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ESTFEED 세션 3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페스티벌 후지 록(Fuji Rock). 이 뒤에는 역시 아시아 대표 음악 공연 기획사 스매시(Smash)가 있다. 뮤지션으로 시작하여 일본에 터를 잡고 지난 26년 간 후지 록에서 쟁쟁한 뮤지션을 섭외해 온 아일랜드 출신의 Johnnie Moylett과 함께 페스티벌의 시작과 지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패널]
Johnnie Moylett
(일본, Fuji Rock Festival / Smash! Corporation)
Moderator | 김윤하, Edit | 임기원 · 이수정
페스티벌의 시작: The History of Smash! & Fuji Rock Festival

NEXT

작은 무대들의 위기,
쇼케이스 페스티벌은
답이 될 수 있을까
ISSUE6 05.INSIGHT
PRE

FESTFEED 세션 2
ISSUE6 03.INSIGHT
이수정 cecilia@alpsinc.kr
(주)알프스 기획이사.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에서 기획, 프로그래밍, 해외 업무를 담당한다.
ㅡ 이번 세 번째 세션에서는 후지 록 페스티벌과, 그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공연기획사 스매시(Smash)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스매시는 일본 콘서트 프로모션 분야에서 굳건히 자리 잡고 활약하고 있으며, 특히 후지 록을 중심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후지 록 페스티벌의 역사와 현재의 운영 방식, 그리고 스매시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또 후지 록 페스티벌을 본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조니: 26년 전쯤, 한 친구가 ‘후지 록이라는 페스티벌을 일본에서 시작하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제안하면서 처음 참여하게 되었어요. 후지 록 페스티벌은 일본 니가타 현에서 열리는데, 이곳은 본래 알프스 같은 산악 지형을 가진 스키 리조트 지역입니다. 겨울에는 스키 리조트로 활용되고, 여름에는 후지 록 페스티벌이 열리죠.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스테이지를 오가며 자연을 즐길 수 있고, 한가운데에는 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강이 흘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또 각 스테이지마다 음악 장르가 다양해서, 관객들은 걷는 길마다 새로운 음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26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후지 록은 단순한 음악 축제를 넘어 하나의 ‘리조트형 휴가’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돌아오면서 세대를 이어가는 경험을 합니다. 음악뿐 아니라 삶의 중요한 순간과도 연결되는 곳,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 바로 후지 록 페스티벌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ㅡ 후지 록 페스티벌이 벌써 26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한국에서도 직접 경험해보신 분들이 많아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축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단순한 음악 축제를 넘어 후지록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니: 많은 분들이 후지 록이라고 하면 단순히 술을 마시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곳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신 분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의외로 ‘음식이 정말 맛있다’라는 점이에요.
결국 후지 록은 음악만의 축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한 주말 동안 모두 모여드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드라이너 공연을 보려고 티켓을 샀다 해도, 실제로는 공연을 20분 정도만 보고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다른 무대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음악을 즐기기도 합니다.
도쿄라는 도시 공간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이 축제가 주는 자유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음악뿐 아니라 음식·사람·경험이 어우러지는 그 시간 자체가 바로 후지 록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ㅡ 처음 후지 록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의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일본인이 아님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 페스티벌의 핵심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계신 점도 흥미로운데요. 특히 1회 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후지 록의 풍경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었는지, 공연을 만드는 경험자의 입장에서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당시 스매시의 대표가 매년 유럽의 대형 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에 가곤 했습니다. 엄청난 팬이었죠. 스매시는 도쿄에서 200석 정도 되는 곳에서 아주 작은 영국 인디 밴드들을 초청해서 공연하고 그랬던 회사였어요. 도쿄에 그런 인디 신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페스티벌을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된 겁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아무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어요. 왜냐하면 자칫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온전히 프로모터가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인데, 서양의 마인드로나 구현이 가능한 ‘페스티벌’이라는 형식이 낯설었던 겁니다. 그래서 첫회를 앞두고 다들 겁먹었어요. 첫 페스티벌은 말그대로 후지산에서 진행됐는데요, 시작하자마자 태풍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스테이지가 무너지고 공연이 사실상 중단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빠졌죠. 둘째 날은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공연을 이어가긴 했지만, 장소가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 이후 새로운 장소를 찾던 중 니가타 현의 리조트에서 열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2회부터 지금까지 그곳에서 후지 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ㅡ 한국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도 첫 해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고,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인천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로 재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어쩌면 비슷한 ‘슬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셈인데요.
