음악과 사람으로 가득 찬
우리만의 세상
SUMIN은 인터뷰 내내
자신과 함께하는 동료들을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선배 아티스트,
자신과 늘 호흡을 맞추는 밴드,
뭐든 믿고 맡길 수 있는 감독들,
음악 잘 트는 친구들.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라이브를 묻는 말에서
동료들과의 ‘만남의 장’을 말하며 즐거워하는
SUMIN을 보고 있자니 그가 사는
‘음악과 사람으로 가득 찬 세상’이 절로 떠올랐다.
그곳은 분명 따뜻하고, 왁자지껄하며,
조금 섹시할 것이다.
마치 SUMIN의 음악처럼.
Interview | 김윤하
SU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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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떠돌기에
좋은 음악을 발견하게 되는 땅
ISSUE4 04. INSIGHT
PRE
한국 음악 페스티벌은
다시 성장하고 있는가?
ISSUE4 02. INSIGHT
김윤하 @romanflare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면서 가끔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일보’, ‘국민일보‘, ’시사IN‘에 정기 칼럼을 연재하며, 라디오와 유튜브에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거 다 합니다.
— 지난해 11월 오랜만의 앨범 [시치미]를 발표하고 6개월 여가 지났어요. 만족할만한 활동이었나요?
수민: 이전보다 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동해서 대중 분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간 느낌이었어요. 감사하고 충분히 만족한 활동이었습니다.
— 앨범에서 엄정화 씨 이름을 발견하고 굉장히 반가웠어요. 예전에 수민 씨가 인터뷰에서 엄정화 씨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 걸 본 기억이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수민: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수는 공연할 때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거든요. 정화언니가 그런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왔고, 그 생각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당연히 꿈 같은 순간이었어요.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마음은 그대로에요. 작업이 끝난 후에도 따뜻한 말씀과 격려를 전해주신 덕분에 힘도 많이 얻었어요.
— 혹시 다음에 또 ‘성덕’ 모먼트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아티스트를 초대하고 싶어요?
수민: 제가 감히 언급해도 된다면, 조원선 선배님이요!
—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에 무척 열려 있는 음악가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슬롬, 기린과 함께 앨범을 만들기도 했고, 자이언티와도 자주 호흡을 맞췄죠. 얼핏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해 쉽지 않을 것 같은데도 다양한 형태의 협업에 열려 있는 것처럼 보여요.
수민: 존경하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하면서 여러 모로 배우고 싶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보니 협업과 교류에 열려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 이외에도 BTS나 아이유, 레드벨벳, 청하 같은 다양한 케이팝 아티스트와 작업하기도 했어요. 케이팝 작업은 자기 앨범을 작업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수민: 아무래도 그렇죠. 외부 작업 같은 경우에는 상대 아티스트나 회사측으로부터 시작된 기획들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조금 더 몰입하게 돼요. 저와 상대 아티스트의 색깔을 비등비등하게 녹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수학적으로 접근해 보기도 하고요. 그에 비해 SUMIN 이름으로 준비하는 음악은 이 과정이 없거든요. 그래서 한편으론 수월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실질적인 작업에서는 이게 양날의 검이더라고요. 케이팝 작업을 포함해서 타 아티스트나 타 프로듀서, 타 회사에서 리드하는 프로젝트는 기한이나 방향에 있어 명확한 기준이 있는 편이라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풀려나갈 때가 있거든요. 반면에 개인작업은 제가 스스로 시작하고, 스스로 멈추고, 스스로 정답을 내려야 하다 보니까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런 부분이 대표적인 차이죠.
— 요즘 국내 음악 얘기를 하다 보면 점차 벌어지고 있는 케이팝과 비-케이팝 생태계 격차 때문에 서로 공존하기 어려울 거라고 보는 담론도 존재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왜 안돼?’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수민 씨가 딱 그 중간계에 놓인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어요. 모 인터뷰에서 그런 ‘중간계’에 있는 게 꽤 즐겁다는 언급을 한 적도 있고요.
수민: 요즘 제가 느끼는 ‘케이팝’은 ‘포괄적임' 그 자체에요. 케이팝 편곡을 훑어보면 펑크, 락, 알앤비, 소울, 하우스, 덥 등 수많은 장르 음악적 요소들이 서로 섞이고 또 섞여요. 전 이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편이라, 아마 당분간 케이팝의 그런 ‘장르 변형’과 ‘복각형태’를 재미있게 공부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케이팝 특유의 표현 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 앨범을 내고 여러 채널을 통해 라이브를 선보였어요. 보컬리스트로서 스튜디오 레코딩과 라이브 가운데 어떤 작업을 더 선호하는지 궁금한데요.
수민: 둘 다 너무 즐거워요! 레코딩은 연필로 글을 써내려 가는 느낌이고, 라이브는 쓰고 싶은 내용을 소리 내 말하는 느낌이거든요. 즉 같은 노래여도 두 작업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 거죠. 스튜디오 레코딩 같은 경우는 보통 콘덴서 마이크로 녹음하거든요. 덕분에 정말 사소한 소리까지 녹음될 수 있어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음정, 박자, 가사가 입에 붙을 때 나오는 뉘앙스라던가, 입 안이 건조할 때 나는 쩝 소리 같은 것들도요. 무엇보다 나중에 편집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약간의 안도감이 있어요. 그래서 쓰고 지울 수 있게 연필로 글을 써내려 간다는 비유가 떠오른 것 같아요.
