댄스 음악을 매개로 인터내셔널이
그리는 언더그라운드 씬의 미래
인터내셔널은 파운더인 임솔, 그리고 DJ이자 음악을 만드는 비전(V!SION), 아렉시보(Arexibo), 예츠비(Yetsuby)가 함께하는 팀이다. 어떤 접점으로 인터내셔널을 처음 알게되는 지에 따라 사람들은 이들을 제각기 패션 브랜드, 파티 크루, 디제이 스쿨, 레이블, 또는 그저 멋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인식한다. 이런 모든 인식을 아우르며 국내 전자/댄스 음악 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터내셔널. 현재는 굵직한 활동 중에 하나로, 첫 아시아 투어를 돌고 있는 중이다. 왜 인터내셔널이 움직이면 같은 파티를 만들어도 조금 더 묵직하게 다가왔을까. 인터내셔널이 들려주는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 씬에 대한 이야기와 이들이 그리는 성장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김해인
The Internatiiional 인터내셔널의 비전, 아렉시보, 예츠비, 그리고 임솔과의 대화
ⓒWoojeong Lee
NEXT
PRE
최근 톰 요크의 음악이
한국에서 자주 들렸던 이유
ISSUE4 06.INSIGHT
김해인 haein@alpsinc.kr
(주)알프스와 DMZ 피스트레인 뮤직 페스티벌에서 컨텐츠 기획과 홍보, 마케팅을 담당한다.
—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을 인식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관심이 생겨 들여다보니 WELCOME TO ACID HOUSE를 만든 브랜드였다는 사실에 놀랐고요. 코로나 제한이 풀린 작년 이후 많은 것들이 새롭게 다시 등장한 것처럼, 인터내셔널도 오래된 팀이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의 멤버는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요?
임솔: 인터내셔널의 시작은 2017년이에요. 처음에 브랜드를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댄스 음악과 전자 음악에 대해 말하는 브랜드를 만들자고 한거죠. 브랜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WELCOME TO ACID HOUSE 라는 문구로 티셔츠를 만들었고, 이 문구의 의미를 이해하는 DJ들의 서포트를 즉각적으로 받게되었어요. 외국에서까지 팬덤이 생길 정도로요. 그렇게 안팎으로 커나가던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코로나 기간 동안 인터내셔널이 코어로 삼고 있는 커뮤니티 자체가 붕괴됐고, 도저히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어요. 그런 힘든 시기에 비전과 예츠비가 합류했죠.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버티다 보면 풀리는 순간이 오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팀을 이뤘어요.
아렉시보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왔는데, 인터내셔널에서 진행하는 디제이 워크샵에 강사로 섭외하면서 친해지게 되었어요.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지치게 되는 여러 구간이 있는데요. 아렉시보를 만나고서 이렇게 좋은 사람이 지쳐서 씬을 떠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와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인터내셔널의 시그니처 welcome to acid house
— 비전, 예츠비와 아렉시보가 합류하기 전부터 인터내셔널의 대표적인 기획 파티인 ‘RAVE AGE’라는 파티가 있었는데요. 패션 브랜드가 초창기부터 언더그라운드 파티를 기획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임솔: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우리가 디제이 커뮤니티와 함께 호흡하는 브랜드인데 당연히 파티를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파티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기 보다는 씬에 있으면서 늘 해왔던 거고 잘할 수 있는 일 이었고요. 인터내셔널이라는 브랜드로 파티 정도는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았으니, 조금씩 더 욕심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다 초대해서 진짜 끝내주는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대담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게 레이브 에이지라는 파티죠.
예츠비: 저는 합류하기 전부터 인터내셔널의 행보를 좋아했던 팬이에요. 처음에 인터내셔널을 알게 된 것도 옷보다는 파티로 먼저 알게 됐어요. 케익샵 옆에 콘트라라는 지금은 없어진 클럽에서 인터내셔널이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그 파티가 항상 너무 멋있고 재밌는 거예요. 지금은 제가 합류를 하면서 인터내셔널의 파티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게 새삼 좋아요.
2019년 도쿄 Rave Age 파티 포스터
— 코로나 제한이 풀린 작년 이후, 지금 이 멤버로 새롭게 파티를 다시 열 수 있게 되면서 이전과 달라진 방향성이 있나요? 내부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예츠비: 저는 리스너들의 분위기가 완전 바뀐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코로나 이전의 분위기보다 관객끼리 끈끈하고, 음악을 진짜 즐길 줄 아는 녀석들이 오기 시작한 게 있죠.(웃음) 음악도 훨씬 재밌어졌고 그 음악에 장단을 맞추는 리스너들도 달라졌고요. 새로운 DJ들도 많이 등장했어요. 이런 변화의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즐겁습니다.
임솔: 이전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패션브랜드의 형태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요. 차츰 우리가 인터내셔널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만들고자 하는 그림이 멋진 옷을 시즌에 맞게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옷을 매개로 모이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 그런 게 우리가 더 지향하는 방향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정리가 됐어요. 그 생각이 정리되고 나서 작년부터 엄청나게 많은 활동을 시작했어요.
— 그런 활동들 중에 가장 눈에 띄고 중심에 있다고 생각되는 게 아무래도 기획 파티인 것 같아요. 파티만 만드는 데에도 프로모터로서 할 일이 엄청 많잖아요. 그러면서 여전히 옷도 만들어야 하고, 또 레이블로서 음반을 내기도 하시죠. 동시에 여러 갈래의 일이 돌아갈 것 같은데, 팀 내에서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임솔: 옷을 만드는 일은 저랑 비전이 많이 맡아서 하고 있어요. 제가 디자인이랑 상품 기획을 하고 비전이 생산을 관리하죠. 예츠비는 인터내셔널의 음악적인 활동들을 많이 맡고 있고요. 아렉시보는 기획자로서의 힘이 있어서 생각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써주고 있어요. 파티를 기획할 때는 많은 걸 다같이 얘기하면서 결정하고요.