저는 이런 부분이 궁금합니다. 왜 굳이 여름을 페스티벌 시즌으로 선택하셨을까요? 태풍이나 혹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페스티벌을 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조니: 후지 록이 7월에 열리게 된 건 사실 굉장히 논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6월은 장마철이라 어렵고 8월은 너무 덥기 때문에 여름 중에서는 7월이 가장 적절했죠. 겨울은 야외 페스티벌 자체가 불가능하고요.
봄과 가을도 고려해봤지만, 그 시기는 학교와 회사 일정 때문에 사람들이 휴가를 잘 내지 못합니다. 특히 봄의 골든 위크는 대부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관객이 페스티벌에 오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투어 일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밴드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투어를 이어가야 하는데, 각 나라의 날씨를 고려했을 때 7월이 가장 많은 투어를 소화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여러 조건들을 종합해 보면, 7월이 후지 록을 개최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ㅡ 이번에는 프로모터로서의 실제 일을 조금 더 여쭙고 싶습니다. 후지 록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 중 하나인 만큼, 준비 과정이 1년 내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올해 페스티벌이 끝나면 바로 다음 날부터 다음 해 준비가 시작된다’고들 하는데요. 후지 록 역시 전반적인 아티스트 구성이나 프로그램 기획 등에서 1년 단위로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해 동안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모든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헤드라이너 부킹입니다.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과정이라, 사실 올해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다음 해 헤드라이너 이야기도 시작하곤 하죠. 그 일이 가장 먼저 시작하는 준비 과정입니다. 헤드라이너가 결정되면 다음 레벨의 라인업으로 넘어 갑니다.
헤드라이너가 페스티벌의 벌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축제의 심장이자 영혼은 아직 미처 관객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밴드들, 특히 이 중에서도 중간 규모의 뮤지션들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새로운 밴드를 발굴해 라인업을 꾸릴 때입니다. 핵심은 그 밴드가 60~90분 동안 무대를 책임지며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에요. 스포티파이에 200만 스트림을 자랑하는 히트곡이 있다 하더라도 나머지 곡들이 2,000 이하면, 큰 공연은 할 수 없는 밴드라는 걸 우리는 알아 채죠. 관객들이 지루해할 테니까요. 그래서 음반이나 티켓 판매와는 상관 없이, 이 밴드가 ‘페스티벌 밴드’로서 무대의 힘과 매력을 갖췄는지를 봅니다.
ㅡ 아티스트 발굴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준비 기간 동안 해외 페스티벌을 직접 다니며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특히 어떤 무대나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 보시는지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실제로 국내외 다양한 페스티벌을 자주 다니면서 새로운 밴드를 발굴하려고 합니다. 특히 처음 들어보는 밴드라도 10~15분 정도 무대를 지켜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뭐 그냥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밴드인지, 지금 무대에서 문제가 있는지, 무대에서 특별히 느껴지는 게 없는지. 무대를 보자마자 스파크가 튀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를 방문해서 공연을 보는데, 재미있어요. 신선한 피를 찾아 다니는 뱀파이어가 된 기분이랄까요. 에너지로 가득차 무대를 흥분시키는 밴드가 이제 막 떠오르는 순간을 발견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도 하겠네요.