반면 라이브 같은 경우에는 보통 백그라운드 보컬 트랙이 포함된 MR 위에 노래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정제된 음원 보다는 좀 더 과감한 표현을 하면서 메시지나 감정, 에너지 같은 것을 더 강하게 전달할 수 있게 집중하는 것 같아요. 현장감이 매력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있어서는 모두 너무 너무 즐거운 일이에요.
— 최근 온라인 라이브도 꽤 많이 촬영했어요. 채널마다 독특한 영상미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혹시 기억에 남는 촬영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수민: ‘뮤즈스(MUZES)’라는 라이브 퍼포먼스 비디오 제작 팀과 함께한 EP [시치미] 수록곡 ‘기분 좋아지는 노래’ 라이브 클립이 기억에 남아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곽진석 촬영 감독님, 김종빈 연출 감독님과 ‘프리마베라 프로 2021’ 이후로 라이브 콘텐츠 작업을 오랜만에 함께 했거든요. 파주에 사는 종빈 감독님 집 거실에 모여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두 분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 주셨어요. 전 사실 이번엔 그 분들 리드에 따라가기만 했어요. 연출적으로 제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분들이거든요.
영상을 보시면 제가 거의 3m 정도 높이 사다리 위에 올라가 앉아있어요. 사다리 길이에 맞춰 제작된 긴 드레스를 입었고, 촬영도 원 테이크였죠.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ENTP인 제가 드릉드릉하기에 너무 좋은 맛있는 메뉴들이 놓인 진수성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 촬영장 분위기도 너무 즐거웠어요. 촬영이 원 테이크에 끝나야 하다 보니까 솔직히 매 촬영마다 부담 아닌 부담이 있었는데요, 스태프 분들이 계속해서 제 사기를 끌어 올려주려고 노력하셨어요. 완성된 영상의 말미 부분에 어딘가 건축적이면서도 파인 아트적 요소가 들어간 부분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개인적으로 [시치미] 활동 중에서 제일 괴짜스럽고 멋진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공적/사적인 부분 모두에서 저에게 귀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계신 진석 촬영 감독님과 종빈 연출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SUMIN - 기분 좋아지는 노래(KIKI) (LIVE)
— 믿을 수 있는 동료만큼 귀한 건 없죠. 오프라인 공연 가운데에는 역시 일본 블루 노트 플레이스(Blue Note Place)에서 열렸던 라이브가 제일 큰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수민: 작년 여름 일정 차 저와 함께 일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SOYO와 일본에 방문했어요. 당시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일본의 레전드 DJ이자 프로듀서인 부다멍크(BudaMunk)님 공연을 보러 갔어요. 거기가 블루 노트 플레이스(Blue Note Place)였어요. 블루 노트 도쿄(Blue Note Tokyo)의 근사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살짝 캐주얼한 콘셉트가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음향 컨디션에 정말 반할 수 밖에 없겠더라고요. 그 공간에 큰 매력을 느껴서, 저와 일본 공식일정마다 함께 일하고 있는 일본의 DJ이자 프로듀서, 아티스트, 프로모터인 YonYon과 논의해서 당시 준비하고 있던 앨범 [시치미] 활동을 연결해 보자고 했죠.
공연을 준비하면서는 공연을 함께한 베이시스트 Shin Sakaino의 연주와 밴드 마스터로서의 태도에 정말 많이 반했어요. 주위 동료들과도 접점이 있다 보니 전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들은 아티스트였는데, 그와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큰 영광이었어요. Shin만이 전개해나갈 수 있는 베이스 톤과 그루브가 제 음악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데 있어 엄청난 힘이 되었어요. 덕분에 연주하는 내내 너무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 블루노트 측에서 공개한 공연실황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수민의 음악은 전자음악과 R&B, 중첩된 코러스로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타입이니만큼 라이브로 구현하기 쉽지 않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요, 그런 편견을 훌륭하게 깨주는 공연이더라고요.
수민: 말씀하신 것처럼 수민 음악의 프로덕션 특징 중 하나가 밀도 있는 백그라운드 보컬 편집방식과 구현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블루 노트 플레이스 공연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장소의 고유성을 생각하면 ‘재즈’라는 장르의 특징과 정서를 절대적으로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밀도 있는 백그라운드 보컬은 완전히 배제하자고 마음 먹었죠. 그래야 그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때와 장소 상관없이 제 음악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 장소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공연장을 찾은 분들에게 조금 더 섬세하게 배려하는 자세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비운 만큼 관객들이 다가오는 것도 음악으로 나누는 교류의 매력이니까요.
이런 생각을 키워 나가는 데 DJ셋을 제외한 공연에서 늘 함께하고 있는 밴드 Noah’s Ark의 도움이 컸어요. 밴드와 함께 하는 공연에서는 전체적인 그루브 변형에 그 때 그 때 집중하는 편이거든요. 사실 전 연주자 분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제일 좋아해요. 제 음악이 악기나 백그라운드 보컬 소스를 노트북으로 틀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아서 실제 연주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편이거든요. 제가 드러머라면 음악을 연주하는 내내 메트로놈 소리가 지겹도록 나오는 인이어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거에요. (웃음) 더구나 제가 밴드 라이브에서 레이 백이 심한 편이라 고충이 많을 텐데도, Noah’s Ark 멤버들 모두가 이런 부분을 다 이해하고 즐거워해주는 것 같아 항상 고마운 마음이에요. 이 자리를 빌어서, 특히 드러머 주영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하트)
— 밴드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네요. 그럼 여기에서 수민 밴드만의 ‘훌륭함’을 마음껏 자랑해 볼까요? (웃음)
수민: 그래도 될까요? (웃음) 저와 함께하는 밴드 Noah’s Ark는 드럼 서주영, 베이스 박종우, 키보드 김동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감히 소개를 해도 된다면 얼터너티브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Jazz, Funk, Soul 등 다양한 장르를 전개해나가는 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와 멤버들은 모두 알고 지낸 지 굉장히 오래된 사이에요. 멤버들 모두 수 많은 아티스트들과 레코딩, 공연세션으로서의 경험이 많아서 일정 관리부터 소리를 다루는 태도, 프로페셔널한 연주력까지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말 바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제 공연에 항상 함께 해주고 음악적인 면도 같이 고민해줘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부담을 주고 싶진 않지만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용기 내서 한 번 말해보고 싶은데요. 저는 밴드 Noah’s Ark만이 구현할 수 있는 사운드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각자 너무 좋은 소리를 만들고 다루는 사람들이라, 앞으로 이 팀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 수민 씨의 뜨거운 마음이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혹시 데뷔 후 지금까지의 라이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언제였나요?