예츠비: 사실 저희가 좀 지독하거든요. 파티 라인업을 짤 때 온갖 토론을 해요. 라인업 정하는 데 며칠씩 계속 얘기를 하죠. 이 사람은 저번에 불렀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같이 일하기 좋다, 음악은 이런 스타일이라서 좋을 것 같다는 둥 사소한 것들을 다 얘기하고, 많은 걸 회의를 통해 결정해요.
— 인터내셔널 파티의 라인업을 구성할 때 특정 전자음악 장르에 기반한 기준 같은 게 있나요? 파티를 만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예츠비: 장르에 제한이 있지는 않아요. 저는 우리 파티의 장점 중 하나가 장르가 하나만 나오지 않는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 파티 안에서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려 하죠.
임솔: 레이브 에이지라는 파티는 기본적으로 라인업을 짤 때 다양한 장르를 섞어요. 한 곳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을 다 모으자는 컨셉으로 구상하죠.
인터내셔널 파티에는 항상 멤버들도 음악을 트는데요, 저는 무엇보다 우리 무대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대가 임팩트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하는 것 같아요. 지금 멤버들이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저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 사람들이 놀 만한 무대가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파티를 기획하는 것 같아요.
— 조금 감동적인 마음이네요. 파티의 기반이 되는 레이브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80~90년대 영국 일렉트로닉 씬에서 레이브 컬쳐가 등장을 했고, 이후에 그 문화가 발전해 온 나름의 방식이 있을텐데요. 인터내셔널이 생각하는 동시대의 레이브, 더 나아가 라이브 공연으로서의 레이브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비전: 80~90년대 영국의 젊은이들이 정부에 저항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레이브였던 건데, 그 정신이 전달되는 방식이 라이브라는 게 핵심이라는 생각을 해요. 음악을 틀고 있는 DJ와 관객이 서로 소통을 하면서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관객과 DJ의 소통이 레이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렉시보: 레이브가 문화적으로 다양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저에게는 강렬한 신체적 체험인 것 같아요. 퍼스널라이즈된 사운드 시스템, 예를 들면 헤드폰이나 소형 스피커와 다수를 향해 나와 있는 거대한 스피커의 체험은 완전히 다른 신체적인 감각을 주죠. 거대한 스피커를 통한 초월적 경험은 소형 스피커로는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고, 무엇보다 순간적이고 즉각적이에요. 말 그대로 그 자리에 가지 않으면 벌어지지 않을 것들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이런 것이 레이브가 라이브여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요즘에는 유튜브 스트리밍이 잘 되어 있어서 보일러룸 등 여러 채널을 즐겨 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현장감이 있는 사운드는 집에서 들을 때의 음악과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드는 건 아무래도 현장감이 중요한 레이브적 경험인 것 같습니다.
예츠비: Amazing!
Boiler Room Seoul: The Internatiiional 파티 현장 - V!SION
임솔: 기본적으로 레이브는 어딘가에 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통념, 사회적 약속, 주류 문화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서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면서 만드는 거죠. 원래 레이브라고 하면 불법적으로 비밀스러운 공간을 갑자기 점유해서 거기에 사운드 시스템을 가져가서 놀고, 경찰이 오면 도망가고 그런 게 시작이었어요. 물론 우리가 지금 한국에서 그런 걸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레이브의 코어에 있는 정신을 어느 정도 공명하면서 가져가고 싶은 것 같아요.
— 말씀하신 것처럼 반항으로 다소 거칠게 시작됐던 레이브 문화가 지금은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잖아요. 레이브가 발생했을 때와 시대도 다르고, 또 여기는 한국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서울에서의 레이브는 어떤 것인지, 서울의 댄스 음악 문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방금 솔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터내셔널도 나름대로 레이브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활동을 하신다고 하면 그게 실제로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걸까요?
아렉시보: 저는 전반적으로 본래 레이브라는 하위 문화를 그대로 갖다가 의미를 등치시키기에 지금은 너무 다른 시대라고 생각을 해요. 그 의미를 계승한다기보다 레이브를 표면적으로만 차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해외에서 온 한 DJ가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웨어하우스 이벤트의 포스터를 보고 실제로 (영국에서 레이브를 얘기할 때 받아들여지는 의미로써) 불법적인 이벤트가 맞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다 적법하게 신고가 되어 있는 공간에서 적지 않은 자원을 들여 웨어하우스형 이벤트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흐름이죠.
예츠비: 저는 한국의 씬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얘기하면 서울에만 이런 흐름들이 모여 있는 게 아쉬워요. 해외에서 아티스트가 와서 이벤트를 한다고 해도 서울밖에 옵션이 없거든요. 일본만 봐도 도쿄가 아닌 곳에도 씬이 있어서 한 나라 안에서 투어를 돌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한국은 아직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나중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되면 이런 부분에 힘을 쓰고 싶어요.
임솔: 이 씬에서 오랫동안 들었던 얘기가 한국에는 씬이 없다는 거였어요.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의 숫자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 자체가 발생하지 않으니 씬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얘기였죠. 근데 이제야 양적인 확장이 조금씩은 되고 있다는 걸 체감해요. 아시아에 외국 아티스트들이 온다고 했을 때 서울에 오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도 늘었고요. 그들을 받을 수 있는 클럽도 늘었고 예전보다는 이 문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와중에 우리가 레이브라는 단어를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문화의 순수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건데요.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것들이 꼭 레이브의 계승이어야 한다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이런 체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고 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초월하는 경험, 그러니까 정체돼 있고 지루한 무언가를 계속 깨워주는 각성과 같은 차원에서 이런 게 계속 있었으면 좋겠는 거거든요.