ㅡ 26년 동안 활동을 이어오시면서 무대에서 스파크와 카리스마를 찾아내는 눈을 키우신 게 결국 지금까지 꾸준히 일을 해오실 수 있는 원동력이자 후지 록의 뿌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굴하신 아티스트 중에서 ‘이 팀은 내가 정말 먼저 발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거나, 도전적으로 무대에 세워봤는데 아쉬웠던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사실 이 질문이 어려운 게, 어떤 밴드가 유명해지고 나면 전 세계 20명 정도의 프로모터들이 똑같이 ‘내가 먼저 발굴했다’고 말하거든요. (웃음)
그래도 하나 예를 들자면, 후지 록은 원래 록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댄스 음악을 하는 밴드를 라인업에 넣는 게 꽤 큰 리스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과감하게 무대에 세웠던 팀이 바로 케미컬 브라더스예요. 지금은 헤드라이너로 성장해 긴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죠. 또 하나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인데, 예전에는 작은 클럽 밴드였지만 후지 록 무대를 거치고 난 뒤 지금은 엄청난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당시의 선택이 위험해 보였을지 몰라도 결국은 큰 자부심으로 남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까도 말한 것처럼, 신선한 피를 찾아다닌다고 한 거였어요. 20년 뒤에도 커리어의 정점에서 활약하고 있을 그런 밴드를 발굴하는 것이죠.
ㅡ 결국 프로모터의 ‘촉’이나 감각이 당시에는 작은 밴드를 발굴해 훗날 큰 밴드로 성장시키고, 또 이런 라인업을 통해 페스티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26년 동안 프로모터로 활동하시면서, 본인이 가진 ‘센스’나 ‘촉’을 가장 신뢰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면 어땠는지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저도 예전에 밴드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게 되죠. 그렇게 쌓이는 경험이 결국 저를 만드는 역사가 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밴드의 신곡을 들으면, 그 안에서 음악적인 지식이나 감각이 다른 밴드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으로서의 경험이 그런 감각을 키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ㅡ 작년에 페스티벌 브랜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라인업은 단순히 유명세나 관객 동원력보다 좋은 음악과 영감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후지 록에서 아티스트를 선별할 때 이런 기준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후지 록 페스티벌의 영혼, 가장 뿌리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니: 라인업은 해마다 달라지기에 때로는 뛰어나고 때로는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있습니다. 라인업보다 중요한 건, 한 번 온 관객이 후지 록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끼며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소수 인원이 전체 라인업을 결정했지만, 지금은 스테이지별로 팀이 나뉘어 라인업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프로모터로서 본인 생각과 달라도 팀의 선택을 존중하고,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아티스트가 섭외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매년 200팀이 넘는 아티스트가 참여하기 때문에, 스테이지별로 라인업이 늘 훌륭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각 스테이지의 개성을 잘 지켜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ㅡ 페스티벌이 규모가 커지면서 스태프와 섭외 담당자들도 늘어났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다만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후지 록이 26년 넘게 이어져 온 데에는 결국 재정적인 순환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건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고 미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만큼 비즈니스적인 고민도 있지 않을까 궁금한데요.
실제로 후지 록의 재정적 운영은 매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또 최근 상황은 어떤지 간단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재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코로나 때였습니다. 후지 록은 국제적인 페스티벌을 지향하지만, 당시에는 일본 밴드만으로 라인업을 꾸려야 했거든요. 지금은 해외 밴드와 일본 밴드가 반반 정도지만, 그 시기가 정말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또 후지 록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스폰서를 소수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산을 한 번 정해 두면 그 이상으로 절대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너무나 섭외하고 싶은 서양의 아티스트가 나타나도 선뜻 초청하기 어렵죠. 유럽이나 북미에서 크게 성공한 아티스트들은 일본에서도 자신들의 인지도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아무리 지역에서 유명해도 대부분 일본에선 인지도가 인구의 5% 미만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탑티어 아티스트가 아니면 큰 예산을 쓰기 어렵고 나머지는 대부분 인디나 얼터너티브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공연들이 우리가 만드는 축제의 정신(spirit)입니다.
축제에선 언제나 돈이 문제죠. 저희는 지금까지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음악 비즈니스란 돈과 창의력(Creativity)의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저흰 아직 이혼은 안 했고요.

ㅡ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은 것은, 앞으로도 후지 록의 프로모터로 활동을 이어가실 텐데요.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루어 오셨지만,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꼭 데려와 보고 싶은 아티스트나, 평생 함께하고 싶은 팀 같은 구체적인 바람이 있으실까요?