수민: 2018년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제 정규 1집 [Your Home] 발매 단독콘서트에요. 제 노트북이 고장 나서 공연 인트로도 못하고 전 멤버가 무대에 올라간 채로 첫 소리를 내기까지 9분이 걸렸거든요. 너무 큰 사건이어서,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거의 발악하면서 공연에 몰입하려고 애썼고,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어요.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정규 1집 콘서트 사진
— 저까지 심장이 철렁하네요. 수민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꿈꾸는 라이브 무대도 있을까요.
수민: 요즘엔 중규모로 열리는 옴니버스 식 기획공연이 아예 사라진 것 같아요. 저만 그렇게 느끼나 했는데 요즘 제 주변 동료들도 종종 얘기하면서 아쉬워하더라고요. 비슷한 영역에서 얽히고 설키는 아티스트 4~5 팀 정도를 모아서 적당한 크기 공연장에서 각 팀 별로 재미있는 무대를 선보이는 공연이 그리워요. 공연을 계기로 서로 왕래도 할 수 있잖아요. ‘만남의 장’을 만드는 거죠!
— ‘만남이 장’이라니 어쩐지 귀엽네요. (웃음) 특별히 라이브를 좋아하는 음악가도 있나요?
수민: 너무 많은데요! Knower, Louis Cole, Erykah Badu, Kirk Franklin, 빛과 소금, Fourplay, Boz Scaggs, Devin Morrison, TOTO의 라이브를 좋아해요. MTV Unplugged 시리즈도 아티스트와 상관 없이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 최근 이태원 등지에서 종종 DJ로서도 활약하고 있어요. 디제잉도 즐기는 편인가요? DJ 수민이 생각하는 나만의 킬링 트랙도 궁금합니다.
수민: 우선 먼저 고백하자면, 사실 주변에 360 sounds 오빠들을 포함해서 음악 잘 트는 DJ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귀엽게 이벤트 성으로 한 번 틀어본 게 일이 커져서 요즘 개인적으로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덕분에 요즘엔 디제잉 전에 긴장을 너무 많이 해요. 최근에도 슬롬과 같이 음악 틀 일이 있었는데, 예전에 슬롬이 디제잉 전에 왜 그렇게 화장실을 들락거렸는지 알겠더라고요. (웃음) 서두가 길었는데요, 요즘 DJ 수민의 킬링 트랙은 Bootsy Collins의 ‘All Star Funk (feat.Can 7, Lady Miss Kier)입니다!
— 수민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엇보다 음악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해요. 음악 창작 작업을 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고요. 그렇게 음악을 ‘가지고 노는’ 재주 가운데에서 특유의 ‘말맛’이 살아 있는 수민만의 가사와 단어 선택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보통 영감은 어디에서 어떻게 받는 편인가요.
수민: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 쓸 법한 단어나 소리에 집착을 하는 편이에요. '곤란한 노래'의 '너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애' 라는 가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제가 평소에 '곤란하다'는 표현을 긍정과 부정 두 상황 모두에서 쓰는 편이거든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야, 이 음식 진짜 너무 곤란한 듯'이라고 말하거나, 음악을 듣다가 훌륭한 드럼 필 인을 들었을 때 '방금 필 인 너무 곤란하다' 같은 거죠. 이렇게 가져온 것들을 레코딩 과정에서 쿼크 단위로 쪼개서 뉘앙스를 계속해서 만들어요. 마음에 들 때까지 무한대로, 제가 본능적으로 끌릴 때까지요. 그렇게 작업하다 무의식이건 의도적이던 마이크를 통해서 제가 찾던 특정한 소리가 탁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 소리를 기준으로 두고 이제 거기에 제 귀를 맞추면서 몸과 머리를 거기에 익숙하게 만들어요. 라이브도 고려하면서 점점 다듬어 나가는 거죠.
— 굉장히 동물적이면서도 프로페셔널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그렇게 태어난 가사 중에 ‘내가 생각해도 이 가사는 정말 잘 썼다’ 싶은 수민만의 펀치 라인이 있을까요.
수민: 최근에는 [시치미]의 1번 트랙 '늦은 아침' 후렴이요! '언제 다 치울까 / 언제 다 버릴까 / 괜찮냐 물어보는 친구들이 짜증나서'라는 파트인데요, 사실 이렇게 텍스트로 쓰는 것 보다는 뉘앙스와 감정표현을 다 같이 포함해서 음악으로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후렴까지 빌드업 되는 가사 내용도 살펴봐 주시고요.
