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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음악 산업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안착하기 위한 태도

해파리는 전통 음악을 전공한 두 사람이 모여 앰비언트 테크노에 기반한 얼트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드는 팀이다. 해파리는 <Born by Gorgeousness>로 한국 대중음악 일렉트로닉 부문 노래/음반상을 받고 람한, 노상호, 글로리홀 세일즈 등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며 우리가 전통 음악에 씌운 편견을 부순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해외에서 이국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통 음악이 아닌, 일렉트로닉 음악 신의 구성원으로 대중음악 산업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안착하기 위해 해파리가 스스로 정한 태도를 들었다.

Interview | 하박국, Edit | 하박국

HAEPAARY

ⓒ박수환, 아트_ 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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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를 위한 놀이터

ISSUE3 06.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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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단단한

대만의 공연 기획 이야기

ISSUE3 04.INSIGHT

하박국 @havaqquq

약 10년 단위로 하는 일의 종류가 늘어나는 사람. 2002년 잡지 mdm을 시작으로 음악 글을 써왔다. 2012년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를 만들어 음반과 공연 그리고 일렉트로닉 음악페어 암페어amfair를 만들었다. 2023년 음악 유튜브 채널 ‘사람들은 왜?’와 팟캐스트 ‘음이온 라디오’, 인디 음악가를 위한 뉴스레터 ‘윌슨레터’를 만들고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를 뮤직 콘텐츠 워커로 정의 내리고 사람들이 음악을 좀 더 깊고 즐겁게 들을 수 있게 하는 모든 종류의 일을 한다.

해파리의 정체




ⓒ박수환, 아트_ 윤재원




— 오늘 정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에요.

민희: 마침 제가 지금 정체 구간에 있거든요.

 

— 오늘 이야기할 정체가 그 정체는 아니지만 그 이야기도 같이 해볼까요? '부러울 것이 없어라 (Nothing to Envy)' 싱글 발매 후 약 일 년의 시간이 지났어요. 그사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혜원: 작년 하반기 때는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공연했고요. 이후에는 신곡과 앨범 준비로 압박받으며 지내고 있어요.

 

— 전에는 발매 기간이 이만큼 길지는 않았는데요. 오랫동안 결과물이 나오지 못한 이유가 있나요?

혜원: 전에는 싱글과 EP만 냈는데, 정규 앨범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 그러면 지금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인가요?

민희: 마음은 계속 준비하고 있는데, 제가 지금 정체 구간에 있어요. 송라이팅과 가사도 매일 엎고요. 계속 그 상태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 전과 지금 다른 건 무엇인가요?

민희: 전에는 아이디어가 응집되어 있다 둘이 만나 한 번에 터졌어요. 덕분에 쉽게 풀렸죠. 이후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상대 의견을 존중하며 어떻게 해야 우리 두 사람의 정체성을 각자 잘 살리면서 하이브리드 된 형태가 나올 수 있을까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혜원: 저희는 작업할 때 먼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후 오랫동안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요. 그렇게 만들고 난 후 안될 것 같은 건 빼고 더 발전시키면 좋겠다 싶은 건 작업하죠. 그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민희: 처음에는 우리 역사에 쌓여 있는 음악을 믿고 생각 많이 하지 않고 재밌고 편하게 하려고 해파리를 시작했어요. 근데 저의 천성을 거스르기가 어렵더라고요.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다시 저의 관성으로 빠져들었어요. 해파리 활동을 하며 우리 둘만의 음악이 아니라 여러 관계가 형성됐잖아요. 관객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우리는 음악 산업에서 어떤 음악인으로 존재하고 어떤 의미일까. 이런 걸 고민하게 되며 편하게 노래를 못 만들겠더라고요.

저는 한국 전통 음악을 공부했고, 그걸로 대중음악 산업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밈이나 한복 입은 피규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음악가로요. 그걸 위해 전통 음악의 정체성을 갖고 어떻게 대중음악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풀리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박수환, 아트_ 윤재원




— 이참에 처음으로 돌아가, 해파리의 첫 공연 기억 나시나요? 기록을 보니 2019년 남산 국악당에서 혜원 민희로 한 공연이 처음이더라고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하셨는지 궁금해요.

혜원: 대중음악 산업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민희: 팀을 처음 시작할 때는 혜원에게 “우리 더 늙기 전에 재밌고 예쁜 거 할래요?” 라고 꼬셨었는데, 그때는 다 말하지 않았지만 대중음악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어요. 일단 혜원과 제가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봐야했기 때문에 단기 작업으로 시작했고, 합이 잘 맞으면 한 걸음 더 가려 했죠. 그 방향이 대중음악이었고요.

혜원: 제가 하는 음악을 많은 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있었죠. 처음에는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만났기 때문에 그냥 둘이 만들어 본 공연 정도로 생각했어요. 근데 만나서 작업하고 처음 공연을 한 후 이걸 대중음악으로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두 분이 각자의 이름으로 활동해 오다 어느 순간 해파리라는 팀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둘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혜원: 저는 전이나 지금이나 저와 민희를 개별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두 명이라 그런지 5, 6명 있는 팀보다 더 1 대 1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민희: 둘이 함께 해파리를 키워가고 있는 기분이에요. 전에는 혜원, 민희만 있었으면 이제는 1:1:1. 자식이 생긴 가족.

 


— 두 분 모두 전통 음악을 전공했고 그 때문에 팀을 만들기 용이했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형태의 음악가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적은 없나요?

민희: 저는 전통 음악을 공부한 사람과 작업하고 싶어 혜원을 만났어요. 다른 장르 사람과 작업을 할 때는 소통의 어려움이 있어요. 전통 음악을 대상화하거나 신비화하는 경우도 있고요. 전통 음악이 일상의 언어인 사람과 같이 나아갈 때 더 재밌는 게 생길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혜원: 저는 누군가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항상 그 누군가가 비어 있었어요. 타악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불려 가거나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 항상 열려 있는 편이었는데, 제가 그 누구를 정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경계를 오가며

해파리가 향하는 곳




ⓒVISLA & Yerim Han




— 해파리는 두 음악을 가져와 전에 없던 음악을 하는 팀이잖아요. 처음 곡을 만들 때 레퍼런스나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방향성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혜원: 둘 다 마음에 걸리면 안 돼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어떤 지점들이 있어요. 음악을 만들다 보면 '이 멜로디는 너무 느끼해' 같은. 직관적인 느낌. 기존의 퓨전국악을 답습하는 걸 경계하기도 했고요. 저희가 좋아하는 장르가 겹치는 것도 있지만 완벽히 다른 것도 있거든요. 그걸 미로 찾기 하듯 아닌 건 거르고 좋아하는 건 발전시키며 작업했어요.

 


— 이게 우리 해파리의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게 나왔던 건 언제인가요?

민희: 첫 공연 때 종묘제례악 셋을 만들고 계속 가져가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답다고 느꼈던 건 감정을 배제한 음악이고, 목소리를 악기처럼 쓰고 저희 둘 다 다른 방식의 저항심이 있거든요. 그게 잘 녹아 우리가 원하는 음악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HAEPAARY(해파리) at SXSW Online 2021




— 두 음악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면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서로를 과감히 섞는 시도도 필요할 텐데요. 해파리는 이를 어떤 기준으로 하고 있나요?

민희: 전통 음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비등비등한 비율로 갖고 가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어요. 오래 전통 음악을 공부해 무얼 해도 그 뉘앙스와 사고가 들어와 있거든요. 저희가 이중 언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정말 일렉트로닉에 충실한 음악을 만들려 해도 자연스럽게 그게 녹아있더라고요.