조니: 아시아가 하나의 신으로 연결되어, 뮤지션이 아시아 여러 도시에서 투어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저는 매우 마음에 들어요. 아시아 각국의 프로모터들이 이렇게 함께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아시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이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돼요. 유럽처럼 말이죠. 이게 제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저의 목표예요. 영미권의 주요 에이전시들은 아시아라면 일본이나 한국 정도만 알고,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대만 같은 나라에 대해선 여전히 아무것도 몰라요. 그들의 잘못이죠.
언어의 장벽이 큰 것도 문제입니다.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영어가 아니라면, 페스티벌에서 잘 모르는 언어로 노래하는 아티스트는 경쟁력이 좀 떨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프리마베라와 같은 해외 페스티벌들과 이야기해보면, 아시아에서 유능한 밴드들이 많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고 실제로 무대에 세우려는 니즈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해외 아티스트들이 아시아를 투어하고, 동시에 아시아 밴드들도 해외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가장 이루고 싶은 큰 꿈입니다.
ㅡ 최근 한국에서도 페스티벌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시아의 힘의 확장과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오늘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함께해주신 여러분들 사이에서도 이런 좋은 에너지가 이어져 앞으로 더 흥미로운 페스티벌의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대합니다.
FESTFEED 세션 3
페스티벌의 시작: The History of Smash! & Fuji Rock Festival

아시아를 대표하는 음악 페스티벌 후지 록(Fuji Rock).
이 뒤에는 역시 아시아 대표 음악 공연 기획사 스매시(Smash)가 있다.
뮤지션으로 시작하여 일본에 터를 잡고 지난 26년 간
후지 록에서 쟁쟁한 뮤지션을 섭외해 온 아일랜드 출신의 Johnnie Moylett과 함께
페스티벌의 시작과 지속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패널]
Johnnie Moylett (일본, Fuji Rock Festival / Smash! Corporation)
Moderator | 김윤하, Edit | 임기원 · 이수정
NEXT

작은 무대들의 위기,
쇼케이스 페스티벌은
답이 될 수 있을까
ISSUE6 05.INSIGHT
PRE

ISSUE6 03.INSIGHT
FESTFEED 세션 2
이수정 cecilia@alpsinc.kr
(주)알프스 기획이사. DMZ피스트레인뮤직페스티벌에서 기획, 프로그래밍, 해외 업무를 담당한다.
ㅡ 이번 세 번째 세션에서는 후지 록 페스티벌과, 그 전반적인 프로그램을 담당하고 있는 공연기획사 스매시(Smash)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려고 합니다. 스매시는 일본 콘서트 프로모션 분야에서 굳건히 자리 잡고 활약하고 있으며, 특히 후지 록을 중심으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먼저, 후지 록 페스티벌의 역사와 현재의 운영 방식, 그리고 스매시가 그 안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또 후지 록 페스티벌을 본인의 관점에서 어떻게 소개하고 싶으신지도 궁금합니다.
조니: 26년 전쯤, 한 친구가 ‘후지 록이라는 페스티벌을 일본에서 시작하는데 도와줄 수 있겠냐’고 제안하면서 처음 참여하게 되었어요. 후지 록 페스티벌은 일본 니가타 현에서 열리는데, 이곳은 본래 알프스 같은 산악 지형을 가진 스키 리조트 지역입니다. 겨울에는 스키 리조트로 활용되고, 여름에는 후지 록 페스티벌이 열리죠. 숲과 계곡으로 둘러싸여 있어서 스테이지를 오가며 자연을 즐길 수 있고, 한가운데에는 여름에도 얼음장처럼 차가운 강이 흘러 독특한 분위기를 만들어줍니다. 또 각 스테이지마다 음악 장르가 다양해서, 관객들은 걷는 길마다 새로운 음악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이제는 26년의 역사를 가진 만큼, 후지 록은 단순한 음악 축제를 넘어 하나의 ‘리조트형 휴가’로 자리 잡았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연인을 만나고, 결혼을 하고, 아이들과 함께 다시 돌아오면서 세대를 이어가는 경험을 합니다. 음악뿐 아니라 삶의 중요한 순간과도 연결되는 곳, 새로운 음악을 발견하고 사람과 사람을 이어주는 공간이 바로 후지 록 페스티벌이라고 소개할 수 있겠습니다.

