUTRO
PRE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수퍼스타 DJ·프로듀서 | 페기 구
ISSUE4 05.ARTIST
김해인 haein@alpsinc.kr
(주)알프스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컨텐츠 기획과 홍보, 마케팅을 담당한다.
PART 1.
XL Recordings에서 시작해
Beggars Asia의
첫 직원이 되기까지
—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라우라: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의 인디 레코드 레이블 베거스 그룹의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는 라우라입니다. 베거스 그룹은 4AD, Matador, Rough Trade Records, XL Recordings 그리고 Young 총 5개의 레이블을 산하에 두고 있어요. 저는 이 모든 레이블과 일하면서 연간 발매되는 음반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잘 프로모션 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처음 Beggars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라우라: 처음에는 XL Recordings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10년도 더 된 일이죠. 대학교 때 XL Recordings 소속인 라디오헤드를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라디오헤드와 일을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투어를 맡는 매니지먼트와 음반 발매를 담당하는 레이블, 두 선택지 중에 고민하다가 레이블인 XL Recordings가 집에서 더 가깝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지원을 했어요.
— 그럼 대학교 때 알아본 첫 회사를 지금까지 다니고 계신 거네요. 어린 나이에 주체적으로 일을 구한 방식이 인상 깊어요.
라우라: 채용 공고도 없는데 무작정 메일을 보낸 거라 처음에는 거절당했어요. 그렇게 계속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적당한 시기를 찾아 다시 지원했죠. 홍보팀에서 두달 동안 인턴을 했는데, 제가 라디오헤드에 대한 지식이 상당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회사에서 저를 인상깊게 봐주었어요. 그 이후에 2년 정도 Xl Recordings의 협력 홍보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가 이후에는 아예 입사를 해서 XL의 오너인 리처드 러셀의 비서로도 일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베거스 내에서 누구보다 많은 직무를 거쳤다고 자부합니다.
— Beggars에서 이렇게 오래 일 한 직원도 많이 없을 것 같은데요. 한 회사에서, 그것도 오랜 시간 런던에서만 일하다 아시아 지사로 거처를 옮기게 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일본 지사를 제외하면 아시아 권역에서는 라우라 혼자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라우라: 사실은 옮긴 게 아니라 제가 아시아 시장(일본을 제외한 한국, 홍콩, 대만 및 동남아 총 9개국)에 진출해야 한다고 처음 회사에 제안을 했어요.
런던에서 근무를 할 때 긴 휴가를 얻어 아시아에 여행을 왔는데, 그때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 온갖 좋다는 공연장들은 다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다니다보니 우리 레이블에서 내는 음악들이 잘 들리지 않더라고요. 그때 처음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 그럴만도 하네요. 베거스 그룹이 인디 레이블이라고는 하지만 대형 레이블을 제외하면 씬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레이블인데, 베거스 그룹에서 내는 음악의 존재감이 아직은 미미한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요.
라우라: 저는 당연하게 어릴때부터 내가 듣던 음악을 계속 좋아한 사람이라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근데 충격보다도, 궁금증이 더 컸어요. 한국에서 명동에 처음 갔는데, 거리 어디에서나 음악이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한국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또 한 번, 왜 우리가 내는 음악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까 궁금했어요.
이후에 제가 느낀 것을 정리해 회사에 아시아 시장 진출에 대한 제안을 했고, 이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웃음) 레이블 입장에서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거든요.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잘 커왔으니까요. 직원을 아시아로 보낸다는 것도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고요.
저는 나름대로 단순한 논리로 접근했어요. 아시아에서 인디씬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으니, 내가 아시아로 처음 가보겠다고 어필했어요. 설득에 2년이 걸렸죠.
— 누가 먼저 가라고 보낸 게 아니라 아시아 지사를 만든 개척자였네요. 아시아로 옮기라는 오케이 사인이 났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라우라: 제가 제안한 것들이 실제로 이뤄지니까 좋았죠. 저는 처음부터 한국을 밀긴 했지만 일단 회사의 결정은 홍콩이었어요. 그렇게 비자를 준비하고 출국을 앞두던 와중 팬데믹이 터졌죠.
그래도 준비했으니까 그냥 갔어요. 2년 동안 혼자 홍콩에 살면서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는데요. 그 시기는 그저 베거스 아시아의 유일한 담당자로서 사람들에게 저를 인식시키는 데에 힘썼던 것 같아요. 런던에서 근무하며 아시아 시장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여기 제가 같은 타임존에 풀타임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인식 차이는 크더라고요. 우리와 협력하는 아시아의 배급사, 유통사들이 진짜로 이 사람이 여기서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니까 인식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조용히 혼자 네트워크를 쌓아오다 팬데믹이 끝났을 때쯤 이제는 한국에 옮길 때가 됐다고 생각해 회사에 다시 얘기를 했죠.