— 좋습니다. 음악으로 다시 한 번 꼭 들어볼게요. 더불어 ‘사랑’에 대한 묘사도 수민의 음악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성애에 대한 여성의 미묘한 감정을 이렇게 섬세하고 위트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건 한국에 수민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해요.
수민: 사랑에 대한 제 생각이 시적 표현과 함께 드러나는 부분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해요. 개인적으로 [시치미]에 수록된 ‘눈치’와 ’기분 좋아지는 노래’, 슬롬과 함께 만든 앨범 [MINISERIES] 수록곡 ‘맞닿음’과 ‘곤란한 노래’, ‘일단은’ 같은 곡에서 그런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지 않나 싶어요. 이외에도 저의 패기와 아집, 고집투성이로 만들어진 정규 1집 [Your Home]에서도 한 곡 추천하고 싶은데요, ‘너네 집 (feat.Xin Seha)’을 꼭 한 번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독립적으로 활동하다 레이블에 소속된 적도 있고, 지금은 다시 독립해 활동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최근 이 부분에 있어 고민을 가진 아티스트도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직접 몸으로 겪어본 수민 씨의 입장에서 동료 음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이 있을까요.
수민: 제가 조언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얘기는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사 소속으로 활동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실무부분을 담당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음악 작업에 확실히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여기에 회사에 함께 소속된 아티스트들과의 유대감이나 연대감도 무시할 수 없겠고요. 음악 활동 내외부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여러 사람과 함께 호흡을 맞춰 나가는 과정,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 그에 따른 성취감 같은 것들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시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라면 앞서 말씀 드린 부분을 전부 스스로 해내야 하겠죠. 그렇다 보면 음악 작업에만 몰입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쉽지 않고, 그래서 여러 방면에 있어서 심신이 고단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음악으로 인해 만들어 지는 모든 과정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 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얻게 되는 것들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인 음악 생태계를 파악할 수도 있고, 오히려 음악 밖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아티스트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삶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뀔 수도 있어요. 뭐든 직접 경험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삶을 갈아 넣은 진지한 대답 감사합니다. (웃음) 인터뷰를 읽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수민: 저는 가끔 고집스럽기도, 바보 같기도 한 사람인데요. 그 가끔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매일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해요. 제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든 느끼고 소비하고 피드백 해주시는 모든 행위들이 저에게는 너무 값진 순간이에요. 2024년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시에 제일 어려워하는 음악을 제 방식대로 열심히 풀어나가 좀 더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 뵙고 싶어요. 끝으로, 지금까지 소소한 저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정제된 글로 잘 정리해주신 김윤하 평론가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우리 모두 어딘가에서 음악으로 꼭 만나요!
음악과 사람으로 가득 찬
우리만의 세상
SUMIN은 인터뷰 내내 자신과 함께하는 동료들을 말했다.
어린 시절부터 동경하던 선배 아티스트, 자신과 늘 호흡을 맞추는 밴드,
뭐든 믿고 맡길 수 있는 감독들, 음악 잘 트는 친구들.
자신이 꿈꾸는 이상적인 라이브를 묻는 말에서 동료들과의 ‘만남의 장’을 말하며 즐거워하는
SUMIN을 보고 있자니 그가 사는 ‘음악과 사람으로 가득 찬 세상’이 절로 떠올랐다.
그곳은 분명 따뜻하고, 왁자지껄하며, 조금 섹시할 것이다.
마치 SUMIN의 음악처럼.
Interview | 김윤하
SUMI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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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을 잃고 떠돌기에
좋은 음악을 발견하게 되는 땅
ISSUE4 04.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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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4 02. INSIGHT
한국 음악 페스티벌은
다시 성장하고 있는가?
김윤하 @romanflare
대중음악평론가.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 K팝에서 인디까지 다양한 음악에 관해 쓰고 이야기한다. 다양한 온오프라인 매체에 글을 기고하거나 출연하면서 가끔 작가 겸 기획자, 음악 콘텐츠 프로듀서로 일하기도 한다. 현재 ‘한국일보’, ‘국민일보‘, ’시사IN‘에 정기 칼럼을 연재하며, 라디오와 유튜브에서도 활동 중이다. 한마디로 음악 좋아하고요, 시키는 거 다 합니다.
— 지난해 11월 오랜만의 앨범 [시치미]를 발표하고 6개월 여가 지났어요. 만족할만한 활동이었나요?
수민: 이전보다 더 다양한 매체를 통해 활동해서 대중 분들에게 한 발자국 더 다가간 느낌이었어요. 감사하고 충분히 만족한 활동이었습니다.
— 앨범에서 엄정화 씨 이름을 발견하고 굉장히 반가웠어요. 예전에 수민 씨가 인터뷰에서 엄정화 씨를 무척 좋아한다고 말한 걸 본 기억이 있거든요. 어릴 때부터 동경하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는 건 어떤 기분인가요?
수민: 제가 생각하는 최고의 가수는 공연할 때 표현력이 뛰어난 사람이거든요. 정화언니가 그런 사람이라고 늘 생각해왔고, 그 생각은 한 번도 변한 적이 없어요. 그래서 저에게는 당연히 꿈 같은 순간이었어요. 지금 다시 떠올려 봐도 마음은 그대로에요. 작업이 끝난 후에도 따뜻한 말씀과 격려를 전해주신 덕분에 힘도 많이 얻었어요.
— 혹시 다음에 또 ‘성덕’ 모먼트를 만들 수 있다면 어떤 아티스트를 초대하고 싶어요?
