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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수퍼스타 DJ · 프로듀서

Contributor l 하박국 HAVAQQUQ

페기 구(Peggy Gou)

ⓒJongha Par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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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톰 요크의 음악이

한국에서 자주 들렸던 이유

ISSUE4 06.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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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떠돌기에

좋은 음악을 발견하게 되는 땅

ISSUE4 04.INSIGHT

하박국 @havaqquq

세계적인 토크쇼 ‘피식쇼’보다 6년 먼저 캐스퍼 라디오 정통 뮤직토크쇼 ‘하박국의 박국박국해’에서 황소윤을 인터뷰했다. 뭐든 남들 보다 먼저 하는 걸 좋아해, 좋은 음악 남들이 듣기 전 미리 듣고 싶어 10년 전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만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인디 음악가의 생존 친구를 표방하는 뉴스레터 ‘윌슨레터’와 동기 탐구 유튜브 채널 ‘사람들은 왜?’를 만들고 있다.

원고를 쓰고 있는 시점, SNS 피드는 코첼라 밸리 뮤직 앤드 아츠 페스티벌에 출연한 케이팝 그룹의 실력 논란으로 시끄럽다. 이들의 실력을 논하기 위해 그들보다 하루 전, 작년, 재작년 코첼라에 출연한 케이팝 그룹의 무대가 소환된다. 이를 보다 보니 드는 생각. 언제부터 케이팝 그룹이 코첼라에 출연하는 게 당연했지? 올해 코첼라에 한국인은 케이팝 그룹만 있는 게 아니다. 윤미래, 타이거JK 그리고 비비 같은 힙합/R&B 아티스트, 더 로즈 같은 록 밴드가 무대에 섰다. 그리고 오늘 소개할 페기 구도 무대에 올랐다.



지금 페기 구가 코첼라 라인업에 이름을 올리는 건 너무 당연해 보인다. 그는 이미 2022년 코첼라 페스티벌 무대에 멋진 무대를 선보인 바 있다. 그뿐인가. 글래스톤 베리 페스티벌, 후지 록 페스티벌, 프리마베라 사운드 등 전 세계의 쟁쟁한 페스티벌에서 페기 구의 이름을 찾는 건 어렵지 않다. 올해는 대부분 페스티벌에서 헤드라이너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라인업 포스터의 앞자리에서 해외 탑 아티스트와 함께 자리한 그의 이름을 발견하는 건 이제 어색하지 않은 일이 됐다. 당연히 이 모든 일이 처음부터 당연하진 않았다.




페기 구가 헤드라이너 급으로 출연하는 2024 후지 록 페스티벌의 라인업 포스터




인천에서 태어난 페기 구의 음악 생활은 8살에 클래식 피아노를 배우는 걸로 시작됐다. 남들과 다른 비범한 끼를 발견한 부모님은 그를 14살에 영국의 런던 패션 컬리지로 유학보냈다. 대학 생활을 하며 하퍼스 바자 코리아의 런던 통신원으로 일하던 그는 한국 친구의 영향을 받아 레코드를 모으고 디제잉을 배우기 시작한다. 런던의 클럽에서 디제잉을 하던 그는 얼마 후 테크노의 성지 베를린으로 이주해 그곳을 기반으로 자신의 디제이 커리어를 이어 간다. 2013년, 에이블톤 라이브를 익히며 페기 구는 자신의 역할을 디제이에서 프로듀서로 확장한다. 그의 데뷔곡은 2014년 발표한 'Hungboo ㅎㅎㅎ'. 흥부가에서 모티브를 얻어 판소리의 가락을 다운템포에 실은 곡이다. 'Hungboo ㅎㅎㅎ'는 서구 중심의 일렉트로닉 음악 신에서 자신의 뿌리를 탐구하고 재해석해 보여준 흥미로운 결과물이었다. 속한 세계의 보편성과 자신의 뾰족한 정체성을 믹스해 전에 없던 새로운 사운드를 들려주는 페기 구의 음악은 이때부터 주목 받기 시작한다.