 


— 종묘제례악은 제사 음악이잖아요. 생과 죽음 사이를 연결하는 음악인데, 해파리의 나머지 부분을 이루는 '앰비언트 테크노'에서 앰비언트 역시 굉장히 스피리추얼한 음악이잖아요. 명상 음악으로도 자주 쓰이고요. 테크노도 마찬가지로 트랜스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효과가 있고요. 처음 둘을 연결할 때 이런 부분을 의도 했나요?

혜원: 의도했다기보다 제가 그 포인트를 좋아해요. 반복적인 비트를 통해 영적인 상태가 되는걸. 저희 음악도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냥 좋아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VISLA & Yerim Han




— 오늘 해파리를 이야기하는 AAA 매거진의 주제가 '정체'인데요. 해파리는 경계를 오가는 정체성을 가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해파리라는 존재부터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해양 생태계의 생물과는 거리가 있고요. 해파리의 음악 역시 국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오갑니다. 해파리 음악의 기반 중 하나인 종묘제례악은 제사 음악으로 죽음과 삶 사이에 존재하죠. 해파리의 앨범 <Born by Gorgeousness>에도 상반된 욕망이 뒤섞인 세계관을 조직했다는 표현이 있어요. 둘은 경계를 오가는 자신들의 상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때로는 어딘가에 속해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도 하나요?

민희: 저는 여러 면에서 경계를 오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한편으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싶다가도 '그런 정체성을 모두 걷어 내면 나는 뭐지?' 싶더라고요. 제가 뭐 하나를 특별히 잘하거나 어딘가에 안정적으로 속할 만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에 흥미를 두고 스스로를 경계에 놓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장점이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걸 활용해 일하고 살아가는데 지금은 긍정하고 인정하는 단계에 오긴 했거든요. 하지만 굉장히 피곤하긴 해요.

혜원: 저는 경계에 있고 싶지 않았어요. 20대 중후반까지 명확하게 규정된 곳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계속 경계에 있어 그런 것 같아요. 만약 어딘가에 속해있었다면 경계로 나가고 싶어 했을 것 같아요. 청개구리 기질이죠. 지금은 경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인정하고 그래서 더 좋아요.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어딘가에 규정되어 있으면 그걸 깨는 게 쉽지 않잖아요.

 



— 해파리가 처음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할 때 '얼트 일렉트로닉 음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전통 음악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은 이유가 있었나요?

민희: 그런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선명하게 음악 안에서 들리니까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 음악의 문화적인 지위가 소외된 약자의 지위라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편견과 오해가 있고, 기존에 대중화를 위해 퓨전을 택한 전통 음악도 있고요. 저희가 전통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쓰는 순간 그 음악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았어요. 그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고요. 우리 음악이 대중음악 산업 안에서 평등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안착하려면 태도를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적인 소스나 철학은 한국 전통 음악에서 많이 가져왔지만, 일렉트로닉 음악 문법으로 만들어졌다면 일렉트로닉 음악인 게 맞지 않을까요. 대신 기존에 존재하는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로 정확하게 표현되는 건 아니기에 대안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적합할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일렉트로닉 음반, 노래' 부문을 수상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민희: 음악에 관한 평가보다 대중음악계가 우리를 환영해 줬다는 점이 좋았어요.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이라서 더 좋았고요. 오히려 저희가 음악을 시작한 지점이 대중음악이었다면 장르에 연연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시절에 장르를 규정하고 경계를 구분 짓는 게 시대를 역행하는 태도라는 거, 저희도 알거든요. 그러나 한국 전통 음악의 고정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저희는 역으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보편적인 시선으로 청자를 만날 방법이었어요.

혜원: 저도 밖에서 누가 뭐 하냐 물어보면 그냥 음악 한다고 말하거든요. 보통은 그럼 어떤 음악 하느냐 물어보는데, 저는 제가 먼저 나서서 전통 음악 한다고 말을 하지는 않아요. 전통 음악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선으로 해파리의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일렉트로닉 음악을 한다고 말하고 들려주면 '되게 오묘하다. 국악 그런 음악과 같이 한 건가?' 오히려 조심스럽게 물어보더라고요.

 



—  저는 음악 비즈니스를 하고 음악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과거의 사례를 통해 지금 존재하는 음악을 어떻게 드러내면 좋을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최근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한 팀이 많아졌어요. 예전에 씽씽부터, 이날치, 추다혜차지스 그리고 해파리까지. 이걸 보며 예전에 아시안 언더그라운드라는 흐름이 떠올랐거든요. 서로 다른 음악을 하는 팀이지만 전통 음악이라는 축이 있고 그렇게 묶어 놓으니까, 비즈니스적으로는 파급력이 있더라고요. 영미 대중음악에도 영향을 끼쳤고요. 혹시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으셨나요? 

•  아시안 언더그라운드(Asian Underground):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의 요소와 남아시아의 전통 음악을 혼합한 영국 아시아계가 이끌던 음악적 흐름을 칭하는 용어. 탈빈 싱(Talvin Singh), 코너샵(Cornershop), 판자비 MC(Panjabi MC),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 발리 사구(Bally Sagoo) 그리고 M.I.A. 등의 음악가가 아시안 언더그라운드로 묶인다. 이후 팀버랜드(Timbaland) 같은 프로듀서를 통해 2000년대 메인스트림 힙합에도 영향을 끼쳤다.


민희: 2010년대 초반 정도까지 그런 전략이 많았는데 저는 모두 실패했다고 봐요. 그리고 아시안 언더그라운드와 다른 점은 그쪽은 팝의 장르적인 부분이 단단하거든요. 한국은 팝 파트의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팀이 많은 것 같아요. 저희도 스스로 그 부분을 돌아보고 고민하고 어떻게 완성도를 높여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 음악을 사랑하고 좋은 음악이라 말할 자신감은 있지만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저희 같은 팀이 모이면 이도 저도 아닌 팝 음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퓨전국악이나 조선팝 같은 좋지 않은 선례가 만들어졌고요. 우리가 해파리 음악은 이런 면에서 매력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렇게 그룹화되는 순간 전혀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공포가 있어요.

혜원: 이날치 같은 팀도 음악 잘하고 좋은 밴드이지만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파리 음악을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아요. 휘나 살라만다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가와 함께 묶였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더 좋아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포인트를 봐줄 리스너가 있는데 그렇게 묶으면 신기한 마음으로 한 번 듣고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일렉트로닉 음악가부터 힙합, 포스트 펑크, 펑크, 기타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해 왔더라고요. 당연히 전통 음악 기반의 음악가와도 같이 공연했고요. 그때마다 다양한 장르 팬을 만날 텐데 그들에게 어떻게 어필하려 하나요?

민희: 장르와 상관없이 우리 음악이 직관적으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전략이라면 비주얼을 팝처럼 보이게 만들려 해요.

혜원: 보이는 측면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데 일부러 노력하고 있다는 포인트가 중요한 것 같아요.




ⓒVISLA & Yerim Han




— 낯선 음악을 하는 분들은 다른 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마중물 같은 걸 많이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해파리의 경우 그중 하나가 비주얼인 것 같아요. 실제로 람한, 노상호, 글로리 라이트 세일즈 등 우리가 흔히 '힙'하다 부르는 이들과 작업도 많이 하셨는데요.