수민: 제가 감히 언급해도 된다면, 조원선 선배님이요!
— 다른 아티스트와의 협업에 무척 열려 있는 음악가라는 생각을 자주 해요. 슬롬, 기린과 함께 앨범을 만들기도 했고, 자이언티와도 자주 호흡을 맞췄죠. 얼핏 자기만의 세계가 뚜렷해 쉽지 않을 것 같은데도 다양한 형태의 협업에 열려 있는 것처럼 보여요.
수민: 존경하는 사람들을 더 가까이에서 보고 싶은 마음이 제일 큰 것 같아요. 같이 작업하면서 여러 모로 배우고 싶기도 하고요. 기본적으로 그런 마음을 갖고 있다 보니 협업과 교류에 열려 있을 수밖에 없는 것 같아요.
— 이외에도 BTS나 아이유, 레드벨벳, 청하 같은 다양한 케이팝 아티스트와 작업하기도 했어요. 케이팝 작업은 자기 앨범을 작업하는 것과는 확실히 다르지 않을까 싶은데요.
수민: 아무래도 그렇죠. 외부 작업 같은 경우에는 상대 아티스트나 회사측으로부터 시작된 기획들이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상대방이 원하는 것에 조금 더 몰입하게 돼요. 저와 상대 아티스트의 색깔을 비등비등하게 녹일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수학적으로 접근해 보기도 하고요. 그에 비해 SUMIN 이름으로 준비하는 음악은 이 과정이 없거든요. 그래서 한편으론 수월해 보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실질적인 작업에서는 이게 양날의 검이더라고요. 케이팝 작업을 포함해서 타 아티스트나 타 프로듀서, 타 회사에서 리드하는 프로젝트는 기한이나 방향에 있어 명확한 기준이 있는 편이라 오히려 시원시원하게 풀려나갈 때가 있거든요. 반면에 개인작업은 제가 스스로 시작하고, 스스로 멈추고, 스스로 정답을 내려야 하다 보니까 쉽지가 않더라고요. 이런 부분이 대표적인 차이죠.
— 요즘 국내 음악 얘기를 하다 보면 점차 벌어지고 있는 케이팝과 비-케이팝 생태계 격차 때문에 서로 공존하기 어려울 거라고 보는 담론도 존재하더라고요. 저는 개인적으로 ‘왜 안돼?’라고 생각하는 쪽인데, 수민 씨가 딱 그 중간계에 놓인 아티스트가 아닐까 싶어요. 모 인터뷰에서 그런 ‘중간계’에 있는 게 꽤 즐겁다는 언급을 한 적도 있고요.
수민: 요즘 제가 느끼는 ‘케이팝’은 ‘포괄적임' 그 자체에요. 케이팝 편곡을 훑어보면 펑크, 락, 알앤비, 소울, 하우스, 덥 등 수많은 장르 음악적 요소들이 서로 섞이고 또 섞여요. 전 이게 재미있게 느껴지는 편이라, 아마 당분간 케이팝의 그런 ‘장르 변형’과 ‘복각형태’를 재미있게 공부해보지 않을까 싶어요. 케이팝 특유의 표현 양식이라고도 할 수 있겠고요.
— 앨범을 내고 여러 채널을 통해 라이브를 선보였어요. 보컬리스트로서 스튜디오 레코딩과 라이브 가운데 어떤 작업을 더 선호하는지 궁금한데요.
수민: 둘 다 너무 즐거워요! 레코딩은 연필로 글을 써내려 가는 느낌이고, 라이브는 쓰고 싶은 내용을 소리 내 말하는 느낌이거든요. 즉 같은 노래여도 두 작업 사이에 확연한 차이가 있는 거죠. 스튜디오 레코딩 같은 경우는 보통 콘덴서 마이크로 녹음하거든요. 덕분에 정말 사소한 소리까지 녹음될 수 있어서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쓰는 편이에요. 음정, 박자, 가사가 입에 붙을 때 나오는 뉘앙스라던가, 입 안이 건조할 때 나는 쩝 소리 같은 것들도요. 무엇보다 나중에 편집을 할 수 있다는 데에서 오는 약간의 안도감이 있어요. 그래서 쓰고 지울 수 있게 연필로 글을 써내려 간다는 비유가 떠오른 것 같아요.
반면 라이브 같은 경우에는 보통 백그라운드 보컬 트랙이 포함된 MR 위에 노래하는 경우가 많거든요. 그렇게 도움을 받는 부분이 있다 보니까, 아무래도 정제된 음원 보다는 좀 더 과감한 표현을 하면서 메시지나 감정, 에너지 같은 것을 더 강하게 전달할 수 있게 집중하는 것 같아요. 현장감이 매력이기도 하고요. 저에게 있어서는 모두 너무 너무 즐거운 일이에요.
— 최근 온라인 라이브도 꽤 많이 촬영했어요. 채널마다 독특한 영상미가 있어서 보는 재미가 있더라고요. 혹시 기억에 남는 촬영이나 에피소드가 있을까요?
수민: ‘뮤즈스(MUZES)’라는 라이브 퍼포먼스 비디오 제작 팀과 함께한 EP [시치미] 수록곡 ‘기분 좋아지는 노래’ 라이브 클립이 기억에 남아요. 개인적으로 친분이 있는 곽진석 촬영 감독님, 김종빈 연출 감독님과 ‘프리마베라 프로 2021’ 이후로 라이브 콘텐츠 작업을 오랜만에 함께 했거든요. 파주에 사는 종빈 감독님 집 거실에 모여 앉아서 시시콜콜한 이야기를 나누는 동안에 두 분이 재미있는 아이디어를 많이 내 주셨어요. 전 사실 이번엔 그 분들 리드에 따라가기만 했어요. 연출적으로 제가 완전히 믿을 수 있는 분들이거든요.