— 홍콩에서 혼자 2년을 보내고 한국에 온 지도 1년이 넘었으니 아시아에서 일한지 3년이 조금 넘었네요. 메이저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음반들을 소개하는 인디 레이블 입장에서 현재까지 이 시장에서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라우라: 네트워크 측면에서 성과가 아주 커요. 로컬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각국의 전문가와 만나고 일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프로젝트에 관여를 하고 있어요.
음악적으로도 보면, 우리가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매년 성장중이에요. 원래 우리의 큰 시장이었던 일본과 비교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본은 이미 음악적으로 성숙한 시장이어서, 지금 시점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아시아 권역은 변화가 드라마틱하죠. 열심히 일하면 티가 납니다.
한국과 대만, 동남아 시장은 아주 젊고, 경제적으로도 더 성장하고 있고, 인터넷에 모두가 더 많이 연결되어있어요. 사람들이 다른 나라와 연결되고자 하는 글로벌 마인드도 계속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현상이 우리와 같은 서양의 레이블로서는 좋은 지표이고, 우리의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Beggars Asia 인스타그램. Beggars 가 아시아에 진출한 이후 소속 아티스트의 아시아 공연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시장 안에서도 나라마다 특성이 다 다를텐데, 직접 느끼시는 한국 시장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라우라: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IFPI(국제음반산업협회)의 리포트를 받아보면 한국은 전세계에서 5-6번째로 규모가 큰 시장인데, 그 지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kpop 뿐이죠. 인디뮤직, 또는 외국에서 온 음악은 완전히 다른 얘기인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건, 그동안 사람들이 kpop과 같은 정도로 다른 음악을 듣고 느낄 기회나 연결점이 충분히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과제가 명확한거죠.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 한국에 있는 동안 가시적인 성과나 뿌듯함을 느꼈던 프로젝트가 있나요?
라우라: 한국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했던 King Krule 프로모션이요. 아티스트도 없고, 우리가 특별히 팬들에게 해주는 것도 없이 그냥 발매 전 미리 음악을 듣는 직관적인 리스닝 이벤트였어요. 처음에는 표가 팔릴 지 걱정이 됐고 이게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죠.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와주었고 공간이 꽉 찼어요. 그때부터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봤죠. 옷차림도 쿨하고 대체로 젊었어요.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내가 여기서 제일 쿨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죠(웃음). 무엇보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핸드폰을 하지 않고, 모두가 음악을 집중해 듣는 것을 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때가 (한국에서) 이건 될 거 같다고 느낀 첫번째 순간이었어요. 알프스와 함께 했던 페기 구 팝업 때 사람들이 수백명 이상 줄 선 광경도 대단했고요. The smile 음감회 때도 리스너들의 열정을 또한번 느꼈죠.
King Krule의 네번째 앨범
[Space Heavy] 음감회 현장
— 이런 프로모션을 할 때 그 아티스트가 직접 방문하면 더 특별할 것 같아요.
라우라: 그야 당연하죠. 우리 레이블의 아티스트가 페스티벌이나 단독 공연 등으로 아시아에 와서 공연할 때 출장도 가끔 다니는데요. 그 때가 일하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 있을 동안에는 Black Midi, Romy, Buck Meek, Big thief 등이 내한했는데, 베거스 산하 레이블의 더 많은 아티스트가 한국에 왔으면 좋겠고, 팬들의 직접적인 반응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PART 2.
LABEL &
LIVE MUSIC SCENE
— 라이브 산업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 한국의 매니지먼트는 뮤지션에 대한 360 계약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서, 외국처럼 레이블/매니지먼트/배급/투어 등 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각각의 기능을 하는 회사가 따로 존재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알프스는 홍보와 해외 투어 역량에 대한 전문 분야를 내세워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있는데요. 글로벌 음악 업계를 기준으로 얘기했을 때, 레이블과 라이브 산업은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까요?
라우라: 라이브 공연은 어디에서나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모션이에요. 아직도 서구권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만 공연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그 나라에 가서 직접 공연을 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는 음반 계약만 하는 레이블이고, 한국처럼 아티스트와 360 계약을 하지 않아서 투어 부킹 등에 관여를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항상 로컬 프로모터에게 아티스트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시장 데이터를 공유하는 등 레이블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하려고 해요.
특히 아티스트에게 공연을 많이 장려해요. 앨범을 발매했을 때 아시아 특정 국가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가 나오면 저는 그 아티스트와 투어를 담당하는 매니지먼트, 그리고 로컬 프로모터에게 이 모든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을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결정과 협상에 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아티스트가 잠재력이 있다라는 걸 그 지역의 공연 시장에 알리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레이블에 오래 근무했으니 한 아티스트가 다양한 지역에서 공연하는 걸 많이 봤을 것 같아요. 가장 오래 있었던 영국과 아시아의 공연문화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라우라: 엄청 다르죠. 아시아가 공연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커요. 영국에서는 평소에 그 아티스트의 팬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공연을 가는 문화가 있거든요. 양질의 공연이 매일 도처에 있으니 식당을 찾아 들어가듯이 거리에서 공연 포스터를 보고 ‘궁금하네, 한번 보지 뭐’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생활의 문화로 자리잡은 게 있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번 열광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아티스트가 온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잘 오지 않는 기회라는 걸 훨씬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Peggy Gou 싱글 ‘I Believe In Love Again’ 발매 기념 팝업 현장 ⓒvinpress
PART 3.