민희: 해파리가 경계에 있잖아요. 그건 장르적이기도 하지만 태도적인 경계이기도 하거든요. 대중음악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케이팝과 같은 걸 추구하지는 않고, 대중음악이지만 아주 상업적이지도 않은 그런 지점에 있는, 실험 일렉트로닉 음악인데 대중음악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과 실제의 모습이 배반되는 경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급하신 아티스트가 태도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상업화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 있으면서 파인 아트적인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 자기 안에서 개념을 충실히 쌓고 형식적인 방법론을 만들며 장인처럼 자기의 미감을 완성해 나가고, 대중화되는 것에서도 방법을 찾아 나가는. 해파리의 음악이 그런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면 우리의 태도가 선명하게 읽힐 것 같더라고요.

 

— 해파리는 소수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사람들이 소비해 주길 바라나요. 아니면 어떤 계기로 널리 알려져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길 바라나요?

혜원: 두 가지 마음이 다 있어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브라질에서 빵 터졌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 활동 범위도 전과 달라질 수 있잖아요. 행사라든지 여러 곳에서 제안이 들어올 텐데 거기에 대해 세워 놓은 기준이 있나요?

민희: 이상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우리의 음악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음악이 세상에 나온 후에는 대중 안에서 잘 굴러다녀 욕도 먹고 씹히기도 하고 누군가는 좋아하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는 개인 작업은 10명만 좋아해도 된다는 태도로 일해 왔거든요. 그 사람만 이해해도 괜찮은데, 해파리는 제게 완전히 달라요. '경포대로 가서' 같은 곡을 내고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 경포대 축제에서 연락이 안 오지? (웃음) 대중음악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음악이 오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설명해요”
 




[배민라이브] 경포대로 가서 - HAEPAARY(해파리)




— 지난 3월에는 국제 문학예술 축제 '카피툴로 우노'에서 공연했더라고요. 어떻게 다녀오게 되었는지,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민희: 저희 에이전트 이수정 님이 저희와 어울리는 공연을 많이 만들어줘요. 전통 음악 하는 분들 보면 해외 활동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행사를 뛰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인 게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원 행사. 그게 신에서의 활동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좋은 에이전트를 만나 저희가 소모되지 않는 방식의 활동을 많이 제안해줘요.

혜원: 그때 공연은 자연스럽게 공연 중 하나로 생각해준 것 같아요. '외국 나가면 어떠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때마다 얘기해요. 외국인이 있는 그대로 봐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번 공연에서는 자연스럽고 무난하게 했어요.

민희: 지금은 내셔널리티가 많이 사라진 시대잖아요. 특히 한국 사람은 속도가 빠르고 변화와 유행을 빨리 받아들이고요. 한국인 역시 많은 부분에서 서구화되고 그 관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비슷한 편견으로 바라봐 주는 것 같아요.

혜원: 그런 의미에서 대만의 더큐브 포럼 뮤직 페스티벌(TheCube Forum Music Festival) 공연이 정말 좋았어요. 서유럽에서 공연하면 동양에서 온 조그마한 여자아이들로 보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대상화된 시선으로 보는 걸 잘 몰랐다가 대만에서 공연하고 나니 그걸 알게 된 거예요. 대만에서 공연하고 나서야 이렇게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VISLA & Yerim Han




— 서양에서 아직도 동양 여성 음악가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한다고 하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혜원: 제가 느끼기에는 그것과 우리를 전통 음악 시선에서 보는 것과 모두 똑같은 것 같아요.

민희: 문화적 위계 위에 있는 이들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인 것뿐이에요. 여성, 아시안, 국악 이런 것들 다 위계를 갖고 내려다보는 거예요. 그 위계를 부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 낯선 것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이후 그걸 어떻게든 자신이 편한 대상으로 분류하며 오해가 많이 생기는데요. 그걸 보통 수용하려 하나요 아니면 정확하게 이해되길 바라나요?

혜원: 매번 열심히 설명하고 있어요.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똑같은 말을 계속해요. 보는 사람이 계속 다르니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그렇게 안 봐주면 어쩔 수 없죠. 저희는 늘 열심히 하고 있어요.

 


— 한편으로는 그런 독특함 때문에 해파리 음악을 좋아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민희: 맞아요. 해파리 이전 다른 작업을 할 때도 그걸 많이 생각했어요. 분명 어드밴티지가 있다. 그게 제가 자신감이 없을 때는 콤플렉스로 작용했어요. 여성이 남성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 아시안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 그런 것과 비슷하죠. 시선과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어 콤플렉스가 없는 것처럼 모두 부정하고 싶은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그게 나를 형성하고 있는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걸 인정하고 긍정하게 됐죠. 그 후 사람들을 들여다보니 각자 어느 정도의 어드밴티지는 다 있구나 싶더라고요. 백인 남성도, 한국 남성도 다 어드밴티지가 있어요. 그렇다면 차별에서 온 어드밴티지라 하더라도 세상에 나갈 수 있게 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면 인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 후엔 차별과 편견을 자기화해서 없애거나 설득하거나 다르게 보이거나 어떤 방식으로 사회 속에 존재해야 할까, 그 다음을 고민해야 하고요. 제게 어드밴티지가 있다는 걸 늘 인지하고 있어요. 물론 그게 유쾌한 건 아니에요.

 


— 전에는 소수에게나 열린 것 같았는데, 요새는 정말 다양한 음악가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잖아요. 해파리도 결성 때부터 해외 진출을 생각했나요?

혜원: 처음부터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만 그간 했던 경험을 미뤄봤을 때 해외 진출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죠.

민희: 처음에 혜원과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두 다리를 딛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청자가 생기고 공연을 통해 관객이 생기고 그러면 참 좋겠다. 어디 멀리 나가 해외 가서 신비화되는 그런 거 말고, 우리 음악을 바로 앞에서 들은 사람이 좋아해 주고 성공하면 좋겠다. 오히려 지금도 그런 바람이 있어요. 해외에 가게 된다고 해도 다들 전통 음악적인 요소가 있으니까 가는 거로 생각하겠죠. 저희도, 동료도 온 세상도 그걸 알 텐데 그걸 저희가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저희는 이 지역 안에서 좁은 커뮤니티 안에 비집고 들어가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어요. 거기서 잘 활동할 수 있을 때 오는 성취가 더 큰 것 같아요.

 

—  해외 활동을 하려면 다양한 인프라가 필요할 텐데요. 어떻게 이를 구축하셨나요?

혜원: 에이전트인 이수정 님께 잘하려 해요. 얼마 전에 선물도 하고 가끔은 손 편지도 써요. 저희가 다행인 건 알프스가 저희가 진심으로 하는 걸 알고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거든요. 거기도 경계에 계신 분들이잖아요. 저희가 어떤 지점이 어렵고 어떤 걸 힘들어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대화가 잘 통하는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 WOMEX(Worldwide Music Expo) 2023 쇼케이스에 선정되어 11월에 스페인에 다녀왔죠? 워멕스는 어땠나요?

혜원: 가기전에 워멕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했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어요. 처음 도착해서 아티스트 등록을 하러 가는 길에 몇 분이 먼저 알아봐주시고 공연 보러가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걸 보고 실제로 여기서 공연하는게 큰 의미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이 곳으로 모이는 많은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 참여 아티스트에게 관심을 갖고 그 팀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오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동행했던 알프스 이수정님에게 실제로 이후에 있을 공연, 앨범에 대한 문의가 즉각적으로 오는 것도 신기했구요.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파리의 음악이 해파리답게 보여지고 확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잘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워멕스에서의 기회로 내년 큰 페스티벌 투어와 연계된 재미난 작업들이 이어질 거 같아요. 