영상을 보시면 제가 거의 3m 정도 높이 사다리 위에 올라가 앉아있어요. 사다리 길이에 맞춰 제작된 긴 드레스를 입었고, 촬영도 원 테이크였죠. 사실 여기까지만 해도 ENTP인 제가 드릉드릉하기에 너무 좋은 맛있는 메뉴들이 놓인 진수성찬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웃음) 촬영장 분위기도 너무 즐거웠어요. 촬영이 원 테이크에 끝나야 하다 보니까 솔직히 매 촬영마다 부담 아닌 부담이 있었는데요, 스태프 분들이 계속해서 제 사기를 끌어 올려주려고 노력하셨어요. 완성된 영상의 말미 부분에 어딘가 건축적이면서도 파인 아트적 요소가 들어간 부분도 굉장히 마음에 들어요. 개인적으로 [시치미] 활동 중에서 제일 괴짜스럽고 멋진 순간이었다고 생각해요. 공적/사적인 부분 모두에서 저에게 귀한 추억을 만들어 주고 계신 진석 촬영 감독님과 종빈 연출 감독님께 이 자리를 빌어 다시 한 번 진심으로 감사 드린다는 말씀 전하고 싶어요.
SUMIN - 기분 좋아지는 노래(KIKI) (LIVE)
— 믿을 수 있는 동료만큼 귀한 건 없죠. 오프라인 공연 가운데에는 역시 일본 블루 노트 플레이스(Blue Note Place)에서 열렸던 라이브가 제일 큰 이벤트가 아니었을까 싶은데요.
수민: 작년 여름 일정 차 저와 함께 일하고 있는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SOYO와 일본에 방문했어요. 당시 남는 시간을 활용해서 일본의 레전드 DJ이자 프로듀서인 부다멍크(BudaMunk)님 공연을 보러 갔어요. 거기가 블루 노트 플레이스(Blue Note Place)였어요. 블루 노트 도쿄(Blue Note Tokyo)의 근사함을 그대로 가지고 있으면서도 살짝 캐주얼한 콘셉트가 인상적이었고, 무엇보다 음향 컨디션에 정말 반할 수 밖에 없겠더라고요. 그 공간에 큰 매력을 느껴서, 저와 일본 공식일정마다 함께 일하고 있는 일본의 DJ이자 프로듀서, 아티스트, 프로모터인 YonYon과 논의해서 당시 준비하고 있던 앨범 [시치미] 활동을 연결해 보자고 했죠.
공연을 준비하면서는 공연을 함께한 베이시스트 Shin Sakaino의 연주와 밴드 마스터로서의 태도에 정말 많이 반했어요. 주위 동료들과도 접점이 있다 보니 전에도 이런 저런 이야기를 종종 전해 들은 아티스트였는데, 그와 연주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저에게는 정말 큰 영광이었어요. Shin만이 전개해나갈 수 있는 베이스 톤과 그루브가 제 음악을 무대에서 보여주는 데 있어 엄청난 힘이 되었어요. 덕분에 연주하는 내내 너무 행복했던 기억입니다.
— 블루노트 측에서 공개한 공연실황도 무척 인상적이었어요. 사실 수민의 음악은 전자음악과 R&B, 중첩된 코러스로 특유의 색깔을 만들어가는 타입이니만큼 라이브로 구현하기 쉽지 않지 않을까 싶기도 했는데요, 그런 편견을 훌륭하게 깨주는 공연이더라고요.
수민: 말씀하신 것처럼 수민 음악의 프로덕션 특징 중 하나가 밀도 있는 백그라운드 보컬 편집방식과 구현이거든요. 그래서 이번 블루 노트 플레이스 공연을 준비하면서 고민이 많았어요. 장소의 고유성을 생각하면 ‘재즈’라는 장르의 특징과 정서를 절대적으로 안고 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래서 애초에 밀도 있는 백그라운드 보컬은 완전히 배제하자고 마음 먹었죠. 그래야 그 공간과 조화를 이룰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때와 장소 상관없이 제 음악 그대로를 보여주는 것도 좋지만, 그 장소만의 분위기를 생각하면서 공연장을 찾은 분들에게 조금 더 섬세하게 배려하는 자세로 접근해야겠다고 생각했어요. 비운 만큼 관객들이 다가오는 것도 음악으로 나누는 교류의 매력이니까요.