— 인터내셔널이 하는 또 다른 굵직한 활동 중에 하나가 디제이 워크샵 2dfx 인데요. 이런 활동들이 씬의 커뮤니티를 확장하고 인터내셔널의 기반을 넓힐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솔: 2dfx라는 DJ 워크샵은 코로나 시기에 커뮤니티를 다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커뮤니티가 거의 소멸되는 것 같은 위기감이 드니 커뮤니티를 다시 가시화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새롭게 DJ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요.
물론 지금은 비전도 선생님으로 있지만 처음에 예츠비와 아렉시보를 더 내세운 건, 여자 DJ가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디제잉은 보통 일대일로 많이 배우는 편인데, 그런 방식보다는 열려 있는 공간에서 여러 사람을 한 번에 가르칠 수 있는 안전한 형태의 워크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여자 DJ가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는 걸 공공연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기존에는 많이 보지는 못했던 형태에요.
DJ 워크샵 2dfx 포스터
— 가르치는 건 파티나 음악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 각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예츠비: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이 문화와 음악을 너무 애정하는 게 느껴져요. 이제는 워크샵의 한 기수 안에서 크루도 생기고 파티도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했죠. 디제잉을 넘어서 음악을 같이 좋아하게 된다는 게 정말 좋은 시작이잖아요. 인터내셔널도 이렇게 시작했을 거 아닙니까. 이런 씬의 성장을 눈 앞에서 볼 때마다 엄청 감동스럽죠.
임솔: 클럽에서 사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모르잖아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곳이니까 혼자서 클럽을 가는 게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일 수 있어요. 근데 이제 같이 갈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또 실제로 비전, 아렉시보, 예츠비가 음악을 틀면 수강생 분들이 되게 많이 오세요. 이런 활동을 통해 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인 것 같아요.
예츠비: 제가 DJ라는 꿈을 갖기도 전에, 클럽에서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항상 혼자 다녔거든요. 소중하지만 외롭기도 한 기억이에요. 그날 그 DJ 셋 진짜 좋지 않았냐 이런 말을 나눌 사람도 없어. 근데 여기서 같이 배우는 분들은 그런 친구가 생긴 거니까 얼마나 좋아요.
임솔: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반가운 것 같아요. 가르치면서 새로 발견하게 되는 DJ도 있고 트랙 메이킹을 하는 사람도 있고, 파티 프로모터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아니면 그냥 진짜 같이 클럽 갈 사람들이 생겨서 음악 들으러 다니는 분들도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화를 중심에 두고 갖고 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체험을 하게 되니까 좋죠.
DJ 워크샵 2dfx 레슨 사진
— 보람도 있지만 인터내셔널 멤버 한 분 한 분이 일이 많고 바쁘시잖아요. 가르치는 일들이 장기적으로는 힘에 부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다들 힘을 얻으시는 게 대단해요.
예츠비: 물론 힘들죠 하하하.
아렉시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에너지를 엄청 많이 쓰는 일이기는 해요. 근데도 그 힘듦을 넘어서는 보람이나 이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생기니까 아직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아요. 오히려 힘이 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DJ 워크샵의 마지막 코스로 수강생들의 파이널 쇼를 하는데, 그때 한 명 한 명의 믹스를 듣고 있으면 엄청 뿌듯합니다.
예츠비: 우리가 씬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들끼리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사라져도 이들은 유지가 되겠구나 싶고요.
— 레이블로서 인터내셔널의 얘기도 듣고 싶어요. 최근에는 작년에 인터내셔널에서 발매한 예츠비의 [MY STAR MY PLANET MY EARTH]가 2024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얻기도 했고요. 자연스럽게 프로듀서, 뮤지션들이 있다보니 레이블의 기능도 하게 된 건가요?
임솔: 실제로 외국의 레코드 레이블이 머천다이즈를 만들 때 티셔츠를 꼭 만들어요. 인터내셔널은 패션 브랜드로 시작을 했지만 옷보다 음악에 대한 얘기를 훨씬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레이블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원들이 다 트랙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자연스럽게 우리의 다음 스텝은 레이블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작년에 인터내셔널의 첫 앨범을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예츠비가 본인이 클럽에서 틀고 싶은 트랙들을 리믹스해서 그걸 묶어 앨범으로 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무슨 신호가 왔는지 본인한테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진짜 본인의 음악을 만들어 오겠다 하더라고요. 저는 예츠비를 오래 봐왔으니 예츠비가 뭔가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고 한 열흘 만에 앨범을 만들어 왔는데, 처음에 들었을 때 저에게는 충격적인 체험으로 다가왔어요. 정말 너무 좋았어요.
2024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을 수상한
예츠비의 앨범 [My Star My Planet My Earth]
— 그렇게 인터내셔널에서 나온 첫 앨범이 좋은 상까지 받으니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임솔: 상까지 타니까 진짜 짜릿하더라고요.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주고받은 결과가 사람들한테도 잘 받아들여져서 결과로 돌아오니까 우리 안에서는 예츠비가 영웅이 된 거죠. 우리 팀으로서도 필요한 성과였고 좋은 계기가 돼서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경험이 된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레코드 레이블을 얼렁뚱땅 시작했지만 그게 너무 좋은 형태로 돌아와서 좀 감동적이죠. 근데 이 다음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예츠비님도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예츠비: 앨범을 만들기 전에 자기 반성의 시간이 있었어요. 스스로 음악을 너무 쉽게 만들고 있고 음악을 어떤 창작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한 거예요. 그동안의 전자음악 생활을 돌아보면서 제 이름으로 나온 음반 중에서 진짜 나의 음악을 만든 게 없다고 느껴지기까지 했어요. 예츠비라는 아티스트를 음악으로 설명할 때 현존하는 건 없구나 하는 위기감이 생긴거죠.