FROM LABEL TO ARTIST
— 문화적 차이를 직접 느끼고 계시니 그 또한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레이블이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고 싶은데요. 많은 아티스트가 베거스 그룹의 각 레이블은 어떤 아티스트와 계약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라우라: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비즈니스에 관한 일은 레이블이든 홍보/투어 에이전시든 본인이 정말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본인의 음악과 제작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죠. 많은 아티스트가 우리 레이블에 데모를 보내고 싶다고 문의가 오지만, 우리는 데모를 받지 않아요. 아티스트가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우리가 찾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좋은 음악을 찾아내는 것이 레이블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이니까요. 본인의 창작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면 다른 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공연이나 계약, 홍보 등의 일들은 여러분이 신뢰하는 주변의 업계 사람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이 있네요.
라우라: 베거스와 일하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홍보, 공연 등 어떻게 일이 만들어지는지 세세한 과정을 잘 모르는데요, 전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음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공연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만 확실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잘 찾는 일이 엄청 중요하겠네요. 하지만 자신의 음악이 발견되기까지 현실이 꽤나 불확실하다고 느껴질 것 같아요.
라우라: 그건 당연해요. 이 업계에서 성공을 절대 계획할 수는 없어요. 바이럴이 되는 그 순간을 계획할 수 없다는 거죠. 베거스에서 아델이 처음 터졌을 때 우리가 대단히 계산적인 전략을 펼쳤다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할일을 충실히 하고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폭발적인 반응에 대응을 할 준비가 잘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페기 구의 경우도 삼박자가 맞은 거죠. 우리는 페기의 음악이 잘 프로모션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고, 사람들은 좋아했고, 그러다 그게 글로벌 현상이 된 것이죠. 각자의 역할만이 있을 뿐입니다.
— 좋은 음악을 찾아내는 것이 기본적인 레이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시아 담당자로 계시면서도 새로운 아티스트와 음악들을 찾으려고 하나요? 기존에 계약된 아티스트의 새로운 음반을 아시아에 발매하고 홍보하는 것 외에, 이 지역의 아티스트들에게도 베거스와 계약할 기회가 열려있는지 궁금합니다.
라우라: 우리는 항상 열려있어요.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 지는 중요하지 않죠. 물론 아직은 영국과 미국 출신의 뮤지션이 많지만 카탈로그에 북유럽, 남미, 한국의 아티스트 등 점점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만약 우리 레이블과 계약을 한다면 절대 국내에서만 활동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가진 모든 권역에서 아티스트를 푸시할 거고, 글로벌 캠페인을 전개하게 될거예요. 그러려면 음악이 보편적(universal)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컨셉과 음악 자체가 한 국가 내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공감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하죠. 제가 보기에 최근 아시아에 굉장히 흥미로운 사운드를 많이 만들어내는 뮤지션이 많은 것 같고,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몇몇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진행한 The Smile 앨범 발매 기념 음감회
— 그럼 당분간 한국을 떠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면 될까요.
라우라: 전 오래 있고 싶어요.(웃음) 회사에 호언장담을 하면서 아시아에 오게 되었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 보고싶고요. 저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우리 레이블, 아티스트들이 많이 성장하는 거예요. 이제 국가별로 저를 도와주는 팀을 꾸렸고, 한국에서는 알프스와도 좋은 관계를 만들었고, 여러모로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겼으니 아시아 시장을 잘 키우고 싶어요.
— 베거스에 대한 충성심에 정말 존경심을 표하고 싶어요.
라우라: 저에게는 일하기에 완벽한 환경이에요. 우리 레이블에서 나오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좋다고 알리는 일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껴요.
— 라우라에게서 항상 그런 열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뼛속까지 레이블 사람 같달까요. 사실 요즘에는 아티스트가 스스로 발매까지 다 하는 Bed room label도 흔한 편인데요. 이런 시대에 Beggars가 레이블을 운영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나요?
라우라: 베거스는 주주가 없는 개인 회사에요. 돌아가는 방식이 자본주의적이지 않고 보다 순수한 열정에 기반하죠. 이 모든 것이 그저 재능이 대단한 아티스트를 세상에 잘 소개하는 것에 집중이 되어 있기 때문이고, 돈은 나중에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인터넷으로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시대라, 많은 아티스트가 스스로 많은 걸 하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는 레이블의 역할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앨범을 내는 데 나름의 장인정신을 쏟아부어요. 베거스에서 내는 앨범들의 카탈로그가 어떤 큐레이션으로 비춰질 지 중요하게 생각하죠. 놀랄 수도 있지만 베거스의 다섯개 레이블을 다 합쳐서 매년 40개 이하의 앨범을 내요. 우리의 카탈로그를 선보인다고 하면 앨범의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 베거스가 이렇게 소규모의 앨범 발매 규모를 유지하는 게 오히려 전략처럼 느껴져요.