 


—  해외 진출을 꿈꾸는 다른 음악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혜원: 비용 대비 셋을 잘 짜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동행할 음향 감독님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도 예산 문제로 아직은 모시지 못하고 있는데요. 업계 용어도 있고 저희가 말하는 뉘앙스를 전달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음향 감독님이 알아서 다 처리해 준다면 저희가 더 안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민희: 단순히 더 많은 청자를 만나고 싶다고 해외 진출을 하기보다, 자신이 하는 음악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어떤 청자를 만나고 싶은지를 잘 생각하고 그 방향을 알아줄 수 있는 에이전시를 선택해 좋은 파트너십을 만드는 게 첫 번째인 것 같아요. 마치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해파리가 꿈꾸는 세상




ⓒ문래예술공장




— 한대음 수상 후 인스타그램에 민희 님께서 그게 자신에게 가장 편한 보컬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수자의 위치에 처한다는 소감을 적어 주셨더라고요. 오늘 인터뷰에서도 소수자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러한 정체성으로 음악을 하는 게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민희: 저는 세계가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시대에도 늘 강자와 약자가 존재했잖아요. 시대마다 역할은 바뀌었지만요. 한국 사회에서 한국 전통 음악이 낯설고 소수자성을 가진 약자가 된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여기서 이걸 동등한 시민 자격으로 만들고 싶다는 저의 태도가 사회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음악이 약자성을 갖고 있기에 이걸 세상과 연결되게 만드는 행동이 사회 속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럴 때 해파리의 음악이 가치 있는 음악이라 생각이 들고요. 음악 하다가 힘들 때도 그게 떠오르면 할 만한 일로 느껴져요.

 

— 해파리는 어떤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혜원: 기후 위기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저희가 잘하는 것과 환경 문제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도 이야기하고요. 앨범에서도 이런 평소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요. 저희는 저희 음악을 '고스트 세계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의 고스트도 있고 저희가 무서운 음악을 잘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민희: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과 관념 속에 있는 것, 세상이라는 게 그게 다 어우러져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음악으로 담아낼 수 있는 가치관이 뭐가 있을지 찾고 사회와 연결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해파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혜원: 그냥 여기서 잘 살길 바라요.

민희: 진짜 큰 꿈이다.

혜원: 제가 무언가를 해 다른 무언가를 크게 바꿀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이게 조금이라도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요.




ⓒ문래예술공장




—  해파리의 음악으로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민희: 저희가 한국 전통 음악을 소재로 사용하는 음악을 하잖아요. 이런 팀이 한국 음악계에 평범하고 무난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다양성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해요. 가늘고 길게 존재하면 할 역할을 해낸 거로 생각할래요.

 

—  해파리의 향후 계획과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혜원: 지속해 결과물을 내고 오래 공연하고 싶은 게 큰 목표고요. 사라지지 않고 이 안에 계속 존재하며 팬을 한 명 두 명 만들어 나중에 손가락 안에 드는 팬들이 발가락까지 셀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오래 했으면 좋겠고 짧은 향후 계획은 정규 1집을 내고 싶습니다.

민희: 개인적인 바람은 로살리아(Rosalia)처럼 제가 학습한 편한 보컬 방식을 유지하며 팝의 세계에 잘 안착하고 싶어요. 전통 음악적인 기준에서도 괜찮고, 팝에서도 듣기 좋은 명확한 경계. 노래를 만드는 게 저의 큰 숙제이고 바람이고 괴로운 지점인데 고민하다 보면 많은 실수와 시도를 거쳐 뭐라도 되겠죠. 이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까먹지 않으려고요.

대중음악 산업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안착하기 위한 태도

해파리는 전통 음악을 전공한 두 사람이 모여

앰비언트 테크노에 기반한 얼트 일렉트로닉 음악을 만드는 팀이다.

해파리는 <Born by Gorgeousness>로 한국 대중음악 일렉트로닉 부문 노래/음반상을 받고

람한, 노상호, 글로리홀 세일즈 등의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며

우리가 전통 음악에 씌운 편견을 부순다.


한국 사회에서 소외되고 해외에서 이국적인 이미지로 소비되는 전통 음악이 아닌,

일렉트로닉 음악 신의 구성원으로 대중음악 산업에서

동등한 시민으로 안착하기 위해 해파리가 스스로 정한 태도를 들었다.

Interview | 하박국, Edit | 하박국

HAEPAARY

ⓒ박수환, 아트_ 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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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지만 단단한

대만의 공연 기획 이야기

하박국 @havaqquq

약 10년 단위로 하는 일의 종류가 늘어나는 사람. 2002년 잡지 mdm을 시작으로 음악 글을 써왔다. 2012년 인디 레코드 레이블 영기획YOUNG,GIFTED&WACK Records를 만들어 음반과 공연 그리고 일렉트로닉 음악페어 암페어amfair를 만들었다. 2023년 음악 유튜브 채널 ‘사람들은 왜?’와 팟캐스트 ‘음이온 라디오’, 인디 음악가를 위한 뉴스레터 ‘윌슨레터’를 만들고 진행하고 있다. 스스로를 뮤직 콘텐츠 워커로 정의 내리고 사람들이 음악을 좀 더 깊고 즐겁게 들을 수 있게 하는 모든 종류의 일을 한다.

해파리의 정체




ⓒ박수환, 아트_ 윤재원




— 오늘 정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에요.

민희: 마침 제가 지금 정체 구간에 있거든요.

 


— 오늘 이야기할 정체가 그 정체는 아니지만 그 이야기도 같이 해볼까요? '부러울 것이 없어라 (Nothing to Envy)' 싱글 발매 후 약 일 년의 시간이 지났어요. 그사이 어떻게 지내고 있나요?

혜원: 작년 하반기 때는 충분히 하고 있다고 생각될 만큼 공연했고요. 이후에는 신곡과 앨범 준비로 압박받으며 지내고 있어요.

 


— 전에는 발매 기간이 이만큼 길지는 않았는데요. 오랫동안 결과물이 나오지 못한 이유가 있나요?

혜원: 전에는 싱글과 EP만 냈는데, 정규 앨범을 내고 싶다는 욕심이 생기더라고요.

 


— 그러면 지금 정규 앨범을 준비 중인가요?

민희: 마음은 계속 준비하고 있는데, 제가 지금 정체 구간에 있어요. 송라이팅과 가사도 매일 엎고요. 계속 그 상태에서 고민하고 있어요.


— 전과 지금 다른 건 무엇인가요?

민희: 전에는 아이디어가 응집되어 있다 둘이 만나 한 번에 터졌어요. 덕분에 쉽게 풀렸죠. 이후 서로를 더 잘 알게 되고 상대 의견을 존중하며 어떻게 해야 우리 두 사람의 정체성을 각자 잘 살리면서 하이브리드 된 형태가 나올 수 있을까 더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것 같아요.

혜원: 저희는 작업할 때 먼저 생각을 많이 하는 편이에요. 이후 오랫동안 생각을 이야기 나누고요. 그렇게 만들고 난 후 안될 것 같은 건 빼고 더 발전시키면 좋겠다 싶은 건 작업하죠. 그게 생각보다 시간이 오래 걸려요.