그런 마음으로 다시 잘해보자고 절치부심해서 만든 앨범이 성과를 내서 상을 탔으니 스스로 의미가 커요. 인터내셔널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기운이 담겨 있는 음악이 인정을 받으니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 레이블로서 인터내셔널의 다음 계획은요?
예츠비: 레이블의 업무는 제가 주도적으로 맡고 있는데요. 메인 스트림이 아닌 음악을 다루는 레이블이 성장하거나 유지되기가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예츠비뿐만 아니라 살라만다로도 일을 하고 있어서 일찌감치 그런 걸 많이 느꼈죠. 인터내셔널이 아직은 PR 회사나 유통회사를 고용해서 일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고 아직까지는 창작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가 착한 레이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음악이 당장 팔리든, 그렇지 않든 나중에 모아서 봤을 때 우리의 카탈로그를 알아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려고요. 여성의 날에 기획해서 발매한 컴필레이션도 그런 마음이었고, 지금은 유명하진 않지만 평소에 이 친구는 음악이 진짜 좋은데 왜 릴리즈가 없을까 생각했던 친구들을 꼬셔서 음반을 내도록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요. 이 일도 결국에는 레이블로서만이 아니라 인터내셔널이 빌딩하고자 하는 커뮤니티적인 활동의 연장선이 아닐까요.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인터내셔널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 하시는 모든 일에 사명감이 엄청난데요.
예츠비: 우리가 그러려고 모인 건 아닌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아렉시보: 어깨가 무거워요.
임솔: 비슷한 문제 의식을 오랫동안 가져온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앞장서서 좋은 사례를 많이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이 세계가 안전하게 커나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인터내셔널 팀 공동의 목표인 것 같네요. 이 외에도 각자 그리는 인터내셔널의 비전이 있다면요?
비전: 저는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지금은 팀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행동이나 경험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그에 적응하는 뇌의 능력을 말하는 신경 가소성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서 그런 작용을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렉시보: 저도 비슷한 마음이에요. 함께 같이, 조금씩 땅을 넓히면서도 단단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장을 올해부터 다시 꿈꿔봐야죠. 그렇습니다.
Boiler Room Seoul: The Internatiiional 파티 현장 - Yetsuby
댄스 음악을 매개로 인터내셔널이
그리는 언더그라운드 씬의 미래
인터내셔널은 파운더인 임솔, 그리고 DJ이자 음악을 만드는 비전(V!SION), 아렉시보(Arexibo), 예츠비(Yetsuby)가 함께하는 팀이다. 어떤 접점으로 인터내셔널을 처음 알게되는 지에 따라 사람들은 이들을 제각기 패션 브랜드, 파티 크루, 디제이 스쿨, 레이블, 또는 그저 멋진 사람들의 집단으로 인식한다. 이런 모든 인식을 아우르며 국내 전자/댄스 음악 씬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터내셔널. 현재는 굵직한 활동 중에 하나로, 첫 아시아 투어를 돌고 있는 중이다. 왜 인터내셔널이 움직이면 같은 파티를 만들어도 조금 더 묵직하게 다가왔을까. 인터내셔널이 들려주는 언더그라운드 댄스 음악 씬에 대한 이야기와 이들이 그리는 성장에 대해 함께 이야기를 나눴다.
Interview | 김해인
The Internatiiional 인터내셔널의 비전, 아렉시보, 예츠비, 그리고 임솔과의 대화
ⓒWoojeong Lee
NEXT
PRE
ISSUE4 06.INSIGHT
최근 톰 요크의 음악이
한국에서 자주 들렸던 이유
— 인터내셔널이라는 이름을 인식하게 된 지는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관심이 생겨 들여다보니 WELCOME TO ACID HOUSE를 만든 브랜드였다는 사실에 놀랐고요. 코로나 제한이 풀린 작년 이후 많은 것들이 새롭게 다시 등장한 것처럼, 인터내셔널도 오래된 팀이지만 새로운 시작을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지금의 멤버는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요?
임솔: 인터내셔널의 시작은 2017년이에요. 처음에 브랜드를 같이 시작한 친구들이 있었는데요, 그 친구들과 함께 우리가 오랫동안 좋아해 온 댄스 음악과 전자 음악에 대해 말하는 브랜드를 만들자고 한거죠. 브랜드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WELCOME TO ACID HOUSE 라는 문구로 티셔츠를 만들었고, 이 문구의 의미를 이해하는 DJ들의 서포트를 즉각적으로 받게되었어요. 외국에서까지 팬덤이 생길 정도로요. 그렇게 안팎으로 커나가던 와중에 코로나가 터졌어요.
코로나 기간 동안 인터내셔널이 코어로 삼고 있는 커뮤니티 자체가 붕괴됐고, 도저히 회복의 기미가 보이질 않았어요. 그런 힘든 시기에 비전과 예츠비가 합류했죠.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같이 버티다 보면 풀리는 순간이 오지 않겠냐는 생각을 하면서 자연스럽게 팀을 이뤘어요.