ㅡ 후지 록 페스티벌이 벌써 26년의 역사를 이어오면서, 한국에서도 직접 경험해보신 분들이 많아 우리에게도 꽤 친숙한 축제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단순한 음악 축제를 넘어 후지록이 가진 특별한 매력이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조니: 많은 분들이 후지 록이라고 하면 단순히 술을 마시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는 곳으로 생각하곤 합니다. 그런데 막상 와보신 분들이 가장 많이 이야기하는 건 의외로 ‘음식이 정말 맛있다’라는 점이에요.
결국 후지 록은 음악만의 축제가 아니라, 사람들이 경험할 수 있는 삶의 다양한 모습들이 한 주말 동안 모두 모여드는 공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드라이너 공연을 보려고 티켓을 샀다 해도, 실제로는 공연을 20분 정도만 보고 친구들과 어울리거나, 다른 무대를 찾아다니며 새로운 음악을 즐기기도 합니다.
도쿄라는 도시 공간을 벗어나 자연 속에서 이 축제가 주는 자유와 여유를 만끽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음악뿐 아니라 음식·사람·경험이 어우러지는 그 시간 자체가 바로 후지 록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ㅡ 처음 후지 록 페스티벌에 참여하게 된 계기와 그 과정의 비하인드가 궁금합니다. 일본인이 아님에도 일본을 대표하는 음악 페스티벌의 핵심 프로그래머로 활동하고 계신 점도 흥미로운데요. 특히 1회 때는 어떤 모습이었는지, 당시에도 지금과 같은 후지 록의 풍경이 어느 정도 자리 잡고 있었는지, 공연을 만드는 경험자의 입장에서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당시 스매시의 대표가 매년 유럽의 대형 페스티벌인 글래스톤베리에 가곤 했습니다. 엄청난 팬이었죠. 스매시는 도쿄에서 200석 정도 되는 곳에서 아주 작은 영국 인디 밴드들을 초청해서 공연하고 그랬던 회사였어요. 도쿄에 그런 인디 신이 있었거든요. 그러다가 페스티벌을 한 번 만들어보자고 의기투합하게 된 겁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아무도 감히 시도하지 못했던 아이디어였어요. 왜냐하면 자칫 무슨 문제라도 생기게 되면 온전히 프로모터가 모든 법적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인데, 서양의 마인드로나 구현이 가능한 ‘페스티벌’이라는 형식이 낯설었던 겁니다. 그래서 첫회를 앞두고 다들 겁먹었어요. 첫 페스티벌은 말그대로 후지산에서 진행됐는데요, 시작하자마자 태풍을 정면으로 맞으면서 스테이지가 무너지고 공연이 사실상 중단될 정도로 위험한 상황에 빠졌죠. 둘째 날은 다행히 날씨가 좋아서 공연을 이어가긴 했지만, 장소가 너무 위험하다는 결론을 내리게 됐습니다.
그 이후 새로운 장소를 찾던 중 니가타 현의 리조트에서 열 수 있다는 아이디어가 나왔고, 2회부터 지금까지 그곳에서 후지 록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ㅡ 한국의 트라이포트 록 페스티벌도 첫 해 태풍으로 큰 피해를 입고, 이후 한동안 중단됐다가 인천의 펜타포트 록 페스티벌로 재기한 사례가 있습니다. 한국과 일본이 어쩌면 비슷한 ‘슬픈 역사’를 공유하고 있는 셈인데요.
저는 이런 부분이 궁금합니다. 왜 굳이 여름을 페스티벌 시즌으로 선택하셨을까요? 태풍이나 혹독한 날씨에도 불구하고 여름에 페스티벌을 열게 된 특별한 이유가 있는지 듣고 싶습니다.
조니: 후지 록이 7월에 열리게 된 건 사실 굉장히 논리적인 이유가 있습니다. 6월은 장마철이라 어렵고 8월은 너무 덥기 때문에 여름 중에서는 7월이 가장 적절했죠. 겨울은 야외 페스티벌 자체가 불가능하고요.