민희: 처음에는 우리 역사에 쌓여 있는 음악을 믿고 생각 많이 하지 않고 재밌고 편하게 하려고 해파리를 시작했어요. 근데 저의 천성을 거스르기가 어렵더라고요. 생각이 많은 스타일이다 보니 시간이 지나며 다시 저의 관성으로 빠져들었어요. 해파리 활동을 하며 우리 둘만의 음악이 아니라 여러 관계가 형성됐잖아요. 관객은 우리에게 무엇을 기대할까. 우리는 음악 산업에서 어떤 음악인으로 존재하고 어떤 의미일까. 이런 걸 고민하게 되며 편하게 노래를 못 만들겠더라고요.

저는 한국 전통 음악을 공부했고, 그걸로 대중음악 산업에 들어가고 싶었어요. 밈이나 한복 입은 피규어로 존재하는 게 아니라 동등한 음악가로요. 그걸 위해 전통 음악의 정체성을 갖고 어떻게 대중음악을 할 수 있을지에 관한 고민이 풀리지 않아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어요.




ⓒ박수환, 아트_ 윤재원




— 이참에 처음으로 돌아가, 해파리의 첫 공연 기억 나시나요? 기록을 보니 2019년 남산 국악당에서 혜원 민희로 한 공연이 처음이더라고요. 그때 어떤 마음으로 하셨는지 궁금해요.

혜원: 대중음악 산업으로 들어가려는 생각은 하지 않았어요.

민희: 팀을 처음 시작할 때는 혜원에게 “우리 더 늙기 전에 재밌고 예쁜 거 할래요?” 라고 꼬셨었는데, 그때는 다 말하지 않았지만 대중음악계에 들어가고자 하는 욕망이 있었어요. 일단 혜원과 제가 같이 작업할 수 있는 사람인지 알아봐야했기 때문에 단기 작업으로 시작했고, 합이 잘 맞으면 한 걸음 더 가려 했죠. 그 방향이 대중음악이었고요.

혜원: 제가 하는 음악을 많은 이가 좋아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당연히 있었죠. 처음에는 단기적인 프로젝트로 만났기 때문에 그냥 둘이 만들어 본 공연 정도로 생각했어요. 근데 만나서 작업하고 처음 공연을 한 후 이걸 대중음악으로 풀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 두 분이 각자의 이름으로 활동해 오다 어느 순간 해파리라는 팀으로 활동하게 되었는데요. 둘이 어떤 차이가 있는지 궁금해요.

혜원: 저는 전이나 지금이나 저와 민희를 개별적인 사람으로 생각하고 있어요. 두 명이라 그런지 5, 6명 있는 팀보다 더 1 대 1로 존재하는 것 같아요.

민희: 둘이 함께 해파리를 키워가고 있는 기분이에요. 전에는 혜원, 민희만 있었으면 이제는 1:1:1. 자식이 생긴 가족.

 



— 두 분 모두 전통 음악을 전공했고 그 때문에 팀을 만들기 용이했을 것 같아요. 혹시 다른 형태의 음악가와 함께 작업하고 싶은 적은 없나요?

민희: 저는 전통 음악을 공부한 사람과 작업하고 싶어 혜원을 만났어요. 다른 장르 사람과 작업을 할 때는 소통의 어려움이 있어요. 전통 음악을 대상화하거나 신비화하는 경우도 있고요. 전통 음악이 일상의 언어인 사람과 같이 나아갈 때 더 재밌는 게 생길 거라는 믿음이 있었어요.

혜원: 저는 누군가와 해보고 싶다는 생각은 항상 있었는데, 항상 그 누군가가 비어 있었어요. 타악기를 공부했기 때문에 다른 곳에 불려 가거나 협업하는 경우가 많아 항상 열려 있는 편이었는데, 제가 그 누구를 정해본 적은 한 번도 없었던 것 같아요.






경계를 오가며 해파리가 향하는 곳




ⓒVISLA & Yerim Han




— 해파리는 두 음악을 가져와 전에 없던 음악을 하는 팀이잖아요. 처음 곡을 만들 때 레퍼런스나 롤모델이라고 할 만한 게 거의 없었을 것 같은데 어떻게 방향성을 만들었는지 궁금해요.

혜원: 둘 다 마음에 걸리면 안 돼요. 가장 중요한 부분인데 어떤 지점들이 있어요. 음악을 만들다 보면 '이 멜로디는 너무 느끼해' 같은. 직관적인 느낌. 기존의 퓨전국악을 답습하는 걸 경계하기도 했고요. 저희가 좋아하는 장르가 겹치는 것도 있지만 완벽히 다른 것도 있거든요. 그걸 미로 찾기 하듯 아닌 건 거르고 좋아하는 건 발전시키며 작업했어요.

 



— 이게 우리 해파리의 스타일이라고 할 만한 게 나왔던 건 언제인가요?

민희: 첫 공연 때 종묘제례악 셋을 만들고 계속 가져가도 재밌겠다고 생각했어요. 우리답다고 느꼈던 건 감정을 배제한 음악이고, 목소리를 악기처럼 쓰고 저희 둘 다 다른 방식의 저항심이 있거든요. 그게 잘 녹아 우리가 원하는 음악이 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HAEPAARY(해파리) at SXSW Online 2021




— 두 음악을 바탕으로 두 사람이 만나 새로운 음악을 만들려면 밸런스를 맞춰야 하는 부분도 있을 테고, 서로를 과감히 섞는 시도도 필요할 텐데요. 해파리는 이를 어떤 기준으로 하고 있나요?

민희: 전통 음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비등비등한 비율로 갖고 가려는 생각은 애초에 하지 않았어요. 오래 전통 음악을 공부해 무얼 해도 그 뉘앙스와 사고가 들어와 있거든요. 저희가 이중 언어라는 표현을 많이 쓰는데 정말 일렉트로닉에 충실한 음악을 만들려 해도 자연스럽게 그게 녹아있더라고요.

 



— 종묘제례악은 제사 음악이잖아요. 생과 죽음 사이를 연결하는 음악인데, 해파리의 나머지 부분을 이루는 '앰비언트 테크노'에서 앰비언트 역시 굉장히 스피리추얼한 음악이잖아요. 명상 음악으로도 자주 쓰이고요. 테크노도 마찬가지로 트랜스 상태를 경험하게 하는 효과가 있고요. 처음 둘을 연결할 때 이런 부분을 의도 했나요?

혜원: 의도했다기보다 제가 그 포인트를 좋아해요. 반복적인 비트를 통해 영적인 상태가 되는걸. 저희 음악도 반복되는 부분이 많아요. 그냥 좋아해 그렇게 만들어진 것 같아요.




ⓒVISLA & Yerim Han




— 오늘 해파리를 이야기하는 AAA 매거진의 주제가 '정체'인데요. 해파리는 경계를 오가는 정체성을 가진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해파리라는 존재부터가 우리가 생각하는 일반적인 해양 생태계의 생물과는 거리가 있고요. 해파리의 음악 역시 국악과 일렉트로닉 음악을 오갑니다. 해파리 음악의 기반 중 하나인 종묘제례악은 제사 음악으로 죽음과 삶 사이에 존재하죠. 해파리의 앨범 <Born by Gorgeousness>에도 상반된 욕망이 뒤섞인 세계관을 조직했다는 표현이 있어요. 둘은 경계를 오가는 자신들의 상태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나요? 때로는 어딘가에 속해 머무르고 싶다는 생각도 하나요?