아렉시보는 이전부터 알고 지내왔는데, 인터내셔널에서 진행하는 디제이 워크샵에 강사로 섭외하면서 친해지게 되었어요. 국내 언더그라운드 음악 씬에서 활동을 하다보면 지치게 되는 여러 구간이 있는데요. 아렉시보를 만나고서 이렇게 좋은 사람이 지쳐서 씬을 떠나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우리와 함께 하자는 제안을 했어요.
인터내셔널의 시그니처 welcome to acid house
— 비전, 예츠비와 아렉시보가 합류하기 전부터 인터내셔널의 대표적인 기획 파티인 ‘RAVE AGE’라는 파티가 있었는데요. 패션 브랜드가 초창기부터 언더그라운드 파티를 기획했던 이유가 있었나요?
임솔: 특별한 이유라기보다 우리가 디제이 커뮤니티와 함께 호흡하는 브랜드인데 당연히 파티를 만드는 게 맞다고 생각했어요. 파티는 새로운 도전이었다기 보다는 씬에 있으면서 늘 해왔던 거고 잘할 수 있는 일 이었고요. 인터내셔널이라는 브랜드로 파티 정도는 할 수 있는 기반을 다져놓았으니, 조금씩 더 욕심을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우리가 좋아하는 아티스트들을 다 초대해서 진짜 끝내주는 무언가를 만들어보자는 대담한 마음으로 만들었던 게 레이브 에이지라는 파티죠.
예츠비: 저는 합류하기 전부터 인터내셔널의 행보를 좋아했던 팬이에요. 처음에 인터내셔널을 알게 된 것도 옷보다는 파티로 먼저 알게 됐어요. 케익샵 옆에 콘트라라는 지금은 없어진 클럽에서 인터내셔널이 파티를 자주 열었는데, 그 파티가 항상 너무 멋있고 재밌는 거예요. 지금은 제가 합류를 하면서 인터내셔널의 파티를 함께 만들고 있다는 게 새삼 좋아요.
2019년 도쿄 Rave Age 파티 포스터
— 코로나 제한이 풀린 작년 이후, 지금 이 멤버로 새롭게 파티를 다시 열 수 있게 되면서 이전과 달라진 방향성이 있나요? 내부에서 어떤 변화를 느끼고 계신지 궁금합니다.
예츠비: 저는 리스너들의 분위기가 완전 바뀐 것 같아요. 힘든 시기를 같이 보내서 그런지는 몰라도, 코로나 이전의 분위기보다 관객끼리 끈끈하고, 음악을 진짜 즐길 줄 아는 녀석들이 오기 시작한 게 있죠.(웃음) 음악도 훨씬 재밌어졌고 그 음악에 장단을 맞추는 리스너들도 달라졌고요. 새로운 DJ들도 많이 등장했어요. 이런 변화의 과정에 포함되어 있다는 사실이 즐겁습니다.
임솔: 이전에는 어떤 식으로든지 패션브랜드의 형태를 가지고 가야 한다는 강박이 있었는데요. 차츰 우리가 인터내셔널이라는 브랜드를 가지고 만들고자 하는 그림이 멋진 옷을 시즌에 맞게 내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옷을 매개로 모이는 사람들과의 커뮤니티를 형성하는 것, 그런 게 우리가 더 지향하는 방향일 것 같다는 생각으로 정리가 됐어요. 그 생각이 정리되고 나서 작년부터 엄청나게 많은 활동을 시작했어요.
— 그런 활동들 중에 가장 눈에 띄고 중심에 있다고 생각되는 게 아무래도 기획 파티인 것 같아요. 파티만 만드는 데에도 프로모터로서 할 일이 엄청 많잖아요. 그러면서 여전히 옷도 만들어야 하고, 또 레이블로서 음반을 내기도 하시죠. 동시에 여러 갈래의 일이 돌아갈 것 같은데, 팀 내에서 역할 분담은 어떻게 되어있나요?
임솔: 옷을 만드는 일은 저랑 비전이 많이 맡아서 하고 있어요. 제가 디자인이랑 상품 기획을 하고 비전이 생산을 관리하죠. 예츠비는 인터내셔널의 음악적인 활동들을 많이 맡고 있고요. 아렉시보는 기획자로서의 힘이 있어서 생각하는 데에 시간을 많이 써주고 있어요. 파티를 기획할 때는 많은 걸 다같이 얘기하면서 결정하고요.
예츠비: 사실 저희가 좀 지독하거든요. 파티 라인업을 짤 때 온갖 토론을 해요. 라인업 정하는 데 며칠씩 계속 얘기를 하죠. 이 사람은 저번에 불렀던 것 같다, 어떤 사람은 같이 일하기 좋다, 음악은 이런 스타일이라서 좋을 것 같다는 둥 사소한 것들을 다 얘기하고, 많은 걸 회의를 통해 결정해요.
— 인터내셔널 파티의 라인업을 구성할 때 특정 전자음악 장르에 기반한 기준 같은 게 있나요? 파티를 만들 때 특별히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이 있다면요.
예츠비: 장르에 제한이 있지는 않아요. 저는 우리 파티의 장점 중 하나가 장르가 하나만 나오지 않는다는 거라고 생각해요. 한 파티 안에서 다채로운 음악을 선보이려 하죠.
임솔: 레이브 에이지라는 파티는 기본적으로 라인업을 짤 때 다양한 장르를 섞어요. 한 곳에서 보기 어려운 사람들을 다 모으자는 컨셉으로 구상하죠.