라우라: 모든 앨범, 모든 싱글 하나하나가 베거스의 큐레이션이고 취향이라고 생각하면 앨범을 많이 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아주 큰 메이저한 레이블이 매년 수백개, 수천개의 앨범을 발매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건 상상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어떻게 나오는 앨범마다 신경을 쓸 수가 있겠어요. 저는 조금 느리더라도 베거스의 정신이 잘 맞고, 이런 방식이 우리가 아티스트들에게 그들이 음악작업에 쏟은 시간에 대한 진심과 정성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도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베거스에서 가장 애정하는 레이블이 있다면?
라우라: 마타도어 레코즈.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사랑합니다. 마타도어는 항상 앨범이 나오기 전에 베거스 그룹 내의 모든 레이블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레이블 사람들이 그 음악을 한자리에서 다 듣게 하는 이벤트를 만들어요. 그런 용기와 포용성을 사랑해요.
— 베거스 그룹이 아시아에서 꼭 유의미한 성과를 내면 좋겠어요. 베거스의 역사에 한 획을 그어주세요.
[부록: Special Playlist for AAA]
1. AAA를 위한
Beggars Catalogue 플레이리스트
2. Laura의 아시아 아티스트 플레이리스트
최근 톰 요크의 음악이
한국에서 자주 들렸던 이유
처음에는 작은 레코드 샵에 불과했던 영국의 베거스 그룹(Beggars Group)은 지금은 설립 50주년을 앞둔 영국의 대표 레이블이 되었다. 산하에 다섯개의 레이블(XL Recordings, 4AD, Rough Trade Records, Matador Records, Young)을 둔 베거스 그룹은 여전히 그들만의 기준과 방식을 고수하며 가내 수공업 방식으로 아티스트의 앨범을 낸다. 사실 Pixies, Radiohead, Adele, Vampire Weekend 등 그동안 수많은 아티스트의 앨범을 릴리즈한 베거스 그룹이 아시아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왜 이제서야, 그리고 어떻게 아시아에 진출하게 되었냐고? 놀랍게도 한 직원이 혼자서 수년 간 회사를 설득한 결과였다. 베거스는 거의 50년이 되는 시간 동안 전세계 음반 산업에서 그만의 방식으로 자리잡은 레이블이지만, 적어도 아시아에서 만큼은 훨씬 더 많은 과제가 남아있다. 현재 한국에서 베거스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로 일하고 있는 라우라를 만나 한국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김해인
베거스 그룹(Beggars Group)이 아시아에 진출하게 된 이야기
NEXT
댄스 음악을 매개로 인터내셔널이
그리는 언더그라운드 씬의 미래
ISSUE4 07.OUTRO
PRE
ISSUE4 05.ARTIST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수퍼스타 DJ·프로듀서 | 페기 구
김해인 haein@alpsinc.kr
(주)알프스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컨텐츠 기획과 홍보, 마케팅을 담당한다.
PART 1.
XL Recordings에서 시작해
Beggars Asia의 첫 직원이 되기까지
— 본인 소개를 부탁드립니다.
라우라: 안녕하세요. 저는 영국의 인디 레코드 레이블 베거스 그룹의 아시아 프로젝트 매니저를 맡고 있는 라우라입니다. 베거스 그룹은 4AD, Matador, Rough Trade Records, XL Recordings 그리고 Young 총 5개의 레이블을 산하에 두고 있어요. 저는 이 모든 레이블과 일하면서 연간 발매되는 음반들이 아시아 시장에서 잘 프로모션 될 수 있도록 관리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 처음 Beggars에서 일하게 된 계기가 궁금해요.
라우라: 처음에는 XL Recordings에서 일을 시작했어요. 10년도 더 된 일이죠. 대학교 때 XL Recordings 소속인 라디오헤드를 너무 좋아해서 어떻게 하면 라디오헤드와 일을 할 수 있을까 진지하게 고민했어요. 투어를 맡는 매니지먼트와 음반 발매를 담당하는 레이블, 두 선택지 중에 고민하다가 레이블인 XL Recordings가 집에서 더 가깝더라고요. 그래서 무작정 지원을 했어요.
— 그럼 대학교 때 알아본 첫 회사를 지금까지 다니고 계신 거네요. 어린 나이에 주체적으로 일을 구한 방식이 인상 깊어요.
라우라: 채용 공고도 없는데 무작정 메일을 보낸 거라 처음에는 거절당했어요. 그렇게 계속 인내심을 갖고 지켜보다가, 적당한 시기를 찾아 다시 지원했죠. 홍보팀에서 두달 동안 인턴을 했는데, 제가 라디오헤드에 대한 지식이 상당해서 그랬는지는 몰라도 회사에서 저를 인상깊게 봐주었어요. 그 이후에 2년 정도 Xl Recordings의 협력 홍보 프리랜서로 일을 하다가 이후에는 아예 입사를 해서 XL의 오너인 리처드 러셀의 비서로도 일하는 등 다양한 일을 했어요. 베거스 내에서 누구보다 많은 직무를 거쳤다고 자부합니다.