민희: 저는 여러 면에서 경계를 오가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한편으로 이렇게 살아야 할까 싶다가도 '그런 정체성을 모두 걷어 내면 나는 뭐지?' 싶더라고요. 제가 뭐 하나를 특별히 잘하거나 어딘가에 안정적으로 속할 만한 자질이 있다고 생각하지 않거든요. 그래서 여러 가지에 흥미를 두고 스스로를 경계에 놓았다고 생각해요. 그게 장점이기도 한 것 같기도 하고요. 그걸 활용해 일하고 살아가는데 지금은 긍정하고 인정하는 단계에 오긴 했거든요. 하지만 굉장히 피곤하긴 해요.

혜원: 저는 경계에 있고 싶지 않았어요. 20대 중후반까지 명확하게 규정된 곳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제가 계속 경계에 있어 그런 것 같아요. 만약 어딘가에 속해있었다면 경계로 나가고 싶어 했을 것 같아요. 청개구리 기질이죠. 지금은 경계에 있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라 인정하고 그래서 더 좋아요. 뭐든 할 수 있으니까요. 어딘가에 규정되어 있으면 그걸 깨는 게 쉽지 않잖아요.

 



— 해파리가 처음 자신들의 음악을 소개할 때 '얼트 일렉트로닉 음악'이라는 표현을 썼는데요. 전통 음악을 전면으로 내세우지 않은 이유가 있었나요?

민희: 그런 표현을 굳이 쓰지 않아도 선명하게 음악 안에서 들리니까요. 저는 한국 사회에서 전통 음악의 문화적인 지위가 소외된 약자의 지위라고 생각해요. 너무 많은 편견과 오해가 있고, 기존에 대중화를 위해 퓨전을 택한 전통 음악도 있고요. 저희가 전통 음악이라는 키워드를 쓰는 순간 그 음악을 떠올리게 될 것 같았어요. 그 고리를 끊어내고 싶었고요. 우리 음악이 대중음악 산업 안에서 평등하고 동등한 시민으로 안착하려면 태도를 명확하게 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음악적인 소스나 철학은 한국 전통 음악에서 많이 가져왔지만, 일렉트로닉 음악 문법으로 만들어졌다면 일렉트로닉 음악인 게 맞지 않을까요. 대신 기존에 존재하는 일렉트로닉 음악 장르로 정확하게 표현되는 건 아니기에 대안이라는 표현을 붙이는 게 적합할 것 같다고 판단했어요.




—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일렉트로닉 음반, 노래' 부문을 수상했어요. 그때 기분이 어땠나요?

민희: 음악에 관한 평가보다 대중음악계가 우리를 환영해 줬다는 점이 좋았어요. 일렉트로닉 음반 부문이라서 더 좋았고요. 오히려 저희가 음악을 시작한 지점이 대중음악이었다면 장르에 연연하지 않았을 것 같아요. 이 시절에 장르를 규정하고 경계를 구분 짓는 게 시대를 역행하는 태도라는 거, 저희도 알거든요. 그러나 한국 전통 음악의 고정된 이미지가 강하기 때문에 저희는 역으로 그런 태도를 취하는 게 보편적인 시선으로 청자를 만날 방법이었어요.

혜원: 저도 밖에서 누가 뭐 하냐 물어보면 그냥 음악 한다고 말하거든요. 보통은 그럼 어떤 음악 하느냐 물어보는데, 저는 제가 먼저 나서서 전통 음악 한다고 말을 하지는 않아요. 전통 음악을 한다고 이야기하는 순간 그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않는 시선으로 해파리의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싫은 거예요. 일렉트로닉 음악을 한다고 말하고 들려주면 '되게 오묘하다. 국악 그런 음악과 같이 한 건가?' 오히려 조심스럽게 물어보더라고요.

 



—  저는 음악 비즈니스를 하고 음악 글을 쓰는 사람이기도 하잖아요. 그래서 과거의 사례를 통해 지금 존재하는 음악을 어떻게 드러내면 좋을 것인가에 관한 생각을 많이 하는데요. 최근 전통 음악을 기반으로 한 팀이 많아졌어요. 예전에 씽씽부터, 이날치, 추다혜차지스 그리고 해파리까지. 이걸 보며 예전에 아시안 언더그라운드라는 흐름이 떠올랐거든요. 서로 다른 음악을 하는 팀이지만 전통 음악이라는 축이 있고 그렇게 묶어 놓으니까, 비즈니스적으로는 파급력이 있더라고요. 영미 대중음악에도 영향을 끼쳤고요. 혹시 이런 식의 접근 방법은 생각해 보지 않으셨나요? 

•  아시안 언더그라운드(Asian Underground): 1990년대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의 요소와 남아시아의 전통 음악을 혼합한 영국 아시아계가 이끌던 음악적 흐름을 칭하는 용어. 탈빈 싱(Talvin Singh), 코너샵(Cornershop), 판자비 MC(Panjabi MC), 아시안 덥 파운데이션(Asian Dub Foundation), 발리 사구(Bally Sagoo) 그리고 M.I.A. 등의 음악가가 아시안 언더그라운드로 묶인다. 이후 팀버랜드(Timbaland) 같은 프로듀서를 통해 2000년대 메인스트림 힙합에도 영향을 끼쳤다.


민희: 2010년대 초반 정도까지 그런 전략이 많았는데 저는 모두 실패했다고 봐요. 그리고 아시안 언더그라운드와 다른 점은 그쪽은 팝의 장르적인 부분이 단단하거든요. 한국은 팝 파트의 음악적 완성도가 떨어지는 팀이 많은 것 같아요. 저희도 스스로 그 부분을 돌아보고 고민하고 어떻게 완성도를 높여 부끄럽지 않을 수 있을까 노력하고 있어요. 우리 음악을 사랑하고 좋은 음악이라 말할 자신감은 있지만 아직 나아갈 길이 멀다고 생각해요. 저희 같은 팀이 모이면 이도 저도 아닌 팝 음악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해요. 한국에서도 퓨전국악이나 조선팝 같은 좋지 않은 선례가 만들어졌고요. 우리가 해파리 음악은 이런 면에서 매력적이라고 하는 것들이 그렇게 그룹화되는 순간 전혀 드러나지 않을 거라는 공포가 있어요.

혜원: 이날치 같은 팀도 음악 잘하고 좋은 밴드이지만 그들의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 해파리 음악을 좋아하진 않을 것 같아요. 휘나 살라만다 같은 일렉트로닉 음악가와 함께 묶였을 때 사람들이 우리를 더 좋아할 가능성이 높을 것 같아요. 우리가 생각하는 매력적인 포인트를 봐줄 리스너가 있는데 그렇게 묶으면 신기한 마음으로 한 번 듣고 끝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일렉트로닉 음악가부터 힙합, 포스트 펑크, 펑크, 기타 팝 등 다양한 장르의 음악가들과 함께 공연해 왔더라고요. 당연히 전통 음악 기반의 음악가와도 같이 공연했고요. 그때마다 다양한 장르 팬을 만날 텐데 그들에게 어떻게 어필하려 하나요?

민희: 장르와 상관없이 우리 음악이 직관적으로 좋았으면 좋겠어요. 전략이라면 비주얼을 팝처럼 보이게 만들려 해요.

혜원: 보이는 측면은 우리가 좋아하는 것 중 하나인데 일부러 노력하고 있다는 포인트가 중요한 것 같아요.




ⓒVISLA & Yerim Han




— 낯선 음악을 하는 분들은 다른 이가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마중물 같은 걸 많이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하다고 보는데요. 해파리의 경우 그중 하나가 비주얼인 것 같아요. 실제로 람한, 노상호, 글로리 라이트 세일즈 등 우리가 흔히 '힙'하다 부르는 이들과 작업도 많이 하셨는데요.