봄과 가을도 고려해봤지만, 그 시기는 학교와 회사 일정 때문에 사람들이 휴가를 잘 내지 못합니다. 특히 봄의 골든 위크는 대부분 가족과 시간을 보내기 때문에 관객이 페스티벌에 오기 어렵습니다.
또 하나 중요한 점은 아시아 전체를 아우르는 투어 일정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밴드들이 미국이나 영국에서 일본을 거쳐 다른 아시아 국가들로 투어를 이어가야 하는데, 각 나라의 날씨를 고려했을 때 7월이 가장 많은 투어를 소화할 수 있는 시기이기도 합니다. 결국 이런 여러 조건들을 종합해 보면, 7월이 후지 록을 개최하기에 가장 이상적인 시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ㅡ 이번에는 프로모터로서의 실제 일을 조금 더 여쭙고 싶습니다. 후지 록은 아시아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 중 하나인 만큼, 준비 과정이 1년 내내 이어질 것 같습니다. 일반적으로는 ‘올해 페스티벌이 끝나면 바로 다음 날부터 다음 해 준비가 시작된다’고들 하는데요. 후지 록 역시 전반적인 아티스트 구성이나 프로그램 기획 등에서 1년 단위로 준비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한 해 동안 페스티벌을 준비하는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간단히 소개해 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모든 페스티벌에서 가장 중요한 건 역시 헤드라이너 부킹입니다. 가장 큰 비용이 들어가는 과정이라, 사실 올해 페스티벌을 준비하면서 동시에 다음 해 헤드라이너 이야기도 시작하곤 하죠. 그 일이 가장 먼저 시작하는 준비 과정입니다. 헤드라이너가 결정되면 다음 레벨의 라인업으로 넘어 갑니다.
헤드라이너가 페스티벌의 벌이에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건 맞지만, 축제의 심장이자 영혼은 아직 미처 관객들이 알지 못하는 새로운 밴드들, 특히 이 중에서도 중간 규모의 뮤지션들입니다. 그래서 개인적으로 가장 즐거운 순간은 새로운 밴드를 발굴해 라인업을 꾸릴 때입니다. 핵심은 그 밴드가 60~90분 동안 무대를 책임지며 관객을 만족시킬 수 있느냐는 점이에요. 스포티파이에 200만 스트림을 자랑하는 히트곡이 있다 하더라도 나머지 곡들이 2,000 이하면, 큰 공연은 할 수 없는 밴드라는 걸 우리는 알아 채죠. 관객들이 지루해할 테니까요. 그래서 음반이나 티켓 판매와는 상관 없이, 이 밴드가 ‘페스티벌 밴드’로서 무대의 힘과 매력을 갖췄는지를 봅니다.
ㅡ 아티스트 발굴이 중요한 역할이라고 말씀해 주셨는데요, 그렇다면 준비 기간 동안 해외 페스티벌을 직접 다니며 새로운 아티스트들을 발굴하는 작업도 하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또 그 과정에서 특히 어떤 무대나 요소에 주안점을 두고 보시는지도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실제로 국내외 다양한 페스티벌을 자주 다니면서 새로운 밴드를 발굴하려고 합니다. 특히 처음 들어보는 밴드라도 10~15분 정도 무대를 지켜보면 금방 알 수 있어요. 뭐 그냥 그럭저럭 나쁘지 않은 밴드인지, 지금 무대에서 문제가 있는지, 무대에서 특별히 느껴지는 게 없는지. 무대를 보자마자 스파크가 튀고 카리스마가 느껴지는지가 가장 중요한 기준입니다.
그래서 여러 나라를 방문해서 공연을 보는데, 재미있어요. 신선한 피를 찾아 다니는 뱀파이어가 된 기분이랄까요. 에너지로 가득차 무대를 흥분시키는 밴드가 이제 막 떠오르는 순간을 발견할 때가 가장 즐겁습니다. 제가 음악을 좋아하는 근본적인 이유라고도 하겠네요.