— Beggars에서 이렇게 오래 일 한 직원도 많이 없을 것 같은데요. 한 회사에서, 그것도 오랜 시간 런던에서만 일하다 아시아 지사로 거처를 옮기게 된 이야기로 넘어가볼까요. 일본 지사를 제외하면 아시아 권역에서는 라우라 혼자 일하는 것으로 알고 있어요.
라우라: 사실은 옮긴 게 아니라 제가 아시아 시장(일본을 제외한 한국, 홍콩, 대만 및 동남아 총 9개국)에 진출해야 한다고 처음 회사에 제안을 했어요.
런던에서 근무를 할 때 긴 휴가를 얻어 아시아에 여행을 왔는데, 그때 여러 나라의 도시에서 온갖 좋다는 공연장들은 다 찾아다녔어요. 그런데 다니다보니 우리 레이블에서 내는 음악들이 잘 들리지 않더라고요. 그때 처음 문제의식이 생겼어요.
— 그럴만도 하네요. 베거스 그룹이 인디 레이블이라고는 하지만 대형 레이블을 제외하면 씬에서는 가장 영향력 있고 성공했다고 할 수 있는 레이블인데, 베거스 그룹에서 내는 음악의 존재감이 아직은 미미한 세계를 발견한 기분이 어땠을지 짐작이 가요.
라우라: 저는 당연하게 어릴때부터 내가 듣던 음악을 계속 좋아한 사람이라서 충격을 받았던 것 같아요. 근데 충격보다도, 궁금증이 더 컸어요. 한국에서 명동에 처음 갔는데, 거리 어디에서나 음악이 들리는 거예요. 그래서 일단 한국사람들이 음악을 좋아한다는 것을 깨달았죠. 그리고 또 한 번, 왜 우리가 내는 음악들에 대해서는 잘 모를까 궁금했어요.
이후에 제가 느낀 것을 정리해 회사에 아시아 시장 진출에 대한 제안을 했고, 이후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릴 줄은..(웃음) 레이블 입장에서는 한번도 생각하지 못한 일이거든요. 새로운 시장을 적극적으로 개척하지 않아도 그런대로 잘 커왔으니까요. 직원을 아시아로 보낸다는 것도 완전히 새로운 일이었고요.
저는 나름대로 단순한 논리로 접근했어요. 아시아에서 인디씬이 발전할 수 있는 가능성을 봤으니, 내가 아시아로 처음 가보겠다고 어필했어요. 설득에 2년이 걸렸죠.
— 누가 먼저 가라고 보낸 게 아니라 아시아 지사를 만든 개척자였네요. 아시아로 옮기라는 오케이 사인이 났을 때 감회가 남달랐을 것 같아요.
라우라: 제가 제안한 것들이 실제로 이뤄지니까 좋았죠. 저는 처음부터 한국을 밀긴 했지만 일단 회사의 결정은 홍콩이었어요. 그렇게 비자를 준비하고 출국을 앞두던 와중 팬데믹이 터졌죠.
그래도 준비했으니까 그냥 갔어요. 2년 동안 혼자 홍콩에 살면서 거의 사람들을 만나지 못했는데요. 그 시기는 그저 베거스 아시아의 유일한 담당자로서 사람들에게 저를 인식시키는 데에 힘썼던 것 같아요. 런던에서 근무하며 아시아 시장을 담당하고 있다고 말하는 것과, 실제 여기 제가 같은 타임존에 풀타임으로 거주하고 있다고 말했을 때 사람들의 인식 차이는 크더라고요. 우리와 협력하는 아시아의 배급사, 유통사들이 진짜로 이 사람이 여기서 뭔가를 해보려고 한다라는 사실을 인지하니까 인식이 달라졌어요. 그렇게 조용히 혼자 네트워크를 쌓아오다 팬데믹이 끝났을 때쯤 이제는 한국에 옮길 때가 됐다고 생각해 회사에 다시 얘기를 했죠.
— 홍콩에서 혼자 2년을 보내고 한국에 온 지도 1년이 넘었으니 아시아에서 일한지 3년이 조금 넘었네요. 메이저 장르가 아닌 다른 장르의 음반들을 소개하는 인디 레이블 입장에서 현재까지 이 시장에서의 성과를 어떻게 평가하고 있나요?
라우라: 네트워크 측면에서 성과가 아주 커요. 로컬씬에 대해 누구보다 잘 이해하는 각국의 전문가와 만나고 일하면서 점점 더 많은 사람들이 우리 프로젝트에 관여를 하고 있어요.
음악적으로도 보면, 우리가 이 시장에 본격적으로 진출한 이후 매년 성장중이에요. 원래 우리의 큰 시장이었던 일본과 비교를 해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일본은 이미 음악적으로 성숙한 시장이어서, 지금 시점에서 눈에 띄는 성장을 보기는 어려워요. 그런데 지금 제가 맡고 있는 아시아 권역은 변화가 드라마틱하죠. 열심히 일하면 티가 납니다.