민희: 해파리가 경계에 있잖아요. 그건 장르적이기도 하지만 태도적인 경계이기도 하거든요. 대중음악이 되고 싶다고 말하면서도 케이팝과 같은 걸 추구하지는 않고, 대중음악이지만 아주 상업적이지도 않은 그런 지점에 있는, 실험 일렉트로닉 음악인데 대중음악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과 실제의 모습이 배반되는 경계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언급하신 아티스트가 태도 면에서 우리와 비슷하다고 생각하고 있어요. 상업화에 대한 가능성도 열려 있으면서 파인 아트적인 작업을 하고 있기도 하고. 자기 안에서 개념을 충실히 쌓고 형식적인 방법론을 만들며 장인처럼 자기의 미감을 완성해 나가고, 대중화되는 것에서도 방법을 찾아 나가는. 해파리의 음악이 그런 아티스트와 함께 작업하면 우리의 태도가 선명하게 읽힐 것 같더라고요.

 

— 해파리는 소수라 할지라도 자신들의 음악을 이해할 수 있는 확실한 사람들이 소비해 주길 바라나요. 아니면 어떤 계기로 널리 알려져 불특정 다수의 대중에게 사랑받는 날이 오길 바라나요?

혜원: 두 가지 마음이 다 있어요. 저희끼리 우스갯소리로 '브라질에서 빵 터졌으면 좋겠다.' 이런 얘기도 하거든요.

 

— 불특정 다수에게 사랑을 받게 되면 활동 범위도 전과 달라질 수 있잖아요. 행사라든지 여러 곳에서 제안이 들어올 텐데 거기에 대해 세워 놓은 기준이 있나요?

민희: 이상적으로는 내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도 우리의 음악을 좋아해 줬으면 좋겠는데, 어쨌든 음악이 세상에 나온 후에는 대중 안에서 잘 굴러다녀 욕도 먹고 씹히기도 하고 누군가는 좋아하기도 했으면 하는 바람이 있어요. 저는 개인 작업은 10명만 좋아해도 된다는 태도로 일해 왔거든요. 그 사람만 이해해도 괜찮은데, 해파리는 제게 완전히 달라요. '경포대로 가서' 같은 곡을 내고는 그런 생각을 했어요. 왜 경포대 축제에서 연락이 안 오지? (웃음) 대중음악을 하고 있다는 자각을 계속하고 있는 것 같아요.




 
“우리의 음악이 오해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 설명해요”
 




[배민라이브] 경포대로 가서 - HAEPAARY(해파리)




— 지난 3월에는 국제 문학예술 축제 '카피툴로 우노'에서 공연했더라고요. 어떻게 다녀오게 되었는지, 현장 분위기는 어땠는지 궁금해요.

민희: 저희 에이전트 이수정 님이 저희와 어울리는 공연을 많이 만들어줘요. 전통 음악 하는 분들 보면 해외 활동을 많이 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저 행사를 뛰고 오는 경우가 많아요. 대표적인 게 한인을 대상으로 하는 문화원 행사. 그게 신에서의 활동은 아니잖아요. 저희는 좋은 에이전트를 만나 저희가 소모되지 않는 방식의 활동을 많이 제안해줘요.

혜원: 그때 공연은 자연스럽게 공연 중 하나로 생각해준 것 같아요. '외국 나가면 어떠냐?' 이런 질문을 많이 하세요. 그때마다 얘기해요. 외국인이 있는 그대로 봐준다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편견을 갖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이번 공연에서는 자연스럽고 무난하게 했어요.

민희: 지금은 내셔널리티가 많이 사라진 시대잖아요. 특히 한국 사람은 속도가 빠르고 변화와 유행을 빨리 받아들이고요. 한국인 역시 많은 부분에서 서구화되고 그 관념으로 바라보기 때문에 어디를 가나 비슷한 편견으로 바라봐 주는 것 같아요.

혜원: 그런 의미에서 대만의 더큐브 포럼 뮤직 페스티벌(TheCube Forum Music Festival) 공연이 정말 좋았어요. 서유럽에서 공연하면 동양에서 온 조그마한 여자아이들로 보거든요. 처음에는 그런 대상화된 시선으로 보는 걸 잘 몰랐다가 대만에서 공연하고 나니 그걸 알게 된 거예요. 대만에서 공연하고 나서야 이렇게 편하게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VISLA & Yerim Han




— 서양에서 아직도 동양 여성 음악가가 일렉트로닉 음악을 한다고 하면 신기하게 바라보는 시선이 있는 것 같아요.

혜원: 제가 느끼기에는 그것과 우리를 전통 음악 시선에서 보는 것과 모두 똑같은 것 같아요.

민희: 문화적 위계 위에 있는 이들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시선인 것뿐이에요. 여성, 아시안, 국악 이런 것들 다 위계를 갖고 내려다보는 거예요. 그 위계를 부수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 낯선 것에 사람들은 기본적으로 거부감을 느끼고 이후 그걸 어떻게든 자신이 편한 대상으로 분류하며 오해가 많이 생기는데요. 그걸 보통 수용하려 하나요 아니면 정확하게 이해되길 바라나요?

혜원: 매번 열심히 설명하고 있어요. 최선을 다해 설명하고 똑같은 말을 계속해요. 보는 사람이 계속 다르니 계속 이야기할 수밖에 없어요. 그래도 그렇게 안 봐주면 어쩔 수 없죠. 저희는 늘 열심히 하고 있어요.

 


— 한편으로는 그런 독특함 때문에 해파리 음악을 좋아하는 이도 있을지 모르잖아요.

민희: 맞아요. 해파리 이전 다른 작업을 할 때도 그걸 많이 생각했어요. 분명 어드밴티지가 있다. 그게 제가 자신감이 없을 때는 콤플렉스로 작용했어요. 여성이 남성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 아시안이 백인이 되고 싶어 하는 욕망 그런 것과 비슷하죠. 시선과 편견에서 벗어나고 싶어 콤플렉스가 없는 것처럼 모두 부정하고 싶은 시기가 있었어요. 근데 그게 나를 형성하고 있는 정체성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라는 걸 인정하고 긍정하게 됐죠. 그 후 사람들을 들여다보니 각자 어느 정도의 어드밴티지는 다 있구나 싶더라고요. 백인 남성도, 한국 남성도 다 어드밴티지가 있어요. 그렇다면 차별에서 온 어드밴티지라 하더라도 세상에 나갈 수 있게 하는데 어느 정도 도움을 준다면 인정하는 게 맞는 것 같아요. 그 후엔 차별과 편견을 자기화해서 없애거나 설득하거나 다르게 보이거나 어떤 방식으로 사회 속에 존재해야 할까, 그 다음을 고민해야 하고요. 제게 어드밴티지가 있다는 걸 늘 인지하고 있어요. 물론 그게 유쾌한 건 아니에요.

 


— 전에는 소수에게나 열린 것 같았는데, 요새는 정말 다양한 음악가가 해외 진출을 염두에 두고 활동하잖아요. 해파리도 결성 때부터 해외 진출을 생각했나요?

혜원: 처음부터 생각한 적은 없어요. 다만 그간 했던 경험을 미뤄봤을 때 해외 진출을 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하긴 했죠.