이후 그의 커리어는 성공한 아티스트의 모범이라 부를 만 하다. 2016년, <Art of War> EP를 시작으로  거의 매해 쉬지 않고 싱글과 EP 단위의 음반 그리고 믹스 음반을 발표했다. 그동안 함께 한 레이블은 라디오슬레이브(Radioslave)가 설립한 영국의 명망 있는 레키즈(Rekids), 콜드컷(Coldcut)이 설립한 다운템포 기반의 닌자튠 (Ninja Tune) 그리고 라디오헤드(Radiohead), 프로디지(Prodigy), 아델(Adele), The XX와 같은 아티스트의 음반을 제작한 XL 레코딩즈(XL Recordings) 등. 그리고 기존 레이블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한국과 세계의 신선한 아티스트를 서포트하기 위해 만든 구두 레코즈(Gudu Records)도 있다. 그는 'Hungboo ㅎㅎㅎ'에서 보여준 자신만의 스타일을 발전시켜 'It Makes You Forget (Itgehane)', 'Starry Night'과 같은 곡을 히트시켰다. 클래식한 하우스 비트 위에 한국의 옛 가요를 연상하게 하는 리버브 걸린 페기 구의 한국어 노래가 얹혀진 그의 트랙은 하우스 마니아의 많은 사랑을 받았다. 'It Makes You Forget (Itgehane)'는 그의 무대에서 많은 서양인이 한국어로 '잊게 하네'를 떼창하는 풍경을 만들고 영국 AIM 뮤직어워드에서 '올해의 노래'를 수상했다. 'Starry Night'이 수록된 <Moment> 는 2019, 2020년 디스코그스 일렉트로닉 음악 베스트셀러 1위를 차지하기도 했다. 피치포크, 빌보드, 더 가디언의 연말 결산에 그의 이름이 올라왔다. 흔히 농담으로 쓰이는 '포브스 선정'이 그에게는 현실이 됐다. 2019년, 포브스는 페기 구를 아시아에서 영향력 있는 리더 30인에 선정했다. 한국에서도 헤드라이너, 아이콘TV 등의 미디어에 출연하고 LG V50 ThinQ의 광고 모델로도 활약하며 많은 팬을 모았다.




Peggy Gou - (It Goes Like) Nanana 뮤직비디오




디제이로서의 커리어도 나날이 정점을 찍었다. 한국인 최초로 베를린의 전설적인 클럽 베억하인에서 디제이 덱에 섰다. 2017년 북미 투어를 하고 뉴욕 보일러 룸에서 'Troop'을 선보였다. 잭마스터가 몰래 그의 무대에 찾아와 믹스를 감상한 후 자신의 마스터 믹스 쇼에 초대하기도 했다. 1년에 200개가 넘는 스케줄을 소화하며 클럽부터 페스티벌까지 다양한 무대에서 공연한 페기 구는 2019년 디제이라면 누구라도 이름이 오르길 바라는 DJ MAG에 80위로 이름을 올렸다. 이를 시작으로 2023년에는 9위에 올라 해당 차트에서 10위 권에 진입한 최초의 아시안이자 여성 디제이가 됐다. 하우스 DJ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건 덤. 코로나로 무대에 설 수 없을 때도 N서울타워, 월미도 등에서 한국의 아름다운 자연 풍경을 바탕으로 언택트 라이브를 하며 꾸준히 관객을 만났다.



아티스트로 이름을 알리며 페기 구의 패션과 스타일에 관심 갖는 이도 늘었다. 패션 학교를 졸업한 걸 오히려 약점으로 느꼈던 그는 처음에는 다른 테크노 디제이처럼 어두운 옷을 입었다. 하지만 곧 자신의 모습을 찾고 좋아하는 옷을 입기 시작했고 이는 페기 구를 다른 아티스트와 차별되는 요소가 됐다. 그의 음악처럼 클래식에서 크게 어긋나지 않으면서도 오버사이즈와 독특한 컬러감 등 포인트가 분명한 페기 구만의 스타일은 많은 이의 사랑을 받고 추종자를 낳았다. 이는 버질 아블로의 조언을 얻어 그를 차분하게 만드는 동물에서 이름을 딴 패션 브랜드 기린(Kirin)을 만드는 일로 이어졌다. 그의 음악을 사랑하는 이들을 위해 음반 발표와 투어 때 판매하는 페기 굿즈(Peggy Goods)도 매번 빠르게 품절됐다.