이런 생각을 키워 나가는 데 DJ셋을 제외한 공연에서 늘 함께하고 있는 밴드 Noah’s Ark의 도움이 컸어요. 밴드와 함께 하는 공연에서는 전체적인 그루브 변형에 그 때 그 때 집중하는 편이거든요. 사실 전 연주자 분들과 함께하는 공연을 제일 좋아해요. 제 음악이 악기나 백그라운드 보컬 소스를 노트북으로 틀어야 하는 상황들이 많아서 실제 연주만으로 표현하기 어려운 편이거든요. 제가 드러머라면 음악을 연주하는 내내 메트로놈 소리가 지겹도록 나오는 인이어를 착용해야 한다는 것 자체에 엄청 스트레스를 받을 거에요. (웃음) 더구나 제가 밴드 라이브에서 레이 백이 심한 편이라 고충이 많을 텐데도, Noah’s Ark 멤버들 모두가 이런 부분을 다 이해하고 즐거워해주는 것 같아 항상 고마운 마음이에요. 이 자리를 빌어서, 특히 드러머 주영이에게 너무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어요. (하트)
— 밴드에 대한 애정이 특별하네요. 그럼 여기에서 수민 밴드만의 ‘훌륭함’을 마음껏 자랑해 볼까요? (웃음)
수민: 그래도 될까요? (웃음) 저와 함께하는 밴드 Noah’s Ark는 드럼 서주영, 베이스 박종우, 키보드 김동민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제가 감히 소개를 해도 된다면 얼터너티브적인 요소를 중심으로 Jazz, Funk, Soul 등 다양한 장르를 전개해나가는 팀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저와 멤버들은 모두 알고 지낸 지 굉장히 오래된 사이에요. 멤버들 모두 수 많은 아티스트들과 레코딩, 공연세션으로서의 경험이 많아서 일정 관리부터 소리를 다루는 태도, 프로페셔널한 연주력까지 항상 존경하는 마음으로 함께하고 있습니다. 더불어 정말 바쁜 사람들인데도 불구하고 제 공연에 항상 함께 해주고 음악적인 면도 같이 고민해줘서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하고 있어요.
부담을 주고 싶진 않지만 기왕 얘기 나온 김에 용기 내서 한 번 말해보고 싶은데요. 저는 밴드 Noah’s Ark만이 구현할 수 있는 사운드가 확실하다고 생각하거든요. 각자 너무 좋은 소리를 만들고 다루는 사람들이라, 앞으로 이 팀의 작품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아주고 봐줬으면 좋겠어요.
— 수민 씨의 뜨거운 마음이 더 많은 분들에게 전해졌으면 좋겠네요. 혹시 데뷔 후 지금까지의 라이브 가운데 가장 기억에 남는 무대가 있다면 언제였나요?
수민: 2018년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에서 열린 제 정규 1집 [Your Home] 발매 단독콘서트에요. 제 노트북이 고장 나서 공연 인트로도 못하고 전 멤버가 무대에 올라간 채로 첫 소리를 내기까지 9분이 걸렸거든요. 너무 큰 사건이어서, 공연이 시작되고 나서 거의 발악하면서 공연에 몰입하려고 애썼고, 다행히 잘 마무리되었어요. 아직도 그 생각만 하면 정말… 아찔합니다.
현대카드 언더스테이지 정규 1집 콘서트 사진
— 저까지 심장이 철렁하네요. 수민이 가장 이상적으로 생각하는, 꿈꾸는 라이브 무대도 있을까요.
수민: 요즘엔 중규모로 열리는 옴니버스 식 기획공연이 아예 사라진 것 같아요. 저만 그렇게 느끼나 했는데 요즘 제 주변 동료들도 종종 얘기하면서 아쉬워하더라고요. 비슷한 영역에서 얽히고 설키는 아티스트 4~5 팀 정도를 모아서 적당한 크기 공연장에서 각 팀 별로 재미있는 무대를 선보이는 공연이 그리워요. 공연을 계기로 서로 왕래도 할 수 있잖아요. ‘만남의 장’을 만드는 거죠!
— ‘만남이 장’이라니 어쩐지 귀엽네요. (웃음) 특별히 라이브를 좋아하는 음악가도 있나요?
수민: 너무 많은데요! Knower, Louis Cole, Erykah Badu, Kirk Franklin, 빛과 소금, Fourplay, Boz Scaggs, Devin Morrison, TOTO의 라이브를 좋아해요. MTV Unplugged 시리즈도 아티스트와 상관 없이 다 좋아하는 편입니다
— 최근 이태원 등지에서 종종 DJ로서도 활약하고 있어요. 디제잉도 즐기는 편인가요? DJ 수민이 생각하는 나만의 킬링 트랙도 궁금합니다.
수민: 우선 먼저 고백하자면, 사실 주변에 360 sounds 오빠들을 포함해서 음악 잘 트는 DJ들이 정말 많거든요. 그러다 보니 귀엽게 이벤트 성으로 한 번 틀어본 게 일이 커져서 요즘 개인적으로 큰일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웃음) 덕분에 요즘엔 디제잉 전에 긴장을 너무 많이 해요. 최근에도 슬롬과 같이 음악 틀 일이 있었는데, 예전에 슬롬이 디제잉 전에 왜 그렇게 화장실을 들락거렸는지 알겠더라고요. (웃음) 서두가 길었는데요, 요즘 DJ 수민의 킬링 트랙은 Bootsy Collins의 ‘All Star Funk (feat.Can 7, Lady Miss Kier)입니다!
— 수민의 음악을 듣고 있으면 무엇보다 음악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사람이라는 인상이 강해요. 음악 창작 작업을 하는 건 하나도 힘들지 않다는 이야기도 한 적이 있고요. 그렇게 음악을 ‘가지고 노는’ 재주 가운데에서 특유의 ‘말맛’이 살아 있는 수민만의 가사와 단어 선택을 빼놓을 수 없는데요. 보통 영감은 어디에서 어떻게 받는 편인가요.