ㅡ 26년 동안 활동을 이어오시면서 무대에서 스파크와 카리스마를 찾아내는 눈을 키우신 게 결국 지금까지 꾸준히 일을 해오실 수 있는 원동력이자 후지 록의 뿌리가 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그렇다면, 지금까지 발굴하신 아티스트 중에서 ‘이 팀은 내가 정말 먼저 발견했다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다’거나, 도전적으로 무대에 세워봤는데 아쉬웠던 경험이 있다면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사실 이 질문이 어려운 게, 어떤 밴드가 유명해지고 나면 전 세계 20명 정도의 프로모터들이 똑같이 ‘내가 먼저 발굴했다’고 말하거든요. (웃음)
그래도 하나 예를 들자면, 후지 록은 원래 록 페스티벌이었기 때문에 초창기에는 댄스 음악을 하는 밴드를 라인업에 넣는 게 꽤 큰 리스크였습니다. 그런데 그때 과감하게 무대에 세웠던 팀이 바로 케미컬 브라더스예요. 지금은 헤드라이너로 성장해 긴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죠. 또 하나는 레드 핫 칠리 페퍼스인데, 예전에는 작은 클럽 밴드였지만 후지 록 무대를 거치고 난 뒤 지금은 엄청난 세계적인 밴드가 되었습니다. 이런 사례들을 보면, 당시의 선택이 위험해 보였을지 몰라도 결국은 큰 자부심으로 남는 순간들이 많습니다.
그래서 아까도 말한 것처럼, 신선한 피를 찾아다닌다고 한 거였어요. 20년 뒤에도 커리어의 정점에서 활약하고 있을 그런 밴드를 발굴하는 것이죠.
ㅡ 결국 프로모터의 ‘촉’이나 감각이 당시에는 작은 밴드를 발굴해 훗날 큰 밴드로 성장시키고, 또 이런 라인업을 통해 페스티벌의 브랜드를 만드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 같습니다. 26년 동안 프로모터로 활동하시면서, 본인이 가진 ‘센스’나 ‘촉’을 가장 신뢰할 수 있었던 경험이 있었다면 어땠는지 공유해 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저도 예전에 밴드에서 활동한 경험이 있습니다.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렇듯, 마음에 드는 곡이 있으면 끊임없이 반복해서 듣게 되죠. 그렇게 쌓이는 경험이 결국 저를 만드는 역사가 된 겁니다.
그래서 지금도 새로운 밴드의 신곡을 들으면, 그 안에서 음악적인 지식이나 감각이 다른 밴드와 어떻게 차별화되는지를 금방 느낄 수 있습니다. 프로듀서이자 뮤지션으로서의 경험이 그런 감각을 키워주었다고 생각합니다.

ㅡ 작년에 페스티벌 브랜딩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라인업은 단순히 유명세나 관객 동원력보다 좋은 음악과 영감을 줄 수 있는 무대를 만드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말씀을 나눈 적이 있습니다. 후지 록에서 아티스트를 선별할 때 이런 기준이 얼마나 중요하게 작용하는지, 그리고 후지 록 페스티벌의 영혼, 가장 뿌리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조니: 라인업은 해마다 달라지기에 때로는 뛰어나고 때로는 기대에 못 미칠 때도 있습니다. 라인업보다 중요한 건, 한 번 온 관객이 후지 록이 삶의 일부가 되었다고 느끼며 다시 돌아오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과거에는 소수 인원이 전체 라인업을 결정했지만, 지금은 스테이지별로 팀이 나뉘어 라인업을 구성합니다. 그래서 프로모터로서 본인 생각과 달라도 팀의 선택을 존중하고, 꼭 필요하다고 여겼던 아티스트가 섭외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매년 200팀이 넘는 아티스트가 참여하기 때문에, 스테이지별로 라인업이 늘 훌륭할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건 각 스테이지의 개성을 잘 지켜내는 것이라고 합니다.
ㅡ 페스티벌이 규모가 커지면서 스태프와 섭외 담당자들도 늘어났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다만 조금 현실적인 이야기를 하자면, 후지 록이 26년 넘게 이어져 온 데에는 결국 재정적인 순환 구조가 있었기 때문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많은 분들이 ‘이건 돈을 벌기 위한 일이 아니라, 음악을 사랑하고 미쳐 있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라고 말씀하시지만, 동시에 아시아에서 가장 큰 페스티벌로 자리 잡은 만큼 비즈니스적인 고민도 있지 않을까 궁금한데요.