한국과 대만, 동남아 시장은 아주 젊고, 경제적으로도 더 성장하고 있고, 인터넷에 모두가 더 많이 연결되어있어요. 사람들이 다른 나라와 연결되고자 하는 글로벌 마인드도 계속 커지고 있는 것 같아요. 그런 현상이 우리와 같은 서양의 레이블로서는 좋은 지표이고, 우리의 아티스트들을 소개하기 좋은 환경이라고 생각해요.
Beggars Asia 인스타그램. Beggars 가 아시아에 진출한 이후
소속 아티스트의 아시아 공연 횟수가 눈에 띄게 늘었다.
— 프로젝트를 맡고 있는 시장 안에서도 나라마다 특성이 다 다를텐데, 직접 느끼시는 한국 시장만의 특징이 있을까요?
라우라: 개인적으로 가장 어려운 시장이라고 생각해요. IFPI(국제음반산업협회)의 리포트를 받아보면 한국은 전세계에서 5-6번째로 규모가 큰 시장인데, 그 지표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kpop 뿐이죠. 인디뮤직, 또는 외국에서 온 음악은 완전히 다른 얘기인 거 같아요. 제 입장에서 상황을 낙관적으로 보려고 하는 건, 그동안 사람들이 kpop과 같은 정도로 다른 음악을 듣고 느낄 기회나 연결점이 충분히 없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적어도 앞으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과제가 명확한거죠. 한국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음악을 아주 좋아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 제가 조금만 더 열심히 하면 사람들이 새로운 음악에 대해서도 마음을 열 수 있지 않을까요?
— 한국에 있는 동안 가시적인 성과나 뿌듯함을 느꼈던 프로젝트가 있나요?
라우라: 한국 온 지 얼마 안됐을 때 했던 King Krule 프로모션이요. 아티스트도 없고, 우리가 특별히 팬들에게 해주는 것도 없이 그냥 발매 전 미리 음악을 듣는 직관적인 리스닝 이벤트였어요. 처음에는 표가 팔릴 지 걱정이 됐고 이게 되는 건지에 대한 의문이 있었죠. 하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이 와주었고 공간이 꽉 찼어요. 그때부터 모든 사람들을 하나하나 봤죠. 옷차림도 쿨하고 대체로 젊었어요. 이 사람들은 대체 누굴까. 내가 여기서 제일 쿨하지 못한 사람이구나 생각했죠(웃음). 무엇보다 이벤트가 진행되는 동안 아무도 핸드폰을 하지 않고, 모두가 음악을 집중해 듣는 것을 보는 게 인상적이었어요. 그때가 (한국에서) 이건 될 거 같다고 느낀 첫번째 순간이었어요. 알프스와 함께 했던 페기 구 팝업 때 사람들이 수백명 이상 줄 선 광경도 대단했고요. The smile 음감회 때도 리스너들의 열정을 또한번 느꼈죠.
King Krule의 네번째 앨범 [Space Heavy] 음감회 현장
— 이런 프로모션을 할 때 그 아티스트가 직접 방문하면 더 특별할 것 같아요.
라우라: 그야 당연하죠. 우리 레이블의 아티스트가 페스티벌이나 단독 공연 등으로 아시아에 와서 공연할 때 출장도 가끔 다니는데요. 그 때가 일하면서 가장 설레는 순간인 것 같아요. 제가 한국에 있을 동안에는 Black Midi, Romy, Buck Meek, Big thief 등이 내한했는데, 베거스 산하 레이블의 더 많은 아티스트가 한국에 왔으면 좋겠고, 팬들의 직접적인 반응도 더 많이 보고 싶어요.
PART 2.
LABEL & LIVE MUSIC SCENE
— 라이브 산업에 대해 이야기해보면 좋을 것 같아요. 아직까지 한국의 매니지먼트는 뮤지션에 대한 360 계약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아서, 외국처럼 레이블/매니지먼트/배급/투어 등 한 아티스트를 중심으로 각각의 기능을 하는 회사가 따로 존재하는 경우가 흔하지는 않은 것 같아요. 알프스는 홍보와 해외 투어 역량에 대한 전문 분야를 내세워 아티스트와 협업하고 있는데요. 글로벌 음악 업계를 기준으로 얘기했을 때, 레이블과 라이브 산업은 어떻게 협업할 수 있을까요?
라우라: 라이브 공연은 어디에서나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프로모션이에요. 아직도 서구권의 많은 아티스트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만 공연하면 된다고 생각하지만, 전세계적으로 성공하고 싶다면 그 나라에 가서 직접 공연을 하지 않고는 어렵다고 생각해요. 물론 우리는 음반 계약만 하는 레이블이고, 한국처럼 아티스트와 360 계약을 하지 않아서 투어 부킹 등에 관여를 하지는 않지만, 우리는 항상 로컬 프로모터에게 아티스트에 대한 인사이트를 제공하고 시장 데이터를 공유하는 등 레이블로서 할 수 있는 역할을 최대한 하려고 해요.