민희: 처음에 혜원과 그런 이야기를 했어요. 우리가 두 다리를 딛고 살고 있는 지역에서 청자가 생기고 공연을 통해 관객이 생기고 그러면 참 좋겠다. 어디 멀리 나가 해외 가서 신비화되는 그런 거 말고, 우리 음악을 바로 앞에서 들은 사람이 좋아해 주고 성공하면 좋겠다. 오히려 지금도 그런 바람이 있어요. 해외에 가게 된다고 해도 다들 전통 음악적인 요소가 있으니까 가는 거로 생각하겠죠. 저희도, 동료도 온 세상도 그걸 알 텐데 그걸 저희가 자랑스러워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저희는 이 지역 안에서 좁은 커뮤니티 안에 비집고 들어가는 게 더 어려운 일이라 생각했어요. 거기서 잘 활동할 수 있을 때 오는 성취가 더 큰 것 같아요.

 

—  해외 활동을 하려면 다양한 인프라가 필요할 텐데요. 어떻게 이를 구축하셨나요?

혜원: 에이전트인 이수정 님께 잘하려 해요. 얼마 전에 선물도 하고 가끔은 손 편지도 써요. 저희가 다행인 건 알프스가 저희가 진심으로 하는 걸 알고 그걸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거든요. 거기도 경계에 계신 분들이잖아요. 저희가 어떤 지점이 어렵고 어떤 걸 힘들어하는지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대화가 잘 통하는 게 가장 좋은 점이에요.

— WOMEX(Worldwide Music Expo) 2023 쇼케이스에 선정되어 11월에 스페인에 다녀왔죠? 워멕스는 어땠나요?

혜원: 가기전에 워멕스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알지 못했는데 실제로 경험해보니 생각보다 큰 규모에 놀랐어요. 처음 도착해서 아티스트 등록을 하러 가는 길에 몇 분이 먼저 알아봐주시고 공연 보러가겠다는 이야기를 해주시는 걸 보고 실제로 여기서 공연하는게 큰 의미가 있구나 생각했어요. 이 곳으로 모이는 많은 음악 산업 관계자들이 참여 아티스트에게 관심을 갖고 그 팀에 대해 미리 살펴보고 오는 것 같았어요. 그리고  공연이 끝나자마자 동행했던 알프스 이수정님에게 실제로 이후에 있을 공연, 앨범에 대한 문의가 즉각적으로 오는 것도 신기했구요. 음악을 만들고 공연을 잘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해파리의 음악이 해파리답게 보여지고 확장할 수 있는 비즈니스를 잘 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하다는 걸 느꼈어요.  워멕스에서의 기회로 내년 큰 페스티벌 투어와 연계된 재미난 작업들이 이어질 거 같아요. 

 


—  해외 진출을 꿈꾸는 다른 음악가들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나요?

혜원: 비용 대비 셋을 잘 짜는 게 중요한 것 같고요. 동행할 음향 감독님이 있으면 좋을 것 같아요. 저희도 예산 문제로 아직은 모시지 못하고 있는데요. 업계 용어도 있고 저희가 말하는 뉘앙스를 전달하기 쉽지 않더라고요. 그런 부분을 음향 감독님이 알아서 다 처리해 준다면 저희가 더 안심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다닐 수 있을 것 같아요.

민희: 단순히 더 많은 청자를 만나고 싶다고 해외 진출을 하기보다, 자신이 하는 음악의 지향점이 어디인지 어떤 청자를 만나고 싶은지를 잘 생각하고 그 방향을 알아줄 수 있는 에이전시를 선택해 좋은 파트너십을 만드는 게 첫 번째인 것 같아요. 마치 혼자서 다 할 수 있을 것 같은 환상을 불러일으키는 시대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걸 이야기해 주고 싶어요.






해파리가 꿈꾸는 세상




ⓒ문래예술공장




— 한대음 수상 후 인스타그램에 민희 님께서 그게 자신에게 가장 편한 보컬 스타일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소수자의 위치에 처한다는 소감을 적어 주셨더라고요. 오늘 인터뷰에서도 소수자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가 나왔는데 그러한 정체성으로 음악을 하는 게 본인에게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요.

민희: 저는 세계가 다 연결되어 있는 것 같아요. 아무리 좋은 시대에도 늘 강자와 약자가 존재했잖아요. 시대마다 역할은 바뀌었지만요. 한국 사회에서 한국 전통 음악이 낯설고 소수자성을 가진 약자가 된 아이러니한 시대를 살고 있어요. 여기서 이걸 동등한 시민 자격으로 만들고 싶다는 저의 태도가 사회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제가 하는 음악이 약자성을 갖고 있기에 이걸 세상과 연결되게 만드는 행동이 사회 속에서 긍정적으로 작용할 거라는 믿음이 있어요. 그럴 때 해파리의 음악이 가치 있는 음악이라 생각이 들고요. 음악 하다가 힘들 때도 그게 떠오르면 할 만한 일로 느껴져요.

 

— 해파리는 어떤 사회 문제에 관심을 두고 있나요?

혜원: 기후 위기와 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정말 많이 해요. 저희가 잘하는 것과 환경 문제가 어떻게 만날 수 있을지도 이야기하고요. 앨범에서도 이런 평소 하는 이야기를 풀어내고 싶어요. 저희는 저희 음악을 '고스트 세계관'에 있다고 생각하는데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의 고스트도 있고 저희가 무서운 음악을 잘 만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두려움에 관해 이야기하고 싶어요.

민희: 현실 속에 존재하는 것과 관념 속에 있는 것, 세상이라는 게 그게 다 어우러져 만들어지잖아요. 그런 것들 사이에서 우리가 음악으로 담아낼 수 있는 가치관이 뭐가 있을지 찾고 사회와 연결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 해파리가 꿈꾸는 세상은 어떤 세상인가요?

혜원: 그냥 여기서 잘 살길 바라요.

민희: 진짜 큰 꿈이다.

혜원: 제가 무언가를 해 다른 무언가를 크게 바꿀 수 있을 거로 생각하진 않아요. 그냥 제가 할 수 있는 걸 하면서 이게 조금이라도 유지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사는 것 같아요.




ⓒ문래예술공장




—  해파리의 음악으로 어떻게 그런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민희: 저희가 한국 전통 음악을 소재로 사용하는 음악을 하잖아요. 이런 팀이 한국 음악계에 평범하고 무난하게 존재하는 것만으로도 사회의 다양성에 이바지한다고 생각해요. 가늘고 길게 존재하면 할 역할을 해낸 거로 생각할래요.

 

—  해파리의 향후 계획과 목표는 어떻게 되나요?

혜원: 지속해 결과물을 내고 오래 공연하고 싶은 게 큰 목표고요. 사라지지 않고 이 안에 계속 존재하며 팬을 한 명 두 명 만들어 나중에 손가락 안에 드는 팬들이 발가락까지 셀 수 있도록 하고 싶어요. 오래 했으면 좋겠고 짧은 향후 계획은 정규 1집을 내고 싶습니다.

민희: 개인적인 바람은 로살리아(Rosalia)처럼 제가 학습한 편한 보컬 방식을 유지하며 팝의 세계에 잘 안착하고 싶어요. 전통 음악적인 기준에서도 괜찮고, 팝에서도 듣기 좋은 명확한 경계. 노래를 만드는 게 저의 큰 숙제이고 바람이고 괴로운 지점인데 고민하다 보면 많은 실수와 시도를 거쳐 뭐라도 되겠죠. 이 질문을 포기하지 않고 까먹지 않으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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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SSUE 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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