실제로 후지 록의 재정적 운영은 매해 어떻게 이뤄지고 있는지, 또 최근 상황은 어떤지 간단히 들려주실 수 있을까요?
조니: 재정적으로 가장 힘들었던 순간은 코로나 때였습니다. 후지 록은 국제적인 페스티벌을 지향하지만, 당시에는 일본 밴드만으로 라인업을 꾸려야 했거든요. 지금은 해외 밴드와 일본 밴드가 반반 정도지만, 그 시기가 정말 가장 어려운 순간이었습니다.
또 후지 록은 눈에 잘 띄지 않는 방식으로 스폰서를 소수만 받아들입니다. 그래서 예산을 한 번 정해 두면 그 이상으로 절대 넘어가지 않아야 합니다. 너무나 섭외하고 싶은 서양의 아티스트가 나타나도 선뜻 초청하기 어렵죠. 유럽이나 북미에서 크게 성공한 아티스트들은 일본에서도 자신들의 인지도가 비슷할 거라고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아무리 지역에서 유명해도 대부분 일본에선 인지도가 인구의 5% 미만입니다. 그래서 세계적인 인지도를 가진 탑티어 아티스트가 아니면 큰 예산을 쓰기 어렵고 나머지는 대부분 인디나 얼터너티브입니다. 그리고 이 새로운 공연들이 우리가 만드는 축제의 정신(spirit)입니다.
축제에선 언제나 돈이 문제죠. 저희는 지금까지 적자를 낸 적이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행운이라 생각합니다. 어쨌든, 음악 비즈니스란 돈과 창의력(Creativity)의 결혼이라고 생각합니다. 다행히 저흰 아직 이혼은 안 했고요.

ㅡ 마지막으로 여쭤보고 싶은 것은, 앞으로도 후지 록의 프로모터로 활동을 이어가실 텐데요. 지금까지 많은 것을 이루어 오셨지만, 앞으로 꼭 이루고 싶은 소망이나 목표가 있다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예를 들어 꼭 데려와 보고 싶은 아티스트나, 평생 함께하고 싶은 팀 같은 구체적인 바람이 있으실까요?
조니: 아시아가 하나의 신으로 연결되어, 뮤지션이 아시아 여러 도시에서 투어를 할 수 있는 지금의 상황이 저는 매우 마음에 들어요. 아시아 각국의 프로모터들이 이렇게 함께 협력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져 아시아가 글로벌 시장에서 이전보다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게 돼요. 유럽처럼 말이죠. 이게 제가 오랫동안 바래왔던 저의 목표예요. 영미권의 주요 에이전시들은 아시아라면 일본이나 한국 정도만 알고, 태국이나 인도네시아, 대만 같은 나라에 대해선 여전히 아무것도 몰라요. 그들의 잘못이죠.
언어의 장벽이 큰 것도 문제입니다. 글로벌하게 통용되는 영어가 아니라면, 페스티벌에서 잘 모르는 언어로 노래하는 아티스트는 경쟁력이 좀 떨어지는 게 현실입니다. 그럼에도 최근 프리마베라와 같은 해외 페스티벌들과 이야기해보면, 아시아에서 유능한 밴드들이 많다는 걸 그들도 알고 있고 실제로 무대에 세우려는 니즈가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는 해외 아티스트들이 아시아를 투어하고, 동시에 아시아 밴드들도 해외에서 동등한 대우를 받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것, 그것이 제가 가장 이루고 싶은 큰 꿈입니다.
ㅡ 최근 한국에서도 페스티벌 관련 일을 하시는 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아시아의 힘의 확장과 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정말 높아지고 있음을 느낍니다.
오늘 좋은 말씀 나눠주셔서 감사드리고, 또 함께해주신 여러분들 사이에서도 이런 좋은 에너지가 이어져 앞으로 더 흥미로운 페스티벌의 그림이 그려지기를 기대합니다.
INSIGHT
ISSUE 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