인터내셔널 파티에는 항상 멤버들도 음악을 트는데요, 저는 무엇보다 우리 무대를 제대로 만들어야 한다는 생각에 무대가 임팩트가 있어야 된다는 생각을 늘 하는 것 같아요. 지금 멤버들이 정말 잘 하는 사람들이라는 걸 저는 누구보다 잘 아니까 이 사람들이 놀 만한 무대가 일정 수준 이상은 되어야 한다는 마음이 있어요. 그런 마음으로 파티를 기획하는 것 같아요.
— 조금 감동적인 마음이네요. 파티의 기반이 되는 레이브 얘기로 넘어가 볼게요. 80~90년대 영국 일렉트로닉 씬에서 레이브 컬쳐가 등장을 했고, 이후에 그 문화가 발전해 온 나름의 방식이 있을텐데요. 인터내셔널이 생각하는 동시대의 레이브, 더 나아가 라이브 공연으로서의 레이브 문화는 무엇이라고 생각하나요?
비전: 80~90년대 영국의 젊은이들이 정부에 저항하는 방식 중에 하나가 레이브였던 건데, 그 정신이 전달되는 방식이 라이브라는 게 핵심이라는 생각을 해요. 음악을 틀고 있는 DJ와 관객이 서로 소통을 하면서 같은 자리에 있는 것. 관객과 DJ의 소통이 레이브의 본질이라고 생각합니다.
아렉시보: 레이브가 문화적으로 다양한 의미가 있을 수 있지만 지금 저에게는 강렬한 신체적 체험인 것 같아요. 퍼스널라이즈된 사운드 시스템, 예를 들면 헤드폰이나 소형 스피커와 다수를 향해 나와 있는 거대한 스피커의 체험은 완전히 다른 신체적인 감각을 주죠. 거대한 스피커를 통한 초월적 경험은 소형 스피커로는 느끼기 어려운 감각이고, 무엇보다 순간적이고 즉각적이에요. 말 그대로 그 자리에 가지 않으면 벌어지지 않을 것들이 거기에 있으니까요.
이런 것이 레이브가 라이브여야 하는 이유이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요즘에는 유튜브 스트리밍이 잘 되어 있어서 보일러룸 등 여러 채널을 즐겨 듣기도 하지만 아무래도 현장감이 있는 사운드는 집에서 들을 때의 음악과는 정말 다른 것 같아요. 우리가 만드는 건 아무래도 현장감이 중요한 레이브적 경험인 것 같습니다.
예츠비: Amazing!
Boiler Room Seoul: The Internatiiional 파티 현장 - V!SION
임솔: 기본적으로 레이브는 어딘가에 반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어요. 어떤 통념, 사회적 약속, 주류 문화에 대해서 지루함을 느끼는 사람들이 모여서 엄청나게 큰 소리를 내면서 만드는 거죠. 원래 레이브라고 하면 불법적으로 비밀스러운 공간을 갑자기 점유해서 거기에 사운드 시스템을 가져가서 놀고, 경찰이 오면 도망가고 그런 게 시작이었어요. 물론 우리가 지금 한국에서 그런 걸 하고 있는 건 아니지만, 그래도 레이브의 코어에 있는 정신을 어느 정도 공명하면서 가져가고 싶은 것 같아요.
— 말씀하신 것처럼 반항으로 다소 거칠게 시작됐던 레이브 문화가 지금은 그대로 이어지지는 않잖아요. 레이브가 발생했을 때와 시대도 다르고, 또 여기는 한국이기도 하고요. 그러면 서울에서의 레이브는 어떤 것인지, 서울의 댄스 음악 문화에는 어떤 특징이 있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금해요. 방금 솔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인터내셔널도 나름대로 레이브의 정신을 계승한다는 방향성을 갖고 활동을 하신다고 하면 그게 실제로는 어떻게 적용되고 있는 걸까요?
아렉시보: 저는 전반적으로 본래 레이브라는 하위 문화를 그대로 갖다가 의미를 등치시키기에 지금은 너무 다른 시대라고 생각을 해요. 그 의미를 계승한다기보다 레이브를 표면적으로만 차용하는 경우도 많은 것 같고요.
해외에서 온 한 DJ가 서울에서 열리는 여러 웨어하우스 이벤트의 포스터를 보고 실제로 (영국에서 레이브를 얘기할 때 받아들여지는 의미로써) 불법적인 이벤트가 맞냐고 물어본 적이 있어요. 한국에서는 다 적법하게 신고가 되어 있는 공간에서 적지 않은 자원을 들여 웨어하우스형 이벤트들이 만들어지고 있는 흐름이죠.
예츠비: 저는 한국의 씬에 대한 전반적인 생각을 얘기하면 서울에만 이런 흐름들이 모여 있는 게 아쉬워요. 해외에서 아티스트가 와서 이벤트를 한다고 해도 서울밖에 옵션이 없거든요. 일본만 봐도 도쿄가 아닌 곳에도 씬이 있어서 한 나라 안에서 투어를 돌 수 있는 여건이 되는데 한국은 아직 쉽지 않은 것 같아요. 제가 나중에 더 훌륭한 사람이 되면 이런 부분에 힘을 쓰고 싶어요.
임솔: 이 씬에서 오랫동안 들었던 얘기가 한국에는 씬이 없다는 거였어요. 만드는 사람과 즐기는 사람의 숫자가 현저히 적기 때문에 일정 수준 이상의 규모 자체가 발생하지 않으니 씬이라고 부를 수도 없다는 얘기였죠. 근데 이제야 양적인 확장이 조금씩은 되고 있다는 걸 체감해요. 아시아에 외국 아티스트들이 온다고 했을 때 서울에 오고 싶어 하는 아티스트도 늘었고요. 그들을 받을 수 있는 클럽도 늘었고 예전보다는 이 문화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늘지 않았나 싶어요.