특히 아티스트에게 공연을 많이 장려해요. 앨범을 발매했을 때 아시아 특정 국가에서 주목할 만한 데이터가 나오면 저는 그 아티스트와 투어를 담당하는 매니지먼트, 그리고 로컬 프로모터에게 이 모든 정보를 전달하고 그들을 연결하려고 노력합니다. 결정과 협상에 제가 결정적인 역할을 할 수는 없지만 어떤 아티스트가 잠재력이 있다라는 걸 그 지역의 공연 시장에 알리는 게 저의 역할이라고 생각해요.
— 레이블에 오래 근무했으니 한 아티스트가 다양한 지역에서 공연하는 걸 많이 봤을 것 같아요. 가장 오래 있었던 영국과 아시아의 공연문화가 다르다고 느껴지는 부분이 있을까요?
라우라: 엄청 다르죠. 아시아가 공연에 대한 기대치가 훨씬 커요. 영국에서는 평소에 그 아티스트의 팬이 아니더라도 일상적으로 공연을 가는 문화가 있거든요. 양질의 공연이 매일 도처에 있으니 식당을 찾아 들어가듯이 거리에서 공연 포스터를 보고 ‘궁금하네, 한번 보지 뭐’ 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만큼 생활의 문화로 자리잡은 게 있지만 동시에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매번 열광하지는 않는 것 같아요. 하지만 한국에서는 여전히 사람들이 아티스트가 온다는 것에 감사함을 느끼고, 잘 오지 않는 기회라는 걸 훨씬 크게 느끼는 것 같아요.
Peggy Gou 싱글 ‘I Believe In Love Again’ 발매 기념 팝업 현장 ⓒvinpress
PART 3.
FROM LABEL TO ARTIST
— 문화적 차이를 직접 느끼고 계시니 그 또한 흥미로울 것 같습니다. 레이블이 아티스트를 발견하는 과정에 대해서도 이야기 해보고 싶은데요. 많은 아티스트가 베거스 그룹의 각 레이블은 어떤 아티스트와 계약을 하는지 궁금해할 것 같아요.
라우라: 아티스트에게 가장 중요한 건 음악을 만드는 데에만 집중하는 거예요. 비즈니스에 관한 일은 레이블이든 홍보/투어 에이전시든 본인이 정말 신뢰하는 소수의 사람들에게 맡기면 된다고 생각해요. 그것이 본인의 음악과 제작에 가장 집중할 수 있는 방법이죠. 많은 아티스트가 우리 레이블에 데모를 보내고 싶다고 문의가 오지만, 우리는 데모를 받지 않아요. 아티스트가 정말 좋은 작품을 만들어낸다면 우리가 찾아낼 수밖에 없기 때문이에요. 좋은 음악을 찾아내는 것이 레이블로서 우리가 해야 하는 역할이니까요. 본인의 창작 활동에 집중하고 있다면 다른 건 걱정할 필요가 없는 것 같아요. 공연이나 계약, 홍보 등의 일들은 여러분이 신뢰하는 주변의 업계 사람들에게 맡기면 됩니다.
— 고개가 끄덕여지는 지점이 있네요.
라우라: 베거스와 일하는 대부분의 아티스트들은 홍보, 공연 등 어떻게 일이 만들어지는지 세세한 과정을 잘 모르는데요, 전 그게 맞는 것 같아요. 내가 하는 음악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정확히 알고, 공연을 어떻게 해야하는 지에 대해서만 확실하다면 그걸로 된 거죠.
— 아티스트 입장에서는 신뢰할 만한 사람들을 잘 찾는 일이 엄청 중요하겠네요. 하지만 자신의 음악이 발견되기까지 현실이 꽤나 불확실하다고 느껴질 것 같아요.
라우라: 그건 당연해요. 이 업계에서 성공을 절대 계획할 수는 없어요. 바이럴이 되는 그 순간을 계획할 수 없다는 거죠. 베거스에서 아델이 처음 터졌을 때 우리가 대단히 계산적인 전략을 펼쳤다기 보다는, 우리 모두가 각자의 할일을 충실히 하고 있었고 예상하지 못한 폭발적인 반응에 대응을 할 준비가 잘 되어있었던 것 같아요. 페기 구의 경우도 삼박자가 맞은 거죠. 우리는 페기의 음악이 잘 프로모션 될 수 있게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을 했고, 사람들은 좋아했고, 그러다 그게 글로벌 현상이 된 것이죠. 각자의 역할만이 있을 뿐입니다.
— 좋은 음악을 찾아내는 것이 기본적인 레이블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면, 아시아 담당자로 계시면서도 새로운 아티스트와 음악들을 찾으려고 하나요? 기존에 계약된 아티스트의 새로운 음반을 아시아에 발매하고 홍보하는 것 외에, 이 지역의 아티스트들에게도 베거스와 계약할 기회가 열려있는지 궁금합니다.