수민: 사람들과 나누는 대화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아요. 평소 쓸 법한 단어나 소리에 집착을 하는 편이에요. '곤란한 노래'의 '너를 곤란하게 만들 수 있을 것 같애' 라는 가사를 예로 들어 볼게요. 제가 평소에 ‘곤란하다’는 표현을 긍정과 부정 두 상황 모두에서 쓰는 편이거든요. 맛있는 음식을 먹었을 때 '야, 이 음식 진짜 너무 곤란한 듯'이라고 말하거나, 음악을 듣다가 훌륭한 드럼 필 인을 들었을 때 '방금 필 인 너무 곤란하다' 같은 거죠. 이렇게 가져온 것들을 레코딩 과정에서 쿼크 단위로 쪼개서 뉘앙스를 계속해서 만들어요. 마음에 들 때까지 무한대로, 제가 본능적으로 끌릴 때까지요. 그렇게 작업하다 무의식이건 의도적이던 마이크를 통해서 제가 찾던 특정한 소리가 탁 튀어나오는 순간이 있거든요. 그 소리를 기준으로 두고 이제 거기에 제 귀를 맞추면서 몸과 머리를 거기에 익숙하게 만들어요. 라이브도 고려하면서 점점 다듬어 나가는 거죠.
— 굉장히 동물적이면서도 프로페셔널한 방식이라는 생각이 드네요. 그럼 그렇게 태어난 가사 중에 ‘내가 생각해도 이 가사는 정말 잘 썼다’ 싶은 수민만의 펀치 라인이 있을까요.
수민: 최근에는 [시치미]의 1번 트랙 '늦은 아침' 후렴이요! '언제 다 치울까 / 언제 다 버릴까 / 괜찮냐 물어보는 친구들이 짜증나서'라는 파트인데요, 사실 이렇게 텍스트로 쓰는 것 보다는 뉘앙스와 감정표현을 다 같이 포함해서 음악으로 느껴주셨으면 좋겠어요. 후렴까지 빌드업 되는 가사 내용도 살펴봐 주시고요.
— 좋습니다. 음악으로 다시 한 번 꼭 들어볼게요. 더불어 ‘사랑’에 대한 묘사도 수민의 음악에서 절대 놓칠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하거든요. 특히 성애에 대한 여성의 미묘한 감정을 이렇게 섬세하고 위트 있게 표현할 수 있는 건 한국에 수민밖에 없지 않나 싶기도 해요.
수민: 사랑에 대한 제 생각이 시적 표현과 함께 드러나는 부분을 좋아해주시는 것 같아서 너무 감사해요. 개인적으로 [시치미]에 수록된 ‘눈치’와 ’기분 좋아지는 노래’, 슬롬과 함께 만든 앨범 [MINISERIES] 수록곡 ‘맞닿음’과 ‘곤란한 노래’, ‘일단은’ 같은 곡에서 그런 특성이 가장 두드러지지 않나 싶어요. 이외에도 저의 패기와 아집, 고집투성이로 만들어진 정규 1집 [Your Home]에서도 한 곡 추천하고 싶은데요, ‘너네 집 (feat.Xin Seha)’을 꼭 한 번 들어봐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독립적으로 활동하다 레이블에 소속된 적도 있고, 지금은 다시 독립해 활동하고 계신 걸로 알고 있어요. 최근 이 부분에 있어 고민을 가진 아티스트도 많다고 생각하는데요, 직접 몸으로 겪어본 수민 씨의 입장에서 동료 음악가들에게 해주고 싶은 현실적인 조언이 있을까요.
수민: 제가 조언까지 하기는 어려울 것 같고, 경험을 바탕으로 한 얘기는 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회사 소속으로 활동할 때의 가장 큰 장점은 실무부분을 담당해 주는 분들이 있어서 음악 작업에 확실히 집중할 수 있다는 점이에요. 여기에 회사에 함께 소속된 아티스트들과의 유대감이나 연대감도 무시할 수 없겠고요. 음악 활동 내외부의 다양한 교류를 통해서 여러 사람과 함께 호흡을 맞춰 나가는 과정, 같은 목표를 바라보며 달려가는 시간에 대한 감사함, 그에 따른 성취감 같은 것들도 한 번쯤은 경험해보시면 좋을 거라고 생각해요.
만약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아티스트라면 앞서 말씀 드린 부분을 전부 스스로 해내야 하겠죠. 그렇다 보면 음악 작업에만 몰입하는 환경을 만드는 게 쉽지 않고, 그래서 여러 방면에 있어서 심신이 고단해질 수 있어요. 하지만 자신의 음악으로 인해 만들어 지는 모든 과정을 몸으로 겪으면서, 그 동안 만날 기회가 없었던 다양한 분야의 사람들과 직접 소통하면서 얻게 되는 것들도 충분히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전반적인 음악 생태계를 파악할 수도 있고, 오히려 음악 밖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색다른 시각이 생기기도 하거든요. 아티스트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삶을 똑바로 바라보게 만들어주는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삶을 바라보는 자세가 바뀔 수도 있어요. 뭐든 직접 경험해 보는 게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 삶을 갈아 넣은 진지한 대답 감사합니다. (웃음) 인터뷰를 읽는 분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을까요?
수민: 저는 가끔 고집스럽기도, 바보 같기도 한 사람인데요. 그 가끔이 하루가 되고, 그 하루가 매일이 될 수 있도록 도와주시는 모든 분들에게 감사해요. 제 음악을 어떤 방식으로든 느끼고 소비하고 피드백 해주시는 모든 행위들이 저에게는 너무 값진 순간이에요. 2024년에는 제가 제일 좋아하는 동시에 제일 어려워하는 음악을 제 방식대로 열심히 풀어나가 좀 더 나아진 모습으로 찾아 뵙고 싶어요. 끝으로, 지금까지 소소한 저의 이야기를 담백하고 정제된 글로 잘 정리해주신 김윤하 평론가님께도 감사 드립니다. 우리 모두 어딘가에서 음악으로 꼭 만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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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