이런 와중에 우리가 레이브라는 단어를 계속 생각을 하다 보니 그 문화의 순수성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되는 건데요. 우리가 만들려고 하는 것들이 꼭 레이브의 계승이어야 한다기보다는 우리 스스로 이런 체험이 필요하기 때문에 만들고 있다는 말이 더 맞는 것 같아요. 초월하는 경험, 그러니까 정체돼 있고 지루한 무언가를 계속 깨워주는 각성과 같은 차원에서 이런 게 계속 있었으면 좋겠는 거거든요.
— 인터내셔널이 하는 또 다른 굵직한 활동 중에 하나가 디제이 워크샵 2dfx 인데요. 이런 활동들이 씬의 커뮤니티를 확장하고 인터내셔널의 기반을 넓힐 수 있다는 차원에서 이뤄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임솔: 2dfx라는 DJ 워크샵은 코로나 시기에 커뮤니티를 다시 만드는 작업이 필요할 것 같다고 생각해서 시작했어요. 커뮤니티가 거의 소멸되는 것 같은 위기감이 드니 커뮤니티를 다시 가시화하고 싶다는 생각이었죠. 새롭게 DJ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은 어떤 사람들일까에 대한 궁금증도 있었고요.
물론 지금은 비전도 선생님으로 있지만 처음에 예츠비와 아렉시보를 더 내세운 건, 여자 DJ가 선생님이 됐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에요. 디제잉은 보통 일대일로 많이 배우는 편인데, 그런 방식보다는 열려 있는 공간에서 여러 사람을 한 번에 가르칠 수 있는 안전한 형태의 워크샵이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죠. 여자 DJ가 여러 사람들을 가르치는 걸 공공연하게 만드는 분위기를 형성하는 게 기존에는 많이 보지는 못했던 형태에요.
DJ 워크샵 2dfx 포스터
— 가르치는 건 파티나 음악을 만드는 것과는 또 다른 영역인데요, 이 부분에 대해 각자 어떤 생각을 가지고 계신가요?
예츠비: 배우러 오시는 분들이 이 문화와 음악을 너무 애정하는 게 느껴져요. 이제는 워크샵의 한 기수 안에서 크루도 생기고 파티도 만드는 단계까지 발전했죠. 디제잉을 넘어서 음악을 같이 좋아하게 된다는 게 정말 좋은 시작이잖아요. 인터내셔널도 이렇게 시작했을 거 아닙니까. 이런 씬의 성장을 눈 앞에서 볼 때마다 엄청 감동스럽죠.
임솔: 클럽에서 사실 어떤 일이 벌어질지 잘 모르잖아요. 어떤 일도 벌어질 수 있는 곳이니까 혼자서 클럽을 가는 게 누군가에겐 어려운 일일 수 있어요. 근데 이제 같이 갈 사람들이 생기는 거죠. 또 실제로 비전, 아렉시보, 예츠비가 음악을 틀면 수강생 분들이 되게 많이 오세요. 이런 활동을 통해 팬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는 느낌이 들어요. 서로에게 좋은 영향인 것 같아요.
예츠비: 제가 DJ라는 꿈을 갖기도 전에, 클럽에서 음악을 듣는 게 너무 좋은데 같이 갈 사람이 없어서 항상 혼자 다녔거든요. 소중하지만 외롭기도 한 기억이에요. 그날 그 DJ 셋 진짜 좋지 않았냐 이런 말을 나눌 사람도 없어. 근데 여기서 같이 배우는 분들은 그런 친구가 생긴 거니까 얼마나 좋아요.
임솔: 비슷한 걸 좋아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것 자체가 반가운 것 같아요. 가르치면서 새로 발견하게 되는 DJ도 있고 트랙 메이킹을 하는 사람도 있고, 파티 프로모터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아니면 그냥 진짜 같이 클럽 갈 사람들이 생겨서 음악 들으러 다니는 분들도 있어요. 어떤 방식으로든 이 문화를 중심에 두고 갖고 노는 사람들이 늘어난다는 체험을 하게 되니까 좋죠.
DJ 워크샵 2dfx 레슨 사진
— 보람도 있지만 인터내셔널 멤버 한 분 한 분이 일이 많고 바쁘시잖아요. 가르치는 일들이 장기적으로는 힘에 부칠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래도 다들 힘을 얻으시는 게 대단해요.
예츠비: 물론 힘들죠 하하하.
아렉시보: 누군가를 가르친다는 게 에너지를 엄청 많이 쓰는 일이기는 해요. 근데도 그 힘듦을 넘어서는 보람이나 이 문화에 기여하고 있다는 뿌듯함이 생기니까 아직은 쉬어야겠다는 마음이 들지는 않아요. 오히려 힘이 들어도 해야 하는 일이라는 마음이 생겼어요. DJ 워크샵의 마지막 코스로 수강생들의 파이널 쇼를 하는데, 그때 한 명 한 명의 믹스를 듣고 있으면 엄청 뿌듯합니다.
예츠비: 우리가 씬을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자기들끼리 의기투합하는 모습을 보면 내가 사라져도 이들은 유지가 되겠구나 싶고요.
— 레이블로서 인터내셔널의 얘기도 듣고 싶어요. 최근에는 작년에 인터내셔널에서 발매한 예츠비의 [MY STAR MY PLANET MY EARTH]가 2024 한국대중음악상에서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상을 수상하는 쾌거를 얻기도 했고요. 자연스럽게 프로듀서, 뮤지션들이 있다보니 레이블의 기능도 하게 된 건가요?