정말 반듯한 아티스트의 성공 스토리다. '세상에서 가장 멋진 인생을 사는 사람'이라 소개되는 페기 구에게도 고난이 있을까? 스스로 드러내는 걸 좋아하지 않을 뿐 페기 구에게도 고난의 역사는 있다. 패션 공부를 그만두고 본격적으로 음악을 하기 위해 베를린으로 이사하며 페기 구는 부모님과 '여기에서 돈을 못 벌면 그냥 취직하겠다'라는 조건을 내걸었다. 경주마와 같은 성격을 가진 그는 레코드숍에서 일하며 돈 대신 레코드를 받고, 매일 클럽에 가 맨 앞자리에서 디제이들이 어떻게 음악을 플레이하는지 지켜봤다. 짬을 내 레슨을 받아 음악을 만들고 일하고 싶은 레이블에 이메일을 백 번 넘게 보냈다. 모두가 USB를 들고 다닐 때 바이닐과 CD를 고수하기도 했다. 나이트 라이프 비즈니스를 접해봤다면 이 작은 신에서 천장을 뚫고 성공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 것이다. 페기 구는 이 세계의 약점인 '아시안 여성'을 오히려 당당히 드러내며 자신만의 영역을 만들었다. 영어 대신 한국어로 노래하고, 뮤직비디오에 한국의 전통과 풍경을 출연시키며 당당하게 자신의 정체성을 드러냈다. 페기 구의 스케줄과 발표한 디스코그래피, 그리고 진행하는 여러 사업을 보면 그가 얼마나 열심히 사는 사람인지 모를 수 없을 거다.



DJ MAG 9위에 오른 후 페기 구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남겼다. '인정받는 것은 언제나 좋지만 다른 사람의 의견을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는 마세요. 많은 사람들이 제게 그들이 하라는 대로 안 하면 넌 성공할 수 없을 거야 라고 얘기했죠. 그 말과 의견을 그대로 들었더라면 결코 이 자리에 오지 못했을거에요. 그런 사람들의 말을 듣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에요. 솔직하게 말하면 저는 항상 제 자신의 순위를 매기는 데 더 집중해 왔으니. 그러므로 자기스스로의 말을 더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노력하고 시도를 두려워하지 마세요. 전 스스로에게 집중할 수 있는 사람이 멋지더라고요'.




DJ MAG의 2023 TOP 100 DJs 어워즈에서 9위에 이름을 올린 Peggy Gou




이미 페기 구는 디제이/프로듀서로서 일렉트로닉 음악 신에서 더 성공하는 게 가능한가 싶을 만큼 크게 성공했다. 하지만 그는 스스로의 한계를 정하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이메일을 백 번 보내며 인턴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했던 XL 레코딩즈와 드라마틱한 계약을 맺은 그는 2024년 첫 정규 앨범 <I Hear You>의 발매를 앞두고 있다. 2023년 발매한 리드 싱글 '(It Goes Like) Nanana'는 영국의 싱글차트 14위로 데뷔, 최고 순위 5위까지 올랐다. 발매되기 전부터 그가 일몰을 배경으로 페스티벌에서 이 곡을 연주하는 장면은 틱톡에서 바이럴됐고, 빌보드 글로벌 200에서 33위를 차지하며 전 세계적으로 인기를 끌었다. 정작 페기 구는 틱톡도 글로벌200 차트가 무엇인지도 정확히 몰랐을 때의 일이다. 이 곡의 히트로 BTS와 블랙핑크에 이어 브릿 어워즈 후보에 오르기도 한 페기 구는 침착하게 90년대 섹시 록 아이콘 레니 크라비츠(Lenny Kravitz)와 함께 한 싱글 'I Believe In Love Again', '1+1 =11'을 차례대로 발표하며 6월 발표할 <I Hear You>의 기대를 높이고 있다. 올해 6월, 앨범이 발매된 후엔 얼마나 큰 반향이 있을까. 거듭 말하지만 이 모든 건 처음부터 당연하지 않았다. 페기 구는 자신의 커리어 내내 당연하지 않은 것들을 당연하게 만들었다. 그리고 애초부터 모든 게 당연했다는 듯 여유로운 표정으로 디제이 덱에서 자신만의 스타일로 에너지를 전달한다. 그게 바로 우리가 페기 구를 사랑하는 이유다.



페기 구는 지난 6월 7일, 자신의 첫 정규 앨범 [I HEAR YOU]를 발매했다.




작년, 싱글 I Believe In Love Again 발매 기념으로 한국을 찾았던 Peggy Gou (사진: vinpress)



당연하지 않은 걸 당연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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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ntributor l 하박국 HAVAQQUQ

페기 구(Peggy Go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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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떠돌기에

좋은 음악을 발견하게 되는 땅

하박국 @havaqquq

세계적인 토크쇼 ‘피식쇼’보다 6년 먼저 캐스퍼 라디오 정통 뮤직토크쇼 ‘하박국의 박국박국해’에서 황소윤을 인터뷰했다. 뭐든 남들 보다 먼저 하는 걸 좋아해, 좋은 음악 남들이 듣기 전 미리 듣고 싶어 10년 전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를 만들었고 지금까지 그만두지 못했다. 최근에는 인디 음악가의 생존 친구를 표방하는 뉴스레터 ‘윌슨레터’와 동기 탐구 유튜브 채널 ‘사람들은 왜?’를 만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