라우라: 우리는 항상 열려있어요. 음악이 어디에서 왔는 지는 중요하지 않죠. 물론 아직은 영국과 미국 출신의 뮤지션이 많지만 카탈로그에 북유럽, 남미, 한국의 아티스트 등 점점 국적이 다양해지고 있어요. 만약 우리 레이블과 계약을 한다면 절대 국내에서만 활동할 수는 없어요. 우리가 가진 모든 권역에서 아티스트를 푸시할 거고, 글로벌 캠페인을 전개하게 될거예요. 그러려면 음악이 보편적(universal)이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음악이 만들어지는 언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컨셉과 음악 자체가 한 국가 내에서만이 아닌 전 세계적으로 공감될 수 있는 음악이어야 하죠. 제가 보기에 최근 아시아에 굉장히 흥미로운 사운드를 많이 만들어내는 뮤지션이 많은 것 같고, 현재 관심을 두고 있는 아티스트들이 몇몇 있습니다.
영화관에서 진행한 The Smile 앨범 발매 기념 음감회
— 그럼 당분간 한국을 떠날 계획은 없는 것으로 알면 될까요.
라우라: 전 오래 있고 싶어요.(웃음) 회사에 호언장담을 하면서 아시아에 오게 되었으니 그 결과가 어떻게 결실을 맺는지 보고싶고요. 저의 목표는 아시아에서 우리 레이블, 아티스트들이 많이 성장하는 거예요. 이제 국가별로 저를 도와주는 팀을 꾸렸고, 한국에서는 알프스와도 좋은 관계를 만들었고, 여러모로 주변에 도와주는 사람들이 생겼으니 아시아 시장을 잘 키우고 싶어요.
— 베거스에 대한 충성심에 정말 존경심을 표하고 싶어요.
라우라: 저에게는 일하기에 완벽한 환경이에요. 우리 레이블에서 나오는 아티스트의 음악을 사랑하고, 내가 사랑하는 음악을 다른 사람들에게 좋다고 알리는 일이 진심으로 행복하다고 느껴요.
— 라우라에게서 항상 그런 열정이 느껴지는 것 같아요. 뼛속까지 레이블 사람 같달까요. 사실 요즘에는 아티스트가 스스로 발매까지 다 하는 Bed room label도 흔한 편인데요. 이런 시대에 Beggars가 레이블을 운영하는 특별한 방식이 있나요?
라우라: 베거스는 주주가 없는 개인 회사에요. 돌아가는 방식이 자본주의적이지 않고 보다 순수한 열정에 기반하죠. 이 모든 것이 그저 재능이 대단한 아티스트를 세상에 잘 소개하는 것에 집중이 되어 있기 때문이고, 돈은 나중에 따라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인 것 같아요. 물론 지금은 인터넷으로 모든 걸 배울 수 있는 시대라, 많은 아티스트가 스스로 많은 걸 하기도 해요. 하지만 우리는 레이블의 역할이 확실히 존재한다는 걸 보여주기 위해 앨범을 내는 데 나름의 장인정신을 쏟아부어요. 베거스에서 내는 앨범들의 카탈로그가 어떤 큐레이션으로 비춰질 지 중요하게 생각하죠. 놀랄 수도 있지만 베거스의 다섯개 레이블을 다 합쳐서 매년 40개 이하의 앨범을 내요. 우리의 카탈로그를 선보인다고 하면 앨범의 숫자는 전혀 중요하지 않아요.
— 베거스가 이렇게 소규모의 앨범 발매 규모를 유지하는 게 오히려 전략처럼 느껴져요.
라우라: 모든 앨범, 모든 싱글 하나하나가 베거스의 큐레이션이고 취향이라고 생각하면 앨범을 많이 낼 수가 없어요. 그래서 저는 아주 큰 메이저한 레이블이 매년 수백개, 수천개의 앨범을 발매하는 환경에서 일하는 건 상상하기가 어려워요. 그러면 어떻게 나오는 앨범마다 신경을 쓸 수가 있겠어요. 저는 조금 느리더라도 베거스의 정신이 잘 맞고, 이런 방식이 우리가 아티스트들에게 그들이 음악작업에 쏟은 시간에 대한 진심과 정성을 보여주는 방식이라고도 생각해요.
— 마지막으로 베거스에서 가장 애정하는 레이블이 있다면?
라우라: 마타도어 레코즈. 그들이 일하는 방식을 사랑합니다. 마타도어는 항상 앨범이 나오기 전에 베거스 그룹 내의 모든 레이블 사람들을 다 초대해서, 레이블 사람들이 그 음악을 한자리에서 다 듣게 하는 이벤트를 만들어요. 그런 용기와 포용성을 사랑해요.
— 베거스 그룹이 아시아에서 꼭 유의미한 성과를 내면 좋겠어요. 베거스의 역사에 한 획을 그어주세요.
[부록: Special Playlist for AAA]
1. AAA를 위한 Beggars Catalogue 플레이리스트
2. Laura의 아시아 아티스트 플레이리스트
INSIGHT
ISSUE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