임솔: 실제로 외국의 레코드 레이블이 머천다이즈를 만들 때 티셔츠를 꼭 만들어요. 인터내셔널은 패션 브랜드로 시작을 했지만 옷보다 음악에 대한 얘기를 훨씬 많이 하고 있기 때문에 레이블을 하는 것이 가능한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팀원들이 다 트랙을 만드는 사람들이니까 자연스럽게 우리의 다음 스텝은 레이블라는 생각으로 이어졌어요.
작년에 인터내셔널의 첫 앨범을 어떻게 낼 것인지에 대한 얘기를 하게 됐어요. 처음에는 예츠비가 본인이 클럽에서 틀고 싶은 트랙들을 리믹스해서 그걸 묶어 앨범으로 내겠다고 했는데, 갑자기 무슨 신호가 왔는지 본인한테 조금만 더 시간을 주면 진짜 본인의 음악을 만들어 오겠다 하더라고요. 저는 예츠비를 오래 봐왔으니 예츠비가 뭔가 제대로 할 수 있겠다는 믿음이 있었어요.
그러고 한 열흘 만에 앨범을 만들어 왔는데, 처음에 들었을 때 저에게는 충격적인 체험으로 다가왔어요. 정말 너무 좋았어요.
2024 한국대중음악상 최우수 일렉트로닉 음반을 수상한
예츠비의 앨범 [My Star My Planet My Earth]
— 그렇게 인터내셔널에서 나온 첫 앨범이 좋은 상까지 받으니 정말 기쁠 것 같아요.
임솔: 상까지 타니까 진짜 짜릿하더라고요. 우리가 좋은 마음으로 주고받은 결과가 사람들한테도 잘 받아들여져서 결과로 돌아오니까 우리 안에서는 예츠비가 영웅이 된 거죠. 우리 팀으로서도 필요한 성과였고 좋은 계기가 돼서 그 다음으로 나갈 수 있는 경험이 된 거니까요. 어떻게 보면 레코드 레이블을 얼렁뚱땅 시작했지만 그게 너무 좋은 형태로 돌아와서 좀 감동적이죠. 근데 이 다음도 잘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 예츠비님도 말씀 한마디 해주세요.
예츠비: 앨범을 만들기 전에 자기 반성의 시간이 있었어요. 스스로 음악을 너무 쉽게 만들고 있고 음악을 어떤 창작물로 대하는 게 아니라 공장에서 찍어내듯이 만들고 있는 제 모습을 발견한 거예요. 그동안의 전자음악 생활을 돌아보면서 제 이름으로 나온 음반 중에서 진짜 나의 음악을 만든 게 없다고 느껴지기까지 했어요. 예츠비라는 아티스트를 음악으로 설명할 때 현존하는 건 없구나 하는 위기감이 생긴거죠.
그런 마음으로 다시 잘해보자고 절치부심해서 만든 앨범이 성과를 내서 상을 탔으니 스스로 의미가 커요. 인터내셔널에서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기운이 담겨 있는 음악이 인정을 받으니 건강하고 아름다운 것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어요.
— 레이블로서 인터내셔널의 다음 계획은요?
예츠비: 레이블의 업무는 제가 주도적으로 맡고 있는데요. 메인 스트림이 아닌 음악을 다루는 레이블이 성장하거나 유지되기가 어렵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어요. 저는 예츠비뿐만 아니라 살라만다로도 일을 하고 있어서 일찌감치 그런 걸 많이 느꼈죠. 인터내셔널이 아직은 PR 회사나 유통회사를 고용해서 일할 수 있는 형태는 아니고 아직까지는 창작자 집단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렇기 때문에 무엇보다도 우리가 착한 레이블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요. 이 음악이 당장 팔리든, 그렇지 않든 나중에 모아서 봤을 때 우리의 카탈로그를 알아봐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하려고요. 여성의 날에 기획해서 발매한 컴필레이션도 그런 마음이었고, 지금은 유명하진 않지만 평소에 이 친구는 음악이 진짜 좋은데 왜 릴리즈가 없을까 생각했던 친구들을 꼬셔서 음반을 내도록 도와주고 싶기도 하고요. 이 일도 결국에는 레이블로서만이 아니라 인터내셔널이 빌딩하고자 하는 커뮤니티적인 활동의 연장선이 아닐까요.
올해 3월 8일, 여성의 날을 기념해 인터내셔널에서 발매한 컴필레이션
— 하시는 모든 일에 사명감이 엄청난데요.
예츠비: 우리가 그러려고 모인 건 아닌데 왜 이렇게 됐는지 모르겠어요. (웃음)
아렉시보: 어깨가 무거워요.
임솔: 비슷한 문제 의식을 오랫동안 가져온 사람들이니까 우리가 앞장서서 좋은 사례를 많이 만들어 나가는 역할을 해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 이 세계가 안전하게 커나갈 수 있는 생태계를 만드는 것이 인터내셔널 팀 공동의 목표인 것 같네요. 이 외에도 각자 그리는 인터내셔널의 비전이 있다면요?
비전: 저는 개인적인 욕심보다는 지금은 팀의 성장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행동이나 경험에 영향을 받아 변화하고 그에 적응하는 뇌의 능력을 말하는 신경 가소성이라는 용어가 있다고 하는데, 우리가 서로 좋은 영향을 주면서 그런 작용을 계속 하고 있다고 생각해요.
아렉시보: 저도 비슷한 마음이에요. 함께 같이, 조금씩 땅을 넓히면서도 단단하게 하는 작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성장을 올해부터 다시 꿈꿔봐야죠. 그렇습니다.
Boiler Room Seoul: The Internatiiional 파티 현장 - Yetsuby
OUTRO
ISSUE 04